# 6
“컥!”
박두칠의 손에서 도끼가 떨어져 나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도 한 자루가 손잡이만 남긴 채 남성 바로 위쪽으로 파고들어 가 있었다.
도의 위치로 보건대 물건도 잘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개자식!”
“그 아이는 열세 살이었어. 열세 살!”
김필도는 짓씹듯 중얼거리며 왼손을 사정없이 당겼다. 그러자 박두칠의 아래쪽으로 파고들어 갔던 단도가 빠져나왔다.
“커억!”
박두칠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먼저 가서 기다려!”
김필도는 들어 올렸던 도를 강하게 내리그었다.
“크아아악!”
박두칠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우!”
“우우우!”
팀장인 박두칠까지 죽고 나자 전의를 상실한 듯 덩치들은 얼빠진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야아아아!”
그런 그들을 향해 김필도는 함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젠장…….”
이동수는 진땀을 흘렸다.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는데 손이 심하게 떨려 자꾸만 다른 번호가 찍히는 것이었다.
열한 자리 번호를 전부 누르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단축번호 18번만 누르면 된다. 그런데 단 두 개의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돼, 됐다!”
간신히 18번을 누른 그는 휴대전화를 귀에 댔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모 트로트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씨팔!”
온통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댄스곡에 가까운 ‘어머나’를 듣자 절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아악!”
“악!”
“으악!”
“제발 좀 받아라, 이 씨팔놈아.”
이동수는 팀장 윤치성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도 잠시 잊고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있는 곳은 싸움 현장에서 50미터 떨어진 컨테이너 위쪽이었다. 승합차 다섯 대의 전조등이 환하게 비추는 곳에서 도살이 벌어지고 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건 기본이고, 수시로 머리도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마치 예전에 보았던 영화, 조지 클루니 주연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중 술집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연안파의 블루팀은 뱀파이어고 김필도는 조지 클루니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영화 속 장면보다 백배는 더 잔인했다.
“나다!”
전화 너머에서 윤치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죽었습니다, 형님, 아니 팀장님.”
“누가 죽어?”
“나무꾼 형님과 블루팀이 싹쓸이 당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김필도가 나무꾼 형님과 블루팀 전부를 죽였단 말입니다.”
“이런 썅!”
비몽사몽간에 있던 윤치성은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말해 봐.”
그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여전히 이동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필도를 잡으러 나간 블루팀은 오십 명이다. 그런 그들이 필도에게 전부 죽었다니. 믿기지가 않는 말이었다.
“그게…….”
이동수는 방금 본 상황을 빠짐없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정말 검으로 블루팀 전원을 없앴단 말이냐?”
윤치성은 다그치듯 물었다.
여전히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냐. 좀 믿어라 좀만아!”
이동수는 저도 모르게 쌍욕을 내뱉었다.
“맙소사!”
윤치성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반말을 지껄인 이동수를 향해 죽인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윤치성은 이동수의 욕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 그럴 경황이 없었다.
“으아악!”
그때 전화기에서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굳이 이동수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비명의 주인이 블루팀 중 한 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옷을 걸쳤다.
“팀장님!”
전화기에서 이동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놓치지 마.”
“알겠습니다, 팀장님!”
이동수는 전화를 끊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이미 도살장 축제는 끝나고 승자가 된 김필도만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흐읍!”
김필도는 배를 바라보았다.
싸우는 도중에 빠져나갔는지, 배에 꽂혀 있던 회칼이 보이지 않았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필도는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쿡!”
차를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었다. 찌그러진 차체와 깨진 유리가 꼭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트렁크를 열고 공구상자처럼 생긴 상자 하나를 꺼냈다. 무기와 더불어 조폭들에게 필수품인 구급약이 들어 있었다.
상자 뚜껑을 연 그는 재킷과 방탄조끼를 벗었다. 드레스 셔츠는 피로 범벅이라 입고 있을 수가 없었다. 드레스 셔츠를 벗어 던진 그는 구급약 상자에서 소독약을 꺼내 상처 부위에 들이부었다.
“크으윽!”
허연 거품이 부글부글 괴면서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남은 소독약을 오른편 허벅지에 부었다.
“이것 때문인가?”
그는 왼손을 보았다.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게 빛나던 마법진은 원래의 검은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실 지금 정도의 부상이면 이미 죽었어야 했다. 다른 부상은 차치하더라도 배를 뚫고 들어간 상처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극심한 고통과 약간의 불편을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된 게 왼손에 있는 마법진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김필도는 구급약 상자에서 압박붕대를 꺼냈다.
“제가 해 드릴까요?”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는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김필도는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살폈다.
“치성 형님을 모시고 있는 이동수라고 합니다.”
“치성이?”
“네.”
“날 감시했던 거냐?”
“형님이 아니고 나무꾼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감시 대상이 없어진 거네?”
“그렇습니다.”
“좀 감아 줄래?”
김필도는 압박붕대를 이동수에게 건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동수는 거즈를 칼에 찔린 자리에 대고 그 위로 압박붕대를 감았다.
배부터 시작해서 부러진 갈비뼈까지 전부 감았다. 그런 다음 허벅지도 압박붕대를 감아 주었다.
“고마워. 저기 도집 좀 가져다줄래?”
김필도는 구급약 상자를 트렁크 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뒷좌석에 걸어 두었던 드레스 셔츠를 꺼내 입고 방탄조끼를 걸쳤다.
“알겠습니다.”
이동수는 한편에 떨어진 도집을 주워 김필도에게 건넸다.
김필도는 도를 도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좋은 이름이네.”
도집을 바라보던 김필도는 미소를 지었다. 도집에 설풍(雪風)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설풍이면 일본말로는 유키카제지?”
“네?”
난데없는 질문에 이동수는 어리벙벙했다.
“아냐.”
김필도는 문을 열고 설풍과 단도를 조수석으로 놓고 차에 올랐다. 그러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일을 마무리 지으러 가야지. 치성이 그 녀석이 널 여기까지 보낸 걸 보면 상당히 믿는 것 같은데, 맞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커피는 매일 제가 타드립니다.”
“그럼 맞아. 치성이 그 녀석은 정말 믿는 녀석이 아니면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으니까. 여기 계속 있으면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되도록 빨리 이곳을 뜨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동수는 차에서 내렸다.
“그럼 다음에 보자.”
김필도는 손을 흔들고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BMW는 빠르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김필도의 차량이 사라지자 이동수는 그의 차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흰색 차량이 어둠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잔뜩 흐렸다 싶었는데 급기야 하늘은 비를 뿌려 놓는다. 김필도는 제2경인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내비게이션에 영흥관을 찍었다. 영흥관이 경기도 성남에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영흥관을 찾는 동안에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전면 창에 단순화시킨 지도가 나타났다. 그럼 다음 오디오에 에미넴 시디를 집어넣었다. 에미넴 시디 중 김필도가 가장 좋아하는 건 1집이다.
1집을 좋아하는 건 곡에 흐르는 느낌 때문이다.
‘1’이란 숫자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처음 시작하는 일은 꿈과 희망, 열정, 간절한 바람이 충만하다. 곡도 마찬가지다. 1집은 그 가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거짓이나 가식은 전혀 없고 오직 진실만이.
오직 진실만으로 세상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이 바로 1집인 것이다.
에미넴 1집 중 가장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라면 트랙3 Stan이다.
도입부의 빗소리에서 시작하는 Stan은 끝나도 한동안 여운이 남는다. 트랙 2 Kill you가 끝나고 Stan이 시작됐다.
김필도는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았다. 그러자 차는 미끄러지듯 쏘아져 나갔다.
멀리 초원에서 들려오는 수사자 울음 같은 엔진음이 Stan 사이로 흘러든다.
볼륨을 높이듯 발에 힘을 주어 본다. 속도계는 순식간에 2백 킬로미터를 넘나든다.
김필도는 전면을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무섭게 전면 유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지이잉!
진동으로 맞춰 두었던 휴대전화가 울어대었다.
김필도는 조수석에 던져 놓은 휴대전화를 보았다. 윤치성의 전화였다.
팔을 뻗어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어디냐?”
전화기 너머에서 윤치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동수란 녀석에게 말을 들은 듯 제법 다급하다.
“고속도로!”
“어디 가는데?”
“그건 차가 알겠지.”
“동수 그놈 말이 사실이냐?”
“이동수?”
“응!”
“내일 조간은 힘들 테고 석간 보면 자세하게 알게 될 거야.”
“필도야.”
“난 괜찮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차 돌려서 다시 인천으로, 아니 부산으로 가라. 그리고 바로 밀항해라.”
“정중수 그놈이었다.”
“무슨 소리냐?”
“정중수 그놈이 필녀를 장계상과 최태성에게 데리고 갔다.”
“진짜냐?”
“그놈과 최태성은 필녀를 미끼로 장계상을 강간 살해 죄로 처넣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일이 끝나고 나자 최태성의 마음이 변한 거야.”
“언제 알았냐?”
“정중수가 관련이 있다는 건 반년 전에 알았고, 장계상과 최태성이 관련됐다는 건 오늘 박두칠로부터 들었어.”
“하지만 연안파는 조직원만 해도 수백 명이 넘는다. 그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죽어, 자식아.”
“네가 있잖아.”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장계상, 최태성, 정중수가 내일 10시에 만나기로 돼 있어.”
“어디서?”
“그들에 대해서는 잊어. 대신 넌 연안파만 신경 쓰면 돼.”
“연안파?”
“내가 그랬잖아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설마 나보고 연안파 보스가 되라는 거냐?”
“필녀 말이야.”
김필도는 느닷없이 화제를 돌렸다.
“필녀가 왜?”
“내 친동생이 아니었어.”
“그게 무슨… 서, 설마 너도 필녀를 좋아했다는…….”
윤치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필녀와 필도, 둘 다 잘생기긴 했지만 닮은 점은 거의 없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고아원에서 만났어. 이름은 고아원에서 도망치면서 지은 거고.”
“그런데 왜 내게 주려고 했던 거냐?”
“나보다는 네가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넌 부모님도 계시고, 밥은 먹고 사니까. 네게 시집가면 적어도 배는 곯고 살지 않을 거잖아.”
“김필도!”
“잘 살아!”
김필도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김필도!”
윤치성은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부질없는 신호음만 들려왔다.
그는 다시 김필도의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김필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빌어먹을!”
윤치성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허공을 뚫어질 듯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