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인천 중부서 형사 계장 강도남이 의문의 전화를 받은 건 새벽 5시였다.
쉬지 않고 울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발신 번호가 없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데, 뭔가가 잡아끄는 듯한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뭔지 모를 다급함이 전화벨 소리에 어려 있는 듯했다.
그의 손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컨테이너 터미널에 시체 50구가 있소.”
통화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강도남은 한동안 멍해 있었다.
컨테이너 터미널에 시체 50구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었다.
“장난 전환가?”
그는 시계를 찾았다. 책상 위 디지털시계는 5시 5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번엔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은 캄캄한 밤이다.
문득 장난 전화질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형사 계장에게 장난 전화질을 할 만한 배짱을 가진 자가 있을는지.
휙!
강도남은 이불을 걷고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요?”
자고 있던 강도남의 부인이 뒤척이며 물었다.
“그냥 자.”
강도남은 침대를 벗어나 옷을 입었다.
“벌써 나가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그래.”
강도남은 급하게 현관을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가 이렇듯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전화 목소리 때문이었다. 전화를 받는 도중엔 비몽사몽간이라 목소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내 지독하게 차갑고 절제된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코 장난 전화가 아니었다.
그는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 올랐다. 10년째 타고 있는 소나타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어둠을 갈랐다.
그리고 10여 분 후 컨테이너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 넓은 곳에서…….”
강도남은 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시체들을 찾은 것은 20분 후였다. 터미널 북쪽, 수명이 다해 폐기 처분할 컨테이너를 쌓아둔 곳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우욱!”
현장을 마주한 강도남은 헛구역질을 했다.
마치 수백 년 전 중세시대 전쟁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팔다리가 잘린 자들, 허리가 잘린 자들, 머리가 잘린 자들의 시체가 공터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강도남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한 사람은 서장이었다.
서장 또한 강도남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장난한다며 호통을 쳤다. 50명이 몰살당한다는 건 전쟁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지금 제가 현장에 있습니다, 서장님!”
“제기랄!”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컨테이너 터미널 살인 사건은 경찰청장에게까지 보고됐다.
그리고 사건 현장 주위는 천막으로 가려졌다.
“왜 저러는 겁니까?”
현장을 살피던 윤두상이 물었다. 윤두상은 강도남 부하 직원이었다.
“당분간 비밀로 할 모양이야.”
“비밀이라고요?”
윤두상은 황당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52명이나 되는 자들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진돗개보다 더 냄새를 잘 맞는 기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아마 오후가 되면 드러나고 말 텐데 비밀로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종말론자들까지 설치고 있는데, 52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표되면 어떻게 되겠냐?”
“그놈의 종말론은…….”
윤두상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종말론을 부추기고 있는 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소행성 때문이다.
나사에서는 화산이 폭발하는 것 정도의 미미한 충격밖에 없을 거라고 하였고, 지금까지 떨어진 소행성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사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
핵폭탄 수천 개에 해당하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소문부터,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G7 정상들은 핵전쟁이 일어나도 끄떡없는 장소로 몸을 피했다는 말들까지 무성하게 떠돌고 있는 형국이다.
계장의 말처럼 그런 상황에서 52명이 한 장소에서 살해됐다는 사실은 큰 반향을 불러올 게 분명하다.
“냄새 맡는 덴 개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자가 있다는 걸 잊었습니까?”
윤두상은 시니컬하게 말했다.
“밝혀질 땐 밝혀지더라도 일단은 비밀을 유지하라는 지시야.”
그때 두 사람 곁으로 남자 형사가 다가왔다. 날렵한 체격을 가진 그는 윤두상의 파트너인 김철곤이었다.
“전부 검에 당했습니다.”
김철곤은 강도남을 보며 말했다. 김철곤은 검도 유단자였다.
“검?”
“일본도 같은 무깁니다. 대부분 일검에 잘렸습니다.”
김철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검도의 실력자라고 해도 저렇게 잘라내는 건 쉽지 않다고 하지 않았냐?”
강도남은 허리를 기준으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시체를 가리켰다.
“엄청난 실력자가 있는 모양이죠, 뭐.”
김철곤은 어깨를 으쓱했다.
“반장님!”
그때 장비를 싣고 있는 차량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사반의 꽃인 이보경 형사였다.
“왜?”
강도남은 고개를 돌렸다.
“CCTV가 나옵니다.”
“알았어.”
강도남은 장비 차량으로 향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승합차 안으로 들어갔다.
“폐 컨테이너 쪽이라서 그런지 화질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요.”
이보경은 한편에 놓인 컴퓨터를 가리켰다.
“틀어 봐!”
강도남의 말에 이보경은 키보드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아주 오래된 흑백 비디오 화면처럼 흐릿한 영상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뭐냐, 저거?”
모니터를 바라보던 강도남이 김철곤을 보았다.
“헐!”
하지만 김철곤은 강도남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모니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 안을 종횡무진 움직이고 다니는 자는 단 한 명. 사내의 검이 광채를 쏟아 낼 때마다 피가 튀고 잘린 머리가 떠올랐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김철곤!”
강도남은 버럭 소리쳤다.
그 또한 김철곤과 같은 심정이었다. 52명을 없앤 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괴물입니다.”
김철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검도를 배우면서 자칭 고수라고 하는 자들을 여럿 보았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검의 끝을 보았노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자칭, 타칭 고수들 중 화면 속 사내만큼 검을 다루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화면 속 사내에 비하면 그들은 어린애 수준이었다.
“저거 뭐야?”
“일본돕니다.”
“일본도가 저렇게 길었나?”
강도남은 검도를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강력반에 있다 보니까 많은 일본도를 접했다. 하지만 저렇게 긴 일본도는 처음이었다. 화면상이지만 거의 170센티미터는 될 것 같았다.
“긴 장검은 일본의 남북조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에 유행했던 방식이 섞여 있어요.”
일본도에 대한 설명은 이보경의 입에서 나왔다.
“무슨 소리야?”
“길이가 170센티미터가량이면 도신의 길이는 120센티미터 정도 되는데 그런 장도가 유행했던 시기는 남북조 시대거든요. 하지만 저렇게 많이 굽어진 형태는 아니었어요. 저런 도는 무로마치 시대 때 유행했던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저 도가 골동품이라는 뜻?”
“최소한 6백 년은 됐을 거예요.”
강도남의 질문에 이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6백 년이면 명검, 아니 명도네?”
“신돕니다.”
김철곤이 말했다.
“신도?”
“보통 도로는 저렇게 많은 사람을 베지 못합니다.”
“사람이 먼저 지친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럼 저놈은 뭐야?”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괴물입니다.”
김철곤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검은색 BMW예요, 반장님.”
모니터를 살피고 있던 이보경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범인이 타고 간 차 말입니다.”
“아무튼 좋은 차는 죄다 나쁜 새끼들이 타고 다녀. 차량 번호는 식별 가능해?”
강도남은 투덜대며 물었다.
“번호판을 가려서 불가능해요.”
“젠장!”
“연안팝니다.”
그때 사무실의 막내인 권오근이 승합차 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죽은 놈들이 조폭이라는 거야?”
강도남은 권오근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반장님. 나무꾼 박두칠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박두칠이면 연안파 중간 보스잖아.”
강도남은 윤두상을 돌아보았다.
“네.”
윤두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폭 간의 전쟁인 거야?”
“조폭 간의 전쟁이 아니고 한 놈이 쓸어버린 일방적인 도살입니다.”
“윤두상!”
강도남은 윤두상을 노려보았다.
“식사하러 가셔야죠.”
윤두상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 인마. 너와 이 형사는 교통관리공단으로 가서 교통 카메라를 뒤져.”
“BMW750을 찾으란 말입니까?”
“간밤에 비 왔잖아. 그런 고급 차는 흔치도 않고.”
“알겠습니다.”
윤두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보경과 함께 승합차에서 내렸다.
“김 형사 넌 연안파 녀석들과 접촉해 봐.”
“알겠습니다.”
김철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젠장!”
형사들이 나가자 강도남은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강도남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범인 색출이 아니라 이번 사건을 당분간 어떻게 숨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테이프를 되감아 플레이시켰다. 잔인한 액션 영화 같은 장면이 쉬지 않고 지나간다.
“뱀파이어네, 뱀파이어.”
강도남은 혀를 내둘렀다.
녀석은 허벅지가 베이고 배에 검을 꽂은 채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조폭들을 베어 넘긴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성이 결여된 하드 코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집엔 다 들어갔네.”
강도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4장 난 너다
“나사에 의하면 소행성 중 하나가 동북아시아 쪽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경 태평양으로 떨어질 게 유력해 보이지만 국내로 떨어질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다음은 일부 종말론자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종말론자들은…….”
교통관리공단으로 나갔던 윤두상과 이보경이 돌아온 건 강도남이 12시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모니터를 샅샅이 들여다본 후유증인 듯 두 사람의 눈은 잔뜩 충혈돼 있었다.
“어때?”
강도남은 두 사람에게 믹스 커피를 타주며 물었다.
“어젯밤 11시 이후 외부로 빠져나간 BMW750은 전부 10대고 그 중 검은색 차량은 5댑니다. 2대는 남쪽으로 갔고, 2대는 서울로 그리고 1대는 성남으로 갔습니다.”
보고는 윤두상이 했다.
“범인의 차는 부서졌잖아.”
“폭우 때문에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못 찾았다는 거야?”
“네.”
“차들의 최종 목적지는?”
“남쪽으로 간 차량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게 목격됐습니다. 톨게이트에 있는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확인해 봤는데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서울로 간 차량 2대와 성남으로 간 차량 1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왔다고?”
“이걸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