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윤두상은 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뭔데?”
“남쪽으로 간 두 대를 뺀 나머지 세 대의 행적을 기록한 걸 복사한 겁니다. 그리고 계속 찾아봐 달라고 부탁도 해 놓고요.”
“틀어 봐.”
“네.”
윤두상은 테이프를 비디오 플레이어에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윤 형사 넌 연안파와 대불파 조직원들 중에서 BMW를 타고 다닌 녀석을 찾아.”
“알겠습니다.”
윤두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식사는 했어?”
“자꾸만 아침에 봤던 광경이 떠올라서…….”
“쯧! 그래가지고 어떻게 강력계 형사 하려고 그래?”
“점점 나아지겠죠, 뭐. 아무튼 다녀오겠습니다.”
윤두상은 머리를 벅벅 긁고는 밖으로 나갔다. 대원들이 연안파와 대불파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사이 강도남은 두 번이나 호출을 당해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소행성이 떨어질 때까지만이라도 함구하라는 명령을 하달받았다.
그리고 저녁 8시 무렵 윤두상으로부터 BMW750의 주인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김필도라고?”
“그렇습니다.”
“어떤 녀석이야?”
“대불파 이인자로 망해 가던 대불파를 연안파와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은 녀석입니다.”
“에쿠스가 아니고 BMW를 붙여 준 거 보면 유능한 모양이지?”
“유능한 정도가 아닙니다. 형사 생활 15년이지만 이런 전력을 가진 조폭은 처음입니다.”
“화려한가 보지?”
“화려한 정도가 아닙니다. 2년 만에 초등, 중등, 고등과정을 검정고시로 패스하고, S대 경제학부에 입학해 수석 졸업한 녀석입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까지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합니다.”
“그런 엄청난 녀석이 왜 조폭이 된 거지?”
“녀석을 공부시켜 준 자가 대불파의 정중수거든요.”
“왜?”
강도남은 물었다.
“왜 공부를 시켜 줬느냐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럼?”
“S대를 나오고, 4개 국어에 능통하고, 대불파의 이인자에, BMW750을 탈 정도로 능력 있는 놈이 왜 52명을 살해했느냐는 거야.”
“그건…….”
윤두상은 말끝을 흐렸다.
반장의 질문은 살인 그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김필도는 잡히면 무조건 사형이다. S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머리 좋은 녀석이 잡히면 사형당한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2명을 없앴다면…….
“이 형사!”
윤두상은 이보경을 보았다. 이곳에 오는 동안에 이보경에게 김필도에 대한 모든 걸 찾아놓으라고 전화를 해 두었다.
“김필도에 대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전과도 없어?”
이번엔 강도남이 물었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딱지를 떼인 기록도 없어요.”
“가족은?”
“고아예요. 어렸을 때는 여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11년 전에 동생이 자살한 뒤론 죽 혼자 살았어요.”
“11년 전이면 최태성과 정중수가 갈라섰던 때 아냐?”
“맞아요.”
“여동생은 몇 살 때 자살했는데?”
“열세 살 때요.”
“열세 살짜리가 자살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
“그건…….”
“반장님, 서울로 간 차량 두 대를 찾았습니다.”
그때 권오근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닌 모양이지?”
“…….”
권오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성남으로 간 차량만 남았네?”
“그 차도 찾았습니다.”
이번엔 김철곤이 승합차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어디야?”
“성남 외곽의 체육공원 주차장에서 발견됐답니다.”
“김필도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강도남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었다.
번호를 확인한 강도남은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친구의 전화였다.
최태성과 장계상 그리고 정중수의 행적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뭔가 나온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나야.”
“어때?”
“최태성, 장계상, 정중수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어.”
“어디로 움직이고 있대?”
“최태성과 장계상은 모르겠지만 정중수는 분당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최태성과 장계상은 지금 어디 있는데?”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있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어?”
“부하 20여 명과 함께야.”
“정중수는?”
“그 역시 부하 20여 명을 대동하고 있고.”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가도 성남으로 갈 수 있겠지?”
“당연히 갈 수 있지.”
“땡큐. 다음에 술 한 잔 쏠게.”
강도남은 전화를 끊고 형사들을 보았다.
“김필도가 노리는 자가 그들이란 말입니까?”
윤두상이 물었다.
“그것까진 모르겠어. 하지만 최태성, 장계상, 정중수가 회동을 갖는 건 확실한 것 같아. 문제는 회동 장소 근처에 52명을 살해한 김필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이 목표였을 수도 있겠군요.”
“장계상과 최태성만 노리는 건지 아니면 정중수까지 노리는 건지 그건 알 수 없어. 한 가지 분명한 건 11년 전에 김필도의 여동생이 죽었고, 그해에 최태성과 정중수가 갈라섰다는 거야.”
“최태성과 정중수가 갈라선 것과 김필도 여동생의 자살이 관련 있을 걸로 보십니까?”
“응!”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육감이야.”
강도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성남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윤두상은 강도남을 따라나서며 물었다.
“거기에 김필도가 있어. 전부 저 차에 타!”
강도남은 한편에 대기 중인 승합차를 가리켰다.
“우리만 가자고요?”
“확실하지 않은데 비상 때릴 수는 없잖아.”
강도남은 차에 오르며 휴대전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상대방이 나왔다.
강도남과 통화를 한 사람은 성남중부경찰서 형사계장 남덕선이었다. 남덕선은 강도남이 햇병아리 형사였을 때 파트너였다.
“나야.”
강도남은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 다음 협조를 구했다.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거 아냐?”
“놈의 행적을 확인한 다음에. 그리고 당분간은 비밀 수사 지시가 떨어졌어.”
“그렇다고 해도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을 하려면 서장님께는 보고를 해야 하지 않아?”
“우리 서장님께 전화 드리라고 하지.”
“그렇게 해 주면 고맙고.”
“고마운 건 나지. 아무튼 거기서 보자고.”
전화를 끊은 강도남은 출발 지시를 내렸다. 곧 승합차는 컨테이너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차는 곧바로 제2경인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처음엔 막힘없이 술술 빠져나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차가 막히기 시작한 것은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2킬로미터가량 달렸을 때였다.
마치 명절 때 귀성인파가 몰린 것처럼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야?”
강도남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사고가 난 거 아닐까요?”
운전을 하던 윤두상이 말했다.
“아무리 사고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윤두상은 말끝을 흐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한 권오근이 차 유리를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소행성 때문이에요.”
뜻밖에도 대답은 차 안에 있던 이보경에게서 나왔다.
“검색어 1위예요.”
이보경의 손은 휴대전화 액정 위를 바쁘게 오갔다.
“소행성이 왜?”
강도남이 물었다.
“일본 동쪽 태평양으로 떨어질 줄 알았던 소행성이 우리나라로 떨어진다고 하네요.”
“정말?”
“그것도 서울로요.”
“소행성의 크기는 어느 정돈데?”
“엄청난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닌가 봐요.”
“그렇다고 해도 직통으로 맞으면, 그곳에 있는 사람은 죽겠지?”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하는데요?”
“미친 것들!”
강도남은 밖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원래 불확실한 위험이 더 무서운 법이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언제 떨어진대?”
“오늘 밤 12시나 1시쯤이라고 하는데요?”
“그래?”
강도남은 휴대전화를 빼들고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그의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께서 아프시대.”
강도남은 대충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무슨 소리예요?”
“아까 장모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편찮으시다고 하더라고.”
“나도 조금 전에 전화 받았는데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요?”
“당신이 걱정할까 봐 그랬겠지 뭐. 아무튼 장모님께 가 봐.”
“네?”
“지금 당장 장모님께 가 보라고.”
“여보!”
“시키는 대로 해.”
“그러니까 왜…….”
“소행성이 떨어진다는데 집에 있을 거야?”
“인천은 괜찮다고 하던데요?”
“당신이 소행성이야? 어디로 떨어질지 어떻게 알아!”
강도남은 버럭 소리쳤다.
“그렇다고 해도 이 밤에 어딜 가라고 그래요!”
“그럼 애들이라도 보내.”
“들은 거라도 있어요?”
“가급적이면 아이들하고 함께 가, 알았지?”
“아, 알았어요. 그런데 당신은 언제 올 거죠?”
“당분간은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아. 내일 다시 전화할게.”
강도남은 전화를 끊었다.
문득 정수리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자 시선을 들었다. 운전을 하는 윤두상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별일도 아닌 걸로 호들갑 떤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이보경이 대표로 나섰다.
“집으로 떨어지면 다 죽는다며?”
“히잇!”
이보경은 피식 웃었다.
“뭐 나온 거 있어?”
강도남은 공연히 멋쩍어 이보경의 노트북을 들여다보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CCTV 기록을 보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컬러 화면으로 바꿔 봤어요.”
“흑백을 컬러로 바꿀 수도 있어?”
“원래 컬러였어요.”
“어때?”
“인간이 아니에요.”
“그럼 뱀파이어냐?”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요. 이 사람의 움직임을 1백 미터 달리는 걸로 계산하면 6초 걸려요.”
“6초?”
“네.”
“잘못 계산한 거 아냐?”
“계산은 제가 아니고 컴퓨터가 한 거예요.”
“그런데 6초밖에 안 나온다고?”
“평균 6초예요.”
“더 빨리 움직일 때도 있다는 말이군.”
“네.”
이보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 자식 정체가 뭐야?”
“반장님 말씀처럼 뱀파이어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보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제기랄!”
강도남은 눈을 감았다.
우선은 잡아야 뱀파이언지 인간인지 확인을 할 수 있을 게 아냐.
“일단 한숨 자 둬.”
조바심 내 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 있을 때 쉬어 두는 게 나을 듯했다. 운전대를 잡은 윤두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눈을 감았다.
일행이 눈을 뜬 것은 밤 10시 30분쯤이었다.
김필도의 BMW가 발견된 곳 근처에는 성남 중부 경찰서 형사계장 남덕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치는 건 실패했어.”
“소행성 때문에?”
“응. 그런데 저 차는 어떻게 할 거야?”
남덕선은 김필도의 차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