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9화 (9/225)

# 9

강도남은 차를 보았다. 차에는 여기저기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우선 놈을 잡는 게 우선이니까. 이 근처에 조폭 두목들이 회동을 가질 만한 장소가 있을까?”

“장소야 많지.”

“부하들까지 합치면 40여 명 될까 싶은데.”

“40명 정도라면 범위가 많이 좁아지겠는데?”

“찾아낼 수 있을까?”

“알아보지.”

남덕선은 자리를 떴다.

강도남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일이네.”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띄엄띄엄 푸른 광채가 눈을 붙잡고 늘어진다. 놀랍게도 푸른 광채는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별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윤두상은 별일이네 하는 얼굴로 말을 붙였다.

“별이 떴어.”

“별이라고요?”

윤두상을 비롯한 대원들은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하늘에 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 얼굴에도 어느새 미소가 번져 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가 봐요.”

이보경이 홀린 듯 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전날 내린 폭우로 인해 하늘이 맑아진 모양이었다.

“소원이나 빌어야겠네요.”

이보경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시집가게 해 달라고 빈 거야?”

김철곤이 물었다.

“지금 내겐 변화가 필요하거든요.”

이보경은 히죽 웃었다.

일행이 별을 보고 있는 사이에 남덕선이 돌아왔다.

“다섯 곳이 유력하대.”

“어디 어딘데?”

“국빈관, 영류향, 석덕정, 청수향, 영흥관.”

“차례로 도는 건 그렇고 그곳을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네 명을 데리고 왔지.”

남덕선은 뒤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형사 네 명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자네와 난 국빈관, 윤 형사는 영류향, 김 형사는 석덕정, 권 형사는 청수향, 이 형사는 영흥관으로 가도록 해. 무슨 일 있으면 무전으로 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형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수근입니다.”

재킷을 걸친 자가 이보경을 향해 인사를 했다.

“이보경이에요. 영흥관까지는 얼마나 걸리죠?”

“차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왕수근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어떤 곳이죠?”

“최고급 한식당이죠.”

“우리 같은 사람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거죠?”

“그런 셈이죠.”

왕수근은 싱긋 웃으며 차에 올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영흥관을 향해 출발했다.

영흥관은 야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기와집이었다. 두 사람은 건물 뒤편에 차를 세우고 조용히 내렸다. 그리고 동정을 살폈다.

40명의 조폭들이 있으면 소란스럽진 않더라도 이런저런 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일단 살펴보도록 하죠.”

두 사람은 대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영흥관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그 순간 영흥관 가장 안쪽에 위치한 황실(皇室)에서는 세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듯 세 사람의 얼굴은 밝았다.

“그럼 김필도는 이미 인천 앞 바다에 수장됐겠구먼.”

정중수는 최태성을 보며 말했다.

“나무꾼은 일 처리가 확실한 녀석이네. 그런데 그놈을 대학에 보낸 이유가 뭔가?”

“고등학교 과정을 끝으로 그만두려고 했네.”

“그런데 녀석이 대학 시험을 쳐 버렸단 말인가?”

“그러면서 조폭도 이젠 불법적인 일이 아닌 합법적인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하더구먼. 주먹은 단지 보조 역할만 하면 된다고 말이네.”

“그러니까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조폭이 되기 위해 대학을 들어간다고 했단 말인가?”

“결국엔 녀석의 말이 맞지 않았는가?”

“하하하! 그렇구먼. 내가 한잔 따르겠네, 정 회장.”

최태성이 양주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용서를 구하는 잔인가?”

정중수는 술잔을 내밀었다.

“화해의 잔이라고 해 두세. 이런! 술이 떨어졌네?”

남은 술은 술잔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최태성은 문 앞에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잠시 후 문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술 한 병 더 가져와.”

“알겠습니다, 회장님.”

종업원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1분가량 흘렀을 때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그리고 문이 열렸다.

“이리 줘.”

최태성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엔 술병이 쥐어지지 않았다. 대신 섬뜩한 느낌이 팔목에서 전해져 왔다.

최태성은 고개를 돌렸다.

“헉!”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뿐만 아니라 최태성의 건너편에 앉아 있던 정중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놀라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뚝 떨어졌다.

놀랍게도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죽었다고 알고 있던 김필도였다. 아니, 김필도가 들어온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팔꿈치 부분에서 싹둑 잘려나간 최태성의 왼팔이었다.

잘린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가 김필도의 몸으로 분수처럼 쏟아졌다.

“크아악!”

그제야 최태성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푸욱!

바로 그 순간 짧은 단도 끝이 최태성의 입으로 파고들어 갔다.

“커억!”

최태성의 입으로 들어간 단도는 뒷목을 뚫고 나왔다. 한순간에 최태성의 눈에서 광채가 사라졌다. 도가 뒷목을 뚫고 나오는 순간 절명해 버린 것이었다.

“마, 맙소사!”

장계상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그가 테이블을 잡고 오른 다리를 굽히는 순간 김필도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설풍이 허공을 갈랐다.

스악!

차가운 소성과 함께 장계상의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비명도 없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한 장계상의 머리는 정중수 앞으로 떨어졌다.

츄악!

잘려 나간 부위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최태성과 장계상을 없애 버린 김필도는 정중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중수의 오른손은 가슴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난 당신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정중수는 손을 약간 밀어 넣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그것은 위험한 순간을 대비하여 가져온 권총이었다. 그 상태에서 천천히 안전장치를 풀었다.

딸깍!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이걸 기억할는지 모르겠소.”

김필도는 주머니에서 단추를 꺼내 정중수 앞으로 던졌다. 정중수는 발치로 떨어진 단추를 내려다보았다.

“양복 소매 단추구나.”

“필녀의 입 안에 있었던 거요. 그 단추의 주인을 11년 만에 찾았소.”

“그게 나란 말이냐?”

“얼마 전에 당신 심부름을 갔을 때 당신 방에서 확인했소. 11년 전 양복을 아직 보관하고 있더군.”

“이게 내 거란 말이지.”

정중수는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단추를 줍는 척하며 동시에 권총을 꺼내 김필도를 겨냥했다. 김필도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고맙구나, 김필도. 너 때문에 최고의 경쟁자였던 최태성과 장계상을 없앴으니까 이젠 나 혼자만 남았구나.”

“난 그걸 알고 싶어. 네가 필녀를 어떻게 했는지.”

“정말로 알고 싶으냐?”

“말해라.”

“놈들에게 데려가기 전에 주사를 놨다. 아주 순도 높은 필로폰이었지.”

“너도 맞았겠지?”

“장계상 그놈은 아주 의심이 많거든. 대신 나와 최태성은 농도를 절반으로 낮춘 걸 맞았지.”

“빨리 깨어나기 위해 그랬단 말이군.”

“맞아. 한 시간이나 일찍 깨어나서 장계상 그놈이 필녀와 그 짓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었지.”

“됐어.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충분하니까.”

“김필도! 박두칠을 비롯한 94명을 살해한 죄로 체포하겠다!”

바로 그때였다. 열린 문밖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김필도를 향해 권총을 겨냥하고 있는 사람은 이보경과 왕수근 형사였다.

“흐흐흐! 내가 이겼구나, 김필도.”

정중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내 손에 설풍이 있는 이상 아직 끝난 게 아냐.”

“널 쏘면 난 정당방위가 된다. 비록 불법무기 소지죄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그다지…….”

“타앗!”

우렁찬 외침과 함께 김필도는 설풍을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아, 안 돼!”

탕!

이보경의 외침에 이어 총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의 도가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순간 정중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크아악!”

하지만 김필도의 도는 멈추지 않았다. 총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설풍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정중수의 머리가 쩍 갈라졌다.

쿠웅!

정중수의 신형은 거칠게 넘어졌다.

“크윽!”

이어 김필도도 상 위로 풀썩 쓰러졌다.

“끙!”

이보경은 얼굴을 찌푸리며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무전기를 꺼내 들고 김필도 옆으로 다가갔다.

“반장님, 저예요.”

“어떻게 됐어?”

이미 연락을 받은 강도남은 일행과 함께 오는 중이었다.

“김필도는 총에 맞았고, 최태성, 장계상, 정중수는 김필도에게 죽었어요.”

“김필도는 누가 쏜 거지?”

“정중수가 쐈어요.”

“정중수에게 총이 있었어?”

“미리 준비했나 봐요.”

“김필도 상태는 어때?”

“지금 확인하는 중이에요. 즉사한 것 같아요.”

이보경은 무전기를 든 채로 김필도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누구 맘대로.”

“헉!”

이보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도의 끝이 목에 닿아 있었는데, 도를 쥔 사람은 김필도였다.

김필도는 싱긋 웃으며 이보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 멈춰라!”

왕수근은 질겁한 얼굴로 권총을 뽑았다.

“칼자루를 쥔 사람은 난데?”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보경을 품안으로 끌어당겨서는 목에 도를 들이댔다.

“김필도, 칼을 버려라.”

“우선 이 아가씨부터 무장 해제시켜야겠지.”

김필도는 이보경의 주머니에서 권총을 빼내 뒤쪽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그런 다음 설풍을 도집에 집어넣었다.

“그만 갈까?”

김필도는 이보경을 슬쩍 밀었다.

“도망치지 못한다, 김필도.”

왕수근은 주춤주춤 물러나며 소리쳤다.

“저 친구 이름이 뭐지?”

김필도는 이보경에게 물었다.

“왕수근.”

“왕 형, 어젯밤부터 시작해서 내가 죽인 놈들이 몇 명인지 아쇼?”

“인천에서 52명, 여기서 43명.”

“합하면?”

“95명이다.”

“만일 잡히면 난 어떻게 되지?”

“사형이다.”

“그럼 이 아가씨를 살려 주면 형이 감량될까?”

“……원하는 게 뭐냐?”

왕수근은 권총을 내렸다.

김필도의 말은 자꾸만 자극하면 이보경도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총은 내려놓고 가는 게 좋겠어.”

“좋다.”

왕수근은 총을 바닥에 내렸다.

“상황 판단이 빠른 친구네. 차 타고 왔지?”

“뒷문 쪽에 있다.”

“가자고.”

잠시 후 왕수근의 차는 체육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가 운전해 가는 차량 뒷좌석에는 이보경을 인질로 잡은 김필도가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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