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2화 (12/225)

# 12

그 마법진으로 인해 김필도는 스피드 업을 했고, 52명의 조폭들과 싸워서 이겼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네 손바닥에 있는 마법과 일반 마법사들이 익히는 마법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데요?”

“마법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논리적인 이론으로 정립돼 발전한 학문이다. 그 이론은 전부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빛의 마법, 암흑 마법, 용언 마법, 서클 마법, 실전 마법이 있지. 빛 마법은 천족의 마법이고, 암흑 마법은 마족의, 용언 마법은 우리 드래곤의, 서클 마법은 인간의 마법이다.”

“실전 마법은 누가 익혔죠?”

“전승되지 못했다.”

“왜요?”

“마법은 예술이다, 라는 말을 아느냐?”

“폼에 죽고 폼에 산다는 말입니까?”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팡이 하나로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을 쏘는 광경을 떠올려 봐라.”

“거기에 바람까지 불어서 로브와 기다란 머리카락이 휘날리면 죽음이겠죠.”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그런데 검사들을 봐라. 무거운 갑옷을 입고, 수백 미터를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하고, 적 바로 앞까지 가서는 창이나 검 또는 갖가지 무기를 휘둘러야 하지 않느냐. 그건 싸움이 아니라 중노동이야. 노예들이나 하는 일 말이야.”

“풋!”

마법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공격 효율에 있어서는 마법사들이 월등하고 검사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인간의 마법 기준으로 7클래스만 넘어가면 정면 공격으로 그를 없앨 사람은 마법사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 치고요.”

“그런데 익히기 힘들뿐 아니라, 익혀 봐야 노예처럼 힘들게 싸우는 검사와 차이도 나지 않고, 남들에게 자랑할 정도의 뽀대도 없고, 쌈질을 할 때 외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이름조차도 박투 마법 또는 실전 마법인 그런 기술을 누가 익히려고 하겠느냐?”

“그러니까 오직 싸움을 위한 마법이라서 버려졌단 말인가요?”

“너 같으면 마법을 익히고 나면 온몸에 문신이 남는데 익히겠느냐?”

김필도는 말없이 팔소매를 걷어 보여 주었다.

“그 정도 문신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이 녀석아.”

그러자 이번엔 재킷과 방탄조끼 앞을 열어젖혔다. 문신으로 가득한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험! 내가 사람은 제대로 고른 모양이군.”

“잡을 수 있습니까?”

“뭘 말이냐?”

“실전 마법을 익히면 7클래스 마법사를 잡을 수 있냐고요.”

“완벽하게 익히면 모든 마법을 잡는다.”

요른은 단언하듯 말했다.

“조금 전엔 실전 마법을 모르는 것처럼 하시더니 지금은 많이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원래 여긴 내가 2천 년 동안 찾아다녔던 곳이다.”

“2천 년이라고요?”

“나는 드래곤이지만 용언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이나함, 이드라스, 키울라, 유드카 모두 용언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서클마법에 불과했지.”

“추방당할 때 모든 것을 잃으신 겁니까?”

“그렇게 됐지. 그래서 인간의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지. 10개의 서클을 만들어내는 데 시간이 오백 년이 걸리더구나. 하지만 드래곤 동체로 있을 때에 비하면 5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전 마법을 찾아다닌 겁니까?”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찾아내긴 했는데…….”

“익힐 수 없는 거군요.”

“실전 마법은 완벽하게 백지 상태에서만 익혀야 해. 빛의 마법, 암흑 마법, 용언 마법, 서클 마법 중 한 가지라도 익힌 상태에서는 결코 익힐 수 없다.”

“난 가능하단 말이군요.”

“너는 마법을 익힌 적이 없으니까.”

“좋습니다, 영감님. 내게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내가 이걸 가르쳐 주고 뭔가를 시킬 거라는 걸 알았느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고대의 방’에서 나가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걸 압니다. 아울러 나를 죽지 않게 해 줄 사람은 영감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요.”

“잘 아는구나. 비록 네게 명검이 있고, 라콰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는 네 몸을 보호하지 못한다. 여기서 나가면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 거다.”

“이놈들을 받는 대신 뭘 해 드려야 합니까?”

“그건 네가 나머지 네 개를 얻고 난 후에 이야기하자꾸나.”

“네 개는 뭡니까?”

“물의 속성 마법인 쿠라(Kura), 불의 속성을 가진 세딕(Sedic), 땅의 속성을 가진 노콴(Noqan), 혼돈의 속성을 가진 카이(Kai)다.”

“멋진 이름이군요.”

“박투 마법이라 불리는 실전 마법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마법이 있는지, 위력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펼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지. 심지어 수백 년 동안 연구했던 나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군요.”

“어쩌면 그래서 실전 마법이란 이름이 붙여졌는지도 모르겠구나.”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형님!”

김필도는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물론 두 팔은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형님?”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내 나이가 몇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1만 살이다, 1만 살!”

“1만 살 아니라 1백만 살이 넘어도 형님은 형님입니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명문이라는 S대를 나왔지만 김필도에게 극존칭은 ‘형님’이었다.

“헛허허! 그런데 너 그곳에서 직업이 뭐였냐?”

요른은 웃으며 물었다.

“대불종합개발 기획실장 김필돕니다, 형님!”

김필도는 우렁차게 대답했다.

제6장 모르면 무조건 Go!

5년이란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김필도는 고대의 방에서 요른으로부터 마법을 배웠다. 아니, 배웠다고 하기보다는 함께 연구했다.

오히려 실전 마법보다는 다른 부분을 더 많이 배웠다. 다른 마법을 배운 후라면 실전 마법을 익히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 역은 가능했다. 물론 싸움에 써먹을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마법이 아니라 실생활에만 약간씩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가령 어두운 밤을 밝혀 주는 라이트(Light) 마법이라든가, 잠긴 문을 여는 것 같은 초보 마법, 이 정도였다. 비록 기초적인 마법이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실전 마법보다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요른에게 얻은 소중한 것 중의 하나는 창고 역할을 하는 아공간이었다.

“마음에 드느냐?”

요른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아주 쥑입니다, 형님.”

김필도는 히죽 웃었다.

“세상을 돌다가 크레디아라는 성을 쓰는 이를 만나면 한 번쯤 돌아보도록 해라.”

“크레디아라는 성을 쓰고 있다면 드래곤일 텐데 제가 도와줄 거라도 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다만 삶이란 원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아니냐. 나도 내가 문 대륙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겠습니다. 그분이 원한다면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맹약의 구슬은 전해 주도록 해라. 내 것만 주면 된다. 나머진 네가 갖도록 해라. 맹약의 구슬은 우리 하트로 만들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게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행운을 빌겠다, 학사 사시미 김필도.”

요른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감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형님!”

김필도는 양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파앗!

그가 고개를 숙이는 순간 요른의 몸에서 은빛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광채는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요른의 동체가 조금씩 소멸돼 갔다.

김필도는 허리를 숙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바닥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눈물을 닦고 김필도는 허리를 들었다.

요른의 신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완전한 소멸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만난 자.

비록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었지만 지구에서 만났던 수천 명의 사람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김필도는 그렇게 느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형님!”

김필도는 중얼거리며 로브 후드를 썼다.

그가 입고 있는 로브 후드는 요른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두 자루의 도는 엉덩이 바로 위쪽에 가로로 나란히 걸었다.

김필도는 다섯 개의 기둥 사이로 들어갔다.

“흐흡!”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오른손을 폈다. 그러자 바닥을 향한 그의 손바닥에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진 주위로 빛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혼돈의 바람! 카이 라콰(Kai laqwa)!”

짤막한 외침과 함께 김필도는 오른 무릎을 꿇으면서 오른손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번쩍!

땅바닥과 그의 손바닥 사이에서 강렬한 광채가 솟구쳐 나왔다.

스악!

그리고 김필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김필도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위산 위였다. 이곳에 온 지 5년이 흘렀지만, 비밀의 방 이외의 장소는 처음이다. 아니, 처음이나 다름없다.

문 대륙에 대한 첫 느낌은 이질감이었다. 김필도는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숨을 쉴 수 있고, 중력도 다르지 않고, 모든 게 지구와 비슷하다. 그런데 마치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김필도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녀석 때문이었어.”

김필도는 짧게 웃음을 토했다.

이곳에 오기 전 꿈속에서 보았던 붉은 달이 하늘 중앙에 걸려 있었다. 달이 뿜어내는 빛에 세상은 온통 붉다. 바위가 붉고, 땅이 붉고, 대기가 붉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산은 마치 칼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처럼 뾰쪽하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러한 산들이 사열하는 병사들처럼 늘어서 있다.

“판타스틱하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바위산에서 내려오자 풀과 바위로 뒤덮인 벌판이 그를 맞는다. 벌판 군데군데 나무가 서 있는데, 어림잡아 1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최하 그렇다는 말이다.

“일단은… 직진이다.”

김필도는 성큼성큼 걸었다.

멀다! 진짜 멀다! 더럽게 멀다!

벌판을 가로지르며 김필도는 멀다, 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되뇌었다. 바위산 위에서 보았을 땐 금세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벌판에 들어서 보니 엄청나게 넓었다.

작게 보였던 바위는 대부분 집채만 했고, 어림잡아 1백 미터 정도라고 생각했던 나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다.

휘이익!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고 보니…….”

김필도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저곳에 얼음덩어리가 굴러다녔다. 그는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얼음덩어리는 달빛을 반사하여 붉은 광채를 내뿜는다. 주위가 붉은색으로 변한 이유가 바로 이 얼음덩어리들 때문인 모양이었다.

“보물을 주셨네.”

그제야 김필도의 얼굴에 웃음기가 배어난다.

얼음덩어리가 굴러다닐 정도고 숨을 쉴 때마다 목이 턱턱 막힐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밀려들어 온다.

조폭 생활을 할 때 자주 들어갔던 냉동창고 안처럼. 그렇다면 이곳 기온은 영하 20도에서 30도 사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아니, 어쩌면 그곳보다 더 추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의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요른이 준 로브 때문이다. 낮에는 더위를 가려 주고, 밤에는 추위를 막아 주었다. 이곳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물이었다.

“최고의 선물이네.”

김필도는 걸음을 빨리했다.

그가 벌판 건너편에 도착한 것은 새벽녘이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대기는 급격하게 데워졌다. 자갈처럼 흩어져 있던 얼음덩어리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밤새 간직했던 달빛을 풀어낸다. 그 달빛은 붉은 아지랑이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밤에는 달빛 때문에, 아침에는 아지랑이 때문에 붉었다.

“이러다가 붉은 눈이 내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던 붉은 눈을 며칠 후 보게 될 거라는 걸 김필도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일단 목욕부터 좀 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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