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6화 (16/225)

# 16

“휘입!”

김필도는 휘파람을 불었다.

수만 마리의 래딕커는 연안파 조폭들과는 감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거칠게 펌프질을 해 대며 투지가 끓어오른다.

“죽여!”

김필도는 고함을 내질렀다.

“파이어 애로(Fire Arrow)!”

래딕커 무리와 1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 이르자 아델리나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전방으로 쭉 뻗어 나가고, 수백 개의 불화살이 생겨났다. 불화살은 길이는 50센티미터가량이고, 두께는 손가락 정도였다.

“가랏!”

그녀는 지팡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 앞쪽에 생성됐던 불화살들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완전 그림이네.”

김필도는 마치 영화에 빠져 있는 사람처럼 감탄사를 흘렸다.

아델리나가 펼치는 파이어 애로 마법을 눈으로 직접 보고 나자 실전 마법이 천대받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파이어 애로는 2클래스 마법이다.

물론 그녀가 펼치는 파이어 애로는 2클래스 마법사가 펼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길이도 길고 두꺼울 뿐 아니라 위력도 훨씬 강하다. 한꺼번에 수백 개의 화살을 만들어 적을 공격하는 서클 마법과 바로 앞까지 가서 죽여야 하는 실전 마법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볼품은 없더라도 실용적이기만 하면 된다지만, 실용적이면서도 화려하면 더욱 좋은 거다. 서클 마법처럼.

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

캑! 캑캑! 캑캑!

전방에서 달려오던 래딕커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기다란 통로가 생겨났다.

“파이어 애로(Fire Arrow)!”

아델리나는 다시 파이어 애로 마법을 펼쳤다. 달려가는 그녀 앞에 또다시 수백 개의 불화살이 생겨나고, 곧 래딕커를 향해 쏘아져 갔다.

퍽! 퍽퍽퍽! 퍽퍽! 퍽퍽!

캑! 캑캑! 캑캑캑! 캑!

“차앗!”

“타앗!”

좌우측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외침 소리에 김필도는 고개를 돌렸다.

좌측 5미터 후방에서 톰벨이 노를 젓는 것처럼 기다란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래딕커의 몸통이 쩍쩍 갈라졌다.

“파이어 애로(Fire Arrow)!”

또다시 아델리나 앞에 불화살이 생겨났다.

그녀는 파이어 애로밖에 모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같은 마법만 펼쳤다.

하지만 래딕커의 수는 너무 많았다.

쉬지 않고 파이어 애로 마법을 펼쳐 불화살을 날려대고 있지만 래딕커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1백 미터였던 거리가 90미터, 80미터, 70미터로, 마법을 한 번 펼칠 때마다 10미터씩 가까워졌다.

“젠장!”

아델리나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왜 그래요?”

스악!

김필도는 두 자루의 도를 뽑아 들고 옆에서 달려드는 래딕커의 목을 쳐내며 물었다.

“10번을 펼칠 시간이면 놈들을 빠져나갈 걸로 봤거든요.”

“그런데 안 된다는 거예요?”

“다섯 번 펼칠 시간밖에 없는데 아직 2백 미터를 더 가야 하잖아요. 파이어 애로!”

그녀는 또다시 파이어 애로 마법을 펼쳤다.

어느새 거리는 40미터로 가까워져 있었다.

“리나, 함께 가자!”

왼편 후미에서 따라오던 톰벨도 상황을 파악한 듯 앞으로 나왔다.

“너무 많아요, 아빠!”

“그렇다고 멈출 순 없지 않느냐! 이야합!”

톰벨은 이야크의 등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아빠!”

아델리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따라오너라! 타하아아아!”

톰벨은 맹수처럼 포효를 터뜨리며 전방으로 쏘아졌다. 그가 달려가는 속도는 엄청났다. 순식간에 40미터를 주파한 그는 들고 있던 창을 횡으로 쓸었다.

창끝에 투명하고 기다란 오라 블레이드가 생겨나더니 래딕커의 뱀 머리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파이어 애로(Fire Arrow)!”

아델리나는 재차 마법을 펼쳤다. 이젠 회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무조건 마법을 펼쳐 래딕커를 없애야 했다.

캑!

느닷없이 뒤편에서 이야크의 비명이 들려왔다.

김필도는 뒤를 보았다. 그리고 불에 덴 듯 놀랐다.

“오 노우~!”

지금껏 그냥 지나쳐 갔던 래딕커 수천 마리가 이편을 향해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다. 방금 그 비명은 쫓아오는 놈들 중 한 마리에게 엉덩이를 물려서 지른 것이었다.

김필도는 오른편 후미를 보았다.

렉스턴 또한 기다란 창을 정신없이 휘두르고 있어 다른 쪽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 보였다.

“절벽 쪽으로 이동하는 게 어때요!”

김필도는 아델리나에게 소리쳤다.

절벽 가까이 이동하면 왼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요. 아빠, 절벽 근처로 이동해요.”

“그러자꾸나. 차앗!”

톰벨은 창을 휘두르며 왼편으로 이동했다.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그의 창술은 엄청났다.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래딕커 수십 마리의 머리가 떨어졌다.

그의 창을 피해 가까이 다가간 래딕커가 간혹 나오긴 했지만 건틀릿을 낀 주먹에 머리가 부서지며 죽어 나갔다.

일대일 전투에서는 최강의 위력을 발휘하는 검사. 그가 바로 톰벨이었다.

“차앗!”

반면에 렉스턴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쉬지 않고 창을 휘둘러 대지만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래딕커가 너무 많았다.

“파이어 애로(Fire Arrow)!”

그런 그를 도와준 건 아델리나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전방과 좌우측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며 위기에 빠진 렉스턴을 구해내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도움도 한계에 달했다.

마법을 펼칠 여력이 없는 게 아니라 래딕커들이 너무 근접하여 마법이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커억!”

결국 렉스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를 향해 몸을 날린 래딕커 한 마리가 오른팔 상박에 이를 박아 넣은 것이었다.

퍼억!

렉스턴의 왼손이 허리춤을 더듬는가 싶은 순간 새하얀 광채가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렉스턴의 대거였다.

캑!

비명과 함께 목이 잘린 래딕커의 동체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렉스턴의 팔을 문 머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렉스턴은 래딕커의 입을 벌려 팔뚝에 박힌 이를 뽑았다.

“크윽!”

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파앗! 파앗! 파앗!

오른 팔뚝에 박힌 머리를 떼어내기 위해 잠시 틈을 보이자, 대여섯 마리의 래딕커들이 날갯짓을 하며 렉스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조와는 달리 녀석들은 20미터가량을 날아간다. 물론 하늘 높이 오르는 건 아니고 2, 3미터 정도의 높이로 날아가는 거지만 한 번에 빠른 속도를 낼 때는 아주 유용했다.

퍽! 퍽퍽! 퍽!

래딕커는 머리가 나쁜 몬스터가 아니었다.

녀석들은 물어뜯는 것보다는 일단 이야크의 등에서 떨어뜨릴 생각을 한 듯했다. 녀석들의 의도는 적중했다.

렉스턴은 이야크의 등에서 추락했다.

퍼억!

“커억!”

그냥 떨어져도 3미터는 상당한 충격을 받는 높이다.

하물며 래딕커에 받혀 5미터 정도를 더 날아가 추락했으니 그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렉스턴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기절해 버렸다.

“렉스턴 아저씨!”

아델리나는 질겁한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 상태로 두면 렉스턴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갈게요.”

휙!

김필도는 이야크 등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렉스턴 곁에 내린 그는 설풍과 소도를 휘둘렀다.

스악!

설풍과 소도가 동시에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뱀 머리 여섯 개가 둥실 떠올랐다.

김필도는 렉스턴을 끌고 갔다.

“받아요.”

김필도는 렉스턴을 던져 올렸다.

쾌액!

렉스턴을 안장에 싣는 그 순간 지금껏 그가 타고 있던 이야크가 래딕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뒷발과 앞발을 이용해서 공격해 보지만 래딕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쓰러진 이야크를 향해 래딕커들이 개미떼처럼 달려들었다. 래딕커들이 머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이야크의 살점이 북북 찢겨 나갔다.

이야크는 금세 허연 뼈를 드러냈다.

“무서운 놈들!”

김필도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야크의 피부는 웬만한 검으로 잘리지 않을 정도로 질기다. 그런 이야크가 순식간에 뼈만 앙상하게 변해 가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했다.

휙!

열심히 이야크 고기를 뜯어 먹던 래딕커 중 한 마리가 고개를 들더니 김필도를 노려보았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짓 계속해, 인마!”

김필도는 윽박지르듯 말했다. 그러면서 뒤편을 흘끔 바라보았다.

둘의 상황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다. 톰벨은 기다란 창을 휘두르며 전진 중이고, 아델리나는 여전히 파이어 애로를 펼쳐 래딕커를 공격하고 있었다.

지금 상태로 가면 포위망을 뚫기도 전에 먼저 지치고 말 것 같았다.

캘!

나직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김필도는 다시 전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놈이 아직 노려보고 있었다.

캘캘!

이어 다른 두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야!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니까!”

김필도는 한 걸음 물러났다.

캘캘캘! 캘캘캘! 캘캘캘!

이야크를 뜯어 먹던 녀석들이 고개를 들어 김필도를 보았다.

“그랑께 시방 느그들이 난티 죽고 싶다 이 말이제?”

김필도는 래딕커를 빤히 바라보았다.

캘!

커다란 이야크까지 쓰러뜨린 자신들을 노려보는 김필도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래딕커는 낮게 으르렁댔다.

“이런 개잡노무새끼들이!”

김필도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캘캘캘! 캘캘캘! 캘캘캘!

파앗! 파앗! 파앗!

래딕커들이 일제히 김필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나 사시미 김필도여, 이 새끼들아!”

김필도는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제8장 신의 물방울

전방으로 쏘아져 가는 김필도의 몸에서 검은 운무가 뭉클뭉클 흘러나왔다. 그것은 곧 하나의 문양을 형성했다. 두 개의 원이 생겨나고, 한가운데 별 표식이 들어간 그것은 마법진이었다.

“바람은 빠름을 제압한다, 라콰(Laqwa)!”

파앙!

가속페달을 한계점까지 밟았을 때처럼 김필도의 신형이 폭사돼 갔다.

양쪽으로 쫙 편 두 자루의 도에 래딕커의 목이 걸려들었다.

스악! 스악! 스악!

뱀 머리를 닮은 래딕커의 머리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쐐액!

이야크의 살을 뜯어 먹고 있던 래딕커를 한 번에 없애 버린 김필도의 신형이 래딕커 속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캑! 캑캑! 캑캑!

순식간에 래딕커 진영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래딕커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도에 목이 잘렸다. 목이 잘리기 직전 래딕커가 본 것은 김필도가 아니라 두 자루의 도였다.

도는 종횡무진 주위를 헤집고 다니며 래딕커의 목을 잘랐다.

캘! 캘캘캘! 캘캘!

순식간에 수십 마리가 당하자 기분이 상한 듯 래딕커들은 거친 투기를 뿜어냈다. 그러고는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김필도를 향해 내달렸다.

바로 그때였다.

그아우우우우!

벌판 동쪽에서 소름이 오싹 돋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고양이가 적의를 보일 때 흘리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런데 그 소리에 내포된 살기가 얼마나 강한지 래딕커들은 우뚝 멈췄다.

“응?”

래딕커들을 공격하던 톰벨은 깜짝 놀랐다.

그 또한 고양이 울음소리에 내포된 엄청난 살기를 감지했다. 그 살기는 그랜드 마스터인 그도 뿜어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는 말안장 위로 올라가 섰다. 래딕커들은 살기 어린 외침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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