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7화 (17/225)

# 17

휙!

스악! 슥! 휙!

투투툭! 툭툭!

캑! 캑캑! 캑캑!

“나가 사시미란 말이여, 이 싸가지 없는 새끼들아!”

“저 친구?”

톰벨은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얼마나 빠른지 육안으로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래딕커의 머리가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아우우우우!

또다시 조금 전 목소리가 들려왔다.

톰벨은 마나를 눈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멀리 떨어진 사물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시력을 집중하자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엎드린 자세로 천천히 다가오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치타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호랑이 같다. 하지만 표범이나 호랑이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톰벨이 더 잘 안다. 표범이나 호랑이는 이곳 문 대륙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맹수가 아니다. 더구나 래딕커를 향해 적의를 드러낸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다.

“뭐 같냐?”

결국 톰벨은 아델리나를 돌아보았다.

“매직 아이즈(Magic Eyes)!”

아델리나는 마법의 눈을 만들어 날려 보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마법의 눈이 날아가는 그 순간, 쇠로 만든 뭔가가 조립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캬우우우우!

그리고 거친 포효와 함께 표범처럼 생긴 검은 생명체가 래딕커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캘! 캘캘캘! 캘!

래딕커들은 공포에 전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저럴 수가?”

톰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천 마리의 래딕커들이 검은 물체 한 마리를 피해 도망치는 것이었다.

“아빠, 나왔어요.”

그때 아델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톰벨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커다란 마법 눈동자 속에 잡혀든 검은 물체가 보였다.

표범과 비슷하다는 예상은 맞았다. 크기는 2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그런데 온몸을 갑옷으로 감싸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머리에 쓴 투구다. 아니,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가, 가슴이 있어요.”

아델리나는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겉모습은 완전히 표범이나 치타다. 그런데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가슴이 튀어나와 있다. 마치 꿈속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런 종족은 오드밖에 없다.”

톰벨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이 없었다. 갑옷을 걸친 오드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오드 또한 표범이나 호랑이처럼 래딕커 무리를 향해 돌진할 정도로 강한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드는 래딕커를 향해 뛰어들지도 못하고 갑옷을 입는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어요. 그리고 저렇게 강하지도 않고요.”

아델리나는 전면을 가리켰다.

검은 생명체가 지나가는 곳엔 래딕커의 시체로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래딕커를 상대로 저런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는 몬스터는 그녀 머릿속에는 저장돼 있지 않았다.

“만일 하이 오드라면?”

“하이 오드는 전설이에요.”

“만일 크레디온을 지닌 하이 오드라면?”

“크레디온도 전설이고 하이 오드도 전설이에요.”

“두 전설이 합쳐지지 않으면 저런 광경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건 절대로 불가능해요.”

“그렇겠지?”

“크레디온은 신의 시대 유물이에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세이기온이나 페라시온이 이미 발견됐다.”

“하지만 크레디온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건 우리 생각일 뿐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누군가는 발견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도 크레디온 때문이고.”

“저는 크레디온보다 저 괴물이 나타난 이유가 더 궁금해요.”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래딕커들은 괴물에 쫓겨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중이다.

괴물 근처에 있던 래딕커뿐만이 아니었다. 아델리나와 톰벨 근처에 있는 래딕커들마저도 겁을 집어먹고 도망쳤다.

캬아아아아우우!

캘캘캘! 캘캘캘!

진득한 살기가 밴 울음이 들려오자 래딕커들은 그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도망쳤다.

하지만 검은 괴물의 움직임을 따르지 못했다.

괴물의 양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래딕커의 머리와 몸통이 쩍쩍 갈라진다.

검은 괴물은 래딕커들을 쫓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죽였다. 아니, 겉보기엔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 같지만 가만 살피면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양떼를 모는 것처럼 좌우로 달리며 래딕커들을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래딕커의 수는 수천 마리에 달했다.

잠시 후 선두의 래딕커들부터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낭떠러지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해도 밀고 들어오는 뒤쪽의 래딕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낭떠러지에서 앞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 상황은 뻔하다. 래딕커들은 언덕에서 떨어지는 레밍처럼 낭떠러지로 뛰어들었다.

그아아아우우우!

마지막 1백여 마리가 남았을 때 검은 괴물은 재차 포효했다. 하지만 래딕커들은 뛰어내리지 않았다.

캬우우!

검은 괴물은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괴물이 나아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데 오른발과 왼발이 번갈아 움직일 때마다 피가 튀고 잘려 나간 머리가 떠올랐다.

결국 10여 마리 남은 래딕커는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은 괴물은 자살마저도 허락하지 못하겠다는 듯 낭떠러지를 향해 돌진했다.

“아, 안 돼!”

아델리나는 소리를 질렀다.

검은 괴물이 달려가는 협곡은 깊이가 7백 미터에 달하고 아래쪽에는 강풍이 불어 설령 플라이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라고 해도 살아남기 힘든 험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검은 괴물은 멈추지 않았다.

괴물은 막 몸을 날리는 래딕커를 향해 앞발을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캘!

나직한 비명이 들려오고 검은 괴물은 래딕커와 함께 낭떠러지 아래로 모습을 감췄다.

“휘유!”

그녀는 탄식을 내뱉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사람인지 짐승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들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체가 뭐든 간에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 그가 협곡으로 몸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공연히 미안했다.

“자식, 얼굴이나 좀 보려고 했더니만.”

김필도는 터벅터벅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검은 갑옷을 걸친 짐승의 정체가 얼마 전 구해 준 그 오드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로서는 당연했다.

방금 본 검은 괴물의 실력은 김필도를 능가했다.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가진 자가 덫에 걸린다는 건 그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존잰가?”

톰벨은 김필도를 보며 물었다.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몬스터라고 부르기도 뭐해서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런 동료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내게 묻는 거죠?”

“우리도 모르는 존재네.”

“그럼 느닷없이 나타나서 우리를 도와주고 고맙다는 인사조차 받지 않고 그냥 떠났다는 말인가요?”

“그런 것 같네.”

톰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생엔 사람으로 태어나겠네요.”

김필도는 낭떠러지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꼬리 달린 사람은 없잖아요.”

“꼬리를 봤는가?”

“얼마 전 구해 준 오드 꼬리처럼 생겼더군요.”

“오드를 구해 줬단 말인가?”

“오드가 덫에 걸려 있더라고요.”

“혹시 그 오드가 자넬 따라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가?”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그렇게 엄청난 실력을 가진 자가 덫에 걸린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김필도는 래딕커를 이리저리 살피고 다녔다.

“하긴 그렇구먼. 그런데 그건 뭔가?”

톰벨은 김필도의 하는 양을 보며 물었다.

“어떤 거 말입니까? 이게 좋겠네.”

적당한 걸 고른 듯 김필도는 래딕커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목이 잘려나간 래딕커였는데, 다른 래딕커에 비해 절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자넨, 자네가 가진 두 자루 검으로 검술을 펼치지 않았네.”

“그럼 내가 한 건 뭡니까?”

“자네가 뭘 했는지는 나도 모르네. 하지만 검사는 적과 싸울 때 검을 사용하는 사람을 말하네.”

“나도 이 녀석들을 사용했습니다.”

김필도는 손으로 엉덩이 위에 걸린 두 자루의 도를 툭 쳤다.

“여기서 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검이 없으면 싸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네.”

“주요 무기가 검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그런데 자네에게 검은 부자재에 불과했네. 그건 래딕커를 없앨 때 굳이 검이 없어도 상관없다는 뜻이네. 물론 이건 내 관점이지만.”

“나도 아직은 익히는 중이라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뭘 익힌단 말인가?”

“죽이는 방법 말입니다.”

“죽이는 방법이라…….”

톰벨은 김필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죽이는 방법이란 말에서 죽여야 할 대상이 사람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고방식에 있었다.

검술은 분명 누군가를 없애기 위한 기술이다. 하지만 검사들 중 누구도 사람을 죽이기 위해 검술을 익힌다고 하지는 않는다. 마법 또한 다르지 않다. 아니, 모든 살상 기술이 다 마찬가지다.

분명 누군가를 없애기 위해 배우면서도 정신 수양 또는 신체 단련이란 말로 미화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죽이는 방법을 익힌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것이다.

“검이란 뽑히면 반드시 피를 동반해야 하는 무기잖아요.”

김필도는 피식 웃으며 검을 툭 쳤다.

“나는 검보다 자네가 더 무섭구먼.”

“난 아주 부드러운 사람입니다.”

“부드러운 사람이 미친놈처럼 래딕커를 향해 달려가는가?”

“한번 빡 돌면 눈에 뵈는 게 없거든요.”

“하하하! 그랬구먼. 그런데 그건 뭐 하러 주워 든 건가?”

“프라이드가 먹고 싶어서요.”

“프라이드?”

“먹어본 적 없어요?”

“이름도 처음 듣네.”

“가시죠.”

김필도는 래딕커를 어깨에 둘러메고 걸음을 옮겼다.

* * *

“어찌 이런 음식이…….”

톰벨은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많은 음식을 먹어 보았지만 지금 먹고 있는 이런 음식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래딕커 고기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그들 또한 래딕커 고기를 먹기는 하지만 이렇게 부드럽게 만들진 못한다.

그런데 지금 먹고 있는 래딕커 고기는 송아지 고기처럼 연했다.

톰벨 일행이 먹고 있는 건 튀김이었다. 음식의 종류가 무엇인지 그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 모두들 행복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김필도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톰벨 일행이 극찬하면서 먹고 있는 그 튀김이 문제였다.

김필도가 원한 것은 그냥 튀김이 아니라 프라이드였다. 그걸 염두에 두고 밀가루에 후추와 소금 그리고 마늘 가루 등을 넣어 튀김 파우더를 만들었다. 그리고 래딕커 고기는 잘게 토막 내어 술에 절였다. 술에 절이는 건 잡내를 잡고 연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다음 파우더와 함께 반죽하여 튀겨 냈다.

그런데 프라이드 맛이 아니었다.

아주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프라이드를 간절히 원했던 김필도에게는 실망스런 맛이 아닐 수 없었다.

래딕커 고기는 닭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 맛에 더 가까웠다.

“자넨 맛이 없나 보군.”

톰벨은 입 안으로 우적우적 고기를 뜯어 넣으며 김필도를 보았다.

“원래 이 음식 이름이 프라이드치킨이거든요.”

“주 요리가 닭이란 말인가?”

“네.”

“그렇다고 해도 난 맛있구먼.”

“이 녀석은 소금구이가 최고인 것 같아요.”

“소금구이는 또 뭔가?”

“철판 위에서 소금을 뿌려 가며 굽는 걸 그렇게 불러요.”

“그건 우리도 자주 해 먹는 방법인데. 아무튼 이건 최고네.”

톰벨은 엄지손가락을 세워 들며 환하게 웃었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술 좋지.”

톰벨은 손등으로 입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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