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제11장 이야크 창술
이야크 창의 길이가 5미터에 가까운 이유는 이야크의 어깨 높이가 3미터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 높이에서 보병을 상대하려면 길이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창날 또한 접을 수 있게 만들어 한쪽 날만 사용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의 주인은 루시안 님인가 봅니다.”
샤일록은 이야크 창을 김필도에게 건네주었다.
창이 흠 없이 완전해지자 김필도는 샤일록에게 돌려주었다. 고장 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더라면 주지 않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몇 번을 거절하던 샤일록은 김필도가 창술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창이 있어 봐야 소용없다고 하자 마지못해 받았다. 그러고는 창의 분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창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필도가 창을 잡고 분해를 시도했다. 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분해됐다.
샤일록은 이번엔 조립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분해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구멍에 끼워지긴 했지만 김필도가 끼울 때처럼 한 몸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창은 김필도의 손에서만 완벽한 형태가 됐다.
“창은 처음 잡아 보는 건데 어쩌라고…….”
김필도는 어색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시절에 봉술을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봉의 길이는 이 창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봉술이 참고는 될지언정 창술로 바뀔 수는 없다.
그가 한사코 창을 거절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제가 창술을 조금 아는데 배워 보시겠습니까?”
“내게 창술을 가르쳐 준다고 했소?”
김필도는 깜짝 놀랐다.
검술과 마찬가지로 창술도 함부로 전수해 주는 기술이 아니었다. 더구나 일반 창술도 아니고 이야크 위에서 펼치는 창술이 아닌가.
“상인이 되기로 결심을 했는데 굳이 이야크 창술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잖습니까.”
“그럼 고맙게 받겠소.”
김필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끝났습니다.”
팔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김필도와 샤일록은 고개를 돌렸다.
“헐!”
김필도는 멍한 얼굴로 블랙칸을 보았다.
낙타와 비슷했던 얼굴 한가운데 긴 뿔이 돋아 있는 샤프런이 씌워졌고, 기다란 목에는 체인 메일 형태의 갑옷이 걸쳐져 있다. 물론 사자갈기처럼 풍성한 털이 있는 부분은 그대로 살려 놓았다.
등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2인용 안장이 놓였고, 다른 부분에는 쇠를 얇게 펴서 만든 갑옷이 입혀져 있다.
이야크용으로 특별히 만든 전투 갑옷인 모양이었다.
이건 완전히 글라스 코팅을 한 750이었다.
김필도는 고개를 돌려 샤일록을 보았다.
“안장과 함께 있던 겁니다.”
“이야크 피부는 웬만한 무기로는 흠집을 내기 힘들 정도로 강하다고 하지 않았소?”
이야크가 말과 또 다른 점이었다.
이야크의 피부는 휴도니아 대륙의 트롤이나 오우거와 비견될 정도로 질기고 회복력도 빨라, 죽은 이야크의 가죽은 갑옷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무게가 늘어나면 속도에서 손해를 볼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까 허점이 많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탈 때는 덜한데 한 사람이 타게 되면 아무래도 방어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엄청나네요.”
샤일록은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수많은 이야크를 봤지만 눈앞에 있는 블랙칸처럼 위압감을 풍기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이건 이야크가 아니라 거대한 야수가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샤일록은 블랙칸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하시오.”
“저 녀석이 발정기가 되면 무조건 제가 가진 이야크와 교미를 시켜 주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물론 비용은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대륙으로 가져가는 방법이 있소?”
“그게 아니라면 이야크 사냥을 나올 이유가 없잖습니까.”
“이야크로 돈을 벌었단 말이군.”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타 보십시오.”
샤일록은 블랙칸을 가리켰다.
김필도는 창을 들고 블랙칸 옆으로 갔다.
“멋지다, 750!”
김필도는 블랙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푸릉!
기분이 좋은지 블랙칸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김필도는 손잡이를 잡고 한 번에 훌쩍 뛰어올랐다.
‘응?’
톰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지금껏 김필도와 샤일록의 대화를 들었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평범해 보였던 창에 마법이 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고, 블랙칸이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두 번 놀랐다.
하지만 지금 놀란 것에 비하면 앞서 놀란 건 놀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처음 김필도를 만났을 때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비록 래딕커를 상대로 버서커 같은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3미터 높이의 이야크 등을 한 번에 올라가고 있다. 설령 상당한 수준의 검사라고 해도 저렇듯 쉽고 편하게 올라가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모를 자군.”
톰벨은 자리를 옮기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샤일록이란 상인 또한 이야크에 올라 창을 들고 있었다.
“이야크는 탈 줄 아십니까?”
“이곳에 와서 처음 봤고, 뒤에는 이 녀석이 첫 이야크요.”
“그렇군요.”
샤일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크를 세웠다.
“아직은 이야크 창술을 배울 때가 아니라는 거요?”
“우선은 이야크 창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는 연습부터 하십시오.”
“이야크를 자유롭게 타야 한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폼멜 부분에 보면 마법진이 그려져 있을 겁니다.”
“그렇군.”
폼멜은 안장 앞쪽에 불쑥 튀어나온 부분의 명칭이었다.
“그 폼멜을 잡고 클로스라고 외쳐 보십시오.”
“클로스(Closed)!”
김필도는 낮게 외쳤다.
스르륵!
철컥! 철컥!
갑자기 허벅지 뒤쪽 안장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것이 튀어나오더니 밴딩을 하는 것처럼 강하게 조여 왔다. 양쪽 허벅지에서 동시에 일어난 변화였다.
여간해서는 이야크 위에서 떨어질 일은 없을 듯했다.
“뭐요?”
“이야크는 어깨 높이가 3미터고, 최고 속도로 달릴 때는 전투마의 2배 정돕니다. 그 속도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강한 검사라고 해도 열에 아홉은 사망합니다.”
오랜 시간 전부터 이야크가 전투마 대용으로 사용되곤 했지만 폭발적으로 보급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높은 어깨 높이와 폭발적인 속도 때문이었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이야크에서 떨어지면 열에 아홉은 사망이다. 강하고, 빠르고, 힘 좋고, 최악의 환경에서도 버티는 강인한 생존력을 지녔지만 말보다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그런 점들 때문이었다.
이야크를 타게 되면 무기를 든 적보다는 이야크에서 떨어지는 걸 더 조심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고, 싸움에 집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단점을 보강한 것들이 바로 저런 장치들이었다. 물론 완전한 안전장치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야크에서 떨어져 죽는 건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다시 각국에서 말보다 이야크를 선호하게 된 이유가 바로 세이프 벨트라고 부르는 안전장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태에서는 떨어져서 죽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알겠소. 일단 이야크 창을 자유롭게 다루고 난 후에 창술을 배우도록 하겠소. 가자!”
김필도는 블랙칸의 목을 가볍게 쳤다.
쿠워워워워!
블랙칸은 앞발을 들어 올려 거의 수직으로 섰다.
“이 자식이 처음부터 기를 죽이네.”
김필도는 블랙칸의 등에 바짝 몸을 붙였다. 자칫 실수하면 뒤로 넘어갈 판이었다. 물론 두 다리가 고정돼 떨어질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간이 콩알만 해지는 순간이었다.
척!
앞발을 내림과 동시에 뒷발을 사정없이 튕겼다.
퍼억!
커다란 흙더미가 뒤편으로 날아가고 블랙칸의 동체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하하하! 달려라, 750!”
김필도는 크게 웃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다리가 고정되자 굳이 고삐를 잡을 필요가 없었다.
블랙칸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어느 순간 바람이 칼날로 변해 얼굴을 후려쳤다.
김필도는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을 다루는 기술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자유롭게 옮기는 것도 아니었다. 블랙칸의 속도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 시속 160킬로미터 이상 달리다가 1백 킬로미터 정도로 감속시켰을 때 차가 기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블랙칸을 타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선은 최고 속도에 익숙해져야 일반 속도에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이야크 창술을 편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앗!”
김필도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김필도는 쉬지 않고 달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는 일행과 함께 이야크 평원을 건너면서 이야크 타는 법을 익혔다. 이야크 평원은 건너는 데만 해도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엄청난 면적의 벌판이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김필도가 처음으로 이야크 창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이동시킨 것은 블랙칸을 타기 시작한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창을 옮기는 방법도 특이했다.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며 옮겨 쥐었다. 이야크 창은 중앙을 잡은 채 옮기기 때문에 바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앞으로 돌려 손을 바꾸는 것에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뒤로 돌려 옮겨 쥐었다. 그리고 그것도 익숙해지자 계속 이어 나갔다. 즉 오른손에 들린 이야크 창을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이야크 머리 쪽으로 돌려 왼손에 옮겨 쥐고, 이번에는 이야크 엉덩이 쪽으로 돌려 오른손으로 쥐었다.
휙! 휙! 휙! 휙! 휙!
김필도를 중심으로 이야크 창은 쉬지 않고 원을 그리며 돌았다. 단 한 번의 끊어짐도 없이 이야크 창이 돌아가자 두 번째 훈련이 시작됐다.
두 번째는 이야크 옆으로 회전시켜 반대편 손으로 옮겨 쥐는 훈련이었다.
노를 젓는 동작과 비슷한 이 훈련은 이야크 창을 자유롭게 옮기는 것도 있지만 이야크 바로 아래쪽의 보병을 공격하는 공격 기술이기도 했다.
그 동작에 익숙해지는 데 사흘이 걸렸다.
순탄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손바닥에서 굳은살이 사라질 날 없이 살았는데도, 창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손바닥 전체에 물집이 생겼다.
그 상황에서도 김필도는 훈련을 쉬지 않았다.
“먼저 한 손으로 펼치는 창술입니다.”
훈련을 시작하고 20일째 되는 날 김필도는 처음으로 이야크 창술을 시작했다.
시작은 5미터 길이에 달하는 이야크 창의 끝 부분을 잡고 펼치는 창술이었다.
“늘 표적은 일곱 개가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다섯 명은 이야크의 목을 치려고 하는 자들이고, 두 명은 이야크의 다리를 노리는 자들입니다. 거의 동시에 찔러 없애야 합니다. 원리는 이겁니다.”
샤일록은 창간을 가볍게 흔들었다.
파라락!
그러자 창두가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폭은 1미터 남짓이었다. 한번 찌를 때마다 세 번에서 네 번의 변화가 일어났다.
쇄액!
샤일록은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순간 환상적인 광경이 목격됐다. 마치 샤일록의 창두가 점을 찍는 것처럼 허공에 희미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총 7개였다.
“환창!”
관심 어린 얼굴로 샤일록의 창술을 지켜보던 톰벨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환창.
그것은 대륙 5대 창술 중 서열 1위에 올라 있는 엄청난 기술이다. 그 창술을 검사도 아닌 상인이 익히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시오?”
샤일록은 톰벨을 보았다.
“대륙 5대 창술 중 서열 1위라고 알고 있소.”
“쿡!”
샤일록은 피식 웃었다.
“왜 그러시오?”
“그 서열 1위라는 말 때문에 내 젊음을 바치고, 가산을 탕진했소이다.”
“미망을 좇았단 말이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가문은 풍비박산 나고 빚쟁이들만 남았더이다.”
“그래서 그 미망을 내게 넘기려는 거요?”
이번엔 김필도가 물었다.
“처음부터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짐이 아니었습니다. 진작부터 누군가에게 넘겨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루시안 님을 만난 것뿐입니다.”
“거, 님이란 말은 좀 빼면 안 되겠소?”
“불편하십니까?”
“쩝!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허허허! 알겠습니다. 지금부터는 루시안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샤일록은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는 밤에 훈련을 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소.”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기술이라고 해도 넘겨받을 사람 외에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누군가는 톰벨 일행일 테고.
톰벨 또한 샤일록의 말에서 느낀 바가 있었는지 그 후로는 훈련하는 곳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김필도를 지켜볼 뿐이었다.
주로 낮에는 설명을 듣고 밤에는 창술을 펼치는 나날이 이어졌다. 김필도는 일정까지 늦추며 창술에 매달렸다. 그가 이렇듯 창술에 매달리는 것은 그림자란 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