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그림자는 능력도 없고, 힘도 없고, 가진 돈도 없고, 머리도 나쁘면서 신분만 높은 자를 일컫는 말이다.
즉 밥만 축내는 식충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젠 주는 밥도 아까워 죽이려고 한다.
김필도로 살 때는 능력은 있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폭 조직에서 성공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루시안의 삶은 다르다. 녀석은 대공이다. 쉽게 말하면 왕이라는 말이다. 뒤돌아서면 욕을 할지는 몰라도 면전에서는 욕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성공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김필도도 성공했는데,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콰앙!
스아악!
그의 오른발이 바닥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라콰가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허공을 꿰뚫고 나아가는 라콰의 몸체에서 바람이 불어 나왔다.
쏘아져 가는 라콰의 끝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흔들리는 폭은 4미터가 넘었다.
그리고 허공에 무수한 점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점은 샤일록이 남긴 일곱 개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창술을 펼친 김필도조차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차앗!”
김필도는 쭉 내밀고 있던 오른손을 획 돌렸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푸악!
순간 창두가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허공에 점을 남겼다. 라콰가 남긴 점은 샤일록이 남긴 점보다 훨씬 선명했다. 마치 빛으로 허공에 점을 찍어 넣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앗!”
김필도는 창을 번쩍 들어 올렸다. 5미터에 달하는 창이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올라갔다.
“이얍!”
왼손을 오른손 앞으로 쭉 내밀고 창간을 잡았다.
두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았다.
쇄액!
라콰는 강하게 허공을 갈랐다. 허공을 수직으로 가르며 떨어지는 라콰의 창간에서는 제법 거친 바람이 흘러나왔다.
콰앙!
활처럼 만곡으로 휘어진 라콰가 바닥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퉁!
잔뜩 휘어졌던 라콰가 시위를 놓은 활처럼 반대로 휘어지고 그 반동을 따라 김필도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야합!”
김필도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10미터 높이로 튀어 올라간 김필도는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휘리링!
라콰에서 흘러나온 바람이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로 밤하늘의 별처럼 작은 점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은 진득한 살기를 쏟아 낸다.
척!
어느새 바닥으로 내려선 김필도는 라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찌르고 베고, 자르고, 때리고.
때로는 검으로, 때로는 도로, 때로는 창으로, 때로는 타격무기로 변하여 사방을 휩쓸었다.
무려 5미터에 달했지만 김필도의 움직임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때로는 폭풍처럼 강한 기운을 뿌려대다가도, 때로는 잔잔한 수면처럼 부드러워진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절묘한 조화.
끝을 잡고 찌르면 5미터 길이의 장창이고, 중앙을 잡고 휘두르면 한쪽이 250센티미터인 일반 창이 된다.
철컥!
이윽고 손으로 쥐고 있던 부분에서도 칼날이 튀어나왔다. 양쪽에 칼날이 생겨나자 김필도는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
“갑니다!”
김필도는 크게 소리쳤다.
“좋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던 듯 샤일록이 이야크 창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파앗!
순식간에 블랙칸 앞에 선 김필도는 늘어져 있던 줄을 잡고 몸을 날렸다.
척!
“클로스!”
안장에 착석하자마자 폼멜을 잡고 소리쳤다.
“가자!”
쿠어어어억!
스르르르!
철컥! 철컥!
나직한 소리와 함께 다리에 세이프 벨트가 채워진다. 그 순간 블랙칸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차앗!”
10여 미터쯤 달려갔을까?
샤일록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처음 환창의 전수를 결심했을 때만 해도 저렇게까지 엄청난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는 놀라움으로 바뀌고, 놀라움은 경악으로까지 발전했다.
놀랍게도 김필도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고 환창의 마지막 경지인 유성우를 익혀 낸 것이었다.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성우는 설명으로만 접했을 뿐 어떻게 펼치는지 방법조차 모르는 기술이었다. 어쩌면 제자라고 해도 무방한 김필도가 환창의 마지막 기술을 익혀 내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창! 창창창! 창창!
두 사람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며 서로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공격 부위는 다양했다. 얼굴과 몸통 그리고 이야크를 향해 과감하고 빠르게 창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이야크 창은 목표 지점에 닿기도 전에 내쳐진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뒤로 젖히고, 옆으로 들고, 쳐내면서 두 사람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황금색 광채가 흘러나왔다.
총 열한 명.
그들은 대천신군의 수장인 세이아칸과 세이아칸의 친위대인 천좌10군 10명이었다. 세이아칸을 비롯한 10명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5일 전이었다.
마족들의 근황을 살피면서 이곳으로 와 그동안 김필도 일행을 관찰했다.
“가드 맵을 가진 인간이 저자냐?”
세이아칸은 차가운 눈으로 김필도를 가리켰다.
“그렇습니다, 천좌!”
바로 옆에 있던 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헬먼!”
세이아칸은 뒤를 향해 낮게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맨 후미에 있던 자가 이야크를 몰고 앞으로 나왔다. 사내는 황금색 갑옷과 황금색 투구를 쓰고 황금색 이야크 창을 들고 있었다.
“시험하라!”
“생사를 결정해 주십시오, 천좌!”
“가드 맵을 지닌 놈은 살려 줘라. 팔 또는 다리는 잘라 내도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천좌!”
헬먼은 손을 가슴에 올려 툭 쳤다. 그러고는 이야크를 몰아 전방으로 튀어나갔다.
“크아아!”
곧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워어!”
“워!”
김필도와 샤일록은 이야크를 멈춰 세웠다.
“뭐지?”
김필도는 전방을 보며 물었다. 황금 덩어리가 이편을 향해 달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족입니다.”
샤일록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신족이 왜?”
김필도는 뜨끔했다.
신족 또한 이카렌처럼 가드 맵이라는 지도가 목적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카렌과는 달리 꽤나 거칠게 나오는 자들이었다.
“언젠가 한번 싸워보고 싶었다.”
전면을 바라보는 샤일록의 몸에서 투기가 흘러나왔다.
“샤일록!”
김필도는 샤일록을 불렀다.
“실전보다 더 강한 훈련은 없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루시안! 이럇!”
샤일록은 창으로 이야크 엉덩이를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쿠어어어!
샤일록의 이야크는 울음을 토해 내며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야크는 순식간에 최고 속도에 도달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5백 미터였다. 하지만 그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신족과 샤일록의 이야크 뒤편에는 이야크가 발을 차대면서 파인 흙더미가 유성처럼 쏟아졌다.
“차아앗!”
강력한 기합과 함께 샤일록은 이야크 창을 힘껏 찔러 넣었다. 그것은 그가 아버지가 일군 재산을 잃고, 젊음을 바치면서 익혔던 환창이었다.
샤일록이 뻗어 낸 이야크 창두는 순식간에 일곱 개로 늘어났다.
“천한 놈!”
헬만은 차갑게 소리치며 황금빛 창을 쭉 찔러 넣었다. 헬만의 창은 다가오는 샤일록 창두를 부수며 쏘아져 갔다. 그리고 그대로 샤일록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으으윽!”
샤일록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직 헬만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이야크 창을 놓아 버린 헬만은 샤일록을 지나치는 순간 다시 손을 뻗더니 등으로 빠져나온 황금빛 이야크 창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황금색 창이 빠져나가며 가슴에 뚫린 구멍이 점점 커졌다.
“아아아악!”
샤일록의 입에서 두 번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가슴엔 팔뚝 두께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샤일록!”
김필도는 고함을 지르며 샤일록의 이야크를 향해 달려갔다. 블랙칸은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헬만 또한 김필도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달려가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지나쳐 갔다.
“다음은 너다, 천한 인간.”
헬만은 조롱기 어린 얼굴로 지나쳐 가는 김필도를 향해 말했다.
김필도는 헬만을 흘끔 바라보며 블랙칸을 더욱 빨리 몰았다. 5백 미터를 내달린 그는 샤일록을 태운 이야크를 따라잡았다.
“오픈!”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포션 두 병을 꺼냈다.
그러고는 재빨리 세이프 벨트를 제거하는 마법을 펼쳤다. 몸이 자유로워지자 샤일록을 풀어 아래로 내렸다.
샤일록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다. 포션 한 병을 상처에 붓고 나머지 한 병은 입 안으로 흘려 넣어 주었다.
요른이 남겨 준 포션의 효과는 엄청났다.
뻥 뚫렸던 상처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는 듯하더니 새살이 돋아나며 조금씩 아물어 갔다.
“으음!”
그리고 샤일록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금세 알아차렸다.
“나중에 후회할 겁니다, 대공.”
샤일록은 김필도를 보며 말했다.
“난 나중을 생각할 정도로 편하게 살아 본 적이 없소.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늘 현재였소. 지금 당장 말이오.”
김필도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은 환창의 정확한 위치를 한 번에 찾아냈습니다.”
“그건 나도 봤소.”
김필도는 싱긋 웃으며 열려 있던 아공간에서 술 한 병과 포션 두 병을 꺼내 샤일록에게 내밀었다.
“뭡니까?”
“술은 한잔하라고 주는 거고, 포션은 내가 샤일록처럼 당하면 사용하라는 거요.”
“전 심장이 반대편에 있습니다. 그래서 포션을 복용할 시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피해 보겠소.”
김필도는 싱긋 웃으며 블랙칸에 올랐다. 그러고는 천천히 블랙칸을 몰아갔다.
황금색 갑옷을 걸친 자는 1천 미터 밖에서 이편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프릉!
김필도의 몸에서 강한 살기가 흘러나오자, 그 살기를 감지한 블랙칸이 투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콧김이 거세지고,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다.
“크아아아아!”
바로 그때였다.
5백 미터 거리를 남겨 둔 헬만은 양손을 치켜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초보!”
김필도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허세를 부린다는 건 곧 초보임을 스스로 밝히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샤일록은 한 방에 보내 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강한 초보지.”
김필도는 라콰를 강하게 그러쥐었다.
“타앗!”
두두두두! 두두두두!
이윽고 황금색 갑옷을 걸친 이야크가 무섭게 질주해 왔다.
“준비됐냐?”
김필도는 블랙칸의 목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프르릉!
“가자!”
퍼억!
라콰의 한편 끝이 사정없이 블랙칸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쿠워워워워워!
두두두두! 두두두두!
블랙칸은 광포하게 포효하며 전방으로 쏘아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