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31화 (31/225)

# 31

콰앙! 콰앙!

앞과 뒤에서 동시에 둔탁한 소성이 들려왔다.

“응?”

방금 라콰로 고스트 크레디온을 공격할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창의 날에 가격당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검게 변한 것을 목격했다.

만일 창끝이 새파란 불꽃을 발하는 상황이 아니었고, 타격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짧은 순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겠지. 부상!”

그러자 흙이 불쑥 솟아올랐다. 흙더미가 정점에 이르는 순간 김필도는 고스트 크레디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차앗!”

김필도는 짤막하게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도끼질하듯 내리찍었다. 그러자 표적이 된 고스트 크레디온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옆으로 눕혔다.

이번에는 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녀석의 검이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콰아앙!

고스트 크레디온의 동체가 절반 가까이 땅속으로 박혔다.

퉁!

한껏 휘었던 창이 반대로 튕겨졌다. 김필도는 그 힘을 이용해서 허공으로 다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10미터 떨어진 곳으로 내려섰다.

스악!

오른편에서 싸늘한 기운이 감지됐다.

고스트 크레디온 한 녀석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이미 3미터 안쪽으로 들어와 피할 시간도 없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슈캉!

김필도의 왼팔이 엉덩이 부근으로 향하고 설풍이 허공을 갈랐다.

차앙!

“우욱!”

김필도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설풍을 통해 들어온 기운이 왼팔을 헤집어 놓은 것이었다.

휙!

바로 뒤에서 또다시 서늘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김필도는 양다리를 좌우로 펼쳐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스악!

그러나 한발 늦고 말았다. 싸늘한 느낌이 등을 훑고 지나갔다. 한 칼 먹었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라콰!”

벌떡 상체를 일으킨 그는 창을 힘껏 휘둘렀다.

콰앙!

‘땅의 속성 노콴!’

“부상!”

땅의 속성 마법을 펼치면서 다시 오른손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하지만 창을 휘두른 방향이 달랐다.

전엔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지만 이번엔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쳐 올렸다. 고스트 크레디온을 허공으로 띄우기 위해서였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자세를 잡던 고스트 크레디온이 둥실 떠올랐다. 고스트 크레디온은 김필도에게 등을 보인 상태였다.

“차앗!”

김필도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졌다.

땅의 속성 마법인 노콴을 이용해서 고스트 크레디온 등 뒤로 다가간 그는 몸을 날리며 힘차게 내리그었다.

슈캉!

“염병할!”

전력을 다한 일검이었다. 그런데 녀석을 잘라 내지 못한 것이다.

푹!

바로 그 순간이었다. 뱃속으로 화끈한 기운이 파고들었다.

“후퇴!”

김필도는 이야크 창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땅이 파도처럼 움직여 그를 전장 밖으로 옮겨 놓았다. 50여 미터를 물러나자 고스트 크레디온들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그는 배를 감싸 쥔 채 로브를 벗어둔 곳으로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싸울 땐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다리마저 베인 모양이었다.

“남 죽는 거 지켜보는 게 취미냐?”

이카렌을 발견한 김필도가 이죽댔다.

“뭐 하는 짓이야?”

“낸들 알겠냐.”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포션을 꺼냈다.

고스트 크레디온의 검이 박혔던 배에서는 피가 벌컥벌컥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필도는 상처를 벌리고 안으로 포션을 부어넣었다.

상처가 아물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포션을 이카렌에게 건넸다.

“등에 부어 달라고?”

“그것 말고 낫게 할 방법 있으면 좀 알려 줘.”

김필도는 이카렌 앞으로 등을 댔다.

“난 치료 마법은 배우지 않았어.”

이카렌은 상처에 포션을 조금씩 흘려 넣었다. 쩍 갈라져 포션을 붓는 건 편했다.

“상처를 숨기려고 문신을 한 거야?”

김필도의 등에는 커다란 흉터가 상당히 많았다.

문득 그 흉터를 숨기기 위해 문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작은 칼에 찔린 흉터였다.

“폼 잡으려고 한 거라니까.”

등에서 시원한 느낌이 오자 김필도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남은 포션을 허벅지에 부었다.

“내일도 할 거야?”

“이제 시작했는데 벌써 끝내면 녀석들이 섭섭해하잖아.”

“녀석들?”

“고스트 크레디온 말이야.”

“풋!”

이카렌은 어이없는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칼침을 세 방이나 맞았다. 그 중 하나는 자칫 잘못했으면 목숨이 위험할 뻔했다.

그런데 또 간다고? 정신 나간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기회가 흔하게 오는 게 아니거든.”

김필도는 물에 적신 천을 이카렌에게 건넸다.

“어떤 기회?”

이카렌은 천으로 등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다. 최상급 포션인 듯 상처는 이미 아물어 있었다. 이 상태로 몇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해질 것이다.

“훈련할 기회.”

“미쳤구나.”

“미쳐야 얻을 수 있거든.”

“네가 얻으려고 하는 게 뭔데?”

“뭐겠냐?”

“힘?”

“세상은 힘이나 권력, 둘 중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하잖아.”

김필도는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이카렌은 김필도의 손을 잡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김필도는 의아한 눈으로 이카렌을 보았다.

“날 일으켜 주려고 그런 것 아니었어?”

“나 지금 추워. 그것도 아주 많이.”

“자식, 무드 없게.”

이카렌은 피식 웃으며 로브를 벗어 주었다. 로브를 받아 걸친 김필도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카렌은 김필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김필도와 같은 시간을 거쳤다. 2백 년 동안 쉬지 않고 검술을 익혔다. 하지만 목숨을 건 적은 없었다.

독한, 아니 대단한 녀석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 부군단장.”

그때 품속에서 군단장인 히데우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카렌은 자세를 고쳐 앉은 채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그녀가 짐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마법 주머니였다.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둥근 물체를 꺼냈다. 그것은 마계10군단과 연락을 취할 때 쓰는 마법 통신구로, 연락 가능한 거리는 1백 킬로미터다.

마법 통신구를 감싸고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고는 얼굴이 잘 보이는 자리에 놓았다.

마법 통신구 표면에 뿌연 광채가 흐르는 듯하더니 강한 인상의 사내 얼굴이 나타났다. 마계10군단 군단장 히데우스였다.

“수고가 많다, 부군단장.”

“아닙니다, 군단장님.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카렌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금 어디냐?”

“다르곤 산에 있는 신성의 장소에 와 있습니다.”

“신성의 장소?”

“이곳이 고대의 길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합니다.”

“거기엔 고스트 크레디온이 지키고 있어 통과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전날 라이자칸이 신성의 장소로 들어갔다가 못 견디고 돌아왔습니다.”

“고스트 크레디온은 몇 객체가 나타났느냐?”

“20객체입니다. 그런데… 루시안 또한 20객체가 막아섰습니다.”

“그 인간 녀석도 신성의 장소로 들어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 인간 녀석이 죽으면 우리의 숙원은 물거품으로 변한다, 이카렌.”

왜 말리지 않았느냐는 질책이었다.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군단장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느냐?”

“루시안은 강해지기 위해 신성의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연무를 위해 신성의 장소로 들어갔단 말이냐?”

히데우스의 얼굴에 놀란 빛이 어렸다.

“그렇습니다. 등과 허벅지에 한 방씩 맞았고, 복부를 찔렸습니다.”

“그 상태가 될 때까지 싸웠다고?”

“목숨을 건 것처럼 보였습니다.”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히데우스는 빙그레 웃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나와 같은 방법을 쓰는 자는 처음이라서 말이다. 그것도 인간이.”

“군단장님도 이곳에서 검술을 익히셨습니까?”

이카렌은 깜짝 놀랐다.

마계 최강의 검사 히데우스. 그의 연무 장소가 이곳이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거기서 검술을 익힌 게 아니라 거기서 태어났다. 아무튼 흥미로운 일이구나. 그래, 언제 출발할 참이냐?”

“시간을 좀 줄 생각입니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히데우스의 입에서도 이카렌과 같은 말이 나왔다.

“검술을 가르쳐 줄 수는 없지만 배우는 것까지 막고 싶진 않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고. 그런데 20객체의 고스트 크레디온이 녀석을 막아섰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아무튼 그곳을 통과하려면 고스트 킹이란 녀석을 물리쳐야 한다.”

“고스트 킹은 뭡니까?”

“내가 지은 이름인데 고스트 크레디온의 우두머리다.”

“그런 존재가 있단 말입니까?”

“녀석의 신장은 3미터 정도다.”

“어느 정돕니까.”

“나와 싸워서 동수를 이뤘다.”

“끙!”

마계 최강 검사인 히데우스와 동수를 이뤘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고스트 킹의 상대는 아무도 없다고 봐야 한다. 빠져나갈 일이 막막했다.

“부군단장 네가 부하들에게 늘 말하던 그 방법을 사용해라.”

“머리를 쓰란 말입니까?”

“수고해라.”

히데우스는 빙그레 웃으며 마법 통신구를 껐다.

“녀석 때문이 아닙니다, 군단장님. 이젠 저 때문에 출발을 늦출 생각입니다.”

신성의 장소를 바라보는 이카렌의 몸에서 강한 투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군단장인 히데우스와 동수를 이뤘다는 고스트 킹과 싸워 보고 싶은 열망이었다.

그날부터 이카렌의 투쟁은 시작됐다.

김필도가 출발을 늦춰야겠다고 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라이자칸은 모처럼 전력을 다한 상대를 만났다는 즐거움과, 마족이 창조한 고스트 크레디온에게 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계속 싸우길 원했고, 톰벨은 크레디온을 얻을 욕심에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김필도는 훈련 때문이었다.

낮에는 라이자칸과 이카렌, 톰벨이 벌판으로 나가 고스트 크레디온과 싸움을 했고, 밤에는 김필도가 훈련을 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이젠 고스트 크레디온의 행동 패턴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고스트 크레디온은 신성의 장소 안으로 들어오는 생명체가 지닌 마나에만 반응을 했다. 생명체 중 이야크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즉 이야크는 아무런 제지 없이 신성의 장소를 통과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마침내 일행은 신성의 장소를 건너기로 했다. 더 이상 출발을 늦출 수는 없었다.

“휴우!”

이카렌은 벌판을 바라보았다.

지난 두 달 동안 고스트 크레디온과 무섭게 싸웠다.

하지만 군단장이 말한 고스트 킹은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고스트 킹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를 불러낼 만한 실력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직 멀었어.”

이카렌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나름 제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머잖아 군단장인 히데우스도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고스트 크레디온과 싸워 본 후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히데우스가 하늘이라면 그녀는 땅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먹을 지그시 말아 쥐었다. 신성의 장소를 보며 언젠가는 히데우스는 넘어서고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갑시다!”

그때 김필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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