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32화 (32/225)

# 32

일행은 2열로 서 있다. 앞에는 라이자칸, 이카렌, 톰벨이 섰고, 뒤에는 김필도, 렉스턴, 아델리나가 섰다.

앞에 있는 세 명이 고스트 크레디온을 상대할 때 뒤쪽에 있는 이들은 전장을 우회하여 벌판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이야크에서 떨어지더라도 계속 달려야 하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라이자칸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알았어요.”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세! 차아!”

“타앗!”

“하아!”

일행은 일제히 채찍을 휘둘렀다.

쿠어어어!

두두두두! 두두두두!

이야크들은 벌판 안으로 쏘아져 갔다. 20미터를 달렸을 때 이야크들은 이미 최고 속도에 도달해 있었다.

“차앗!”

“타앗!”

“이야압!”

라이자칸, 이카렌, 톰벨 세 사람이 이야크 등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들이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고스트 크레디온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며 공격을 해 왔다.

“흩어져!”

김필도는 소리치며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를 태운 블랙칸은 최고 속도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5백 미터를 내달린 블랙칸은 다시 방향을 바꿔 벌판 안쪽으로 달렸다.

불쑥! 불쑥! 불쑥!

블랙칸이 신성의 장소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고스트 크레디온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블랙칸은 멈추지 않았다. 블랙칸은 비석으로 보이는 기둥들을 방패삼아 고스트 크레디온을 피해 내달렸다.

김필도는 곁눈질로 이카렌 일행을 살폈다. 이카렌 일행 또한 싸우기보다는 피하는 데 중점을 두고 달려가고 있었다.

세 사람 뒤를 이야크들이 빠르게 쫓아가는 중이다.

“달려 750!”

김필도는 엉덩이를 약간 들고, 상체를 잔뜩 숙였다. 그의 목적지는 1킬로미터 전방에 있는 거대한 기둥이었다. 그곳만 지나가면 더 이상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블랙칸은 무섭게 질주했다.

수년 동안 이야크 사냥꾼을 피해 도망치면서 익혔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거대한 덩치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고스트 크레디온의 공격을 잘도 피했다.

“헉!”

전방을 향해 질주하던 김필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목표로 삼았던 거대한 기둥과는 1백 미터가량 남아 있었다. 블랙칸의 속도로 볼 때 1백 미터는 금세다.

그런데 거대한 기둥 앞으로 엄청난 수의 고스트 크레디온이 나타난 것이다. 어림잡아도 50객체는 되어 보였다.

아니, 그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50객체의 고스트 크레디온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덩치. 무려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짓의 녀석은 이카렌으로부터 들었던 고스트 킹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은 일렬로 늘어선 채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젠장! 오픈!”

김필도는 세이프 벨트를 풀었다.

지금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루시안! 이쪽으로 와! 그 녀석은 고스트 킹이야!”

멀리서 이카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김필도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 750!”

김필도는 블랙칸의 목을 힘껏 후려쳤다.

꾸어어어어!

블랙칸은 소리를 내지르며 전력으로 내달렸다.

달려가는 기세만으로는 고스트 크레디온을 박차고 나갈 것 같았다.

어느새 고스트 크레디온과 블랙칸과의 거리는 20미터로 좁혀졌다.

“멈춰!”

김필도는 블랙칸의 고삐를 당기며 소리쳤다.

퍼억!

두어 걸음 달려가던 블랙칸의 앞발이 바닥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그리고 앞발을 중심축으로 몸을 돌렸다. 자동차로 말하면 드리프트 기술이었다.

하지만 운전수는 운전석에 있지 않았다.

김필도는 블랙칸이 땅바닥에 앞발을 박아 넣고 멈추는 순간 이미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이야크는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리고 감행한 모험이었다. 고스트 크레디온은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들만 넘어서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튕겨지듯 블랙칸의 등을 떠난 그의 몸은 어느새 거대한 비석 옆을 지나가는 중이다. 이제 바닥에 내려서서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면 된다.

김필도는 고개를 돌렸다.

한순간 흠칫했던 고스트 크레디온들이 몸을 돌려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다. 특히 고스트 킹의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이번엔 이카렌 일행을 보았다.

그들은 다행히 고스트 크레디온을 돌파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마법만…….”

‘땅의 속성 노콴(Noqan)!’

“부상!”

김필도는 아래를 보며 낮게 소리쳤다.

“헉!”

빠르게 솟구쳐 올라야 할 땅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여긴 반마법 대지였어.”

무덤을 지키기 위해 가디언까지 세웠는데, 마법을 펼칠 수 있게 그냥 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응?”

이내 김필도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구덩이가 눈에 띄었다.

그는 허리춤의 작은 도를 재빨리 뽑았다.

도를 뽑아 자세를 잡는 순간 작은 구덩이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제4장 마신의 팔찌 파라온

“루시안!”

김필도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카렌은 질겁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김필도만큼은 살아서 길을 안내해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검을 뽑아 들고 김필도가 사라진 곳으로 내달렸다. 이어 라이자칸이 달려가고 톰벨이 뒤를 따랐다.

벌판을 빠져나갔던 세 명이 다시 안으로 들어오자 고스트 크레디온들은 일제히 그들을 막아섰다.

곧 거친 싸움이 벌어졌다.

이번 싸움은 조금 전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조금 전에는 벌판을 건너기 위한 싸움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리모스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김필도를 구하는 일.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라이자칸과 이카렌은 전력을 다했다.

라이자칸의 검에서 새하얀 광휘가 터져 나오고, 이카렌의 검에서는 검은 마나가 폭발하듯 쏘아져 나갔다.

콰앙! 쾅쾅!

찌이익! 찌이익!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고스트 크레디온의 갑옷이 쩍쩍 갈라졌다.

“으음!”

고스트 크레디온을 공격하던 톰벨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난 한 달 동안 라이자칸과 이카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벌판으로 나가 고스트 크레디온과 싸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고스트 크레디온을 부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족이나 천족의 검술 또한 경외감을 가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다.

다만 본인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고스트 크레디온을 상대로 연무를 했던 것이다. 그들의 진짜 실력은 방금 보여 준 공격이었다.

쩌어억!

금이 쩍쩍 가던 고스트 크레디온이 급기야 쩍 갈라졌다. 그리고 가루로 흩어져 바람에 날려갔다.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엄청난 자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수록 톰벨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고스트 크레디온을 일격에 부술 수 있는 저 힘은 신족이나 마족 본연의 힘이 아니다. 본연의 힘에 전투천갑 세이기온과 전투마갑 크레디온의 힘이 더해진 결과다.

저들이 가진 전투기갑은 얻을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얻는다고 해도 착용할 수가 없다.

톰벨이 얻고 싶어하는 전투기갑은 바로 고스트 크레디온들이 입고 있는 고대의 전투마갑이다.

그런데 그 크레디온이 가루로 변하고 있다.

고스트 크레디온을 제압하면 전투마갑 크레디온을 얻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다. 결국 크레디온을 얻기 위해서는 리모스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차아앗!”

톰벨은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들어 올렸던 검을 힘차게 내리그었다.

퍼억!

검으로 내리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리는 소리가 아닌, 장작을 쪼갤 때 도끼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얍!”

톰벨은 그대로 검을 끌어당겼다.

찌이익!

천이 찢겨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고스트 크레디온 표면에 유리가 충격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억!

이어 실금이 커지더니 쩍 갈라지며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루로 흩어졌다.

쩌어억! 쩌어억!

톰벨이 한 객체의 고스트 크레디온을 없애는 사이에 라이자칸과 이카렌은 세 번째 고스트 크레디온을 없애는 중이었다.

쿠와와와와!

바로 그때 엄청난 포효가 들려왔다.

일행은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고스트 크레디온이 함성을 내지른 건 지난 한 달 동안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눈동자처럼 보이는 새카만 구 두 개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스트 킹!”

이카렌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뭔가?”

라이자칸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고스트 크레디온 우두머리라고 보면 돼요.”

“엄청나구먼.”

라이자칸은 검을 틀어쥐었다.

“그러게요. 자아를 가졌다는 말을 듣진 못했는데…….”

“우린 강적을 만난 것 같구먼.”

“히데우스 님과 동수를 이뤘다네요.”

“정말인가?”

라이자칸의 몸에서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족에게는 절대로 질 수 없다는 투기였다.

“나도 그래요. 내 목표는 마계10군단 군단장이 아니라 히데우스 님이에요.”

이카렌은 검을 불끈 틀어쥐었다.

“차앗!”

그리고 고스트 킹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허허! 어쩌면 자넬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먼.”

라이자칸은 웃으며 몸을 날렸다.

“크아아아아!”

고스트 킹은 광포하게 포효하며 이카렌과 라이자칸을 향해 달려갔다.

라이자칸과 이카렌의 활약이 김필도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은 고스트 킹을 공격하는 둘은 물론이고 작은 구멍으로 떨어진 김필도도 알지 못했다.

“젠장!”

김필도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30여 미터 높이에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좁은 굴 때문이었다. 수직으로 뚫어진 그 토굴 벽에 소도를 박아 넣고 속도를 늦춘 바람에 충격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속도를 줄이지는 못했다. 그 결과 다리 한쪽이 부러지고, 포션을 낭비해야 했다.

“그런데 여긴……?”

김필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응?”

바닥을 살피던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빛이 나는 돌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김필도는 빛이 나는 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의 발은 희미한 마법 등이 주위를 비추고 있는 공간을 밟고 있었다.

“여긴?”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영상이 떠올랐다.

마치 스위치를 켜면 예열 과정을 거쳐 천천히 불이 들어오는 진공관 앰프처럼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한 달 전 바위 아래쪽에서 보았던 복잡한 도형이었다.

“머리가 좋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네.”

김필도는 피식 웃었다.

그것은 한 번 보면 머릿속에 기억되도록 마법이 펼쳐져 있는 그림이었다.

“어쩌면 기연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는 머릿속 도형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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