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36화 (36/225)

# 36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천을 꺼내 눈을 가렸다. 그는 놓았던 도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눈을 감고 검을 휘두른다는 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게 아니네.”

“일단 해 봐야죠.”

김필도는 눈을 감고 귀를 활짝 열었다.

사실 김필도는 귀를 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었다. 예민한 감각 또한 실전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 중의 하나다.

눈을 감자 주변의 오만가지 소리가 다 들려온다.

입고 있는 로브가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기능이 있어서인지 소리는 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들린다.

“사물을 절대 상상하지 말게. 나무의 생김새나, 바위의 생김새, 풀의 생김새 등을 떠올리면 안 되네.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네.”

“알았어요.”

김필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간다.

스윽! 스윽! 스윽!

주위에서 뭔가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바닥이 아니다. 그렇다고 허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위치가 어디인건 간에 뭔가를 끄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휘익!

바람 소리와 더불어 날카로운 기운이 다가들었다.

‘오른쪽!’

김필도는 반 보가량 왼편으로 이동했다.

스악!

팔 상박에서 씀벅한 느낌이 왔다. 곧이어 뜨듯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베인 부분에서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팔뚝쯤.’

김필도는 미소를 베어 물었다.

스악!

왼편에서 싸늘한 느낌이 다가들었다. 김필도는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이동한 거리는 한 걸음이었다.

‘너무 멀어.’

입가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방금 느꼈던 싸늘한 기운은 한 뼘 정도 되는 듯하다.

‘상상하지 마라. 거리를 재지도 마라. 그냥 느껴라.’

김필도는 모든 감각을 귀에, 아니 머리에 집중했다.

-눈도 믿지 말고 귀도 믿지 마라. 네가 믿을 건 오직 한 가지, 느낌이다. 느낌에 네 목숨을 맡겨라. 의심하지 마라! 느낌을 절대적으로 믿어라. 그게 바로 마법이다.

깨달음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실전 마법을 가르쳐 주던 요른의 말이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런데 이젠 알 것 같았다.

휙!

김필도의 신형이 전면으로 폭사돼 갔다. 그림자가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슈캉!

10여 미터를 나아가던 그의 허리춤에서 새파란 광채가 폭발했다.

그리고 새하얀 줄이 허공에 생겨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줄이 아니었다. 그것은 빠르게 고기를 잘랐을 때 나타나는 깊은 자국이었다.

이윽고 새하얀 자국이 붉게 변했다.

“크윽!”

츄악!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털썩!

두 조각으로 잘린 시체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떨어진 자들은 특이했다. 피부는 마족처럼 검고 키는 드워프처럼 작았지만 귀는 엘프를 닮았다.

“멸종했다는 다크 엘프군.”

라이자칸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섀도 족이라 불린 자들은 고대 전쟁 때 멸종됐다고 알려진 다크 엘프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체를 알았다고 해서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 위치와 공격 지점이 다른 섀도 족의 공격은 더욱 치열하게 이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멈췄던 화살이 다시 날아오기 시작했다. 화살에는 강력한 마나가 실려 있어 쳐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그제야 밖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린 톰벨 일행이 동굴에서 뛰어나왔다.

“크윽!”

바로 그때 전방에서 나직한 비명이 들려왔다.

‘대단한 친구군.’

라이자칸은 내심 감탄했다.

육감을 익히는 방법에 대해 말한 건 조금 전이다. 그런데 어느새 육감을 이용해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섀도 족을 찾아내 도륙하고 있다.

물론 화살 공격을 가장 먼저 알아차릴 정도로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긴 했다. 하지만 날아오는 화살을 감지해서 막아 내는 것과 바로 앞에서 찔러 오거나 휘둘러 오는 걸 막아 내는 건 천지 차이다.

그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온몸은 피투성이이다.

적의 공격을 허용하면서 실전 감각을 익혀 나가고 있는 것이다.

“혹시… 아닐 거야.”

라이자칸은 상념을 떨쳐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문득 전설의 실전 마법을 떠올렸다가 얼른 머릿속 저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원래 라이자칸은 천족의 최하층 계급인 무급 출신이었다.

무급 출신인 그가 성공하는 방법은 강해지는 것밖에 없었다. 강해지는 길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 중의 하나가 실전 마법이었다. 전설이 말하길 실전 마법은 모든 마법을 잡는다고 하였다.

그때부터 실전 마법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하지만 실전 마법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많지 않은 자료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다. 실전 마법은 책이나 연습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고 하였다. 오직 한 가지. 목숨을 건 실전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다고 하였다.

눈앞의 김필도처럼.

라이자칸은 그동안 김필도가 싸우는 모습을 옆에서 봐 왔다. 김필도는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하였고, 점점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결코 검술이 강해지는 게 아니었다.

검사가 강해진다는 건 검에 마나를 싣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김필도의 검에는 마나가 전혀 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마법의 기운이 실리는 걸 간혹 감지하곤 했다.

주문도 없고, 검에 마나가 실리지도 않으면서도 웬만한 검사보다는 강한 기술은, 라이자칸이 알기로는 철저하게 실전을 통해서만 성장한다는 실전 마법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건 라이자칸이 더 잘 안다. 실전 마법은 너무 오래 전에 사라진 마법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슈아악!

갑자기 공간을 가르며 날카로운 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였다.

라이자칸은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카앙!

“으읍!”

라이자칸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화살에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도대체 누가?”

라이자칸은 굳은 얼굴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화살에 그런 힘을 실을 수 있는 자는 신족이나 마족밖에 없다. 아니, 잘려 나간 화살의 길이가 1미터나 됐다. 그건 곧 신족과 마족이 사용하는 화살이란 뜻이다.

“크윽!”

“컥!”

“악!”

앞쪽에서 나직한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김필도가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허공에 숨어 있는 자들을 없애고 있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바로 그때였다. 오른편 어둠 속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이야크가 달려오는 소리였다.

“결정해!”

원래 자리로 돌아온 김필도가 이카렌을 보며 말했다.

“몇 명이나 돼 보여요?”

이카렌은 라이자칸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는 수백 명이네.”

달려오는 이야크의 발걸음 소리로 판단한 결과였다.

“실력은 어느 정도라고 보세요?”

“화살을 받아 봤는가?”

“그래서 묻는 말이에요.”

“나보다 낫다고 말하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밀리는 자들도 아니었네.”

“그럼 마족 아니면 천족이란 말이군요.”

“추방자들일 수도 있네.”

“그럼 일단 피한 다음에 놈들의 정체를 파악해야겠군요.”

“도망?”

김필도는 이카렌을 보며 물었다.

“이런 경우엔 작전상 후퇴라고 해.”

이카렌을 비롯한 일행은 이야크를 묶어 둔 장소로 달렸다.

이윽고 이야크에 오른 일행은 서쪽을 향해 이야크를 몰아갔다.

그런데 이카렌은 그녀의 이야크가 아니라 김필도의 블랙칸에 올랐다. 앉은 방향 또한 김필도 쪽이 아니라 반대편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라이자칸은 렉스턴 뒤에 탔고 톰벨은 아델리나 뒤쪽에 탔다. 그들 역시 뒤를 바라보는 모양새였다.

“그림자 벌판만 지나면 리모슨데 작전상 후퇴는 무슨.”

김필도는 이카렌이 타고 왔던 이야크 고삐를 안장의 폼멜에 묶으며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루시안.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피할 때야. 이럇!”

“차앗!”

이카렌과 김필도는 동시에 소리쳤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블랙칸을 비롯한 이야크들이 일제히 튀어나갔다.

“클로스(Closed)!”

“클로스(Closed)!”

일행의 입에서 세이프 벨트를 채우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안장에서 튀어나온 가죽 끈은 허벅지를 단단하게 둘러쳤다.

“이걸 어깨에 걸어!”

이카렌은 안장 옆에 늘어져 있던 가죽 끈을 들어 올려 김필도에게 건넸다.

“그건 두 사람이 탈 때 사용하는 거였어?”

“지금처럼 등을 맞대고 타게 되면 뒤에 앉은 사람은 이야크가 방향을 어디로 틀지 모르잖아. 루시안 네 등이 방향타가 되는 거야.”

“내 등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인다는 거구나.”

“그래야 이야크에게 무리를 주지 않거든.”

“알았어!”

김필도는 자동차 안전벨트를 매는 것처럼 어깨에 띠를 두른 다음 이카렌에게 건네주었다.

가죽 끈은 하나가 아니었다. 반대편 어깨에도 가죽 끈을 두르자 둘의 등은 완전하게 밀착됐다.

“오픈(Open)!”

준비가 끝나자 이카렌은 아공간을 열어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활과 전통을 꺼냈다. 전통은 안장 오른편 고리에 걸고 활에 시위를 걸었다.

활의 길이는 2미터에 가깝고 화살은 1미터 정도였다.

그녀는 화살을 하나 뽑아 시위에 걸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엎드려!”

김필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카렌은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얼굴 위로 커다란 나뭇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오른쪽!

김필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이카렌은 왼편으로 몸을 기울였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바로 그때 이야크 발걸음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모습이 눈에 잡혀 들었다.

“저들은?”

이카렌은 눈을 가늘게 모았다.

“누구야?”

김필도는 물었다.

“블러드 데빌단인 것 같아.”

“블러드 데빌?”

“마계와 천계에서 추방된 자들로 구성된 조직이야.”

“쉽게 말하면 문 대륙의 산적?”

“엄청나게 강한 산적이지.”

“저놈들이 우리를 어떻게 알고 쫓아오는데?”

“그걸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쇄애액! 슈아아악!

바로 그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김필도는 소리쳤다.

“화살!”

“미친놈들 아냐?”

“왜?”

“저 먼 곳에서 화살을 쏴 봐야 의미가 없잖아.”

터억!

“헉!”

바로 옆 나무에 뭔가가 틀어박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김필도는 깜짝 놀랐다.

“화살의 사정거리가 1킬로미터야.”

“염병할!”

김필도는 얼결에 목을 움츠렸다. 그러고는 블랙칸의 목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달려!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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