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39화 (39/225)

# 39

김필도의 입술이 이카렌의 입술을 덮쳤다. 이카렌은 반사적으로 김필도를 뿌리치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손에 뭔가가 잡혀 들었다. 그리고 그의 혀와 함께 작은 구슬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이카렌은 혀로 구슬을 밀어 냈다.

‘헉!’

구슬에 혀를 대는 순간 전율이 일 정도의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강타했다. 그것은 단순한 구슬이 아니었다.

그녀는 감았던 눈을 스르륵 뜨고 김필도를 보았다.

‘삼켜!’

김필도의 눈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구슬을 꿀꺽 삼켰다. 그때서야 그가 입술을 뗐다.

“사탕은 아니지만, 사탕 키스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어.”

김필도는 능청맞게 웃으며 블랙칸의 머리를 돌렸다.

“사, 사탕 키스?”

이카렌은 멍한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김필도는 골든 브리지를 향해 블랙칸을 몰아갔다.

얼마잖아 입구를 지나 다리에 들어섰다.

“루, 루시안!”

이카렌은 김필도를 불렀다.

“나 한 가지 소원이 있어.”

김필도는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이카렌을 돌아보았다.

“뭔데?”

이카렌은 뚫어지게 김필도를 쳐다보았다.

“가능할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리모스에서 살아 나온다면 그땐 정말 강해져 있었으면 좋겠어.”

“신처럼?”

“아니?”

“그럼?”

“너희 마족이나 저기 천족들 앞에 섰을 때 위축되지 않을 정도로만 강해졌으면 좋겠어. 그래서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을 때 이 검으로 내리그은 천족의 몸이 갑옷과 함께 잘려 나갔으면 정말로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그동안 많이 위축됐었어?”

“내가 전에 그랬지? 내가 살던 곳에서는 내 몸의 문신만 보여 줘도 사람들이 슬슬 피해 간다고.”

“그랬지.”

“그런데 여기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아. 상대로 여기지도 않을뿐더러 아주 벌레 취급을 해.”

“다 그런 건 아냐.”

“맞아. 그래서 너와 함께 왔겠지. 아무튼 명심해. 절대적인 믿음만이 마법을 불러온다는 사실.”

“무슨 소리야?”

“리모스로 들어가는 방법이야. 그동안 즐거웠어. 가자 750!”

김필도는 블랙칸의 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루시안!”

“이것 보게. 그 다리는 끊겼네!”

이카렌에 이어 톰벨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김필도는 멈추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려!”

“공격하라!”

“공격하라!”

“우와아!”

“와아아!”

텅! 텅! 텅! 텅! 텅! 텅!

쇄애액! 쇄애액! 쇄애액!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른다. 양쪽 진영에서 거의 동시에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화살이 쏘아졌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말릴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멈춰라!”

히데우스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명령은 함성에 묻히고 말았다.

제7장 빛의 땅 리모스

이카렌은 히데우스를 돌아보았다.

전쟁을 말릴 수 없다고 판단한 히데우스는 검을 뽑아 든 채 천족 진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따라가라, 부군단장!”

시선이 마주치자 히데우스가 소리쳤다.

“평의회에서는 이번 전쟁을 빌미로 군단장님을 해임하려 들 겁니다.”

이카렌은 소리쳤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히데우스는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고, 세이아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쟁을 원한 쪽은 천족이란 말이 된다. 하지만 평의회에서는 마계10군단의 희생 책임을 군단장에게 물을 게 분명하다.

게다가 아직 리모스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들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어서 들어가라!”

“저도 싸우겠습니다.”

“이건 명령이다, 부군단장!”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절대적인 믿음은 마법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이카렌은 조금 전 김필도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복창했다.

“라이자칸, 그 계집을 없애라!”

막 이야크를 돌리려고 하는데 천족 진영에서 세이아칸의 외침이 들려왔다.

라이자칸은 곤혹스런 얼굴로 이카렌을 보았다.

“먼저 갈게요, 라이자칸, 이럇!”

이카렌은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꾸워워워!

이야크는 크게 울부짖으며 전방으로 내달렸다.

“뭐 하고 있느냐, 라이자칸! 그 계집을 죽이란 말이다!”

“끝장이군.”

라이자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카렌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내리는 명령이다. 그동안 친분을 쌓으며 함께 왔는데 어떻게 검을 휘두른단 말인가. 아마 이곳을 나가게 되면 ‘명령 불복종’이라는 죄목으로 은퇴를 강요당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추방자가 될지도.

“라이자칸!”

“이럇!”

또다시 세이아칸의 외침이 들려오자 골든 브리지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

아델리나는 톰벨을 보았다.

그때 톰벨은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맨 앞에는 김필도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고, 그 뒤를 이카렌과 라이자칸이 따르고 있다.

“네 생각은 어떠냐?”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은 루시안이에요.”

“끊긴 다리가 리모스로 들어가는 입구란 말이냐?”

“루시안은 골든 브리지에 처음 왔어요.”

“그런 그가 어떻게 다리 끝에 적힌 글귀를 알고 있겠느냐는 말이냐?”

방금 김필도가 한 말은 다리가 끊긴 부분에 적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달려갈 리가 없잖아요. 이카렌과 라이자칸이 따라갈 리도 없고요.”

톰벨의 시선이 벌판으로 향했다.

이미 마족과 천족은 전투를 시작해, 설령 빠져나가고 싶어도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일단 가 보자.”

톰벨은 이야크를 몰고 골든 브리지로 들어섰다.

“달려라, 달려!”

멀리서 김필도의 외침이 들려왔다.

톰벨은 고개를 돌렸다.

‘너희 마족이나 저기 천족들 앞에 섰을 때 위축되지 않을 정도로만 강해졌으면 좋겠어. 그래서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을 때 이 검으로 내리그은 천족의 몸이 갑옷과 함께 잘려 나갔으면 정말로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조금 전 김필도가 했던 말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톰벨 또한 강해지기 위해 이번 여행을 시작했고, 이제 목적지까지 왔다.

결코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럇!”

톰벨은 거칠게 채찍을 휘둘렀다.

찰싹!

그의 채찍이 이야크 어깨 부분을 후려치자 속도가 빨라졌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그는 고개를 들어 다리 끝을 보았다.

블랙칸은 이미 다리 끝에 도착해 있었다.

“하하하! 가자, 750!”

다리를 박차고 나아가는 블랙칸의 모습이 보였다.

톰벨은 난간 옆으로 고개를 내밀고 앞을 보았다. 다리를 박차고 나아갔던 블랙칸이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협곡은 얼마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하하하!”

다리 아래쪽에 흐르는 구름 속에서 김필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녀석!”

톰벨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루시아안!”

이어 이카렌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는 다리가 끊긴 부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김필도를 태운 블랙칸은 구름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때 톰벨과 아델리나 그리고 렉스턴은 다리 끝 부분에 와 있었다. 다리 오른편 가장자리에는 비석처럼 작은 돌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 돌의 표면에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고대어가 적혀 있다.

‘절대적인 믿음은 마법을 불러온다!’

“어떻게 됐습니까?”

톰벨은 잘려 나간 부분을 보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아세요?”

이카렌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기 쓰인 글입니다.”

톰벨은 오른쪽 구석에 세워진 돌을 가리켰다.

“절대적인 믿음은 마법을 불러온다는 말인가요?”

“네.”

톰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물러나요.”

이카렌은 이야크를 뒤로 물렸다.

“어쩌려고 그러는가?”

이카렌 뒤편에 있던 라이자칸이 물었다.

“그는 리모스에 들어갔을 거예요.”

“자신하는가?”

“네.”

이카렌은 확신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에 문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뛰어내려야 한다는 말이구먼.”

“조금의 망설임도 없어야 해요. 만일 손톱만큼이라도 의심을 하게 되면 바닥으로 추락하게 될 거예요. 타앗!”

그녀는 엉덩이를 번쩍 쳐들고 채찍을 휘둘렀다.

구워워워!

이야크는 우렁차게 울음을 토해 내며 전방으로 질주해 갔다. 블랙칸이 뛰어드는 광경을 봐서 그런 듯 이야크 또한 주저하지 않았다.

“난 믿어, 루시안! 네가 준 이 술을 믿고, 내 입에 넣어 준 구슬을 믿고, 널 믿고, 마법을 믿어!”

파앗!

이카렌을 태운 이야크가 가장자리를 박차고 뛰어내렸다.

“난 믿는다고!”

이카렌은 다시 소리쳤다.

곧 그녀를 태운 이야크는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라이자칸이 그 뒤를 따랐다. 그 역시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말을 외쳤다.

잠시 후 그 역시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믿어야 해요, 아빠. 어린아이처럼 절대적으로 믿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리모스로 들어가지 못해요.”

“알았다!”

“먼저 갈게요.”

톰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델리나는 다리를 향해 내달렸다. 그 뒤를 이어 톰벨이 달렸고, 마지막으로 렉스턴이 이야크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휙! 휙! 휙!

3마리 이야크는 연속해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아악!”

“으아아악!”

“악!”

뛰어든 여섯 명의 빈자리를 처절한 비명들이 금세 메웠다.

벌판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금색 전투기갑을 걸친 천족과 검은색 전투기갑을 걸친 마족은 서로를 향해 검과 마법을 쏘아 댔다.

양측의 마법은 인간의 클래스 마법과 달랐다.

자신들의 무기에 마법 기운을 실어 상대를 공격했다. 검에서 불이 쏘아져 나가고, 차가운 기운이 쏘아져 나가고 강풍이 쏘아져 나갔다.

“차아아아!”

콰앙!

히데우스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황금색 전투기갑을 걸친 천족들의 동체가 이야크와 함께 부서졌다.

그는 검으로 상대를 자르는 게 아니라 부쉈다.

새카만 광채를 뿌리는 히데우스의 검은 마계 3대 명검 중의 하나인 혼돈의 검 헬칸이었다. 헬칸에는 혼돈의 힘이 깃들어 있어, 휘두를 때마다 거력이 쏟아져 나왔다.

콰앙! 콰앙!

“크윽!”

“커억!”

황금색 전투기갑을 걸친 자들은 강한 압력을 받은 것처럼 찌그러지며 죽어 갔다.

“군단장님! 적장이 골든 브리지로 가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군단장 친위대 수장인 하이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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