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41화 (41/225)

# 41

“또 있어?”

“자기 자신에게 신뢰 마법을 걸고 뛰어내리면 돼.”

“아예 의심의 소지를 없애 버린다는 거구나.”

“얄팍하게 머리 굴리는 녀석들이 주로 써먹는 방법이지.”

“그럼 너도 그렇게 하겠네?”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내가 한 것 말고는 절대 믿지 않아.”

켈러는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리모스엔 뭐가 있지?”

“리모스 어딘가에 신의 선물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신의 선물?”

“이곳 문 대륙은 신마 전쟁 이후 완전하게 파괴됐어. 대륙의 50퍼센트 이상은 물에 잠기고 나머지는 사막이 됐지. 그랬던 곳이 저렇게 변한 거야.”

“산에는 나무가 우뚝우뚝 솟아 있고, 땅은 기름진 옥토로 변했다고?”

“어떤 땅이든 그렇게 변하려면 그곳에 생명의 나무가 있어야 해.”

“생명의 나무?”

“응.”

“그러니까 생명의 나무를 가져가기 위해 이 난리를 치는 거라고?”

“신마시대의 도시 중 유일하게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잖아. 그것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럴 바엔 문 대륙을 통째 점령해 버리지 뭐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점령?”

켈러는 복잡한 얼굴로 크레이지를 보았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하겠다.”

“빌어먹을! 바로 그거였어.”

안개가 들어찬 것처럼 부옇던 머릿속이 비로소 환하게 밝아졌다.

지금껏 천족과 마족이 왜 리모스에 집착하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리모스엔 생명의 나무가 있을 수도 있고, 고대의 유물도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유물도 얻고, 문 대륙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리모스에 살고 있어야 한다.

리모스의 점령.

마계10군단과 대천신군이 이곳에 온 이유였다.

“얼른 들어가 보고 싶네.”

켈러는 골든 브리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편.

가장 먼저 리모스로 뛰어든 김필도는 놀란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물론 지금 있는 곳은 뛰어든 장소가 아니었다.

리모스에 들어온 이상 목숨은 스스로 챙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라이자칸이나 이카렌과는 충분히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세이아칸이 라이자칸에게 이카렌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처럼, 똑같이 안 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함께 있는 건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자들은 같은 인간인 톰벨 일행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보물을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목숨을 의탁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면서 익혔던 실전 마법. 그걸 믿고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이카렌 일행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블랙칸을 달려 리모스 깊숙이 들어왔다. 30분 이상을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엄청나네.”

김필도는 넋을 잃었다.

주위는 온통 호박색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빛이 비추고 있는 곳은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이었다. 즉 땅에서 솟구친 빛이 리모스 전역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건 진짜 사기야, 사기!”

널따란 길을 사이에 두고 둥근 탑 형태의 건물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다.

“가만!”

김필도는 블랙칸을 몰아 건물 옆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대박!”

건물을 세운 재료는 다름 아닌 최고 품질의 마정석인 하만티움이었다. 하만티움의 주요 특징은 마법 물질을 만들면 마나를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마나를 흡수하여 머금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마나 발전기였다.

그런 하만티움으로 건물을 세웠으니 풍화작용을 겪을 리가 없을 터였다. 신의 도시 리모스는 생명체만 살지 않았을 뿐 관리가 되고 있었다.

물론 모든 건물이 하만티움은 아닐 것이다.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건물들은 가루나 모래로 변해 전부 스러졌을 확률이 크다. 그 증거가 바로 블랙칸이 걸을 때마다 풀썩풀썩 피어오르는 먼지다.

“그렇다고 해도 저것들은 완전 보물인데.”

김필도는 입맛을 다셨다.

“이럴 게 아니라 아공간이 있으니까 일단은 채우고 보자고.”

어찌됐든 나중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면 황제가 내린 명령은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건물을 뜯을 수는 없고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가 보자.”

김필도는 블랙칸을 마음 가는 대로 몰았다.

블랙칸은 제대로 알고 고삐를 조정하느냐는 듯 푸르릉거렸다.

“걱정 마, 녀석아. 쓰레기 버리는 곳이나, 냉동 창고, 공장부지, 폐공장 찾는 데는 내가 도사야.”

푸릉!

“어떻게 아냐고? 조폭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가자는 대로 가기나 해.”

김필도는 의기양양하게 블랙칸을 몰아갔다.

김필도가 공장부지(?)를 찾는 덴 20분 정도 소요됐다. 그가 찾아 낸 장소는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 있는 건물들에 비하면 화장실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초라했다.

외벽은 직사각형 형태고, 이슬람 사원처럼 지붕은 둥글었다.

“여긴 공장부지가 아니고 냉동 창고네?”

김필도는 건물 외벽을 따라 이동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문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위에 있진 않겠지?”

그는 고개를 들어 지붕을 보았다.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붕까지 높이는 3미터 정도였는데, 피리가 앉으면 곧바로 미끄러질 정도 반들거린다. 아주 특이한 성격, 즉 정신병자 같은 자가 아니라면 문을 만들 수 없는 구조였다.

“마법사만 드나들었던 곳인가 보네.”

김필도는 지금껏 차고 있던 세이프 벨트를 풀고 블랙칸에서 내렸다.

마법을 펼쳐 안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어떤 공간을 통과하는 마법은 전에 비밀의 방에서 한번 펼쳐 본 적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반대로 하면 될 것이다.

김필도는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제8장 처형식

“혼돈의 바람! 카이 라콰(Kai Laqwa)!”

나직한 외침과 함께 김필도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오른손 손바닥을 바닥에 댔다. 그의 손바닥에서 검은 마법진이 떠오르고 그것은 곧 바닥으로 스며들어 갔다.

손바닥과 맞닿은 곳에서 강렬한 광채가 흘러나오고 김필도의 신형이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널따란 방이었다.

“이건 또 뭐야?”

주위를 둘러보던 김필도는 깜짝 놀랐다.

밖에서 봤을 때 건물의 크기는 한 변이 10미터 남짓이었다. 그런데 건물 안쪽 공간은 적어도 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단층 건물도 아니었다. 2층과 지하로 계단이 나 있었다.

“겉은 단층이고 안은 3층이면서 훨씬 넓다면… 여긴 비밀 건물이네. 그리고 공장이고.”

이곳을 공장이라고 한 이유는 벽면을 따라 흩어져 있는 특이한 공구들 때문이었다.

수북하게 쌓인 가루 속에 흩어진 그것들은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마치 어떤 기계의 부속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 옆으로는 작은 하만티움 조각들이 굴러다녔다. 공구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를 놓고 추론해 보면, 벽면을 따라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엔 뭔가를 만들던 기계들이 놓였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만티움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풍화작용을 거쳐 흩어지고 지금 상태가 된 거 아닐까.

“바로 저거야!”

한편을 바라보던 김필도의 얼굴이 문득 환해졌다.

왼편 구석에는 호박색 덩어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수박 크기의 덩어리들은 그가 이곳으로 온 임무 중의 하나인 하만티움이었다.

“일단 챙겨야지. 오픈(Open)!”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하만티움이 쌓인 곳으로 걸어갔다.

“먼저 창고 정리를 좀 하고.”

아공간 안으로 고개를 디밀자 널따란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의 아공간은 상당히 넓다. 가로 20미터, 세로 20미터, 높이 20미터로 냉동 창고 몇 개를 합쳐 놓은 크기다.

보통 창고는 공간이 넓으면 적재 효율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아공간은 다르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고는 꺼내고 싶을 때 손만 뻗으면 잡힌다.

즉 20미터 아래쪽에 있다고 해도 바라보면서 손을 내밀면 아래쪽에 있는 물건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아공간이 일그러진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마법 공간이 바로 아공간이다.

물론 모든 아공간이 똑같지는 않다.

아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8클래스는 돼야 하는데,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크기도 다르고 기능에도 약간씩 차이가 난다.

요른이 물려준 아공간은 궁극의 마법사가 만든 최상급에 속한다.

김필도는 사람 머리 크기의 하만티움을 아공간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만티움은 상당히 많았다. 제국에서 채광해 오라고 하였던 분량보다 다섯 배는 많을 듯했다.

하만티움을 집어넣은 김필도는 이번엔 벽면에 흩어져 있는 것들까지 전부 쓸어 넣었다.

“퍼펙트! 이름을 학사 사시미 클리너 김필도라고 할까?”

김필도는 시답잖은 소리를 주절거리며 지하로 향했다.

지하는 1층에서 만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인 듯 벽면을 따라 가루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진열장 따위가 놓여 있었던 자리인 듯싶었다.

“빠져나갈 때 가져갔나 보네.”

지하를 나와 2층으로 향했다.

2층 역시 물건을 진열한 장소였을까. 벽을 따라 가루만 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한가운데 있는 마법진이었다.

김필도는 마법진 안쪽으로 들어가 섰다.

“혼돈의 바람! 카이 라콰(Kai Laqwa)!”

김필도는 낮게 외치며 오른손을 바닥에 댔다.

파앗!

강한 광채가 마법진에서 솟아 나왔다. 그리고 김필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창 사이로 주위가 내려다보이는 탑 꼭대기였다.

조금 전 그곳이 공장이었다면 지금 들어온 곳은 연구실 같았다. 실험도구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 있고, 한편에는 책장이 기대서 있다. 책장 옆에는 의자가 뒹굴고 있었다. 놀랍게도 높이 2미터, 폭 2미터가량 되는 책장의 재질은 건물처럼 하만티움이었다.

의자도 책장과 마찬가지로 하만티움으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책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어 책장과 의자를 집어넣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건물도 뜯어 가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따라 들어온 천족과 마족을 이쪽으로 불러들일 게 뻔했다.

“이것 봐라?”

바닥에는 열 벌의 로브가 흩어져 있었는데 검은색 로브가 두 벌, 흰색 로브 두 벌, 회색 로브가 여섯 벌이었다. 흰색과 검은색 로브는 상당히 크고, 회색 로브의 사이즈는 세 가지로 나뉘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가 걸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천족, 마족, 인간, 엘프, 드워프들이 이 방에 함께 있었고, 뭔가를 했다는 뜻이다.

“그, 뭔가는 바로 싸움이지.”

로브만 남아 있는 열 명이 서로 싸운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와 싸웠고 죽임을 당한 걸로 보였다.

길게 찢겨 나간 로브가 있는가 하면, 검에 찔린 자국이 남은, 그리고 로브 후드가 잘려 나간 로브가 있었다. 로브 후드가 잘렸다는 건 머리가 잘렸다는 방증이다.

김필도는 로브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다. 다름 아닌 로브 주인들의 육체다.

육신이 가루로 변했는데도 로브가 아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로브를 만든 실에 하만티움이 포함됐다는 뜻일 테다.

그리고 각 로브 옆에는 검 손잡이들이 뒹굴고 있었다.

원래는 검신까지 있었던 것들인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쇠는 가루로 변하여 사라지고, 하만티움으로 만든 검 손잡이만 남아 있는 듯했다.

네 개는 길이가 50센티미터에 달했고, 여섯 개는 20센티미터쯤 되어 보였다. 손잡이가 50센티미터라는 건 마족과 천족의 검, 그리고 나머지는 인간과 엘프, 드워프의 검이란 의미였다.

김필도는 50센티미터 검 손잡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라콰(Laqwa)란 글이 손잡이에 새겨져 있었다.

“바람이란 뜻인데?”

김필도는 다른 검 손잡이를 집어 들었다.

붉은색으로 된 검 손잡이에는 불이란 의미의 세딕(Sedic)이란 글이 새겨져 있었다.

나머지 두 개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물의 뜻인 쿠라(Kura)와 땅의 뜻인 노콴(Noqan)이 씌어 있었다.

이번엔 인간과 엘프 드워프가 남긴 검 손잡이를 보았다. 거기에도 역시 라콰(Laqwa), 세딕(Sedic), 쿠라(Kura), 노콴(Noqan)이란 고대어가 새겨져 있었다.

“혼돈만 빼고 다 있네. 그런데…….”

김필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검 손잡이에 4원소의 이름을 적어 놓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는 라콰란 글이 적힌 검 손잡이를 잡고 바람의 속성 마법을 펼쳤다.

“이건?”

김필도는 멍한 눈으로 검 손잡이를 보았다. 검 손잡이 표면으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중첩돼 떠올랐다. 마치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던 불빛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실전 마법이…….”

김필도는 망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검 손잡이 안에는 실전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혹시 그에 대한 단서가 있나 싶어 로브를 건드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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