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45화 (45/225)

# 45

“헛!”

갑작스럽게 김필도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족들은 당황했다. 김필도의 움직임이 그렇게 빠를 거라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족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러고는 예리한 눈길로 전방을 쓸어보았다.

“네놈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마족 중 한 명이 차갑게 말했다.

“글쎄 그럴까?”

파앙!

김필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마족 중 한 명이 쏘아져 나갔다.

목소리는 오른편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순식간에 목소리가 시작됐던 지점에 내려선 마족은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광폭의 바람 라콰(Laqwa)!”

마족의 검이 어둠을 갈가리 찢어대는 순간 그의 등 뒤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차가운 외침이 흘러나왔다.

파앙!

김필도의 신형이 허공을 갈랐다.

“광염의 불꽃 세딕(Sedic)!”

그리고 차가운 외침이 마족의 등 뒤에서 흘러나왔다.

콰앙!

둔탁한 소성이 마족의 허리에서 터져 나왔다.

공격에 성공했지만 김필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마족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기다!”

파앙!

파앙!

김필도의 모습이 드러나자마자 마족 두 명이 몸을 날렸다.

“커억!”

발콘에 가격당한 자의 비명이 그제야 흘러나왔다.

마족 사내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몸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마족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등에서 강한 충격이 왔지만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투기갑을 뚫고 가공할 열기가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모공을 타고 들어와 온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으아악!”

마족 사내는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마족의 몸을 태우는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콰앙!

마족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버둥거리는 사이에 다른 장소에서 둔탁한 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 역시 공격을 당한 마족은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크악!”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렀을 때 마족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클로스(Closed)!”

마족 사내는 재빨리 크레디온을 접는 명령을 내렸다. 기체로 변한 크레디온은 빠르게 가슴 부분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오각형을 이루었다. 크레디온은 종이처럼 얇은 마법진 수백 개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쌓아 올린 것 같은 형태였다. 크레디온이 완전한 형태로 변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했다.

퍼억!

심장 바로 위에 위치해 있던 크레디온이 폭발하면서 마족의 심장마저도 갈가리 찢어 버린 것이었다.

“놈이 특이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조심하라!”

파앙!

퍼억!

“저기다!”

김필도의 모습이 드러나자 마족들은 화살처럼 쏘아져 갔다.

“크아악!”

그들이 달려가는 사이에도 먼저 당한 마족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불타올랐다. 마족들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그들이 살기를 뿜어내는 건 동료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마족 대부분은 인간을 엘프나 드워프보다는 한 단계 낮고 몬스터보다는 약간 우위에 선, 열등 종족으로 여겼다.

즉 인간은 마족과는 상당한 레벨 차이가 나서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종족이었다.

자신들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한, 모든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벌써 세 명이 당했다.

마족들은 동료의 죽음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슈아악!

그들의 동체가 어둠을 갈랐다.

공간이 일직선으로 뚫리며 검은 선이 죽 나타났다.

“광폭의 바람 라콰(Laqwa)!”

낮은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마족은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쏘아져 오더니 마족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앙!

그리고 강한 소성이 마족의 허리에서 터져 나왔다.

“컥!”

벌어진 입에서 입김처럼 흰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척!

마족은 바닥으로 내려섰다.

푸스스!

턱!

다리가 가루로 흩어지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크아아악!”

이윽고 마족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푸아악!

파앙!

콰앙! 콰앙! 콰앙!

“더 커졌어.”

무너지듯 쓰러진 마족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더 커졌다는 건 검으로 후려치는 소리를 말했다.

그 사실을 느낀 건 죽어 가던 마족뿐만이 아니었다. 김필도의 등에 업힌 이카렌 또한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너 원래 이렇게 강했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둠 속에 있는 마족들은 전부가 녹색 뿔. 즉 중급 마족이다. 그런 자들 7명을 혼자 없앤 인간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 난 거의 죽을 지경이야.”

김필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애써 눌러 참고 있지만 그의 입 안은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한계를 넘어 끌어올린 속도는 몸 내부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멈출 수가 없다.

실전의 극한은 한계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실체가 돼 모습을 드러낸다. 한계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도전을 했을 때 비로소 강함을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점점 강해지고 있지.”

이카렌은 말했다.

“내게 강해진다는 건 곧 익숙함이거든. 사시미 칼을 잘 다루는 것도 그렇고, 대학 가서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고, 소위 명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보고 쫄지 않는 것도 그래. 갑빠를 그냥 가슴이라고 말하고, 겁주려고 쓰는 사투리를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남들 속에 섞여 살아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익숙함은 바로 내가 강해졌다는 걸 의미해.”

“익숙함?”

“이 녀석을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슈아악!

“열린 여섯 번째 감각으로 달려오는 놈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그래.”

“저기서 쏘아져 오는 마족의 자세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야?”

“응.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흐릿한 형태뿐이지만 놈의 모습이 보여. 놈은 잔뜩 웅크린 채 검을 내리고 있어.”

“지금까지 당한 녀석들이 전부 허리를 공격당했기 때문에 아래를 방어하는 거란 말이구나.”

“그렇지. 광폭의 바람 라콰(Laqwa)!”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법을 펼쳤다.

푸아악!

그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공간을 갈랐다.

‘응?’

김필도의 뒷목에 머리를 대고 있던 이카렌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비릿한 냄새가 풍겨 오는 듯하더니 미지근한 액체가 입술에 와 닿았다.

‘이 녀석?’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입술에 묻은 미지근한 액체는 다름 아닌 피였다.

나아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 입에서 흘러나온 피가 아래가 아닌 뒤편으로 날린 것이었다.

이카렌은 입술에 묻은 피를 핥았다.

‘넌 진짜 사내야.’

이카렌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녀가 사내로 생각한 사람은 군단장인 히데우스밖에 없었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가슴속에 품었다. 그런데 히데우스와 비슷한 향기를 간직한 남자를 본 것이다.

“헉!”

앞에서 놀란 경호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시선을 들었다.

퍼억!

그 순간 둥근 물체 하나가 둥실 떠올랐다. 워낙 속도가 빨라 금세 지나쳐 갔지만 그것이 마족의 머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느새 크레디온과 함께 목을 잘라 내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문제는 그녀의 얼굴에 와 닿는 피가 조금 전보다 더 많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실수했어.”

김필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10여 미터 앞에서 검은 물체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다. 너무 가까워 피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랬어.’

이카렌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조금 전 허리를 방어하며 달려든 자는 미끼에 불과했고, 진짜 공격은 지금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네.”

그 자존심 강하다는 마족이 인간을 상대로 협공을 감행하다니.

“광염의 불꽃 세딕(Sedic)!”

그 순간 강한 외침이 김필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콰아앙!

“커억!

광포한 폭음에 이어 이카렌은 자기 몸이 뒤편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걸 느꼈다.

퍼억!

곧이어 강한 충격이 몸에서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이카렌은 묶고 있던 천으로 손을 가져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광폭의 바람 라콰(Laqwa)!”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로 몸이 쏘아져 나갔다. 거칠게 쓰러졌던 김필도가 다시 마법을 펼쳐 쏘아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죽을지도…….”

이카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입을 벌리는 순간 비릿한 액체가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김필도의 입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그녀는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하고 멍한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분명 조금 전 내장이 끊어질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설령 마족이라고 해도 그 정도 타격이면 한동안 일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벌떡 일어나 마법을 펼치며 적을 향해 쏘아져 가고 있다.

“헉!”

깜짝 놀란 신음이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진짜 싸움을 아는 녀석이야.’

이카렌은 입 안에 고인 피를 꿀꺽 삼켰다.

보통 지금과 같은 경우에 맞닥뜨리면 몸을 피하는 게 정석이다. 폭포처럼 피를 토해 낼 정도로 심하게 당했는데 다시 상대방을 향해 몸을 날린다는 건 미친 짓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고, 공격한 마족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마족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 마족을 향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상대방의 예상을 깨는 이런 통렬한 공격은 많은 실전을 거친 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늦었어!”

김필도는 차갑게 소리치며 발콘을 강하게 휘둘렀다.

마족은 황망히 검을 들어 올렸다.

슈캉!

먼저 마족의 검이 잘려 나갔다.

퍼억!

그리고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마족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척!

“혼돈의 바람! 카이 라콰(Kai laqwa)!”

바닥에 내러서자마자 김필도는 이동 마법을 펼쳤다. 한 번이 아니었다. 그는 연속에서 세 번의 이동 마법을 펼쳐 자취를 감췄다.

김필도가 이동 마법을 펼쳐 자리를 뜨고 난 3분 후.

데메우스가 마족 10명과 함께 나타났다.

“전부 당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마족 한 명이 데메우스에게 보고했다.

“으음!”

데메우스는 서치 보드로 시선을 내렸다. 이카렌의 위치를 보여 주던 빨간 점은 자취를 감추고 없다.

빨간 점이 사라진 건 조금 전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9명의 대원이 죽임을 당하고 두 연놈은 귀신처럼 자취를 감춘 것이다.

“페르젠슨의 시체는 어디 있느냐?”

페르젠슨은 조장이었다.

“저깁니다.”

데메우스는 대원이 가리킨 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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