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46화 (46/225)

# 46

그곳에는 검과 머리가 잘려 나간 페르젠슨이 쓰러져 있었다. 몸은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응?”

페르젠슨 옆을 살피던 데메우스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검붉은 액체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았다.

“인간의 피?”

그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어렸다.

“나머지 조를 불러와라!”

데메우스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다른 방향으로 갔던 대원 10명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왔다.

“놈이 마법을 펼쳐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1백 미터 정도다. 놈은 그동안 수십 번의 이동 마법을 펼쳤다. 그건 곧 더 이상은 이동 마법을 펼칠 여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놈은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다. 흩어져서 수색하라.”

“알겠습니다.”

“혼자 처리하겠다는 욕심은 버려라. 반드시 연락을 취해라!”

“알겠습니다.”

마족들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잡는다, 반드시! 내 모든 것을 걸고.”

데메우스는 어둠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제10장 세 번의 키스는?

“흐흡! 흐읍! 흐읍!”

히데우스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마계 최강 전사라는 타이틀도 세월 앞에서는 빛을 바랬다. 이미 5천5백 살. 5천 살가량인 마족의 수명을 한참 넘어선 그다. 충만한 마나의 힘으로 지금껏 버텨 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지쳐 갔다.

나이에 비례하여 빨리 지치는 근육만큼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해가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추위가 밀려오면서 근육의 활동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근육의 활동 능력이 떨어지면 속도는 저절로 느려지기 마련이다.

반면에 칼베리언은 비교적 팔팔했다.

물론 그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고 움직일 때마다 허연 김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칼베리언은 이제 3천7백 살의 젊은 마족. 아직은 견딜 만했다.

“네가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히데우스. 아마 적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널 존경했을지도 모른다.”

칼베리언은 솔직하게 말했다.

비록 뿔은 죄수의 표식인 흰색이지만 황금색 뿔을 지닌 최상급 마족의 힘을 그대로 발휘하고 있다.

그런 칼베리언을 상대로 상급 마족인 히데우스는 열다섯 시간 이상 버텨 낸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칼베리언이 시간을 끌었다.

만일 시간을 끌지 않고 처음부터 정면 대결을 벌였더라면 바닥에 눕는 쪽은 칼베리언이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칼베리언은 잘 알고 있었고, 지금껏 교묘하게 시간을 끌어 왔다.

“군단장이 될 마음은 없나 보구나.”

히데우스는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시간을 끄는 비겁한 짓으로 승리한 자는 마계10군단 대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물론이다. 난 마계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살 곳은 여기다.”

칼베리언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널 감옥에서 꺼내 준 자가 누구냐?”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서.”

칼베리언은 팔을 어깨와 수평으로 편 후 약간 아래로 내렸다. 그 상태에서 파괴의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검, 헤힐에서 검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제 끝내겠다, 히데우스!”

“와라, 칼베리언!”

히데우스는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손을 오른편 가슴 앞으로 가져가서는 검을 수평으로 눕혔다.

“차앗!”

칼베리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파앙!

칼베리언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갔다.

“이야얍!”

히데우스도 강하게 기합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칼베리언보다는 약간 느렸지만 그의 움직임 또한 화살처럼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둘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퍼엉!

신검 두 자루가 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으음!”

더불어 히데우스의 입에서는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히데우스가 흘린 신음을 들은 걸까. 칼베리언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차앗!”

칼베리언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히데우스는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큭!”

히데우스의 양발이 지면으로 푹 파고들어 갔다.

“이야압!”

슈캉!

하지만 히데우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록 몸은 지쳤지만 그는 여전히 거인이었다. 칼베리언의 검을 밀어냄과 동시에 허리를 향해 쓸었다.

카카캉!

히데우스의 헬칸이 칼베리언의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커억!”

칼베리언의 기갑이 쩍 벌어지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히데우스는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헬칸을 번쩍 들어 올려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아앙!

퍼억!

두 검이 부딪친 여력에 주위가 푹푹 꺼졌다. 하지만 칼베리언은 젊고 강했다. 배가 쩍 갈라지고 그곳에서 피가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크아아아!”

오히려 광포한 고함을 내지르며 히데우스를 밀어붙였다.

승기를 잡았던 것도 잠시, 히데우스가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칼베리언은 도끼질하듯 쉬지 않고 히데우스를 밀어붙였다.

“컥!”

또다시 히데우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입가에 핏기가 비쳤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칼베리언은 쉬지 않고 검을 내리찍었다.

육체의 힘과 파괴의 힘을 바탕으로 펼치는 도끼 검술이었다.

겉보기엔 쉽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싸움 초반에 도끼 검술을 펼치면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반격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칼베리언의 주특기인 도끼 검술은 싸움의 초반에 기선 제압용으로 펼치는 게 아니라 싸움을 마무리 지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찍어 대는 검을 막아 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계속해서 밀린 히데우스의 신형이 어느새 골든 브리지 근처까지 왔다.

“끝이다! 히데우스!”

칼베리언은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내리찍었다. 히데우스는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커억!”

히데우스의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히데우스는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뒤로 물러났다.

“죽어라!”

칼베리언의 검이 또다시 히데우스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히데우스는 검을 들어 올려 막았다.

뒤로 물러날수록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많아지고 기갑 앞은 피로 물들었다.

“커억!”

골든 브리지 끝 부분까지 갔을 때였다.

굳건하게 버티던 히데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크아아아아!”

칼베리언의 입이 쩍 벌어지고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전력을 다한 일격이 히데우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앙!

“커억!”

히데우스는 피를 꾸역꾸역 넘겼다. 그 피에는 히데우스의 내장까지 섞여 있었다.

쿠웅!

급기야 히데우스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헉! 헉! 헉!”

칼베리언 또한 지친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히데우스.”

칼베리언은 히데우스를 노려보았다. 히데우스는 옆으로 누운 상태였다. 틀어쥔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켜 세워 보려고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칼베리언은 천천히 히데우스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헤힐을 양손으로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 헤힐의 날이 겨냥한 곳은 히데우스의 옆구리 위쪽 갈비뼈 부분이었다.

“잘 가라, 히데우스!”

그는 차갑게 말하고 검을 강하게 찔렀다.

푸욱!

헤힐은 히데우스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갔다.

“군단장님!”

벌판에 모여 있던 마계10군단 대원들이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크윽!”

대원들의 부름에 대답하듯 히데우스는 신음을 내뱉었다.

“넌 정말로 군단장 자격이 있어. 아마 마계10군단 마지막 군단장으로 기록될 거야.”

칼베리언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손목을 틀었다.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던 헤힐이 90도로 꺾이자 구멍이 커지며 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나왔다. 그 상태에서 칼베리언은 파괴의 힘을 쏟아 넣었다.

“커억!”

히데우스의 입이 쩍 벌어지고 또다시 내장 부스러기가 섞인 피가 흘렀다.

칼베리언은 그의 검을 뽑아냈다.

“단장님!”

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는데, 켈러 일행이 다가왔다.

“들어갈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런데…….”

켈러의 시선이 히데우스의 검으로 향했다. 마계3대 신검의 하나인 헬칸을 얻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으면 가져가도 좋다.”

“그게 무슨?”

“저길 봐라!”

칼베리언은 골든 브리지 입구를 가리켰다. 마계10군단 대원들이 숙연한 얼굴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이 이편을 향해 걸어왔다. 녹색 뿔을 가진 자들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켈러는 칼베리언을 보았다.

“설사 포션을 복용시킨다고 해도 히데우스는 살려 내지 못한다. 다만 죽는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다.”

“그대로 둬야 한다는 말입니까?”

“히데우스는 비록 적이었지만 마계 최강 전사였다. 그런 그를 죽인 건 내겐 더없는 영광이다. 더 이상은 그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 아니, 히데우스를 모욕하는 건 곧 그를 이긴 나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

칼베리언은 미련 없이 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가자!”

이어 켈러가 몸을 던지고 다른 이들 또한 순서대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물론 켈러는 자신에게 신뢰 마법을 건 후에 뛰어내렸다.

“군단장님!”

마족 두 명이 히데우스 옆으로 다가갔다. 한 명은 포션을 준비하고 다른 한 명은 히데우스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히데우스의 입 안으로 포션을 흘려 넣었다.

“누구냐?”

아직 죽지 않은 듯 히데우스는 눈을 뜨며 물었다.

“퀼과 솔틉니다.”

두 마족은 마계10군단의 지휘관들이었다.

“칼베리언은?”

“리모스로 들어갔습니다.”

“그랬구나. 이제 군단장으로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퀼, 솔트.”

히데우스는 책상다리를 하고는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했다.

“하명하십시오, 군단장님!”

퀼과 솔트는 3미터가량 물러나 한편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골든 브리지를 부숴라.”

“군단장님!”

두 마족은 깜짝 놀랐다.

골든 브리지는 리모스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 아니라 나오는 출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다리를 무너뜨리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더구나 군단장은 다리 끝에 앉은 채다.

“내가 이곳을 부수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 마계10군단 대원들이 개죽음당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보십니까?”

“천계와 마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선봉에 설 자는 우리 마계10군단밖에 없다. 하지만 리모스로 들어가는 길이 사라지면 전쟁은 늦춰질 것이다. 안으로 들어간 자들은 어떻게든 나올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군단장님!”

“시행하라!”

그아아우우우우!

느닷없이 살기 가득한 울음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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