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54화 (54/225)

# 54

퍽!

방금 세라핌이 있던 자리에서 흙더미가 날렸다.

그리고 검은 동체가 세라핌을 향해 무섭게 쏘아져 갔다. 그건 순식간에 90도로 방향을 틀어 버린 김필도였다.

“헉!”

세라핌은 깜짝 놀라며 검을 휘둘렀다. 부지불식간에 휘두른 검이었지만 세라핌의 검은 강하고 날카로웠다.

김필도가 가까이 오기 전에 그의 검에서는 광자 벌컨이 쏘아져 나갔다.

“강함의 바람 라콰 노콴(Laqwa Noqan)!”

김필도의 왼손이 쭉 뻗어나갔다.

콰아앙!

조금 전보다 더 큰 폭음이 광자 벌컨과 김필도의 왼 주먹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휙!

세라핌과 김필도는 또다시 동시에 물러났다. 세라핌은 조금 전과 같은 5미터가량, 김필도는 15미터 정도 물러났다.

척!

낮은 자세로 내려선 김필도는 다시 광속의 바람 마법을 펼치며 쏘아져 갔다.

천족 마법, 마족 마법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과거 마나의 시대에서 마법의 시기로 넘어갈 때 인간은 검술을 버리고 마법만 받아들여 클래스 마법 체계를 완성시켰지만 천족과 마족은 달랐다.

그들은 검술을 기초로 삼고 그 위에 마법을 접목시켜 마법 검술 형태로 발전시켰다.

즉 검술이 마법이고 마법이 검술인 특이한 형태의 기술을 창안해 낸 것이다. 물론 김필도가 익힌 실전 마법도 마법 검술과 비슷한 부류였다.

다만 천족이나 마족이 검을 주로 사용한다면 김필도는 무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심지어 지금처럼 무기 없이 맨손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도.

“타아!”

이번에 먼저 움직인 쪽은 세라핌이었다.

지금 세라핌은 몹시 당황해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는 김필도를 두 번 보았다. 이야크 평원에서 그리고 리모스 들어오긴 전 골든 브리지 앞에서도 보았다.

세라핌이 평가한 김필도는 보통 인간보다는 약간 강한 정도에 불과했다. 함께 있던 톰벨이나 렉스턴에 비해서도 한참 부족했다.

그랬던 자가 이곳에서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무리 신갑이라고 불리는 헤를리온을 착용했다고 해도 지금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전투기갑은 전사의 전투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도구지, 없는 능력을 부여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나를 다를 줄 모르는 자들은 전투기갑을 착용해 봐야 일반 갑옷을 걸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파앗!

“이야합!”

김필도가 쏘아져 오자 세라핌은 그의 검을 연거푸 세 번 휘둘렀다. 그러자 세 개의 광자 벌컨이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슈아악! 슈아악! 슈아악!

광자 벌컨은 주위를 진공 상태로 만들며 쏘아져 갔다.

“차아아아!”

김필도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오고 오른 주먹과 왼 주먹 그리고 또다시 오른 주먹이 연거푸 공간을 갈랐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연속해서 세 번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둘은 뒤로 물러났다. 세라핌은 여전히 5미터를 물러났다. 그런데 김필도가 물러난 거리도 5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15미터에서 무려 10미터나 단축한 것이었다. 무기가 아닌 맨손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거리의 단축은 곧 유리한 조건을 의미한다.

그만큼 빨리 접근할 수 있고, 사정권 안으로 파고들었을 때 비로소 박투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김필도는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파앗!

김필도의 신형이 질풍처럼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세라핌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김필도가 달려오는 길목을 향해 광자 벌컨을 쏘아댔다. 세라핌이 쏘는 광자 벌컨은 해저에 떠다니는 기뢰처럼 김필도의 길목을 차단했다.

파앗! 파앗! 파앗!

김필도의 신형이 비호처럼 움직였다.

지금 그의 움직임은 예전 다른 조직의 조직원과 싸울 때와 같았다.

야구방망이, 각목, 체인을 피하면서 싸웠던 그에게 직선으로 날아오는 광자 벌컨을 피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물론 김필도가 광자 벌컨을 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라핌이 뒤로 물러나면서 방어를 위한 소극적인 공격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적극적인 공격을 했다면 광자 벌컨을 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엔 세라핌이 실수한 것처럼 보였다.

“차앗!”

김필도는 더욱 빠르게 세라핌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김필도가 막 세라핌 앞에 섰을 때였다.

“타앗!”

외침과 함께 세라핌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가는 세라핌의 얼굴엔 차가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순식간에 30미터 높이로 솟구친 그는 검으로 김필도를 겨냥했다.

슈아악! 쐐애액!

세라핌이 검으로 김필도를 겨냥할 때마다 광자 벌컨이 쏘아져 나왔다.

10개의 광자 벌칸이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그런데 이번에 쏘아낸 광자 벌컨의 속도는 조금 전에 쏘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아가는 속도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세라핌의 공격이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껏 물러나면서 쏘아냈던 수십 개의 광자 벌컨 또한 김필도를 에워싼 채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가고 있었다. 세라핌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기술인 광자 볼케이노였다.

광자 볼케이노는 전부 30개의 광자 벌컨이 동서남북과 하늘까지, 모든 방위를 장악한 채 적을 향해 쏘아져 가는 공격을 말한다.

반구 형태를 이루며 쏘아져 간 벌칸은 한꺼번에 또는 연속적으로 폭발하며 안에 갇힌 자를 가루로 만들어갔다.

물러나면서 펼쳐야 하기에 적을 끌어들이는 게 쉽진 않지만 일단 끌어들이기만 하면 1백 퍼센트 성공을 자랑하는 최강의 기술이었다.

땅속으로 피하면 되지 않느냐는 자들도 있지만 그건 광자 볼케이노를 제대로 몰라서 하는 소리다.

광자 볼케이노의 영향력은 땅속 10미터까지 미쳐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끝났다, 놈!”

세라핌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거졌다.

최강의 공격 기술답게 마나 소모량은 물론이고 정신력도 엄청나게 소모된다.

“그걸 피하면 기꺼이 내 머리를 내주겠다.”

세라핌은 차갑게 말했다.

어느새 30개의 광자 벌칸은 김필도 근처까지 다가가 있었다. 이제 3초 정도만 지나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터였다.

세라핌은 심호흡을 하며 눈에 힘을 주었다.

“땅의 속성 노콴(Noqan)! 하강!”

바로 그때 땅속으로 푹 꺼지는 김필도의 모습이 광자 벌컨 사이로 보였다. 이어 흙더미가 파도처럼 김필도를 감쌌다.

“의미 없는 짓일 뿐이다! 광자 볼케이노의 폭발력은 땅속까지 미친다! 그따위 마법으로는…….”

“혼돈의 바람! 카이 라콰(Kai laqwa)!”

바로 그때 차가운 외침이 흙더미 속에서 들려왔다.

부르르!

세라핌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 외침을 듣는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면서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콰앙! 콰앙! 쾅쾅쾅! 쾅쾅! 쾅쾅!

바로 그때였다.

30개의 광자 벌컨이 폭발하며 엄청난 압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엄청난 폭발의 여파는 30미터 상공에 떠 있는 세라핌의 신형을 밀어 올렸다.

아래쪽에서 밀려 올라온 압력에 의해 몸이 솟구쳐 오르자 세라핌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비로 그 순간이었다.

푸욱!

뭔가 파고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목이 답답해졌다. 세라핌은 숨을 쉬는 걸 방해하는 물체를 찾았다.

바로 아래쪽에 새하얀 광채를 발하는 검신이 눈에 띄었다. 보통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검신의 폭이 좁고, 약간 곡선으로 휘어진 특이한 검이었다.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은 전투기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세라핌은 고개를 들었다.

“너……?”

목 안으로 파고들어 간 검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바로 앞에는 푸른색 광채를 발하는 눈과 해골 비슷한 모양의 투구를 쓴 자가 이편을 바라고 있었다. 조금 전 광자 볼케이노에 의해 가루로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놈이었다.

“어떻게……!”

세라핌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법이 풀린 둘은 빠르게 지면으로 내려섰다.

푸욱! 푸욱!

김필도와 세라핌의 발은 발목까지 땅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이동 마법이야.”

김필도는 낮게 말했다.

사실 조금 전은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방어를 위한 소극적인 공격으로 보였고, 설마 쉽게 피했던 그 광자 벌컨들이 함정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전후좌우 그리고 하늘에서 유성처럼 쏘아져 오는 광자 벌컨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마법을 펼쳤다.

그러다가 문득 땅속으로 숨는 것 또한 세라핌의 계산에 들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땅 쪽을 비워둘 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 가장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이동 마법.

이동 마법의 매개체는 머리 위를 둘러싸고 있는 흙이었다. 세라핌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이미 계산해 둔 상태였다.

“이동 마법?”

세라핌은 멍한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그가 펼친 광자 볼케이노는 이동 마법에 대해서도 대비가 돼 있다. 광자 볼케이노는 강한 마나 역장을 형성하기 때문에 반구 안에서는 마법을 펼칠 수가 없다.

그런데 녀석은 마법을 펼쳤다고 한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너희에게 쥐약인 마법을 내가 익혔거든.”

김필도는 손목을 양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세라핌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점차 많아졌다.

전에 세이아칸이 김필도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세라핌의 목에 뚫린 구멍을 넓혔다.

“쥐약인 마법이라고?”

슈캉!

김필도는 빠르게 설풍을 뽑았다. 그러고는 점프를 하며 그 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스악!

설풍은 빠르게 세라핌의 목을 통과해 지나갔다.

“실전 마법이야.”

김필도는 설풍을 허리춤의 도집으로 밀어 넣었다.

철컥!

나직한 소리와 함께 설풍이 모습을 감췄다.

쿵!

털썩!

먼저 세라핌의 머리가 떨어지고 중심이 무너진 동체가 풀썩 쓰러졌다.

그아아우우!

어둠 속에서 시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멀었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야.”

김필도는 설풍을 빼 놓은 헤를리온을 해제했다. 그러고는 모닥불 앞으로 다가앉았다.

모닥불은 숯만 남아 있었다. 장작을 몇 개 집어넣고 잠시 기다리자 불꽃이 올라왔다. 무쇠 판이 달궈질 동안 아공간에서 채소 몇 가지를 꺼냈다.

아공간은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장소다. 아니 느린 정도가 아니라 거의 흐르지 않는다고 해야 옳다.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장소의 가장 큰 이점은 신선 식품의 보관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아스파라거스와 부로콜리, 양상추, 피망은 집어넣을 당시 상태 그대로였다.

채소를 한편으로 치워놓고, 올리브 오일을 꺼내 무쇠 판 한편에 조금 둘렀다.

무쇠 판이 본격적으로 달궈지는 듯 열기가 올라왔다. 내려놓았던 고기를 다시 올려 굽고, 기름을 두른 곳에는 아스파라거스와 부로콜리를 얹었다. 그런 다음 커다란 볼에 물을 부었다. 절반가량 물을 채운 후 오른손을 조금 담갔다.

“심연의 차가움, 쿠라(Kura)!”

그의 입에서 낮은 외침이 흘러나왔다.

쩌엉!

볼 안에 들어 있던 물이 순식간에 얼음으로 변했다.

김필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아이스픽을 이용해서 얼음을 깼다. 얼음을 잘게 부수고 다시 물을 채운 다음 양상추를 먹기 좋은 크기로 뜯어서 집어넣었다.

캬!

바로 그때 옆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하면 채소가 아삭아삭하거든.”

캬아!

“풀을 왜 먹냐고?”

크!

“건강을 위해 먹는 거야.”

그아우!

“어디 아프냐고?”

크!

“난 아주 건강해.”

캬아!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일단 먹어 봐.”

김필도는 양상추 하나를 시아나에게 건네주고는 무쇠 판 위에 있는 음식들을 뒤집었다.

“퉤!”

양상추를 씹던 시아나는 맹맹한 맛을 견디지 못하고 뱉어 버렸다.

“하하하! 자식. 조금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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