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65화 (65/225)

# 65

슉! 슉! 슉! 슉슉슉! 슉슉슉!

턱! 턱턱턱! 턱턱턱!

확! 화르르!

바닥에 뿌려진 기름 때문인 듯 불길은 거칠게 타올랐다. 죄수들은 김필도를 돌아보았다.

“분위기 죽이지?”

김필도는 펠톤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저, 저들을 죽일 참입니까?”

펠톤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지켜보면 알게 될 거야. 똥자루!”

김필도는 데푸시를 불렀다.

“한 번만 더 똥자루라고 부르면 네 목에 이걸 꽂아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데푸시는 검으로 김필도를 가리키며 으르렁댔다.

“땅꼬마와 똥자루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폭풍의 데푸시는 안 되겠냐?”

“폭풍은 내 이야크 안장 이름이야. 그러니까 꿈 깨셔.”

“씨팔놈!”

“계속 똥자루라고 할까?”

“땅꼬마로 해, 새꺄!”

“알았어, 그렇게 부를게. 그리고 불이 나면 타 죽는 것보다 연기에 질식해 죽는 게 더 많아, 땅꼬마.”

“뭐하고 있어, 새끼들아!”

데푸시는 죄수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펠톤 단장님, 살려 주십시오.”

포위돼 있던 죄수들은 펠톤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난 차원 수리공의 단장이 아니다. 지금 단장은 대공 전하시다. 애원을 하고 싶으면 대공 전하께 해라.”

“저희들은 펠톤 단장님의 명령을 받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단장님!”

“잔말 말고 죽어, 개자식아!”

스악!

“크악!”

스악!

“아악!”

열두 명의 죄수들은 하나둘 숨이 끊어졌다.

“끝났다.”

데푸시는 김필도를 보며 말했다.

“말끝에 항상 ‘습니다.’를 붙이는 습관을 들여라, 땅꼬마.”

“난 나이가 381살이다, 놈!”

데푸시는 김필도를 쏘아보았다.

“비서실장!”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

헤르만은 김필도 앞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시체를 먼저 내보내고, 무기는 검집에 집어넣은 채로 천천히 나가도록 해. 나가는 순서는 죄수들이 먼저고 그 다음에 기갑기사들이야.”

“알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숙인 헤르만은 조원들에게 시체를 들고 나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죄수들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너희 둘은 남아.”

김필도는 데푸시와 이프리스를 가리켰다.

“불 들어오고 있는 거 안 보여?”

데푸시는 창문을 가리켰다.

“그래서 남으라는 거야. 오픈(Open)!”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술 한 병과 잔 세 개를 꺼냈다.

“앉자!”

그러고는 테이블로 가 앉았다.

“너 미쳤냐?”

데푸시는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밖에서 시작한 불길은 벽을 태우며 넘실넘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타다닥! 탁탁! 탁탁탁!

나무가 타면서 나는 소리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우린 여기서 빅 브라더를 정하는 거야, 똥자루.”

“빅 브라더?”

데푸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빅 브라더. 나이와 신분에 상관없이 서열을 정하자는 소리다.

“그러니까 우리 셋이 서열을 정하자는 거냐?”

데푸시는 확인 차 물었다.

“날 큰형님이고 부르라고 하면 절대 안 할 거잖아.”

“드워프의 체면이 있는데, 그건 죽어도 못하지.”

데푸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서열을 정하자는 거야.”

“술 마시는 걸로 서열을 정하자는 거냐?”

데푸시는 김필도가 내려놓은 술병을 보며 물었다.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고.”

“그럼?”

“어른은 이런 걸로 노는 거잖아.”

김필도는 열린 아공간에서 이나함의 검을 꺼내 전면으로 던졌다.

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가 던진 검은 10여 미터 떨어진 기둥 중간 부분에 박혔다. 기둥은 어른 허리 두께 정도로 사각형 형태였다.

“무슨 뜻이냐?”

데푸시는 김필도를 빤히 보았다.

“던져!”

“그럼 나는 너보다 위다.”

데푸시는 그의 검을 던졌다.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던 검은 김필도 검보다 2미터가량 높은 곳에 박혔다.

“나도 던져야겠네.”

보고 있던 이프리스가 도끼를 던졌다.

턱!

그의 도끼가 박힌 곳은 데푸시의 검과 김필도 검 사이였다.

“이제 한잔해야지?”

김필도는 술병을 들어 올렸다.

“무슨 술이냐?”

이프리스가 물었다.

그의 시선은 조금 전부터 김필도가 내려놓은 술병으로 가 있었다. 술병의 모습이 눈에 익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신의 눈물.”

김필도는 병마개를 땄다.

“……?”

이프리스는 멍한 얼굴로 술병을 바라보았다.

이름을 듣자 바로 떠올랐다. 엘프의 역사를 기록한 기록관에서 보았던 그 술이다. 그를 엘프 사회에서 추방당하게 만들었던 그 빌어먹을 술.

어렸을 때 기록관에 있던 그 술을 훔쳐 먹지 않았더라면, 아니 훔쳐 먹은 사실을 들키지 않았더라면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진짜?”

이프리스는 확인하듯 물었다.

“알면서 묻는 거냐, 아니면 모르고 묻는 거냐?”

“씨팔! 그 거지 발싸개 같은 술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됐는데 그걸 모르겠냐? 3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 맛도 기억하고 있어.”

“그럼 한잔 해.”

김필도는 이프리스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염병할 냄새도 똑같네.”

이프리스는 멍한 얼굴로 김필도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 술은 엘프 기록관에 단 한 병 보관돼 있었다. 원래 신의 눈물이란 술을 만든 종족은 엘프였고, 엘프 중에서도 이프리스가 태어난 부족이었다. 하지만 신의 눈물을 만드는 기술은 아주 오래 전에 잊혔다.

기록관에 보관된 술은 수많은 세월 동안 그의 부족이 보관해 왔던 것이다.

같잖지도 않은 술병을 신 모시듯 하는 어른들의 행태에 공연히 뒤틀려 그 술을 마셔 버렸다. 그리고 삶이 바뀌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신의 눈물을 대공이란 자식은 아무렇지 않게 마개를 따고 잔에 따르고 있다. 굳이 마시지 않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녀석이 따르고 있는 신의 눈물이 진품이라는 것을.

“멀대 네가 간직한 그 빌어먹을 사연과 함께 확 마셔버리는 거야.”

김필도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완전히 잊었는데…….”

이프리스는 김필도를 노려보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저거 안 보여?”

데푸시는 천장을 가리켰다.

화르르! 탁탁! 탁탁탁!

데푸시의 손끝이 가리키는 천장에는 불길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주위는 온통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 술병이 비워진 순간 기둥을 향해 달려가는 거야, 똥자루!”

김필도는 히죽 웃으며 이프리스와 자기 잔에 술을 채웠다.

“겁나면 지금이라도 나가, 인마. 그리고 날 형님이라고 불러.”

이프리스는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이죽댔다.

“지랄하고 있네, 새끼.”

겁먹듯 있던 데푸시가 정색한 얼굴로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그와 이프리스는 381살로 나이가 같았다. 그 때문에 누가 형님인지를 두고 늘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키가 작아 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데 형님 자리까지 양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투투툭! 툭툭! 툭툭툭!

하지만 주변 여건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불길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천장에서는 불똥이 떨어지고 있다.

데푸시는 급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김필도를 보았다.

“그동안 뭐한 거냐?”

불안감을 감추고 싶어 꺼낸 말이었다.

“드래곤도 만나고, 마족도 만나고, 천족도 만나고, 싸움도 하고… 이곳저곳 헤매고 다녔다.”

김필도는 술잔을 채웠다.

단 8개월.

그 짧은 시간동안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이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 아니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마치 긴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원히 깨지 못하는 꿈을 꾸는지도 모른다. 멈춰선 휴대전화나 시계처럼.

‘그럼 또 어때? 난 지금이 더 좋은데.’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조폭 김필도가 대공 김필도로 바뀌었고, 천족이나 마족 앞에서 침을 뱉을 수 있다. 그거면 넘치고 넘친다.

김필도는 빙긋 웃는다.

“그건 싸우다 찢긴 거구나.”

381살을 거저먹은 건 아니었다. 데푸시는 김필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검이 파고들었으니까.”

김필도는 왼편 가슴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투두둑! 퍼억!

그때 불길에 휩싸인 나무가 테이블 바로 옆으로 떨어졌다.

탁탁탁! 탁탁! 화르르!

안정을 되찾았던 데푸시는 다시 동요했다.

심장을 찔렸다는 녀석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그걸 물어볼 참이었다. 하지만 불길에 휩싸인 천장을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불길은 모닥불에 불과했다.

여기저기서 불이 붙은 나무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것들은 단순한 나뭇조각이 아니라 커다란 통나무들이다. 급기야 건물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가자!”

데푸시는 불안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 있어 숨은 물론이고 열기도 어느 정도는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불타는 천장이 무너지면 그랜드 마스터라고 해도 배겨나질 못한다.

“나가는 건 자유야, 똥자루.”

김필도는 출입문을 가리켰다.

“…이익! 술이나 따라, 자식아.”

데푸시는 김필도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후드득! 화르르!

퍽! 퍽퍽! 퍽!

연기는 점점 거세지고 위에서 떨어지는 불덩어리도 늘어났다. 그러나 셋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새 술병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잔을 비우면 한바탕 칼춤을 추는 거네?”

데푸시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우리 건배할까?”

김필도는 술잔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는 빈 술병을 들었다.

“그걸로 내 머리를 치진 않겠지?”

데푸시는 김필도의 오른손을 보았다.

“이 술병 얼마나 나갈 것 같냐?”

“상상을 초월하겠지.”

“네 머리보단 훨씬 비쌀걸?”

“그렇겠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데푸시는 급하게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술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이프리스를 향해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그의 주먹이 정확하게 이프리스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커억!”

이프리스가 벌러덩 넘어갔다.

“내 다리가 가장 짧으니까 먼저 가야겠…….”

퍽!

벌떡 일어난 데푸시의 머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필도가 들고 있던 술병으로 데푸시의 머리를 갈겨 버린 것이었다.

데푸시의 머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너 이 새…….”

쿠웅!

데푸시의 신형이 이프리스처럼 벌러덩 넘어갔다.

“난 술병보다 동생이 더 필요해!”

김필도는 깨진 병 조각 사이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집어 들고는 불빛에 비춰 보았다.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였다.

“내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을 조금 알거든.”

“너 이 개새…….”

“맷집도 좋네, 자식.”

김필도는 다이아몬드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검이 꽂힌 기둥을 향해 내달렸다.

파앗!

기둥을 향해 달려가는 이는 김필도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일어난 이프리스가 빠른 속도로 쏘아져 가고 있었다. 이프리스 또한 데푸시와 마찬가지로 그랜드 마스터 수준에 이른 검사였다.

김필도와 이프리스는 거의 동시에 기둥 앞에 섰다.

김필도는 검을 뽑자마자 이프리스를 향해 휘둘렀다.

“헉!”

이프리스는 질겁하며 곧바로 몸을 굴렸다.

스악!

하지만 약간 늦은 듯 그의 어깨에서 피가 확 번졌다.

“썅!”

이프리스의 눈에서 싸늘한 광채가 쭉 튀어나왔다. 설마 김필도가 몸을 상하게 할 정도로 검을 휘두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프리스는 반쯤 일어난 상태에서 김필도의 다리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휘두르는 도끼날에는 새파란 광채가 일렁였다. 그것은 도끼날을 통해 구현되는 오라 블레이드였다.

휙!

김필도는 앞으로 몸을 굴리며 이프리스의 도끼를 피했다.

“이런 씨바것들이 날 쳤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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