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66화 (66/225)

# 66

그제야 몸을 일으킨 데푸시가 검이 꽂힌 곳으로 쏘아져 갔다. 셋 중 키는 가장 작았지만 속도는 가장 빨랐다.

“씨팔!”

기둥을 향해 쏘아져 가는 데푸시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검이 꽂힌 곳은 너무 높았다.

키는 1미터 45센티미터에 불과하지만 점프를 하면 얼마든지 뽑아낼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를 향해 검과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김필도와 이프리스가 가만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검을 뽑아들고 내려서는 순간 허점이 노출되고 말 터였다.

“그럴 순 없지!”

데푸시는 점프를 포기하고 기둥을 지나쳐 갔다.

차앙!

김필도와 이프리스는 서로를 향해 검과 도끼를 휘둘렀다. 서열을 가리는 싸움이라고 해서 봐주는 건 없었다. 김필도는 마법을 펼쳤고, 이프리스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퍼억! 퍼억!

두 무기가 부딪치면서 터져 나간 반발력에 의해 바닥이 푹푹 꺼지고 불길이 밀려났다.

“그래 썅! 한번 뒈져보자!”

김필도와 이프리스를 노려보던 데푸시가 기둥을 향해 돌진했다. 데푸시의 얼굴은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작은 키가 늘 콤플렉스였다. 그런데 이프리스와 김필도가 자신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둘만의 싸움에 몰두하자 자존심이 극도로 상했다.

콰앙!

데푸시의 어깨가 기둥을 강타했다.

퍼억!

천장을 받치고 있던 커다란 기둥이 중간에서 우지끈 부러졌다.

후드득!

사방에 불타는 나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천장은 무너지지 않았다. 아직 네 개의 기둥이 버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은 기둥들 또한 불길에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퉤!

데푸시는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검을 그러쥐며 이프리스와 김필도를 보았다. 둘은 기둥 하나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차아앙!

휘익!

또 한 번의 충돌과 함께 둘의 신형이 처음 있던 자리에서 10여 미터를 물러났다.

파앗! 파앗!

하지만 물러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대방을 향해 돌진했다.

“나도 간다, 개자식들아!”

데푸시는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세 명은 한가운데에 엄청난 보물을 두고 달려가는 보물 사냥꾼처럼 미친 듯이 몸을 날렸다.

먼저 부딪친 쪽은 지금껏 싸우던 이프리스와 김필도였다. 김필도의 검에서는 주위 불길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오고, 이프리스의 검에서는 거친 칼바람이 쏘아져 나왔다.

콰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과 도끼가 튕겨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김필도와 이프리스는 튕겨져 나온 검과 도끼를 상대방이 아닌 막 다가온 데푸시를 향해 휘둘렀다.

“차앗!”

데푸시는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김필도의 검을 막아내고, 이프리스의 도끼를 쳐냈다.

“타앗!”

김필도는 데푸시의 검과 부딪쳐 튕겨져 나온 검을 그대로 이프리스를 향해 찔러 넣었다. 바로 그 순간 데푸시는 김필도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이프리스는 데푸시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휙! 휙휙!

세 명은 동시에 몸을 굴려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무기를 피했다.

파앗!

그리고 몸을 굴렸던 것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 공격을 감행했다.

후두득!

쿠웅! 쿠웅! 쿵쿵! 쿵!

건물이 무너지려는 듯 불붙은 커다란 통나무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김필도의 머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왼편에는 기둥이 있어 김필도가 피할 공간은 오른편밖에 없었다.

“타앗!”

“차앗!”

이프리스와 데푸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둘은 김필도가 피할 공간인 오른편으로 쏘아져 갔다.

‘강철의 굴강, 노콴!’

김필도는 내심 소리치며 떨어지는 통나무를 향해 오른발을 내질렀다. 그의 다리는 노콴 마법으로 강철보다 더 단단해졌다.

퍼억!

불이 붙은 통나무가 오른편을 향해 쏘아졌다. 데푸시와 이프리스가 달려오는 곳이었다.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슈아악!

김필도의 신형이 통나무를 쫓아 쏘아져 갔다.

“헉!

이프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 데푸시보다 1미터가량 앞서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통나무에 이어 김필도가 가공할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통나무를 잘라내는 순간을 노리고 오는 게 뻔했다.

‘일단은…….’

이프리스는 급하게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고는 곧장 데푸시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야! 이 미친…….”

데푸시는 질겁한 얼굴로 검을 들어 올렸다. 이프리스가 방향을 바꿔 공격을 해 올 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콰앙!

검과 도끼가 부딪치며 강한 반발력이 주변을 강타했다.

“그러면 저 자식에게 우리가 당…….”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끈한 열기가 측면에서 느껴졌다. 벌겋게 불길이 올라 있는 통나무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검의 방향을 틀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프리스가 도끼를 틀지 않는데 먼저 검의 방향을 틀 수는 없었다.

“개자식!”

이프리스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몸에 힘을 잔뜩 주었다.

퍼억!

“커억! 저런 개새끼!”

데푸시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단순히 불붙은 통나무가 아니었다. 마치 커다란 쇠기둥에 부딪친 것처럼 엄청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 더불어 날개가 달려 있지도 않은데 몸이 훨훨 날아갔다.

“크윽! 썅!”

순서는 달랐지만 이프리스도 다르지 않았다. 이프리스는 욕설을 남기고 훨훨 날아갔다.

휘이익!

천장의 보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다.

“타앗!”

김필도는 우렁차게 소리치며 바닥을 박차고 올랐다. 순식간에 5미터를 날아올라 간 그는 떨어지는 기둥을 향해 발을 내질렀다.

슈아악!

10여 미터 길이의 보는 넘실넘실 불꽃을 피워 올리며 이프리스를 향해 덮쳐들었다.

파앗!

그리고 김필도는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곧바로 데푸시를 향해 쏘아져 갔다.

퍼억!

자세를 잡기도 전에 10여 미터 길이의 보가 이프리스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이어 김필도의 무릎이 데푸시의 턱에 꽂혔다.

“아악!”

“크아악!”

우르릉!

그리고 세 명의 머리 위로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제8장 일은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

후드득! 화르르.

50여 년 동안 바싹 마른 나무 건물은 무섭게 타올랐다. 마치 불의 정령 샐러맨더가 재림한 듯한 광경이었다.

무려 50년 동안 비긴 마을과 함께했던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세 명이 나오지 않았지만 오디안은 건물을 바라볼 경황이 없었다. 그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은 펠톤이 고삐를 쥐고 있는 검은 이야크의 안장이었다.

‘어떻게…….’

오디안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주군의 가문이었던 헤라칸 가문의 두 신물 중의 하나인 슈라였다. 이곳 문 대륙으로 떠났던 가주가 가지고 갔던 그 안장이 2백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격동에 몸을 떨었던 것도 잠시, 오디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펠톤은 불의 가문인 헬모트 가문의 자식이다. 불의 가문의 자식인 그가 슈라의 주인이란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르릉! 쿠웅! 쿵쿵

퍼억! 퍽퍽퍽!

급기야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

“저런!”

“아직 못 나왔는데…….”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놈!”

펠톤은 차가운 눈으로 풀썩 주저앉은 여관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고 해도 저 속에서 살아온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물며 대공 놈이야.

‘끝났다, 놈… 응?’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자 펠톤은 고개를 돌렸다. 오디안이 이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원하는 대로 해 주었소이다, 촌장.”

아직도 뭔가가 부족하여 쳐다보는 걸로 착각한 펠톤이 말했다.

“그 이야크, 자작 거요?”

오디안은 검은 이야크를 가리켰다.

“내 이야크가 맞는데, 왜 그러시오?”

“그럼 저 이야크에 얹혀 있는 안장에 대해서도 아시오?”

“안장?”

펠톤이 검은 이야크를 얻은 장소는 골든 브리지 앞 벌판에서였다. 이야크는 벌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녀석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많이 이야크를 보았고 타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만큼 엄청난 이야크는 처음이었다.

갖고 싶었다. 야생이면 잡아 길을 들이고 주인이 있으면 살 작정이었다.

잡을 준비를 하고 기사들과 다가갔다. 그런데 녀석의 등에 안장에 얹혀 있었다. 누군가 주인이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벌판을 둘러보아도 이야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격렬하게 싸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주인이 죽고 낙오한 이야크일 가능성이 컸다.

진정하라는 말과 함께 녀석 곁으로 다가갔다. 뜻밖에도 이야크는 반항하지 않았다. 이야크를 다독이면서 재빨리 등에 올랐다.

녀석이 발광한 것은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녀석이 날뛰기 시작하였고, 결국 아래로 떨어졌다.

녀석의 등에서 두어 번 떨어지고 난 후 나중에 다시 훈련시키기로 하고 재갈을 채워 이곳까지 끌고 왔다. 올라탔을 때와는 달리 녀석은 얌전하게 따라왔다.

비록 타지는 못했지만 안장은 대충 살폈다. 안장은 명품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급스러웠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런데 오디안이 안장을 언급한 것이다.

“자작 이야크가 아니구려.”

오디안은 이야크의 주인이 펠톤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그게…….”

“나온다!”

“대공 전하께서 나오신다!”

그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펠톤의 입을 막았다.

펠톤과 오디안은 시선을 돌렸다. 불타는 나무가 들썩이더니 곧 김필도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양쪽 옆구리에는 데푸시와 이프리스가 끼워져 있었다.

“……?”

펠톤은 고개를 갸웃했다.

30분가량 흘렀을 뿐이다. 그런데 데푸시와 이프리스가 기절한 채로 들려나온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디안은 달랐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마나 파동으로 인해 싸움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놀란 얼굴로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베르탄과 헤르만이 김필도 옆으로 다가가 이프리스와 데푸시를 받아들었다.

“연기 때문에 기절했어. 찬물을 끼얹으면 금세 깨어날 거야.”

“일어났어, 자식아.”

“나도!”

데푸시와 이프리스가 각자 부축한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슈캉! 슈캉!

김필도의 엉덩이 쪽에서 도 뽑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설풍과 단도는 어느새 데푸시와 이프리스의 목 앞에 닿아 차가운 광채를 뿌렸다.

“무슨 짓이냐?”

“뭐냐?”

데푸시와 이프리스는 김필도를 보았다.

“기억 안 나?”

김필도는 데푸시와 이프리스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무슨 약속?”

데푸시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술 마시기 전에 했던 약속.”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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