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김필도는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 오디안에게 건넸다.
“이건 뭡니까?”
“신의 눈물 안에 들어 있는 신의 물방울이오. 그걸 상인들에게 팔면 죽은 자들에게 약간의 보상금을 줄 수 있을 거요.”
“약간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금액이 되겠군요. 이건 돈으로 바꿔서 유족들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디안은 다이아몬드를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녀왔습니다, 형님!”
그때 술을 가지러 갔던 이프리스가 돌아왔다.
“술은 구했어?”
“마을 광장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얘들 데리고 거기로 가.”
“알겠습니다, 형님!”
이프리스는 고개를 숙이고는 죄수들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너희들도 대원들을 데리고 공터로 가.”
김필도는 펠톤과 올가를 보며 말했다.
“아, 알았소.”
“알았어요.”
펠톤과 올가는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기갑기사와 마법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기사와 마법사들은 곧 자리를 떴다.
“저 건물은 어떻게 할 거요?”
김필도는 아직 불타고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너무 오래돼서 다시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때문에 불태운 게 아니라 어차피 없애려고 했던 건물이란 뜻?”
“안에 있던 술은 물론이고 의자와 테이블은 아직 쓸 만합니다.”
“아무튼 떡 본 김에 제사까지 지낸 셈이네.”
“그런데…….”
오디안은 블랙칸의 안장에 걸려 있는 이야크 창을 보았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소?”
헤라칸 가문에 대한 말이었다. 아마도 오디안이 이곳으로 건너온 것은 50년 전일 것이다. 아무탄 코니엘 헤라칸이 신성의 장소 안으로 들어간 후 기다리다 지쳐 그곳을 떠났을 것이다.
“미련보다는 집착이겠지요. 슈라와 라콰는 어디서 얻었습니까?”
“내가 얻은 게 아니고 샤일록이라는 상인이 내게 준 거요.”
“할먼 상단의 상단주 샤일록 말입니까?”
“아는 모양이오?”
“우리 마을에 물건을 대주고 있습니다.”
“샤일록은 슈라와 라콰가 헤라칸 가문의 물건이라는 걸 몰랐던 모양이네.”
“헤라칸 가문에서도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하긴. 참! 그 사람도 보았소.”
“그 사람이라면?”
“아무탄 가주 말이오.”
“저, 정말 가주님을 보셨단 말입니까?”
오디안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살아 있었던 건 아니고 죽은 상태였소.”
“혹시…….”
“신성의 장소 무덤 안이었소.”
“결국 마신의 무덤에 꿈과 함께 묻히셨군요.”
오디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마신의 무덤에서 나오지 못하면 넌 네 삶을 살거라, 오디안.”
“가주님은 반드시 성공하실 겁니다.”
“그동안 고마웠다.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가주님!”
가주와 만남은 그게 끝이었다. 신성의 장소 입구에 서 있는 바위 아래쪽 동굴에서 가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가주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오늘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무덤을 지키는 가디언이 있었는데 그걸 생각 못했다고 적혀 있었소.”
“유언을 남기셨습니까?”
“다 남기기도 전에 당한 모양이오.”
“그랬군요. 그런데…….”
“무덤은 만들어 드렸소.”
“감사합니다, 전하.”
“죽은 사람에 대해 예의를 지킨 것뿐이오.”
“그럼 대공께서는 바람의 가문인 헤라칸 가문의 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슈라와 라콰의 주인이 되셨고, 마지막 가주이신 아무탄 가주님의 임종을 지키셨군요.”
“죽어 있는 시체를 봤을 뿐 임종을 지킨 건 아니오.”
“그리고 헤라칸 가문의 제일 가신이었던 토바하크 가문의 가주를 만났고요.”
“인연이란 말?”
김필도는 오디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런 인연도 없을 거란 말입니다.”
“하지만 우린 서로가 개털이오. 오디안도 봤겠지만 난 자작 놈에게도 개무시당하는 그림자 대공일 뿐이고.”
“모든 가문은 다 개털에서 시작합니다, 전하.”
“그 개털은 현 권력의 방해를 받지는 않지.”
“물론 발탄 제국에서 아이작 프리우스 가문을 세우려고 하면 그렇겠지요.”
“그러면?”
“대공 전하께서 새로 시작할 곳은 바로 이곳 문 대륙입니다.”
“여기서 시작하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문 대륙의 인구가 몇 명이오?”
“총 5천 명 남짓입니다.”
“그럼 나머진?”
“선, 로즈, 블리스, 홀리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혹시 남작 령의 인구가 어느 정도인지 기억하고 있소?”
“2만에서 3만가량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5천 명으로 시작을 하라고? 그것도 내 밑으로 들어올지 들어오지 않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자들을 데리고?”
“농사지을 땅만 있으면 사람은 금세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차원의 벽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휴도니아 대륙과 이곳의 통로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바다를 건너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네.”
“해 보시겠습니까?”
“제안은 고맙지만 일단 황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하오.”
“영지를 받기로 했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잖소.”
“대공에게 하사할 영지라면 왕국 급입니다. 왕국 급의 최소 인구는 1백만 명 정도는 돼야 하고요. 그 정도 영지를 줄 거라고 보십니까. 아니 그런 영지가 휴도니아 대륙에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그건 내가 아니라 황제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잖소. 뭔가 방법이 있으니까 준다고 했겠지.”
“그 말을 믿습니까?”
오디안의 얼굴에 슬쩍 실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김필도가 황제의 말을 믿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이 아닌 걸로 판단했다. 그런데 그 판단이 빗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아니오.”
“그럼 뭐가 문젭니까?”
“그 일이 불법적이냐 합법적이냐 하는 게 중요한 거요.”
“그게 무슨…….”
“모든 일은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오. 그래야 짭새들에게 아니 황제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소.”
김필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제9장 강함에도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김필도는 비긴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하만티움 광산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하만티움 광산은 찾아내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광산을 개발하고, 채굴 장비를 설치하고, 광산까지 가는 길을 만들고, 지도를 그려야 한다. 그리고 광산 주위가 몬스터 서식지로 변하는 걸 막기 위한 마법 결계까지 쳐야 비로소 작업이 마무리된다.
베이스캠프를 차린 장소는 마을 공터였다.
김필도는 이른 아침 각 조 조장을 상황실로 불러들였다. 상황실은 공터 중앙에 세운 가장 큰 천막이었다.
조장들이 들어오자 김필도는 손수 끓인 카판을 한 잔씩 따라 주었다.
“먼저 임무 파악을 하고 싶어.”
김필도는 펠톤을 보았다.
“광산 업무는 다섯 가지 일이 주어지오.”
“결론만 간단하게.”
“데푸시가 조장으로 있는 5조는 광산 개발 임무를 수행하고, 베르탄이 조장으로 있는 3조는 채굴 장비 설치, 헤르만이 이끄는 4조는 주변 정리, 이프리스가 조장인 6조는 광산까지 가는 길을 만들고, 기갑기사들은 경계를 서고, 마법사들은 몬스터 서식지로 변하는 걸 막기 위한 결계를 치게 되오.”
“지도는 누가 그리지?”
“내가 그리오.”
“결계 설치는 얼마나 걸리지?”
김필도는 올가를 보았다. 모든 일의 마무리는 그녀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마법 결계를 쳐야 끝나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면 설치 가능해요.”
“그럼 한 달로 잡고 있으면 되겠네. 그건 그렇고 이곳에서 발탄 제국으로 직접 연락하는 게 가능해?”
“불가능합니다.”
“그렇겠지. 알았어. 차 다 마셨으면 일들 하자고.”
김필도는 찻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장은 안 갈 거요?”
펠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왜 그런 말 있잖아. 일이 잘되길 바라면 대장은 가급적 현장에 가지 않아야 한다는 말 말이야. 난 이곳에 있을 거야.”
“그럼 내가 인솔해서…….”
“아니지. 내가 작업장으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건 작업에 방해가 됐으면 됐지 도움 되는 일이 전혀 없어서야. 너도 마찬가지야. 다른 조가 일하는 건 신경 쓰지 말고 네 일이나 해.”
“알겠소, 그럼.”
펠톤은 찬바람이 나도록 몸을 돌려 천막을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각 조 조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데푸시, 넌 나 좀 보고 가.”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데푸시는 김필도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목걸이 만들어 본 적 있어?
“목걸이야 젊었을 때 수없이 만들었죠.”
“그럼 이걸로 목걸이 하나만 만들어 줘.”
김필도는 주머니에서 다이아몬드 다섯 개를 꺼내 내밀었다.
“누가 찰 겁니까?”
“오드.”
“오드요?”
“오른 눈은 초록색이고 왼눈은 하늘색이야. 키는 2미터 정도고, 목둘레는 33센티미터쯤 될 거야.”
“지금 초록색과 하늘색이라고 하셨습니까?”
“하이 오드인 건 나도 알아.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 말해.”
“무, 물론 가능합니다.”
“덜렁거리지 않게 해 줘.”
“최고의 솜씨를 발휘해보겠습니다.”
“수고해.”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데푸시는 인사를 하고 천막을 나갔다.
김필도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카판 잔을 한편으로 모았다. 카판을 남긴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정도면 장사 좀 되겠네.”
김필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씩 웃었다.
“나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가?”
천막 입구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는 고개를 들었다.
2미터 5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구가 천막 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었다. 그는 비긴 마을의 손님인 마족 알리토였다.
“들어오세요.”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카판 내릴 준비를 했다.
자리에 앉은 알리토는 카판을 준비하는 김필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족을 많이 만나긴 했는데 아직 얼굴을 구분하는 건 쉽지가 않네요.”
김필도는 웃으며 말했다.
외국인을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처럼 보이듯 마족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검은 피부색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어떤 마족을 만났는가?”
“마족은 마계10군단을, 천족은 대천신군 대원들을 만났지요.”
“마, 마계10군단이 이곳에 왔단 말인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알리토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아세요?”
김필도는 내린 카판을 카판 잔에 따르며 물었다.
“4천 년 동안 몸담았던 조직인데 모를 리가 없지 않겠는가?”
“마계10군단 대원이었군요?”
김필도는 찻잔을 알리토 앞으로 놓았다.
“대원이 아니라 검술 선생이었네.”
“그런데 어쩌다가…….”
김필도는 자리에 앉으며 알리토를 보았다.
“공명심 때문이었네. 마계10군단 부군단장 자리에 오를 마족은 나밖에 없다는 턱도 없는 자신감 말이네.”
“그리고 군단장 꿈도 꾸었겠군요.”
“당연히 그랬지. 히데우스 군단장은 연로하셨으니까.”
“그런데 작은 계집애에게 맞아서 코피가 터진 거로군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