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70화 (70/225)

# 70

“죽을 맛이네.”

김필도는 천천히 걸어보았다.

무게가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몸 전체로 분산돼 좀 낫기는 했지만 적응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듯했다.

“대검술을 배우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김필도는 알리토를 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20일 정도면 적응할 겁니다.”

김필도는 빙그레 웃으며 모래주머니를 찬 팔을 보았다. 팔뚝과 어깨에는 검은 마법진이 강한 광채를 뿌려대고 있었다. 이 두 곳뿐만 아니라 거의 온몸에 검은 마법진이 솟아나와 활동을 시작했을 것이다.

“여기 등산 코스 있어요?”

김필도는 알리토를 보며 물었다.

“등산 코스?”

“좀 뛰어볼까 하고요.”

김필도는 싱긋 미소를 머금었다.

“지금 자네가 총 몇 킬로그램 나가는지 아는가?”

“몸무게 150킬로그램, 모래주머니 60킬로그램, 헬칸이 40킬로그램이니까 총 250킬로그램이네요.”

“그 상태로 뛰겠단 말인가?”

“그래야 적응 속도가 빨라지거든요.”

김필도는 로브와 방탄조끼를 벗고 셔츠도 벗었다. 그러자 상체가 드러났다. 그의 몸에는 수십 개의 마법진이 새카만 광채를 뿌려대고 있었다.

“익숙해져야겠지.”

익숙해지는 것은 강해지는 것이다.

김필도는 그 말을 곱씹었다.

* * *

김필도의 예상대로였다.

그가 늘어난 몸무게에 익숙해진 것은 20일 후였다. 그는 20일 동안 단 한 번도 헬칸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하루에 60킬로미터 가까이를 달렸다.

물론 첫날부터 60킬로미터를 달린 건 아니었다. 첫날은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면서 간신히 5킬로미터를 갔고, 다음 날은 10킬로미터, 그 다음날은 15킬로미터 순으로 늘려갔다. 그리고 10일째 되던 날 목표 거리인 60킬로미터를 주파했다.

그 다음날부터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집중했다.

굳이 마법을 펼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실전 마법은 몸이 한계에 다다랐을 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일째 되는 날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음을 깨달았다. 물론 75킬로그램 나갈 때처럼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하지만 훈련을 멈출 수는 없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실전 마법은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머리가 아닌 몸이 이해해야만 발전하는 마법.

이번 투쟁을 거치고 나면 아마도 지금은 불가능한 섬세한 동작이 가능해질 것이다.

김필도는 헬칸을 억세게 그러쥐었다.

처음 시작은 20일 전과 같다.

알리토는 공터 중앙에 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고, 김필도는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공격 준비를 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상체는 벌거벗은 상태였다.

“오게.”

알리토는 김필도를 보며 말했다.

“이번엔 다를 겁니다.”

김필도는 헬칸을 든 오른팔을 땅과 수평으로 폈다.

헬칸 40킬로그램, 모래주머니 30킬로그램. 총 70킬로그램의 무게가 그의 팔에 실린다. 팔뚝 표면에 떠오른 마법진이 먹물처럼 진해진다.

김필도는 점점 강한 광채를 뿌려대는 마법진을 가만히 바라본다.

“타앗!”

이윽고 그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알리토를 향해 돌진했다.

나아가는 속도는 10일 전에 공격을 했을 때보다는 느렸다.

하지만 김필도를 바라보는 알리토의 얼굴엔 감탄의 빛이 어렸다. 달려오는 김필도의 몸에서 강한 힘이 감지되었다. 더군다나 무게가 40킬로그램으로 늘어난 헬칸을 한 손으로 들고 있다.

다섯 종족 중 가장 힘이 약하고 짧은 수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주인으로 남은 인간의 저력이 바로 저런 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슈아악!

김필도가 휘두르는 헬칸에서 강한 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람 소리 또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잘못하다간 낭패를 당할지도 모르겠군.”

그렇다고 자세를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알리토는 검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콰앙!

알리토의 손등에 힘줄이 불거지는 순간 강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헉!”

알리토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의 검이 오른편으로 밀리며 헬칸이 무섭게 하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다리가 잘려나갈 판이었다.

휙!

알리토는 재빨리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차앗!”

그가 자세를 잡기도 전에 헬칸이 머리를 향해 쏘아져 왔다. 알리토는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아앙!

“우웃!”

알리토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 첫 번째 충돌에서도 느꼈지만 엄청난 힘이었다. 한손으로 막아내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하지만 금세 여유를 되찾았다.

‘얼마나 가는지 볼까?’

알리토는 검을 두 손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김필도의 공격을 막아냈다. 아직은 늘어난 체중과 검의 무게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졌지만 동작은 느리고 허점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마음먹고 아무 곳이나 검을 찔러 넣으면 바로 게임 오버다.

콰앙! 쾅! 쾅쾅쾅! 쾅!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김필도는 쫓아가면서 헬칸을 휘두르고, 알리토는 물러나며 방어를 했다.

30분에 접어들면서 김필도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알리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마족들 또한 30분 정도 지나면 숨이 가빠지고 지친 기색을 보였고, 1시간가량 지나면 나가떨어졌기 때문이다.

김필도 또한 비슷한 과정을 밟아가는 것 같았다.

알리토는 여유롭게 김필도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또다시 30분이 지났다.

‘이젠… 응?’

알리토는 깜짝 놀랐다. 1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김필도가 휘두르는 헬칸의 힘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마법이 있으니까 더 견디는 모양이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방어에 임했다.

다시 1시간이 지났다.

알리토는 경악했다.

김필도의 온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다. 숨은 곧 넘어갈 것처럼 거칠다. 그런데 헬칸에 어린 힘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강해졌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시 1시간이 흘렀을 때 경악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시간이 더 흘렀을 때 알리토는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도 1시간이 더 흘렀고, 마침내 김필도는 풀썩 쓰러졌다.

김필도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하늘을 보았다. 아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알리토를 보았다.

“내일부터는 공격해 주십시오.”

“아직은 무리네.”

“공격을 해 주지 않으면 내 실력은 절대 늘지 않습니다.”

“자네가 익힌 그 마법이라는 게 잠재능력을 뽑아내서 사용하는 건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알았네.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대결해 주겠네.”

김필도와 알리토의 무투는 날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김필도는 봐주는 걸 바라지 않았다.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과감하게 공격하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했다.

무투가 끝날 즈음이면 김필도의 몸은 피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수고하셨습니다!”

김필도는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그런 그의 몸 곳곳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수고했네.”

알리토는 김필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처는 앞에만 난 게 아니었다. 그의 등에도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김필도는 몸을 돌려 냇가로 향했다.

“왜 그러는가?”

알리토는 멀어지는 김필도를 보며 물었다.

김필도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왜 목숨을 거느냐는 말이십니까?”

“…….”

알리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함에도 익숙해지고 싶어서요.”

“지금도 자넨 충분히 강하네.”

“하지만 이걸 지켜 낼 자신은 아직 없습니다.”

김필도는 헬칸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계곡으로 향했다.

“아니네, 자넨 강하네. 이 알리토의 몸에 상처를 낼 정도로.”

알리토는 옆구리에 붙이고 있던 왼팔을 뗐다. 그러자 붉게 물든 옆구리가 드러났다. 비록 단 한 곳에 불과했지만 알리토도 처음으로 부상을 입었다.

요즘 알리토는 매일매일 놀라는 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김필도 때문이다.

김필도는 굳이 검술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대검술을 엄청난 속도로 흡수해 갔다.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솜 같았다.

최단거리로 검을 움직여 방어하는 기술을 배우더니,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뜨리는 공격법을 터득하고, 심지어 지금은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기술까지 구사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말로 설명해 준 적이 없는 기술들이었다.

그는 끊임없는 실전을 통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검사였다.

“오늘은 나도 포션이 필요하겠구먼.”

알리토는 자신의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한편. 공터를 떠난 김필도는 2백 미터 남쪽에 있는 계곡에 있었다.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에는 상당히 큰 연못이 있었다. 연못 바닥에는 돌이 가지런히 깔려 있어 흙탕물이 일지 않는다.

알리토가 만들어 놓은 듯했다.

크아!

계곡에 몸을 담그고 피를 씻어내고 있는데 시아나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이름 모를 풀이 한 아름 들려 있었다.

시아나는 김필도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들고 있던 풀을 입 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크!

“알았어.”

김필도는 몸을 일으켜 연못 밖으로 나가 엎드렸다. 그러자 시아나는 씹고 있던 풀을 상처에 붙여 주었다.

크아!

“검이 들어간 깊이가 어제보다 얕다는 거지?”

캬아!

“몸의 움직임이 생각을 따라잡고 있어서 그래.”

등을 다 바르고 나자 몸을 뒤집었다.

앞은 등보다 더 처참했다. 거의 난자당했다고 해야 할 정도로 부상은 심했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상처는 없었다.

사실 지금껏 몸의 움직임은 육감을 따르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알리토의 검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늘린 체중으로 인해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런데 오늘 몸의 움직임은 생각을 따라잡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드디어 250킬로그램의 무게에 완벽하게 적응해 낸 것이다.

“절대적인 믿음은 마법을 불러오지.”

캬아아!

다 끝났다는 말이 들려오자 김필도는 왼손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낮게 클로스 명령을 내렸다.

그의 가슴에서 검은 운무가 흘러나오고 그것은 곧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전투기갑으로 변했다.

김필도가 몸을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그가 이 방법을 사용할 생각을 한 것은 맨 처음 헤를리온을 착용했을 때, 나름 환골탈태라고 결론 내린 문신과 마법진이 사라진 일 때문이었다.

헤를리온은 분명 몸 내부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상처를 치료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도를 했는데 놀랍게도 상처가 아물었다. 거기에다 시아나가 챙겨준 약초를 바르자 상처는 더욱 빨리 아물고 몸속의 마나가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흉터까지 없애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헤를리온을 걸친 상태로 한 시간 정도 있으면 몸이 가뿐해지면서 피로까지 풀린다.

한 시간가량 지나자 헤를리온을 해제했다.

“이제 이 녀석들을 떼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모래주머니를 바라보는 김필도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캬야우!

“맞아, 강해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난 점점 강해지고 있어. 아직은 많이 부족하겠지만 전처럼 검에 심장을 찔리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어쩌면 그놈의 심장에 헬칸을 찔러 넣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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