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74화 (74/225)

# 74

알리토는 의아했다.

블러드 데빌단의 단장인 크로는 그도 알고 있었다. 비록 추방자가 돼 문 대륙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이 사는 마을을 공격할 정도로 상식이 없는 자는 아니었다.

“단장이 크로가 아니랍니다.”

“바뀌었단 말인가?”

“키는 3미터고 붉은 전투기갑을 걸쳤다고 하더군요.”

“흰색 뿔을 가졌다고 하지 않았소?”

듣고 있던 김필도가 물었다.

“맞습니다.”

오디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알리토가 신음을 흘렸다.

“아는 잡니까?”

왠지 알리토는 알고 있는 듯했다.

“붉은 학살자라고 불렸네.”

“대단한 자들인가 보군요.”

“전 군단장 암살과 연루돼 종신형을 받고 투옥됐던 자들인데…….”

“탈옥했거나 누군가가 풀어 줬단 말이군요.”

“그런 것 같네.”

“성격은 어떻습니까?”

“마계 발전에 해가 되는 자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족 10만 명을 학살한 자들이네.”

“협상의 여지가 없는 자들이군요.”

“그자들은 인간을 몬스터와 동급으로 취급할 거네.”

“그렇지 않아도 젊은 남녀는 노예처럼 끌고 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할 건가?”

“글쎄요…….”

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비긴 마을은 어느새 50년이 됐고,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갈 곳이 없다.

한두 명도 아니고 2천 명이나 된다.

그들을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그렇다고 블러드 데빌단과 싸운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크레디온과 세이기온을 착용한 기갑전사들이 3백 명이다. 그들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할 확률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뻔했구먼.”

오디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디안이 나가자 김필도도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김필도는 블랙칸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오십니까?”

김필도를 발견한 헤르만이 뛰어나와 블랙칸의 고삐를 잡았다.

“언제 돌아온 거지?”

“어제 왔습니다.”

“일은 마친 거야?”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이제 돌아가면 됩니다.”

“기뻐?”

김필도는 헤벌쭉 웃고 있는 헤르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돌아가면 죄수 신세에서 벗어나는데 좋을 수밖에요.”

“뭘 하고 먹고 살 건데.”

문득 대불파 녀석들이 떠오른다.

조폭들의 삶은 판박이처럼 똑같다. 다른 조직과 싸우고, 범죄자 일제 소탕에 걸리고, 신문 일면을 장식하고, 빵에 들어가고, 별을 달고.

빵에서 나올 때 늘 새사람이 돼야지 하면서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그렇게 삶을 낭비하다가 쓸쓸하게 죽어간다. 어쩌면 헤르만이란 이 친구도 대불파 조직원들처럼 그렇게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차차 생각해 봐야지요.”

“빵에는 어쩌다 들어간 거야?”

“그런 말도 아십니까?”

“빵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그 방면에서는 내가 너보다 선배일지도 몰라.”

“그쪽을 잘 아는 모양이죠?”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전문가야.”

김필도의 말에 헤르만은 히죽 웃었다. 왠지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는 사연을 끄집어냈다.

“마누라가 예뻤습니다.”

“사내자식들을 잡을 정도로?”

“네.”

“너무 미인이었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지?”

“남작이 포함된 다섯 명이었습니다.”

“다 죽였어?”

“네.”

“부인은?”

“자살했습니다.”

“자식은?”

“없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네.”

“그런 셈이죠.”

“그럼 남작 부모가 오리발을 내민 거야?”

“제가 사형을 언도받은 이유 말입니까?”

“응.”

“내 마누라를 강간했던 그날 남작 놈이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만들어 왔더군요.”

“꼼짝없이 당했네.”

“뭐 상관없었습니다.”

“복수를 한 걸로 됐다?”

“죽은 마누라가 살아올 리는 없겠지만 남작 놈도 죽었으니까요.”

“그랬군. 가서 애들 모이라고 해.”

어느새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김필도는 블랙칸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애들요?”

“조장 녀석들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헤르만은 피식 웃으며 블랙칸을 묶어 놓고 자리를 떴다.

안으로 들어간 김필도는 카판을 내리면서 설풍과 단도를 꺼내 엉덩이 위쪽으로 찼다.

그리고 카판을 한잔 하고는 느긋하게 상황실로 사용하는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에는 조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해.”

김필도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광산 개발은 완료했습니다.”

먼저 보고를 한 이는 데푸시였다.

“매장량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지?”

“전 광산의 다섯 배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순도는?”

“순도는 떨어지지만 분쇄하면 좋은 원석을 골라낼 수 있을 걸로 봅니다.”

“좋아. 광산은 그 정도면 됐고.”

이번엔 베르탄을 보았다.

“채굴양은 1백 톤 정도입니다.”

“누가 가지고 있지?”

“내가 가지고 있소.”

펠톤이 손을 들었다.

“아공간이야 마법 주머니야?”

“마법 주머니에 보관하고 있소.”

“줘!”

김필도는 손을 내밀었다.

“이건…….”

펠톤은 말끝을 흐렸다.

“한 번만 더 남의 물건에 손대면 목을 쳐 버릴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아, 알겠소.”

펠톤은 책가방처럼 생긴 주머니를 꺼내 김필도 앞으로 내밀었다.

“길은?”

주머니를 받아든 김필도는 이프리스를 보았다.

“이곳에서부터 찾아가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마법진은?”

김필도는 올가를 보았다.

“지도가 없이는 광산으로 갈 수가 없어요.”

“지도의 시작점은 어디지?”

다시 펠톤을 보며 물었다.

“이곳 비긴 마을이오.”

“시작점을 골든 브리지로 잡아.”

“이 마을이 더 편하오.”

“여긴 조만간 없어질 거야.”

“없어져요?”

“마계에서 가장 독한 놈이 블러드 데빌단을 장악해서 인간들이 세운 마을을 짓밟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어왔어. 벌써 선 마을과 로즈 마을은 끝장났어.”

“정말이오?”

“지도의 길이나 바꿔.”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냐고 물었…….”

“썅!”

슈캉!

김필도 엉덩이에서 검 뽑히는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어느새 설풍의 끝이 펠톤의 목에 닿아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자작. 다음에 또다시 날 부하 취급하면 네놈 목에 구멍을 뚫어 놓고 나서 네 아비에게 따지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며, 명심하겠소.”

“좋아!”

철컥!

김필도는 설풍을 원래 도집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날 죽이고 싶은 놈은 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일을 마치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거야. 나는 10개월 전의 내가 아니거든.”

김필도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데푸시를 바라보았다.

“여기 있습니다.”

데푸시는 상자 하나를 김필도에게 내밀었다. 전에 김필도가 부탁했던 목걸이였다.

“고마워.”

김필도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간 그는 블랙칸을 타고 마을 밖으로 향했다.

그에게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시아나였다.

차원의 벽 수리도 끝났고, 광산도 개발했고, 문 대륙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이곳으로 온 임무는 완수했다. 이제 남은 건 돌아가는 것뿐이다.

김필도는 성문을 빠져나왔다.

“나야!”

그아우!

그러자 숲에서 시아나가 다가왔다.

“타!”

김필도는 블랙칸 뒷자리를 가리켰다.

크!

시아나는 훌쩍 몸을 날려 뒷자리에 탔다.

김필도는 천천히 블랙칸을 몰아갔다. 남문을 한참 벗어나 공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술을 꺼내 따랐다.

그아우!

김필도가 신의 눈물을 꺼내 따르자 시아나는 낮게 울었다. 비싼 술을 낭비한다는 나무람이었다.

“너랑 마시는 거잖아.”

김필도는 빙그레 웃으며 시아나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둘은 말없이 술잔을 비우고 고기를 먹었다.

술병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한 병 더 할까?”

캬아!

시아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술은 조금만 마시는 게 좋은 거야. 그리고 이거.”

김필도는 데푸시로부터 받은 상자를 시아나에게 내밀었다.

시아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새하얀 광채가 쏘아져 나왔다.

아무리 하이 오드라고 해도 시아나는 여자였다.

그녀는 목걸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목걸이는 둥근 모형에 고정돼 있었다.

목걸이를 만든 베이스 금속은 은색의 미스릴이다. 폭은 3센티미터가량이고, 주 보석은 다섯 개의 다이아몬드다.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다이아몬드를 작은 에메랄드와 사파이어가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초록색과 파란색의 두 보석이 순백의 다이아몬드를 떠받드는 모양새였다.

크아우!

홀린 듯 목걸이를 바라보던 시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마음에 들어?”

캬아!

“고개 내밀어 봐.”

김필도는 목걸이를 시아나의 목에 채워 주었다. 심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흔들거리지 않게 딱 맞았다.

“오픈(Open)!”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어 거울을 꺼내 비춰 주었다.

카아!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바라보던 시아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개를 숙여 보고, 옆으로 돌아서 보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가며 목걸이를 비춰보았다.

“이것도 너 줄게.”

김필도는 거울을 상자 옆에 놓았다.

크아우!

언제 그랬냐는 듯 시아나는 슬픈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그녀는 김필도가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어?”

캬우!

“돌아오게 될지 아니면 그곳에서 살게 될지 나도 모르겠어. 황제가 괜찮은 영지를 주면 그곳에 정착할지도 몰라. 왜냐면 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기로 필녀에게 약속했거든.”

캬우우! 크아아우우!

“물론 여기서도 그렇게 살 수 있어.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잘 사는 걸 봐 줄 사람이 없어. 난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크아!

“나도 알아! 아주 속물적이고,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내 삶의 목적을 잃게 돼.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캬우우!

“그래, 돌아올 거야. 여긴 내 고향 같은 곳이야.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가 아닌 김필도가 다시 태어난 곳. 사람은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 특히 성공한 사람들은. 한잔 더 할까?”

김필도는 빙그레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크아아우!

“술이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좋은 사람보다는 못한 거야.”

김필도는 술병을 따 각자의 잔에 따랐다.

캬아아우우!

“필녀?”

크!

시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내 인생이었고, 지금은 날 지탱해주는 기둥.”

캬아아우우!

“누군가는 항상 죽기 마련이야.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어. 다만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들을 잊지 않으면 돼.”

크아아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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