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85화 (85/225)

# 85

제5장 거창한(?) 환영식

검은색 이야크와 회색 이야크가 나란히 머나먼 숲에서 걸어 나왔다. 이야크 안장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김필도와 리시아였다.

베른은 리시아 왼편에서 이야크 고삐를 잡은 채 따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머나먼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 때문이었다.

머나먼 숲을 통과하는 10일 동안 세 사람은 수많은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다. 밤에는 몬스터를 감시하고 낮에는 이동하는 생활이 10여 일 동안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이야크를 타고 이동한 김필도와 리시아는 피로를 풀 수 있었지만 베른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반쪽이 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게 이야크에 타라고 했잖아요.”

리시아는 안쓰러운 얼굴로 베른을 보며 말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이야크에 타라고 했지만 베른은 한사코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베른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과는 달리 걸음을 옮기는 그의 다리는 약간씩 후들거렸다.

“그러다 쓰러지면 결국 주인 고생만 시킬 뿐인데 웬만하면 탈 것이지는.”

김필도는 혀를 찼다.

“그런 자넨 왜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건가?”

베른은 원망 어린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그가 리시아 이야크에 타는 걸 한사코 거절했던 것은 그녀가 주인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김필도가 그의 이야크에 타라고 했다면 거절하지 않고 바로 탔을 것이다. 그런데 김필도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목숨을 구해 주고, 이야크까지 태워 주면 베른이 내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은 거였소.”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 줬단 말인가?”

황당하다는 듯이 베른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 땅속에 묻혔을 거면서 벌써 잊은 거요?”

“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자네에게 목숨의 빚을 진 일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먼.”

“내가 숲에서 나오지 않으면 베른도 죽는다고 리시아 양이 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요?”

“으음!”

베른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분명 그날 가주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막 숲에서 나온 그가 가주의 말을 듣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내게 목숨을 빚진 거 맞잖소.”

김필도는 빙그레 웃으며 이야크 창을 빼들었다.

숲을 통과했는데 굳이 조립한 상태로 둘 필요가 없었다.

“그 이야크 창에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은데 맞아요?”

김필도를 지켜보던 리시아가 물었다.

“네.”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마법이죠?”

“이야크 창의 이름이 라콰(Laqwa)예요.”

“라콰면 바람의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거네요?”

“그다지 강한 마법은 아니에요.”

“별로 강한 마법이 아닌데, 찔리면 커다란 구멍이 뚫려요?”

리시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보통 몬스터는 이야크 창에 찔린다고 해도, 치명적인 위치, 즉 심장이나 머리를 찔리지 않으면 바로 죽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이야크 창은 달랐다. 창을 찔러 넣게 되면 지름이 20센티미터가 넘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난다.

다리를 찌르면 다리가 잘려 나가고, 목을 찌르면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심지어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뜯겨 나갔다. 별것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위력적이었다.

“그 정도 마법을 가진 무기는 얼마든지 있잖아요.”

김필도는 라콰를 분해하여 이야크 창을 끼우는 자리에 끼웠다.

그리고는 시선을 들었다. 멀리 커다란 성채가 보였다.

김필도는 기억을 더듬어 살폈다.

‘아무튼 이 자식은?’

김필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해도 너무한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성에 대한 정보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저건 무슨 성이죠?”

결국 리시아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몰라요?”

리시아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공부하곤 워낙 담을 쌓고 살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탄 제국 4대 성을 모른다는 건…….”

“내가 영주가 될 것도 아닌데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지 들어나 보자고요.”

“발탄 제국에는 국경지대에 거대한 성이 하나씩 있는데 4대 성이라고 부르고, 4대 성은 제국 4대 군벌의 근거지이기도 해요. 동쪽에는 카단 성, 서쪽에는 펠콘 성, 남쪽에는 라팔 성, 북쪽에는 고칸 성이 있는데 제1차 대륙 전쟁 때 세워진 성이에요. 그리고 각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군벌을 동로군벌, 서로군벌, 남로군벌, 북로군벌이라고 불러요.”

“인구는 얼마나 되죠?”

“펠콘 성의 주민은 30만 정도고 병력도 10만가량이 주둔해 있어요.”

“이곳에 적이 많나 보죠?”

10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주둔해 있다고 해서 묻는 말이었다.

“원래 우리가 있는 이곳은 45년 전까지 파르 족 영토였어요.”

“45년 전이면…….”

“루시안 공자의 외조부께서 황제를 역임하고 계실 때죠. 그 당시에는 발탄 제국과 파르 족은 서로 무역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랬는데 황제가 바뀌면서 분쟁 지역이 됐다는 건가요?”

“파르 족에서 발탄 제국에 팔았던 물건 중의 하나가 티라늄이었거든요.”

“티라늄이면…….”

티라늄에 대한 지식은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강도는 쇠보다 두 배 강하고, 유연성이 뛰어나며, 녹이 슬지 않고, 반마법 금속인 미스릴과 오르하르콘은 물론이고 다른 금속과도 친화력이 좋아 혼합용 금속으로, 많은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고 돼 있었다.

더불어 가격 또한 일반 금속에 비해 세 배에서 네 배가량 비쌌다.

“현 황제는 타 종족에게 돈을 주고 티라늄을 사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요.”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을 정복해 버렸다는 거군요.”

“맞아요, 머나먼 숲에서 그들을 내쫓아 버렸어요. 파르 족은 남쪽의 하르카 대습지로 들어갔고, 일부는 머나먼 숲 깊숙이 들어가 발탄 제국과 전쟁을 시작한 거예요.”

“티라늄 광산은 얻지 못하고 국경만 불안하게 만든 셈이네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이곳에서 나던 티라늄 생산이 끊기자 다센 왕국과 라칸 공국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도 티라늄이 생산되나 보죠?”

“이곳에서 60퍼센트 정도를 감당했고, 다센 왕국과 라칸 공국에서 20퍼센트씩을 감당했거든요.”

“암흑 상단 다르들이 다센 왕국으로 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죠.”

“거긴 왜 간 거죠?”

“반란이 일어났거든요.”

“반란?”

“쫓겨났던 왕이 돌아왔대요.”

“쫓겨났던 왕이라면?”

“톰벨 벨린져 히라베우스란 자예요.”

“킥!”

김필도는 피식 웃었다.

문 대륙에서 만났던 톰벨. 보통 신분이 아닐 거란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가 다센 왕국의 전 왕이었던 것이다.

“아세요?”

“문 대륙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그랬군요.”

“그런데 그는 어쩌다가 왕위를 빼앗긴 거죠?”

“이런저런 소문이 많기는 한데 티라늄 때문이란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요.”

“발탄 제국 황제가 티라늄 생산량을 늘려달라고 요구를 했는데 다센 왕국 왕이 듣지를 않자, 측근을 이용해서 반란을 도모했다는 건가요?”

“라젯 이노시어스 왕이 등극한 후에는 티라늄 생산량이 두 배로 늘었거든요.”

“일리가 있네요.”

어느새 세 사람은 펠콘 성이 보이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펠콘 성 앞은 강이었다. 강의 폭은 2백여 미터로 상당히 넓었다.

“펠콘 강이에요.”

김필도는 강 건너를 보았다.

성벽의 높이는 20미터 남짓인데 좌우측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남쪽으로 50킬로미터가량이고 북쪽으로는 30킬로미터예요. 강을 따라 세워져 있어요.”

“성벽은 홍수 방지용 제방 역할도 하겠군요.”

“잘 보셨네요. 적의 침입과 홍수를 막아 주는 두 가지 역할을 하는 성벽이에요. 저기로 가요.”

리시아는 강변에 세워진 건물을 가리켰다.

건물과 강가까지 거리는 20미터였다.

건물과 강 사이에는 약간의 경사가 져 있고, 나무로 만든 계단이 놓여 있다. 계단 끝은 강으로 난 작은 나루터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기둥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건너편까지 이어진 밧줄을 거는 기둥이었다.

강을 건너는 수단은 밧줄에 연결된 뗏목이었다. 물론 뗏목은 건너편에 떠 있었다.

김필도와 리시아는 이야크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갔다.

“누구요?”

근무하던 늙은 병사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이고 문 대륙에서 오는 길이다. 그리고…….”

김필도는 리시아를 보았다.

“여기요.”

김필도가 바라보자 리시아는 신분증명서를 꺼내 병사에게 내밀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병사는 오른편 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성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마법 통신구가 있는 듯했다.

“베른, 이야크를 몰고 나루터로 가요.”

“알겠습니다.”

베른은 리시아의 이야크와 김필도의 이야크를 끌고 건물을 우회하여 나루터로 갔다.

“지금 뗏목이 출발한답니다, 대공 전하.”

안으로 들어갔던 병사가 밖으로 나와 말했다.

“혹시 돈 가진 거 있어요?”

김필도는 리시아를 보며 물었다.

“얼마나요?”

“1골드면 돼요.”

“여기요.”

리시아는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은 금과 티라늄을 섞어 만든 주화였다.

금화를 받아든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는 병사를 향해 금화를 던졌다. 병사는 얼른 금화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금화를 받아든 병사는 허리를 90도로 꺾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김필도는 병사의 어깨에 다정하게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의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

“펠콘 성에서 내가 주의해야 할 게 있을까?”

“무슨…….”

“이를테면 가급적 보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은 그런 자들이 있잖아.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있다면 그자들이 있는 곳은 피해 다니려고 그래.”

“3, 3군장과 4군장과 5군장께서 벼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3군장, 4군장, 5군장?”

“네. 들리는 말로는 3군장인 트레일 자작은 노르탄 공작가와 친분이 있고, 프콘 자작은 이콰라 공작가와 또 필 자작은 헬모트 공작가와 친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만 조심하면 되겠네?”

“그건…….”

“자네에게 들었단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영주는 어떤 사람이지?”

“이곳에서 평생을 사셨던 분으로 시대를 잘 만났더라면 진작 후작이나 공작을 달았을 아주 공명정대하신 분입니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김필도는 싱긋 웃으며 병사의 어깨에 둘렀던 팔을 내렸다.

“안녕히 가십시오, 대공 전하.”

건물을 나가는 김필도와 리시아의 등에 대고 늙은 병사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요?”

리시아는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천둥의 성에 틀어박혀 있다가 대공이 된 후 처음 세상으로 나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방금 늙은 병사와 대화하는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을 연상시킨다.

그는, 보면 볼수록 많이 알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궁금증이 늘어만 갔다.

“원래 모든 일에는 적당한 기름칠이라는 게 필요하거든요.”

“기름칠?”

“그 병사에게 주었던 1골드 금화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름칠이라는 게 뇌물을 말하는 거예요?”

“그런 건 뇌물이라고 하면 안 되죠.”

“그럼 뭐라고 하는데요?”

“정보 이용료라고 하는 겁니다. 1골드만 더 줘 볼래요?”

김필도는 리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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