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90화 (90/225)

# 90

“으이그!”

리시아는 김필도를 노려보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돌겠네.’

김필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환상적이란 말은 그녀를 위해 생겨난 말 같았다.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그녀는 단지 키가 작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곤돌!”

김필도는 신경질적으로 곤돌을 뒤집었다.

“안 나와요?”

드레스를 걸치고 난 리시아가 말했다.

“나도 백번 나가고 싶죠. 추워 죽겠는데.”

“그런데 왜 안 나오는 거죠?”

“수컷의 슬픈 숙명 때문이지 왜겠습니까?”

김필도는 엎드린 상태에서 로브를 걸쳤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갔다.

“풋!”

김필도를 바라보고 있던 리시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수컷의 슬픈 숙명이란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젖은 로브로 가리기에는 김필도의 상태가 너무 민망했다.

“원인 제공자가 그렇게 웃으면 안 되지 않나요?”

김필도는 리시아를 흘겨보고는 곤돌을 세워 물을 쏟았다. 그러고는 원래 자리로 끌고 갔다.

선착장에 곤돌을 매어 놓고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50대 초반의 남자는 흄이 데리고 온 골동품상 리치였다.

“이걸 팔고 싶네.”

김필도가 아공간에서 꺼내 놓은 것은 신의 눈물 한 병이었다.

“이건…….”

리치는 경악했다.

요즘 휴도니아 대륙은 한창 신의 눈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몸살을 앓는 자들은 최상류층이다.

우연히 경매장에 등장한 신의 눈물은 1퍼센트의 상류층들이 보유하고 싶어하는 품목 1위가 됐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액수는 상관없으니까 구해만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리치 또한 돈까지 받아 놓은 상태다. 그런데 그 신의 눈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리치는 급하게 돋보기를 꺼내 병을 살폈다. 뚜껑을 보고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아래쪽까지 훑었다.

이윽고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리치는 아공간에서 천을 꺼내 테이블에 깔고는 신의 눈물을 그 위로 조심스럽게 놓았다.

신의 눈물은 진품이었다. 게다가 작은 흠 하나도 없이 완벽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평생 동안 골동품을 거래했지만 신의 눈물처럼 엄청난 골동품을 만져본 건 처음이었다. 감정을 한 것만 해도 무한한 영광이었다.

“어떤가?”

“지, 진품 맞습니다. 의심할 나위가 전혀 없습니다.”

“가격대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

“최근 경매 시장에서 6백만 골드를 찍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찍은 걸로 알고 있다는 건,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군.”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 거라고 보는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1천만까지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 소개료가 10퍼센트라고 하던데 맞는가?”

“적은 금액은 20퍼센트를 받고 많은 금액은 10퍼센트를 받고 있습니다.”

“5백만 골드만 만들어 주게.”

“그럼 시세보다 1백만 골드나 더 싸게 내놓으신 셈이 됩니다.”

“경매장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아닌가. 하지만 난 지금 속옷 사 입을 돈도 없다네.”

“그 정도 돈은 제가 빌려드릴 수도…….”

“하하하! 말은 고맙네만 5백만 골드에 사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겠네.”

“무, 물론 사겠습니다, 대공 전하.”

현 시세에서 1백만 골드나 싸게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리치는 아공간을 열어 지폐 다발을 꺼냈다. 금색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한 장에 1천 골드의 가치를 지닌 골드 페이퍼였다.

“자넨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군.”

“고객께서 신의 눈물을 사달라고 맡긴 돈입니다.”

“그래? 호리슨, 확인해 주겠나?”

“아, 알겠습니다.”

멍한 얼굴로 거래를 지켜보던 주인이 황급히 테이블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러고는 돈을 헤아렸다.

“황혼을 살 때 얼마 줬는가?”

김필도는 골드 페이퍼 다발을 만지며 물었다.

“안에 있는 가구들을 전혀 건들지 않은 조건으로 50만 골드 줬습니다.”

“산 지는 얼마나 됐는가?”

“10년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파르 족과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서 투자 가치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호리슨은 묻지도 않았는데 황혼을 사게 된 이유까지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 후로 파르 족과 사이가 더 악화돼서 값이 오르지 않았단 말이구먼.”

“부동산 값이 오르지 않은 건 문제가 아닌데 손님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폐가처럼 방치됐구려.”

“돌아보셨습니까?”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오는 길이네.”

“처음엔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일을 하다가 언덕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사람을 살 형편도 안 되고요.”

“판다면 얼마에 넘길 생각인가?”

“임자만 생기면 가격에 상관없이 팔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센 돈이 얼만가?”

“제가 센 돈은 총 1백만 골드입니다.”

“그 정도면 되겠는가?”

“네?”

주인은 뜨악한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 탓이었다.

“1백만 골드면 이걸 팔겠냐는 말이네.”

“저, 정말 사시겠습니까?”

그제야 주인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산다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구입했던 값의 두 배를 지불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 거래가 성립된 걸로 알겠네. 서류는 내일 정리하도록 하세. 그런데…….”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

“여길 팔면 갈 곳이라도 있는가?”

“이제부터 알아봐야지요.”

“특별히 갈 곳이 없다면 여기서 계속 사는 건 어떤가?”

“계속 산다는 건…….”

“난 여길 원래 만들어진 목적대로 별장으로 이용할 참이네. 자주 올 수도 없고 간혹 들르게 될 텐데 누군가 관리를 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관리를 맡아달라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다른 사람이 받는 만큼 월급을 지불할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호리슨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흄!”

김필도는 흄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

“군에서 마구간을 맡고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정원사 노릇 해 보고 싶은 생각 없어?”

“정원사가 필요하십니까?”

“저 앞이 다 정원이잖아.”

“하지만 전…….”

“영주껜 내가 말할게.”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하겠습니다, 대공 전하.”

“그리고 이건 자네 몫이야.”

김필도는 10골드 다발을 흄 앞으로 밀었다.

“이, 이걸 전부 절 주신다고요?”

흄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마구간지기로 한 달 동안 일을 해서 버는 돈은 10골드다. 일 년이면 120골드, 10년이면 1천2백 골드, 1백 년 동안 번다고 해도 1만 2천 골드에 불과하다. 그런데 손님 한번 소개시켜 주고 10만 골드를 번 것이다.

흄은 제 뺨을 힘껏 갈겼다.

짝!

“아야!”

흄은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지만 흄은 환하게 웃었다.

“호리슨!”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

“황혼을 수리하는 비용도 뽑아 봤겠지?”

“하급으로 했을 때 10만, 중급 20만 골드, 상급으로 하면 30만 골드가량 들어가는 걸로 나왔습니다.”

“최상급으로 고쳐.”

김필도는 50만 골드를 옆으로 밀어 놓았다.

“돈 관리도 제가 하는 겁니까?”

“그런 거 하라고 관리인 시킨 거야. 풀 뽑고, 가지치기시킬 거면 굳이 관리인을 둘 이유가 없잖아.”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그런데 바꾸고 싶은 모양이라도 있습니까?”

“식당으로 바꾸기 전 모습으로 했으면 좋겠어.”

“그럼 돈이 더 적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돈은 작업이 끝나고 난 후에 정산하도록 하자고. 그리고 곤돌 가장 좋은 건 얼마나 하지?”

“크기에 따라 다릅니다.”

“남녀가 격정적으로 키스를 해도 절대 뒤집어지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해.”

꾹!

갑자기 옆구리에서 강한 통증이 왔다.

옆에 앉아 있던 리시아가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비 오는 날에도 나갈 수 있게 지붕이 있었으면 좋겠고, 피곤할 때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차를 마시면서 구경할 수 있는 응접실이 있었으면 좋겠어. 물론 창문도 있어야 하고.”

“가장 큰 곤돌은 길이 10미터 폭 4미터짜립니다.”

“가격은?”

“5천 골드 정도 나갑니다.”

“그것도 한 대 구입해서 나루터에 묶어 놔.”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자! 다 끝났어. 각자 할 일 하도록 해.”

“저는 집사람과 함께 축배를 들어야겠습니다. 일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호리슨이 돈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골동품상 리치가 신의 눈물을 천으로 싸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흄 자넨 뭐 할 거지?”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흄은 눈치가 빠른 자였다. 김필도의 말에 뭔가 일이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여기도 야시장 열리겠지?”

“물론입니다. 달이 빅 문(Big Moon)일 때는 가장 큰 야시장이 섭니다.”

“안내해 줄 수 있겠어?”

“마차로 가시겠습니까? 곤돌로 가시겠습니까?”

“마차도 있어?”

“좋은 마차는 아니지만 호리슨 저 친구가 타던 마차가 있습니다.”

“그럼 마차로 가도록 하지.”

김필도는 골드 페이퍼 몇 장을 꺼내 로브 주머니에 넣고는 나머지 돈은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리시아를 보았다.

“함께 갈래요?”

“옷 사게요?”

“그래야죠.”

“좋아요. 가요.”

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준비하겠습니다.”

흄은 밖으로 나갔다.

그로부터 40분 후 두 사람은 펠콘 최대 야시장인 동호 시장에 도착했다. 티라늄 무역이 쇠퇴하여 과거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동호 시장은 여전히 많은 인파로 붐볐다.

“시장은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입구에서는 식료품을 팔고, 중간 지점에서는 농기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과 무기류를 팔고,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석류와 옷가지를 팔고 있습니다.”

시장에 대해 설명해 준 흄은 마차를 몰고 마차 보관소로 향했다.

두 사람은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흄의 말처럼 시장의 입구는 식료품 상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채소를 파는 상가, 과일을 파는 상가, 감자와 곡물을 파는 상가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비롯한 육고기류와 펠콘 강에서 잡아 올린 생선들이 펼쳐져 있다.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생선은 팔딱거렸다. 어떤 건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도 있었다.

“맞다. 돼지 머리!”

김필도는 시장에서 가장 큰 정육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돼지 머리 있어요?”

“돼지 머리요?”

주인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돼지 머리를 사러 온 손님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활짝 웃는 돼지 머리가 필요해요.”

“있기는 한데 활짝 웃는 녀석은 없습니다.”

“어딨죠?”

“이쪽에 있습니다.”

김필도는 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돼지를 직접 도살하는 듯 한편에는 대여섯 개의 돼지 머리가 뒹굴고 있었다. 물론 날것들이었다.

김필도는 그 중 가장 크고 마음에 드는 걸 골랐다.

“삶아 주기도 하나요?”

“해달라는 대로 해 드립니다.”

“그럼 상처 없이 깨끗하게 삶아 주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상처 없이 삶는 방법은…….”

“커다란 솥에 돼지 머리를 집어넣고 물을 채운 다음에 삶으면 돼요. 절대 뒤집지 말고 그대로 삶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아, 알겠습니다.”

“얼마 드리면 되죠?”

“글쎄요, 돼지 머리는 팔아 본 적이 없어서…….”

“수고비까지 해서 1골드 드리지요.”

김필도는 옆에 있는 리시아를 툭 쳤다.

“왜요?”

“돼지 머리 하나 사는데 골드 페이퍼를 줄 수는 없잖아요.”

“나보고 주라고요?”

“당연히 그래야죠.”

“자기에겐 수백만 골드가 있으면서…….”

리시아는 투덜대더니 돈을 꺼내 내밀었다.

“최소한 두 시간은 걸릴 겁니다.”

“3시간 후에 찾으러 올게요. 그보다 여기 환전소 있어요?”

“저거 안 보이십니까?”

주인은 간판을 가리켰다. 거기엔 잔돈 교환이란 글이 씌어 있었다.

“하하하! 바로 앞에 두고…….”

김필도는 멋쩍게 웃고는 1천 골드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따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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