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91화 (91/225)

# 91

주인 사내는 김필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금화는 1백 골드씩 담겨 있었다. 돈을 확인한 김필도는 1백 골드 주머니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아공간에 넣었다. 1천 골드를 바꾸는 데 수수료는 10골드였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손님.”

주인은 활짝 웃으며 김필도 일행을 배웅했다.

“지금부터 전부 내가 쏠게요.”

김필도는 1백 골드가 든 주머니를 어깨에 들쳐 멨다.

“와!”

좌우를 살피고 가던 김필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그래요?”

리시아는 김필도를 보았다.

“저거요.”

“채소잖아요?”

“저건 보통 채소가 아닙니다.”

김필도는 채소 가게 앞으로 다가갔다. 고추, 마늘, 파, 양파가 가판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호박, 가지, 오이, 무, 배추도 보였다.

채소 가게의 최고 압권은 가판대 끝에 놓은 커다란 항아리 두 개였다. 한 항아리에는 소금에 절인 새우가 들어 있고, 다른 항아리에는 된장 비슷한 것이 들어 있었다.

“이건 뭐죠?”

김필도는 주인에게 물었다.

“콩 페이스틉니다.”

“어떻게 먹는 건데요?”

“생선국을 끓일 때 약간 집어넣으면 흙 냄새를 잡아 줄 뿐 아니라 고소한 맛까지 내줍니다.”

“맛 좀 봐도 돼요?”

“물론이죠.”

주인은 작은 그릇에 콩 페이스트를 덜어 주었다.

김필도는 새끼손가락으로 콩 페이스를 찍어 맛을 보았다. 부대찌개에 넣는 콩과 일본식 된장 그리고 청국장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오묘한 맛이다.

하지만 김필도는 헤벌쭉 웃었다. 어떤 맛이라도 상관없었다. 된장과 비슷한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치도록 좋았다.

“이거 다른 지역에서도 팔아요?”

“펠콘 사람들만 먹는 특산물입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역한 냄새 때문에 잘 먹지 못합니다.”

“혼자 고독을 즐기고 싶을 땐 콩 페이스트 국물을 마시고 마늘 하나를 씹으면 완전 최곤데.”

“하하하! 맞습니다, 손님. 그렇게 하면 주위에 있던 자들은 전부 도망가고 맙니다.”

주인은 크게 웃었다.

“몽땅 주세요.”

“네?”

“오늘 주인장 가게 내가 아도 치겠소.”

김필도는 흥분하여 소리쳤다.

된장 옆에 있는 소금에 절인 새우는 비록 펠콘 강에서 나는 민물 새우지만 새우젓 맛과 제법 비슷했다.

“아도요?”

“전부 사겠단 말입니다.”

“정말요?”

“오픈(Open)!”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채소 가게에 있는 것들을 전부 쓸어 담았다. 새우젓과 콩 페이스트 항아리가 들어가고, 양념류를 비롯하여 무, 배추까지 싹쓸이해 버렸다.

김필도가 세 번째로 들어간 가게는 빵집이었다.

빵집에 들어가서는 떡을 주문했다.

빵집 주인은 떡이 뭔지 몰랐다. 김필도는 떡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펠콘에는 쌀이 없어 옥수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조폭들에게 고사는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수시로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마가 끼지 말라며 고사를 지낸다.

심지어 신차를 구입해도 절에 가서 고사를 지내곤 한다. 김필도 또한 차를 샀을 때 절에서 고사를 지냈다. 수시로 고사를 지내다 보니 고사떡에 대해서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옥수수 가루와 콩을 이용해서 고사떡 만드는 법을 알려 주고 돈을 지불한 다음 시장 안쪽으로 향했다.

장신구와 의복을 판매하는 가게는 동호 시장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었다. 수많은 보석들이 마법등 아래에서 화려한 광채를 뿌려대고 있었다.

“와아!”

보석들이 뿜어내는 광채에 리시아는 넋을 잃었다.

태어나 이렇게 많은 보석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마치 빛의 궁전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그 자리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보석을 구경했다.

“마음에 드는 거 있어요?”

“사 주려고요?”

“까짓것 돈도 벌었겠다, 하나 사 주죠, 뭐.”

“난 아주 속물인데?”

“속물?”

“비싼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고요.”

“난 부자잖아요.”

“좋아요.”

리시아는 활짝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티파니란 간판이 걸린 보석상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보석이 꽤나 세밀하게 세공돼 비싸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보석상 주인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기요.”

리시아는 주인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주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요?”

리시아는 주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리시아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자 주인은 움찔했다.

“보석을 보고 싶어요.”

리시아는 진열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골라 보십시오.”

주인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끙! 갑자기 기분이 무지 나빠지네.”

리시아는 김필도를 돌아보았다.

“리시아, 옷을 보세요.”

“옷 때문에 무시를 당한다는 거예요?”

“리시아도 그렇고 나도 비싼 보석을 살 만한 복장은 아니잖아요.”

“보석을 사려면 옷부터 챙겨 입고 와야 한다는 거군요.”

“안타깝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죠. 이럴 땐 화를 낼 필요도 없이 그 집을 나가면 되는 거예요.”

김필도는 리시아의 손을 잡고 가게 밖으로 향했다. 티파니를 나온 두 사람은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다.

“풋!”

안으로 들어가려던 리시아가 피식 웃었다.

“왜 그래요?”

“가게 이름 보세요.”

리시아는 옆으로 걸려 있는 작은 간판을 가리켰다. 간판에는 ‘아내와 남편’이란 글이 씌어 있었다.

“작명 센스가 있네요.”

“어서 오십시오.”

안에 있던 주인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주인의 키는 남자치고는 꽤 작아 리시아와 비슷했다.

“장사하는 자세도 돼 있고요.”

김필도는 통로 좌우측에 놓여 있는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지만 보석은 비슷비슷해서 어떤 게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두 분 오누이십니까?”

주인은 김필도와 리시아를 살피더니 물었다.

“머리카락이 완전히 다른데 오누이일 리가 없잖소.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요?”

“많이 닮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둘이 닮았대요.”

김필도는 피식 웃으며 리시아를 보았다.

“닮으면 잘산대요.”

“잘살아요?”

“부부 말이에요.”

“아!”

비로소 주인이 닮았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고도의 상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상술의 기본이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습니까?”

“갖고 싶은 거 있어요?”

주인의 말에 김필도는 리시아를 보며 물었다.

“정말 비싼 거 사도 돼요?”

리시아는 장난기 하나 없는 얼굴로 확인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고르세요.”

“목걸이 보여 주세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리시아는 얼른 말을 뱉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주인은 리시아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안쪽의 진열장에는 바깥에 있는 것들보다 더 고급스러운 보석이 진열돼 있었다.

“저건 얼마예요?”

리시아는 도톰한 금줄에 녹색 에메랄드가 박힌 목걸이를 가리켰다. 금발과 녹발이 뒤섞인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와 아주 어울릴 것 같았다.

“탁월한 선택이긴 한데 손님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요?”

리시아는 실망한 얼굴로 주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손님의 키가 크다면 권해 드리겠는데, 키가 작으신 분께서 저걸 차면 답답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까 키 때문에 못 찬다는 거네요?”

“굳이 손님이 차시겠다면 드리겠지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좋아요, 그럼 주인 아저씨가 하나 골라 주세요.”

차면 답답해 보일 거라는 주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쉽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가 하나 골라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은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주인은 거무튀튀한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꽤 오래된 듯 상자에서는 세월의 냄새가 풍겼다.

“바람의 유물?”

김필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주인이 내려놓은 상자 표면에 쓰인 글이었다.

“고대어를 읽을 줄 아시는군요.”

주인은 놀란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우연히 익힐 기회가 있었소.”

고대어를 보자 문득 리모스가 떠올랐다.

“설마 신의 시대 유물은 아니겠죠?”

“허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한번 보십시오.”

주인은 상자 뚜껑을 열었다.

“와!”

리시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반지 안에는 목걸이와 귀걸이, 반지가 세트로 들어 있었는데, 베이스 금속은 은색이고 보석은 에메랄드였다. 그런데 가느다란 목걸이에 달려 있는 에메랄드 크기는 가운뎃손가락만 했다. 에메랄드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채를 뿌렸다.

하지만 김필도는 달랐다.

‘헉!’

그는 리시아와는 달리 내심 신음을 흘렸다. 보석 안쪽에서 이편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방금 그 시선과 마주쳤다.

육감이 극한으로 발달하지 않았다면 감지하지 못했을 정도로 약했지만 그건 분명 시선이었다.

김필도는 정신을 집중하여 보석을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엔 귀걸이로 시선을 옮겼다. 크기만 달랐을 뿐 귀걸이에 달려 있는 보석 또한 목걸이의 보석과 비슷했다.

“차 보시겠습니까?”

“비쌀 것 같은데…….”

주인의 권유에 리시아는 망설였다.

목걸이와 귀걸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저 정도 보석이 달려 있는 목걸이라면 엄청난 금액일 게 분명하다.

선물의 한도를 초과한 보물이었다.

“됐어요. 다른 걸로 보여 주세요.”

리시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에 든다고 모든 걸 다 살 수는 없었다.

“공짜로 드릴 수도 있습니다.”

“공짜라고요?”

리시아는 황당한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스스로 주인을 택하는 보석이란 뜻일 거예요.”

“정말 그래요?”

리시아는 다시 주인을 보았다.

“저분 말씀이 맞습니다. 이 목걸인 바람의 심장이라고 하고 귀걸이는 바람의 날개, 반지는 바람의 눈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보석은 스스로 주인을 선택합니다.”

“어떤 식으로요?”

“그건 직접 차 보시면 압니다.”

“차… 볼까요?”

리시아는 김필도를 보며 물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내가 채워 줄게요.”

김필도는 바람의 심장을 집어 들었다.

한순간이었지만 보석에서 광채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김필도와 리시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목걸이에 걸린 보석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주인만 알아보았다.

김필도는 리시아의 목에 목걸이를 채워 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주인이 아닌가 봐요.”

리시아는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귀걸이와 반지까지 차 보세요.”

주인은 귀걸이를 들어 김필도에게 건넸다.

“귀에 구멍 뚫었어요?”

김필도는 귀걸이를 들고 물었다.

“네.”

리시아는 머리를 걷었다. 그러자 작은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가 나타났다. 김필도는 그 귀걸이를 빼내고 바람의 날개라는 이름을 가진 귀걸이를 끼워 주었다.

“여기…….”

김필도는 주인에게 받은 반지를 리시아에게 건넸다.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아닌데 반지까지 끼워 주는 건 서로 어색할 것 같았다.

“꼭 맞아요.”

반지가 왼손 약지에 딱 들어맞자 리시아는 만족스런 얼굴로 활짝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에요, 리시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돌려 줘야…….”

김필도는 말을 멈췄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목에 찼던 목걸이가 늪에 빠진 물체처럼 천천히 리시아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었다.

전혀 아프지 않은 듯 리시아는 제 몸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잠시 후 목걸이와 귀걸이 그리고 반지는 전부 리시아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죠?”

반지가 사라지자 그제야 자기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린 듯 리시아는 깜짝 놀라 주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주인 또한 말할 경황이 아닌 듯했다. 보석이 리시아의 몸속으로 사라진 순간부터 주인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털썩!

이윽고 주인은 리시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

“라쿤의 대족장이시여, 라쿤 제1전사 쿠다 인사드립니다.”

주인은 양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허리를 숙여 땅에 입을 맞췄다. 최고의 공경과 복종의 표시였다.

리시아는 멍한 얼굴로 상점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김필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리시아의 몸속으로 들어간 그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녀가 주인으로부터 대족장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리시아는 여전히 엎드려 있는 상점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쿤의 여왕이시여.”

쿠다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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