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00화 (100/225)

# 100

칼베리언은 숙이고 들어갔다.

프리메우스가 사면을 조건으로 꺼내 놓을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리모스에 인간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느냐?”

“암컷 한 마리와 수컷 세 마리가 들어간 걸로 알고 있소.”

“그중 한 마리가 세이아칸에게 죽임을 당했다. 세이아칸은 그 한 마리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고 위아래로 손목을 돌려 구멍을 넓혔다.”

“그놈도 나와 같은 과인가 보네.”

칼베리언은 히죽 웃었다.

“아무튼 그 한 마리는 세이아칸에게 죽임을 당해 낭떠러지로 던져졌다. 그런데 멀쩡하게 살아나서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놈 불사신인가 보네.”

“아무리 불사신이라고 해도 심장이 파괴되면 살아날 수 없다.”

“아냐, 심장이 파괴되고도 살아난 자가 한 명 있었어.”

“헬칸을 말하는 거냐?”

“맞아, 헬칸은 살아났어. 신갑 헤를리온 덕분에 말이야.”

“그럼 길게 말할 필요 없겠구나. 그 헤를리온을 찾아오든지, 헤를리온의 주인을 제거하는 게 네 임무다.”

“그 불사신은 어디 갔지?”

“휴도니아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럼 나도 휴도니아 대륙으로 가야 한단 말이군.”

칼베리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걸 찾아오거나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머리를 가지고 와야, 너희들은 사면될 것이다. 물론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의 머리를 가져올 때 신갑 헤를리온도 있어야 한다.”

“만일 내가 신갑 헤를리온을 내주지 않고 꿀꺽해 버리면 어떻게 할 참이지?”

“그럼 너는 너와 가장 가까운 마족에게 죽게 될 게다.”

“나와 가장 가까운 마족이 누군데?”

“글쎄다, 그건 말해 줄 수 없구나. 아무튼 성실하게 임무를 완수해 주기를 바라겠다, 칼베리언. 그리고 지원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라. 감옥에는 죄수들이 넘쳐나니까 팍팍 지원해 주마.”

“나와 가장 가까운 마족이 누구냐고 물었다, 프리메우스.”

“클클클! 넌 아직 어려. 세상은 검으로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 몸에 가한 금제는 사면령을 내릴 때 함께 풀어 주도록 하마. 다음에 보자꾸나.”

프리메우스는 웃음을 흘리며 마법 통신구를 껐다.

“프리메우스! 프리메우스!”

칼베리언은 프리메우스를 불렀다. 하지만 꺼진 마법 통신구는 복구되지 않았다.

“그렇단 말이지?”

칼베리언의 얼굴에 한 겹 서리가 끼었다.

“켈러!”

칼베리언은 켈러를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군단장님!”

“휴도니아 대륙으로 갈 거다. 짐을 줄여라!”

“알겠습니다.”

켈러는 이야크를 몰아 블러드 데빌단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정리하라!”

“알겠습니다.”

“타앗!”

“차앗!”

블러드 데빌단은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야크를 달려가서는 검을 휘두르고 창을 찔러 넣었다. 곧 인간들이 있던 곳은 지옥으로 변했다. 쇠사슬에 묶여 도망칠 수도 없었던 그들은 도살장의 소보다 더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저 마을은 어떻게 할까요?”

켈러는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비긴 마을을 가리켰다.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켈러는 고개를 숙이고는 이야크를 몰아 비긴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나를 따라라!”

이어 우렁찬 외침이 들려오고 살겁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마족들이 이야크를 몰아 비긴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20분 후 허탈한 얼굴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냐?”

칼베리언은 켈러를 보며 물었다.

“텅 비었습니다.”

“비어?”

“우리가 온다는 걸 알아차리고 전부 도망친 모양입니다.”

“떠난 지는 얼마나 됐느냐?”

“각 집안에는 먼지가 뿌옇게 끼어 있었습니다. 최소한 2주 이상입니다.”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나온 것은 수색작업 때문이었다. 지하실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2주 이상이라…….”

칼베리언은 아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완벽한 걸 좋아한다. 이번 일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 헤를리온이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동하지 않은 것은 완벽한 일처리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마을 한 곳을 놓친 것이다.

왠지 찜찜함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만일 헤를리온 일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수색해서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없애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수천만 명의 잉여 몬스터를 없애는 일이.

“휴도니아와 경계인 차원의 벽은 어디 있지?”

칼베리언은 켈러를 보며 물었다.

“문 대륙 서쪽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의 위치도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군단장님!”

켈러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휴도니아 대륙과 경계를 이루는 차원의 벽은 물론이고 입구에 대해 상세하고 알고 있는 건, 칼베리언이 그곳도 잉여 마족을 없앴던 것처럼 없애 버릴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출발하라!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휴식은 없다!”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켈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블러드 데빌단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출발하라! 목적지는 휴도니아 서쪽이다!”

“이럇!”

“타앗!”

“차앗!”

쿠워워워! 쿠워워워!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이야크들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먼저 남쪽으로 내달린 그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 파괴했던 홀리 마을에 도착하여 다리를 이용해서 헤린느 협곡을 건넜다. 그러고는 쉬지 않고 서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20일 후 칼베리언을 비롯한 블러드 데빌단은 차원의 벽과 마주했다.

켈러가 차원 이동 마법진이 설치된 건물을 찾는 동안에 칼베리언은 차원의 벽 근처로 갔다.

차원 이동 마법진이 설치된 건물은 투명 마법으로 숨겨져 있어 정확한 좌표를 모르면 찾아 낼 수가 없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비슷하군.”

칼베리언은 차원의 벽을 바라보았다. 마계와 이곳을 막고 있는 차원의 벽과 차이가 없었다.

“하긴 같은 놈이 만들었으니까.”

“찾았습니다, 군단장님!”

그때 켈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베리언은 이야크를 몰아 켈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건물은 각 변의 길이가 30미터인 정사각형 구조였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차원의 벽 주위에는 이런 건물이 총 10개가 있습니다. 물론 차원을 넘을 때 한두 개만 사용하지만 나머지 건물에도 전부 차원 이동 마법이 설치돼 있습니다.”

“그래서?”

“차원의 벽을 연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사실 말이냐?”

“문 대륙에 뜨는 달이 휴도니아 대륙에도 뜬다는 사실입니다.”

“달이 같다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거냐?”

“특별한 게 아니고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중요한 의미?”

“같은 달이 뜬다는 건 휴도니아 대륙과 문 대륙이 서로 다른 차원이 아니라는 걸 뜻합니다.”

“하면 저건 뭐냐?”

칼베리언은 차원의 벽을 가리켰다.

“저 벽은 시간의 왜곡 현상이 만들어 낸 벽입니다.”

“시간의 왜곡 현상?”

“휴도니아 대륙보다 문 대륙의 시간이 한 달가량 늦게 가고 있습니다. 드반드쉬는 그 한 달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저 벽을 만들어 낸 겁니다. 저 벽을 유지하게 해 주는 에너지는 다름 아닌 문 대륙의 시간과 공간입니다.”

“한 달이란 시간과 공간이 차원의 벽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다?”

“그렇습니다.”

켈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에 있던 1천 년 동안 연구하여 알아낸 사실이었다. 물론 증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켈러는 자신의 이론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번에 증명해 보일 참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저 벽을 제거하면 굳이 차원 이동 마법진이 아니더라도 휴도니아 대륙으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이냐?”

“이론상 그렇습니다.”

“이론상?”

“아직 실험은 해 보지 못했으니까요.”

“좋다, 그럼 저 벽을 제거하는 방법은 뭐냐?”

“저 건물을 비롯하여 차원의 벽 주변에 세워진 10개 건물이 바로 차원의 벽에 시간과 공간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입니다.”

“저 건물이라고?”

칼베리언은 의아한 얼굴로 건물을 바라보았다.

시간과 공간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라는 건물은 정사각형에 불과하다. 저런 평범한 건물이 시간과 공간 에너지를 차원의 벽에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차원의 벽 주위에서 인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저 건물이란 말이냐?”

“차원 이동 마법진이 새겨진 저 건물이 부서지면 인간은 문 대륙을 오고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건 우리 마족이나 천족도 마찬가집니다. 문 대륙으로 오고 가기 위해서는 차원 이동 마법진이 있는 건물은 늘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 건물은 수만 년이 지나도 무너질 염려가 절대 없다는 말이구나.”

“그리고 저 건물이 무너지지 않은 이상 차원의 벽이 깨질 일도 없고요.”

“멋지다, 켈러.”

칼베리언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갑자기 차원의 벽이 무너지는 광경이 보고 싶어져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라, 켈러!”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켈러는 블러드 데빌단에게 각각 임무를 주었다.

아홉 팀으로 나뉜 블러드 데빌단은 차원의 벽을 따라 흩어졌다. 그리고 10일 후 흩어졌던 블러드 데빌단이 돌아왔다.

쉬익! 쉬익! 쉬이익!

차원의 벽은 쉬지 않고 거친 소리를 흘려댔다.

마치 숨이 넘어가기 직전 환자가 내쉬는 숨결 같았다. 바다처럼 평평했던 면은 파도가 치는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건물 주변에는 블러드 데빌단 대원 20명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1킬로미터 밖으로 물러났다.

“시작하라!”

켈러는 블러드 데빌단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전부 전투기갑을 걸치고 있었다.

“차앗!”

“타앗!”

“이야압!”

우렁찬 외침과 함께 블러드 데빌단 대원들이 검과 하나가 돼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건물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쉬이이익!

차원의 벽이 내쉬는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물러나라! 블러드 데빌단은 물러나라!”

켈러의 외침이 들려오자 건물을 부수던 자들은 일제히 이야크를 몰아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났다.

쩌억! 쩌억! 쩌억! 쩌억! 쩌억!

먼저 차원의 벽에 수천, 수만 아니 수억 개의 금이 생겨났다. 그 금은 무서운 속도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스아아악! 스아아아악! 스아아아악!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아래쪽에 거대한 공동이 있어 차원의 벽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가공할 기세로 빨려 들어가던 차원의 벽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는 물론이고 바위와 풀마저도 몽땅 삼켰다. 그러한 현상은 5분 이상 지속됐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휘이익!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칼베리언 일행의 코끝을 자극했다. 바람 속에는 특이한 향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다 냄새였다.

“하하하! 으하하하하!”

전면을 바라보던 칼베리언의 입에서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1킬로미터 전면, 조금 전 차원의 벽이 서 있던 자리에는 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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