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제1장 전투기갑을 부수는 힘
“천족은 얼마나 강하죠?”
리시아는 전면을 주시하며 물었다.
“천족은 제1계급부터 제5계급까지 다섯 계급이 있어요. 그중 제1계급은 신좌라고 부르는 자들로 인간으로 치면 황제를 비롯한 황제의 직계가족이라고 보면 돼요. 제2계급은 천좌라고 부르는 자들인데 제1계급의 친척들이 해당되고 제3계급은 공작 정도로 보면 될 거예요.”
“그럼 제4계급과 제5계급은?”
“제4계급은 귀족이고 제5계급은 대체로 평민들이죠.”
“구분은 어떻게 하죠?”
“제1계급부터 제3계급까지는 키가 3미터고, 제4계급은 2미터 50센티미터, 제5계급은 2미터예요.”
“그럼 조금 전에 나타났던 헬만이란 자는 2미터 50센티미터가량 됐으니까 제4계급이겠네요.”
“그렇죠.”
“부럽네요.”
“뭐가요?”
“제일 작은 자의 키가 2미터잖아요 거기에다 강하기까지 하고.”
“부러운 능력을 가진 것 맞네요.”
“루시안 공자와 제가 힘을 합치면 한 명 정도는 상대 가능하나요?”
“상대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이게 있으면 편하게 싸울 수 있어요. 오픈(Open)!”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헬칸을 꺼냈다.
“어머, 세상에! 전하는 그렇게 큰 검을 사용하세요?”
알마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큰놈을 잡을 땐 크고 무거운 검을 사용해야지.”
김필도는 무게 조절기를 끝까지 돌렸다. 그러자 헬칸의 무게는 40킬로그램으로 늘어났다.
“얼마나 무거운데요?”
알마니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헬칸을 보았다.
“들어볼 거야?”
김필도는 헬칸을 내밀었다.
“지가 무거워봐야……. 허미 쓰벌!”
헬칸을 잡았던 오른팔이 푹 꺼지자 알마니는 욕설을 내뱉었다.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어떻게 싸워요?”
알마니는 놀란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비록 지금은 검을 놓았지만 과거엔 날리던 검사였다. 그런데 김필도의 검은 휘두를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마족과 천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런 무기를 들 수밖에 없어.”
김필도는 헬칸을 천천히 휘둘렀다.
헬칸을 휘두르자 몸에 새겼던 마법진이 발동하며 근육을 강화시켰다.
“디자이너 알마니.”
김필도는 헬칸을 휘두르며 알마니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전하.”
“여기서 누렁이들을 전부 없애버리면 하다르만 백작이 어떻게 나올까?”
“꼬리를 말고 숨어버릴 거예요.”
“영주 열다섯 명의 복수는 어떡하고?”
“그 또한 잠시 보류하겠죠.”
“그건 좋지 않은데.”
“네?”
알마니는 눈을 끔벅이며 김필도를 보았다.
“나는 이 나라가 시끄러웠으면 좋겠어.”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 불구경과 싸움 구경인데 몰랐어?”
“호호호! 역시 대공 전하는 희한한 취향을 가지신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알마니는 호쾌하게 웃었다.
“지금부터 알마니 자넨 마나가 중첩된 장소를 찾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마나가 중첩된 장소에 비밀의 방이 있는 거예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스아악!
바로 그때 전면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하세요, 리시아.”
김필도는 헬칸을 들어 올렸다.
“알았어요.”
리시아는 센카를 가슴에 대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에서 검은 운무가 흘러나오더니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데쓰 와이어를 든 스파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도 착용해야 하는 거예요?”
알마니가 김필도를 보며 물었다.
“있어?”
“아주 오래전에 얻은 게 하나 있기는 해요.”
“그럼 착용해.”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알마니는 전투기갑을 착용했다. 그의 전투기갑은 빛의 종족이 착용했던 페라시온이었다.
“검은 없어?”
“검은 진작 버렸고 이런 건 하나 있어요.”
알마니는 아공간을 열어 특이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거대한 가위였다.
“가위로 싸우려고?”
김필도는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헬칸을 든 김필도보다 더 특이한 사람이 알마니였다.
“이게 이래봬도 사람 목을 얼마나 잘 자른다고요.”
알마니는 양손으로 가위 손잡이를 잡고 폈다가 오므렸다. 그러자 새파란 광채가 가위 날에서 흘러나왔다.
“마법 가위네?”
“쬐금 걸려 있어요.”
알마니는 가위를 어깨에 척 걸쳤다.
“죽이진 말고 부숴.”
김필도는 오른편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가 움직이자 리시아와 알마니가 따라나섰다.
스악!
바로 그때였다.
황금색 광채가 빠른 속도로 일행을 향해 쏘아져 왔다.
“앞은 내가 맡을게!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김필도는 빠르게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김필도 일행을 향해 달려가던 천족은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김필도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천족은 곧바로 검을 들어 올렸다.
“늦어!”
김필도는 차갑게 소리치며 헬칸을 횡으로 쓸었다. 헬칸의 날이 향하는 곳은 천족의 무릎이었다.
콰앙!
천족의 검보다 헬칸이 더 빨랐다.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가른 헬칸은 천족의 무릎으로 파고들어 갔다. 막 헬칸이 천족의 다리로 파고들려는 순간 김필도는 손의 힘을 약간 줄였다.
“커억!”
김필도를 향해 검을 내리찍던 천족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김필도의 헬칸은 천족의 다리를 절반가량 파고들어 간 채였다.
그 상태에서 김필도는 헬칸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헬칸을 끌어당기는 동작 또한 단순하게 당기는 게 아니었다. 손목을 꺾으면서 당겨 좀 더 깊숙이 잘랐다. 그러자 헬칸을 뽑아냈을 때 천족의 다리는 3분의 2가량이 잘려 나간 상태가 됐다.
“크어어억!”
천족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며 풀썩 주저앉았다. 황금색 광채를 뿌려대던 다리 부분의 전투기갑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헬칸에 어려 있는 혼돈의 기운 때문이었다.
“강철의 굴강, 노콴(Noqan)!”
김필도는 천족의 면상을 향해 오른발을 내질렀다.
비록 전투기갑 위라고 하지만 그의 다리에는 강철의 굴강 마법이 걸렸다.
퍼억!
그의 발은 정확하게 천족의 안면에 박혀들었다.
“아악!”
천족의 동체가 벌러덩 넘어갔다.
“오른쪽에 적이에요, 루시안 공자.”
“둘 다 날 잡아!”
김필도가 소리치자 리시아와 알마니는 김필도를 잡았다.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세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척!
조금 전 김필도가 있던 자리로 황금색 전투기갑을 걸친 자가 내려섰다. 다른 천족이었다.
“괜찮은가?”
천족은 쓰러져 있는 동료를 보며 물었다.
“놈의 검에 독이 발라진 것 같으니까 조심하라고 하게.”
김필도에게 당한 천족은 그의 다리를 가리켰다. 검은색으로 변한 다리는 좀처럼 원래의 색을 회복하지 못했다.
“포션을 바르게.”
“크아악!”
바로 그때 왼편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천족 사내는 비명이 들려온 쪽으로 급하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진 동료였다. 동료의 상태는 조금 전 보았던 자보다 더 심했다. 다리가 아니라 얼굴이 검게 물들어 가는 중이었다.
“전투기갑을 해제하게.”
천족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 알았네.”
얼굴이 검게 물들어 가던 천족은 바로 세이기온을 해제했다. 그러자 전투기갑이 사라지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바로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왼편에서 들려왔다.
“헉!”
서 있던 천족의 입에서 경호성이 흘러나왔다. 검은 동체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다.
그는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바로 그때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우웃!”
천족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왜소한 인간의 검과 부딪쳤을 뿐인데 그가 3미터나 밀려난 것이었다.
천족은 지금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동료는 지킬 생각이 없나 봐요, 누렁이 양반.”
알마니는 누워 있는 천족 앞에 내려서더니 가위를 쩍 벌려서는 천족의 목 위로 눌렀다. 그러자 가윗날 사이에 천족의 목이 낀 상태가 됐다.
“머, 멈춰라!”
김필도와 싸우던 천족이 질겁하여 소리쳤다.
“저놈보다는 네 목에 더 신경을 써야지.”
김필도는 천족의 허리를 향해 헬칸을 휘둘렀다.
“그러게 말이에요.”
알마니는 싱긋 웃으며 가위를 사정없이 오므렸다.
철컥!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천족의 머리가 싹둑 잘려 나갔다.
“죽인다!”
김필도와 싸우고 있던 천족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분노보다는 방어가 먼저였다.
천족은 급하게 검을 세워 옆구리를 방어했다.
원래는 지금과 같은 공격은 무시하고 반격을 해야 정상이다. 사소한 상처는 포션으로 금세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의 검에 독이 발라져 있다면 달라진다.
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세이기온을 해제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큰 덩치가 오히려 약점이 되고 만다. 독에 중독되지 않도록 방어를 하는 수밖에 없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강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휙!
바로 그때 검은 동체 하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천족은 검은 동체를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렸다. 아니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김필도의 검에 막혀 그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검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이에 작은 동체는 얼굴 근처까지 뛰어올랐다.
슉!
그리고 검은 물체 중 하나가 천족의 눈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것은 리시아의 데쓰 와이어였다.
“커억!”
천족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투기갑으로 방어가 불가능한 유일한 부위인 눈 속으로 데쓰 와이어가 파고 들어간 것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툭!
천족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머릿속이 엉망으로 변한 천족은 숨이 끊어지며 풀썩 쓰러졌다.
“저기다!”
“저기 있다!”
우렁찬 외침이 들려오고 천족 여덟 명이 일행을 향해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헬만도 포함돼 있었다.
“날 잡아.”
김필도는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리시아와 알마니는 빠르게 김필도를 잡았다.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이동!”
“이동!”
세 사람의 신형이 모습을 감추는 순간 천족들 또한 이동 마법을 펼쳐 김필도를 쫓아왔다.
“어둠의 벽으로 유인하십시오!”
어딘가에서 하다르만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진 놈!”
헬만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지금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신갑인 헤를리온을 얻기 위해 약하게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그 명령으로 인해 세 명의 부하를 잃고 만 것이다. 게다가 부하를 죽인 건 놈의 검이 아니라 독이었다.
비록 협공에 당했다고 하지만 하찮은 인간에게 천족이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죽음의 공간이라고 부르는 어둠의 장소로 유인하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하다르만이란 놈에 대해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곳으로 가야 놈이 밑천을 드러낼 겁니다!”
“그렇군.”
헬만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르만 백작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놈들을 오른편으로 밀어붙여라!”
헬만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