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02화 (102/225)

# 102

“이동!”

“이동!”

“이동!”

천족들은 이동 마법을 펼치며 김필도 일행을 쫓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김필도와 천족 일행 간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긴 했지만, 공격을 감행할 정도로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양측은 여전히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계속했다.

“막다른 곳이에요.”

팔에 매달려 뒤편을 살피던 리시아의 말에 김필도는 고개를 돌렸다.

마치 전혀 다른 공간처럼 어둠의 벽이 우뚝 서 있었다. 조금 전 하다르만 백작이 말한 장소인 듯했다.

“그렇네요.”

김필도는 그 자리에 멈췄다.

앞은 여덟 명의 천족이 반원을 그리며 포위하고 있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제 다 도망쳤느냐, 벌레.”

헬만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나왔다.

“누렁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걸 배수의 진이라고 해.”

“배수진?”

“뒤에 강을 두고 싸우는 전술이야.”

“물러서면 죽게 되니까 죽을힘을 다한다는 말이냐?”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렁이 너 나랑 맞짱 한번 뜰까?”

김필도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나와 싸우고 싶단 말이냐?”

헬만은 가소롭다는 듯이 픽 웃었다.

“네 왼팔이 아주 탐나서 그래.”

김필도는 헬만의 왼팔을 빤히 바라보았다.

“쿡, 벌레 주제에.”

헬만은 차갑게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독이 약간 우려되긴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하찮은 인간의 도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세이기온을 걸치고 싸우려고?”

김필도는 헬만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으음!’

헬만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금껏 벌레라고 불렀던 인간은 전투기갑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인데, 최고의 종족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은 세이기온을 걸친 채다. 설령 승리한다고 해도 어디다 말도 할 수 없는 창피한 승리가 될 게 분명하다.

“뭐 그래도 상관없어. 승리를 위해서는 뭘 못 하겠어. 안 그래?”

김필도는 헬칸으로 헬만을 겨냥하며 비아냥댔다.

“개자식! 오픈(Open)!”

결국 헬만은 세이기온을 해제했다.

“멋져, 누렁이.”

김필도는 헬만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활짝 웃었다.

“죽여주겠다, 벌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누렁이!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김필도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헬만을 향해 쏘아져 갔다.

“기다리고 있었다, 놈!”

헬만은 몸을 날려 오는 김필도를 보며 검을 번쩍 들어 올려 도끼질하듯 내리찍었다. 세이기온을 벗었다고 하지만 헬만의 움직임은 번개처럼 빨랐다.

김필도가 다가왔을 때 그의 검은 어느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누가 빠를까?”

바로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김필도의 헬칸이 헬만을 향해 쏘아져 가고 있었다. 두 검 중 어느 검이 빠를지 육안으로 파악하는 건 쉽지가 않았다.

헬만은 갈등했다.

검을 내리찍으면 분명 싸움을 끝낼 수가 있다. 하지만 김필도의 검 또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중이고, 설령 공격을 성공한다고 해도 몸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검에 발라진 독 때문에 작은 상처라고 해도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세이기온을 걸친 상태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젠장!’

헬만은 내리찍던 검의 방향을 바꿔 옆구리 옆에 수직으로 세웠다. 그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택했다.

콰앙!

둔탁한 소성이 헬만의 옆구리에서 터져 나왔다.

“헙!”

헬만은 헛바람을 삼키며 왼편으로 다섯 걸음이나 이동했다.

그는 질겁했다.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힘이 검을 타고 들어왔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흘려낼 수가 없었다.

파앗!

김필도는 물러나는 헬만을 따라붙으며 헬칸을 휘둘렀다. 이번에 그의 검이 노리는 곳은 헬만의 가슴이었다.

헬만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심장이 있는 가슴은 조금 전 옆구리보다 더 치명적인 위치다. 이번에도 역시 방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검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쿠와앙!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가 둘의 검에서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헬만은 다섯 걸음이나 옆으로 물러났다. 헬만은 2미터 50센티미터의 키지만 몸무게는 150킬로그램으로 왜소한 편에 속한다.

반편 김필도는 키는 작지만 몸무게 150킬로그램에 40킬로그램의 헬칸의 무게를 합치면 총 190킬로그램이다.

그가 헬만을 밀어붙이는 건 당연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김필도와 헬만 사이에서 둔탁한 소성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공격과 방어가 쉬지 않고 이어지면 방어하는 자가 먼저 지칠 수밖에 없다. 방어하는 동작은 힘을 줘서 밀어 올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헬만 또한 다르지 않았다. 훨씬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필도의 검을 밀어내야 했고, 더 많은 힘을 썼다.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검 손잡이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손바닥의 호구가 찢기며 흘러나온 피였다.

‘빌어먹을!’

헬만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찢겨 나간 호구에서 흘린 피가 검 손잡이를 적시자 미끄러워 제대로 쥘 수가 없을 뿐 아니라 힘을 실을 수도 없었다.

쇄애액!

그런데 김필도의 검은 또다시 다리를 향해 쏘아져 오고 있다. 검이 노리는 부분은 발목이었다.

헬만은 다급했다. 차라리 옆구리나 허벅지에 부상을 당하는 게 낫지 발목에 부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 아니 자칫 잘못하여 잘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더 빌어먹을 노릇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검을 수직으로 세워 방어한다고 해도 부딪치는 부분이 맨 아래쪽이기 때문에 힘을 제대로 실을 수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가지.

‘땅속 깊숙이 검을 박아 넣는 거지.’

생각과 행동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헬만은 허리를 숙여 검을 왼발 옆으로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의 검은 절반가량 파고들어 갔다.

콰아앙!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충격파가 검을 타고 들어와 온몸을 헤집었다.

‘헉!’

헬만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휙!

김필도의 신형이 불쑥 허공으로 떠올랐다. 헬칸을 타고 들어온 힘을 이용해서 도약한 것이었다. 쫙 펴졌던 무릎이 힘차게 오므려지는 순간 김필도는 강철의 굴강 노콴 마법을 무릎에 펼쳤다.

그때 헬만은 검을 바닥에 찔러 넣느라 허리를 잔뜩 숙인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쏘아져 오는 김필도의 무릎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넌 좆도 아냐, 새꺄!”

퍼억!

그의 무릎은 정확하게 헬만의 안면으로 파고들었다.

“크악!”

헬만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상체가 빠르게 뒤로 젖혀졌다.

턱!

바로 그 순간 김필도는 헬만의 배를 차고 2차 도약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1미터 이상을 솟구쳐 올라간 그는 헬칸의 손잡이 뒷부분으로 헬만의 입을 찍었다.

조금 전 니킥에 당한 그 부분이었다.

뚝! 뚝뚝뚝!

헬칸의 손잡이는 10여 개의 이를 부수고, 목구멍까지 짓이겨 놓았다.

“커억!”

헬만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입과 목에서 느껴지고,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신을 차려야…….’

그는 검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우선은 김필도를 떨어뜨려 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김필도는 헬만의 어깨를 박차고 세 번째 도약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신형은 헬만의 머리에서 1미터 위쪽에 있었다.

김필도는 헬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역시 그가 사용하는 부분은 검 손잡이였다. 그 상태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헬만의 어깨를 밟고 섰다. 19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자 헬만은 깜짝 놀랐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넌 누렁이가 아니라 누렁이보다 못한 놈이야.”

김필도는 헬칸의 손잡이를 힘껏 내리찍었다.

손잡이 끝이 파고든 부분은 우뚝 솟아 있는 헬만의 코였다.

“크아악!”

얼굴이 피범벅으로 변하고 코가 주저앉았다.

“개자식!”

헬만은 왼손과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파앗!

김필도는 헬만의 어깨를 강하게 차며 솟아올랐다. 네 번째 도약이었다.

그때 헬만은 그 자리에 빙빙 돌며 허공을 향해 검을 찔러 올리는 중이었다.

“나는 약속을 지킨다, 헬만.”

김필도는 헬만의 왼편으로 내려가며 헬칸을 강하게 내리 그었다.

스악!

헬칸은 헬만의 팔 상박을 가르며 지나갔다.

“크아아악!”

헬만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툭!

잘려 나간 팔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퍼억!

김필도는 바닥으로 내려섬과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헬만의 팔을 향해 헬칸을 휘둘렀다.

“천좌!”

“천좌!”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천족들이 일제히 헬만과 김필도가 있는 곳으로 쏘아져 갔다.

“신의 아들들도 하찮은 인간을 향해 협공을 하는 모양이지?”

김필도는 헬만을 보며 이죽거렸다.

“주겨! 저 새끼르 주겨 버리다고!”

헬만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부러진 이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차앗!”

“타앗!”

“이야압!”

천족들은 일제히 김필도 일행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들의 몸에서는 진득한 살기가 폭풍처럼 흘러나왔다. 조금 전 김필도의 말에 극한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신의 아들’. 그것은 곧 천족이 최고 종족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하찮은 인간에게 세 명이 죽임을 당하고, 수장인 헬만은 얼굴이 엉망으로 깨지고 왼팔마저 잃었다.

만일 지금 일이 천좌 세이아칸의 귀에 들어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오늘 일은 묻는 수밖에 없다.

“우리도 목숨을 걸겠다, 벌레!”

천족들은 비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제 어떡하죠?”

리시아는 김필도 옆으로 바싹 다가서며 물었다. 몸을 날려 오는 천족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어때?”

김필도는 알마니를 보았다. 뒤쪽의 검은 벽에 대한 물음이었다.

“마나로 이루어져 있어요. 입구는 없어요.”

“일단 놈들을 잡자! 내 옆에서 3미터 이상 떨어지지 마. 그리고 내가 소리치면 무조건 날 잡아. 알았지?”

“알았어요.”

“알았어요, 전하.”

리시아와 알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휘익!

바로 그때 먼저 도착한 천족이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해 왔다.

김필도는 앞으로 쏘아져 가며 헬칸을 들어 올렸다.

코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공간이 울릴 정도로 강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타앗!”

바로 그때였다.

리시아가 김필도를 공격한 천족을 향해 데쓰 와이어를 쏘았다. 섬뜩한 뭔가 쏘아져 오자 천족은 홱 고개를 돌렸다.

슉!

천족의 눈을 노렸던 데쓰 와이어는 천족의 전투기갑 세이기온에 흠집을 내고는 비껴 나갔다.

“인간 계집에게 특이한 무기가 있다! 조심하라!”

천족은 동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차앗!”

“타앗!”

“이얍!”

주의를 준 천족의 머리 위쪽에서 세 명의 천족이 뚝 떨어지며 김필도 일행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콰앙! 콰앙!

연거푸 세 번의 폭음이 김필도와 천족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세 번의 공격을 김필도가 전부 막아 낸 것이었다.

“으음!”

김필도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19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지녔고, 흘리는 기술을 마스터했다고 하지만 전력을 다한 천족의 검을 연거푸 세 번을 막아 내는 건 무리였다.

호구가 찢겨 나간 듯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이동!”

“차앗!”

“이동!”

기선을 잡은 듯 천족들은 무서운 기세로 공격을 해왔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콰앙!

김필도는 천족의 검을 막으면서 계속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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