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18화 (118/225)

# 118

“나는 그곳을 우리 발탄 제국 영토로 만들고 싶소.”

결정을 내린 듯 황제는 입을 열었다.

“문 대륙은 천족과 마족 측에서도 탐을 내고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폐하.”

“하지만 그들의 대륙과 문 대륙과는 차원의 벽으로 막혀 있소. 즉 문 대륙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이들은 우리밖에 없다는 거네. 문 대륙은 주인이 없이 방치된 지 수천, 아니 수만 년이 지났고. 그런 장소는 먼저 깃발을 꽂는 자가 주인인 거네.”

“천족과 마족 측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나는 헬모트 공작을 비롯한 경들을 믿네. 그리고 우린 지난 수천 년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네. 결코 천족이나 마족에게 밀린다고 생각지 않네.”

“전쟁도 불사한단 말씀이십니까?”

“전쟁을 먼저 시작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그쪽에서 원한다면 피할 생각도 없네.”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새로운 땅이 발견되면 가장 먼저 그곳이 내 땅임을 선포하고, 두 번째로는 정착민을 이주시키고 마지막으로 총독을 임명하여 다스리게 하면 되네.”

“총독을 임명해 보내실 생각입니까?”

“굳이 총독이 아니라도 상관없네. 대공을 보내도 되네.”

“대공이라고요?”

헬모트 공작은 의아한 얼굴로 황제를 보았다. 제국에 대공은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한 명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에 공중 정원에서 죽었다. 그런데 황제는 문 대륙에 대공을 보내겠다고 한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로군벌의 반란 때문에 정신이 없나 보구먼.”

“제가 놓친 거라도 있습니까?”

“헤닐에서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가 발견됐네.”

“네?”

헬모트 공작은 깜짝 놀랐다.

그는 얼른 한편에 걸려 있는 지도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헤닐이란 지명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헤닐은 프라넬 대평원 서쪽에 있는 도시네. 펠콘에서 물건을 산 상인들이 프라넬 대평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쉬었다 가는 도시네.”

“그럼 그가 프라넬 대평원으로 들어갔단 말입니까?”

“그렇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을 타고난 모양이군요.”

“공중 정원 아래쪽은 호수 아닌가. 폭발의 와중에 죽지 않고 떨어졌다면 살아날 가능성은 아주 높네.”

“그렇군요.”

“그래서 나는 그 운 좋은 녀석을 이용할 참이네.”

“어떻게 이용하신단 말씀이십니까?”

“나는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에게 차원 수리공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오면 영지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네. 그건 경들도 알고 있을 거네.”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

“문제는 공국 수준의 영지를 주려면 최소 인구가 백만이 넘어야 하는데, 우리 발탄 제국에는 그런 영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거네. 물론 공작들이나 후작들이 영지를 내놓겠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어떤가?”

황제는 공작과 후작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영지를 내놓겠다는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다.

공작과 후작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말처럼 공국이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인구는 백만가량은 돼야 한다.

많은 땅을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작은 땅덩어리 안에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라야 할 것이다.

그런 곳은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밖에 없다.

문제는 상공업 도시에서 걷히는 세금이 엄청나다는 사실이다. 인구 백만가량 되는 상공업 도시를 두 개만 보유하고 있으면 예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엄청난 도시를 아무런 조건 없이 넘길 리가 없을 터였다.

“그건 이곳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영지를 가진 다른 귀족들과도 상의를 해봐야 할 입니다, 폐하.”

헬모트 공작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다른 귀족의 땅을 내놓은 것에는 대해서는 찬성이지만 그의 땅을 내놓는 건 죽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에게 문 대륙을 맡기려는 거네. 문 대륙을 반탄 제국 부속 공국으로 선포하고,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을 공국의 왕으로 임명하여 자치권을 줄 참이네.”

‘영악한 자.’

헬모트 공작은 내심 신음을 내뱉었다.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에게 준다는 건 곧 문 대륙을 황실의 소유로 하겠다는 뜻이다. 즉 공작이나 후작들은 문 대륙에 침 흘리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그리고 북쪽 해안선을 따라 새롭게 제국의 영토가 된 땅도 일단은 그대로 둘 참이니까 그렇게들 아시오.”

“문 대륙과 오가는 부두를 건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헬모트 공작이 넌지시 물었다.

“우선 여덟 개 정도를 건설할 생각이오.”

“황실에서 건설할 겁니까?”

“부두 건설권은 영주에게 줄 생각이오. 부두를 건설하는 영주는 문 대륙을 오가는 여객선을 운영할 권한을 갖게 될 거요.”

“세금은 얼마나 걷을 참이십니까?”

“운임의 30퍼센트가 될 거네.”

“저는 참여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참여 신청을 한 사람은 헬모트 공작이었다. 그는 문 대륙으로 오가는 여객선을 운영하여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그가 바라는 건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북해의 수자원이었다.

여객선을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파견하고 생선을 잡게 되면 부두 건설비보다 몇 배의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저도…….”

안에 있던 모든 귀족이 부두 건설 공사에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저예요, 아빠!”

바로 그때였다.

드보르칸 후작의 품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후작의 딸인 올가 드보르칸 남작이었다.

“죄송합니다, 통신 마법구를 두고 왔어야 하는데.”

드보르칸 후작은 황제를 비롯한 일행에게 사과의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곳으로 가서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북로군벌과 서로군벌에서 침공을 해왔어요!”

통신 마법구에서 다시 올가 드보르칸 남작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멈추시오, 후작!”

황제는 급하게 드보르칸 후작을 불렀다.

황제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드보르칸 후작은 걸음을 옮길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며 통신 마법구를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드보르칸 후작은 소리쳐 물었다.

“북로군벌에 의해 드발, 콘힐, 리셀라가 점령됐고, 서로군벌은 헤르빌, 에르만디, 베르당 영지를 점령했어요. 다른 영지들 또한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여섯 영지가 함락당하는 동안 아무도 연락을 해주지 않았단 말이냐?”

드보르칸 후작은 답답한 얼굴로 소리쳤다.

“각 영지당 6만 명가량이 일거에 쳐들어온 모양이에요. 손쓸 겨를도 없이 당했다고 해요. 각 영주들이 처형을 당했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어요.”

“다른 영지 상황은 어떠냐?”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협력 영지 열 곳 중 여섯 개의 영지가 당했다면 전쟁은 이미 패했다고 봐야 한다.

“서로군벌 북로군벌을 합치면 40만 명에 육박해요, 아빠. 우린 40만 병력을 막아낼 여력이 없어요.”

“다른 영주들께 도움을 청해보마.”

“사흘 안에 우리를 도와줄 영주가 있을 거라고 보세요?”

“사흘밖에 없단 말이냐?”

“그것도 길게 잡은 거예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우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어떤 선택 말이냐?”

“이곳에 남아 결사항전을 하다가 죽는 거와 몸을 피해서 훗날을 도모하는 거요.”

“병사들을 데리고 피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느냐?”

“이곳에 가족이 있는 병사들은 데리고 가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요.”

“하면?”

“마법사나 기사들 중에서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함께 갈 수 있는 자들만 데리고 갈 거예요.”

“잠깐 생각 좀 해보자. 통신 마법구는 계속 열어놓고 있어라.”

드보르칸 후작은 통신 마법구에서 마나를 제거한 후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얼굴엔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북로군벌이 있는 고칸 성 지역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는 보고를 며칠 전 받았다. 그래서 좀 더 자세한 상항을 파악하여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보고가 올라오기도 전에 북로군벌이 볼삭 지역을 침략했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올가 드보르칸 남작 말이 맞네, 후작. 설사 여기서 후작을 돕기 위해 병력 파견을 결의한다고 해도 늦고 마네. 지금은 철수가 우선이네.”

황제는 결정을 내렸다.

병력을 집결시키는 데만 해도 한 달 이상 걸리고 볼삭 지역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역시 한 달 이상 걸린다. 그렇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두 달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당할 걸 빤히 알면서 대항을 권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퇴각할 방향입니다.”

“병력은 얼마나 되는가?”

황제는 물었다.

“올가의 말대로라면 가족이 있는 자들은 그곳에 남길 수밖에 없다고 했으니까… 2천 내외일 겁니다.”

“그럼 잡힐 일은 없겠구먼.”

“마법사 5백 명이 포함돼 있으니까 따라잡힐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영지로 오시오, 후작.”

가장 먼저 드보르칸 후작가의 병력을 청한 사람은 헬모트 공작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남쪽의 헬싱턴으로 오시오.”

두 번째로 입을 연 사람은 이콰라 공작이었다.

“나는 언제라도 환영이오.”

“나도…….”

“나도…….”

노르탄 공작을 비롯한 후작들이 서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드보르칸 후작은 공작들과 후작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 도움을 주겠다며 나서는 것 같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5백 명의 마법사다.

전쟁이 확전으로 이어질지, 지금 상태에서 마무리될지 어떤 장담도 못한다. 이런 경우에 영주들이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전력 확충인데, 마법사 5백 명이면 엄청난 전력이다. 서로 받아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건 당연했다.

“어떻게 하겠는가?”

황제는 드보르칸 후작을 보며 물었다.

“말은 고맙지만 일단 딸아이를 만나본 후에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겠소, 드보르칸 후작.”

“나도 그렇소.”

“나도 그렇소.”

공작과 후작들은 앵무새처럼 ‘나도 그렇소.’를 되풀이했다.

“후퇴를 어디로 할 생각인가?”

“지금 당장 피할 곳은 프라넬 대평원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콰라 공작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드보르칸 후작이 말한 프라넬 대평원은 서로군벌이 있는 펠콘과 이콰라 공작가가 있는 헬싱턴에 걸쳐 있기 때문이었다. 프라넬 대평원으로 온다는 말은 곧 그에게로 온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세.”

황제는 벽면에 걸린 지도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콰라 공작가 병력은 이곳에 매복을 해서…….”

황제가 가리킨 곳은 프라넬 대평원의 동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검은 선의 초입이었다. 거긴 평균 깊이가 5백 미터에 달하는 협곡으로 ‘어둠의 틈’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드보르칸 후작가의 기사와 마법사를 쫓아온 자들을 치는 거네.”

“그럼 저희 기사와 마법사는 적을 동로군벌과 서로군벌로 유인해야겠군요.”

드보르칸 후작이 말했다.

“그들의 기세를 꺾어놔야 남하를 저지할 수 있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드보르칸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콰라 공작은 어떻게 하겠는가?”

“매복을 지시하겠습니다, 폐하.”

“좋네. 일단은 그렇게 정리하도록 하세.”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폐하.”

드보르칸 후작은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프라넬 대평원으로 갈 참인가?”

“먼저 가서 약속 장소를 정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게.”

“그럼.”

공작들을 향해 목례를 한 드보르칸 후작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자, 이제 당사자가 나갔으니까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보세.”

“실질적인 이야기라 하심은…….”

헬모트 공작은 황제를 바라보았다.

“헬모트 공작은 드보르칸 후작이 볼삭 영지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그건…….”

“그가 병력을 지원해달라면 지원해주겠는가?”

황제는 연거푸 물었다. 하지만 헬모트 공작은 대답하지 못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가장 확실하게 지켜지는 곳이 바로 정계다. 인정상, 도의상 도와준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 대가 없는 도움은 있을 수 없고, 대가는 투자 대비 두 배 이상은 돼야 한다.

하지만 드보르칸 후작이 가진 거라고는 5백여 명의 마법사가 전부다. 도움을 주는 대신 마법사를 달라고 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드보르칸 후작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해도 마법사들이 움직일지 그건 미지수다.

결국 드보르칸 후작가는 지원을 해줘봐야 받아낼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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