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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김필도-121화 (121/225)

# 121

김필도는 쿠다가 가리킨 숲을 바라보았다. 프라넬 대평원에서 나무를 보는 건 쉽지 않다. 특히 키가 30미터 이상 되는 나무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데 쿠다가 가리킨 숲에는 족히 50미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하이 트리라는 나무로 이곳에서만 자라는 종입니다.”

“혹시 특이한 마나와 관련이 있는 거야?”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와본 적 있어?”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신병을 알았던 이는 없었습니다.”

“그럼?”

“전해 내려오는 말로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럼 내림굿을 하는 방법도 모르겠네?”

“내림굿은 뭡니까?”

“신병을 치료하는 의식 말이야.”

“대충 알고 있기는 한데 효과가 있다고 장담은 못 합니다.”

“행칼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내림굿도 제대로 못하고. 모르고 못하는 것투성이네.”

“죄송합니다, 마스터.”

“쿠다가 죄송할 일은 아니잖아. 아무튼 저 둘을 치료하려면 무조건 행칼을 찾아가야 한다는 거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일단은 가보자.”

김필도는 곧바로 블랙칸 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아공간을 열고 양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물통을 꺼내 안장에 걸고는 들것에 누워 있는 리시아를 품에 앉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여전히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옷은 벗겼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덮어주었던 천은 흠뻑 젖어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김필도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리시아 양, 물 마셔야 해요. 마시지 않으면 탈진으로 죽어요.”

리시아의 귓전에 대고 소리치고는 물통의 입구를 입에 대고 물을 흘려 넣었다. 처음엔 물을 받아 마시지 못했다. 그러다가 김필도가 다시 소리치자 그때부터 조금씩 넘기기 시작했다.

김필도는 물통을 계속 대주었다.

물통의 물을 절반가량 마시고 나자 리시아는 더 이상 물을 넘기지 않았다. 물통을 아공간으로 넣고, 리시아를 들것에 뉘인 다음 아래로 내려왔다.

“응?”

김필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차가운 기운이 유령처럼 숲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 차가운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살기였다.

“느꼈어?”

김필도는 베른과 쿠다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적인 것 같습니다.”

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백 명입니다.”

이어 쿠다가 대답했다.

“아베다.”

“말씀하십시오, 마스터!”

“지금부터 네 임무는 리시아 양과 알마니를 지키는 거야. 그 정돈 할 수 있겠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스터.”

“그래. 베른 자넨 왼편, 쿠다 자넨 중앙을 맡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쿠다는 전방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죽이다 보면 누군가 말하겠지.”

“그렇군요. 먼저 가겠습니다, 마스터.”

쿠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어둠 속으로 폭사돼 갔다.

“숲에서 싸울 땐 큰 무기가 좋겠지?”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헬칸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베다 50미터 뒤에서 천천히 나를 따라와!”

“저 안은 너무 어둡습니다, 마스터.”

“시체를 보고 따라오면 될 거야.”

김필도는 히죽 웃으며 몸을 날려 숲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크아악!”

최초의 비명이 어둠 속 어디선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비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비명이 정적을 대신하여 숲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이었다.

스악!

퍽!

스스스스!

어둠을 가른 대검이 나무로 박혀들고, 곧 통나무를 잘라버릴 것처럼 힘차게 끌어당긴다.

그러자 나무는 피로 물들고 위장포로 나무에 붙어 있던 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목이 잘린 시체로 변한 사내는 힘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살인자는 말없이 이동했다.

어둠의 숲으로 숨어든 1천 명의 용병.

1급 2백 명, 2급 3백 명, 3급 5백 명, 총 1천 명이 동원됐지만 용병들은 김필도, 베른, 쿠다의 상대가 아니었다. 세 사람의 무기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숨을 거뒀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할케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는 죽음의 숲 일 선에 3급 용병 5백 명을 배치했고, 이 선에 2급 용병 3백 명, 그리고 삼 선에 1급 용병 2백 명을 배치했다.

그런데 딱 2시간 만에 일선이 완전히 무너지고 이 선이 무너지는 데는 1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삼 선의 1급 용병이 죽임을 당하는 중이다. 그런데 아직 적을 없앴다는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 즉 단 한 명의 적도 없애지 못했는데 8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게 청부를 받지 말았어야지.”

나직한 목소리가 할케인의 왼편에서 들려왔다.

할케인은 고개를 돌렸다.

“프리우스 대공!”

할케인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온몸이 피에 젖은 채 걸어오는 자는 김필도였다. 김필도의 어깨 위에는 헬칸이 올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빅 소드 용병단은 내 신분이 대공이라는 걸 알고도 청부를 수락했다는 뜻이네?”

“상대를 모르면서 청부를 받을 수는 없지.”

할케인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김필도 말고는 다른 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할케인 근처에 있는 호위 용병의 수는 총 20명. 6명 전부가 아니고 대공 혼자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를 호위하고 있는 20명의 용병은 1급이 아닌 특급이었다.

“그러니까 감히 용병 나부랭이가 발탄 제국 대공을 없애려고 했다는 거지?”

“발탄 제국 대공은 맞지만 그림자지.”

할케인은 피식 웃었다.

“그림자 대공은 설사 살해한다고 해도 뒤탈이 없다?”

“그래서 억울하면 권력을 잡으라고 하는 말이 있지 않나.”

할케인은 뒤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볼트가 특급 용병 20명을 데리고 나왔다.

용병들은 반원을 그리며 김필도를 향해 걸어왔다.

“억울하면 권력을 잡아라! 좋은 말이야.”

김필도는 히죽 웃었다.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닐 텐데?”

할케인은 비아냥댔다.

“빅 소드 본부가 아비라에 있던가?”

“그렇다.”

“용병들은 전부 몇 명이지?”

“3천 명이다.”

“얼마 후면 아비라는 용병과 어쌔신의 시체로 인해 죽은 도시가 될 거야.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에게 검을 들이댄 놈의 최후가 어떤지를.”

“건방진 놈! 죽여!”

할케인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차앗!”

“타앗!”

“이야압!”

세 명의 용병이 강한 기합과 함께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용병들의 움직임은 웬만한 기사보다 더 나았다. 번쩍 들어 올린 검에서는 뿌연 광채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라 블레이드였다.

놀랍게도 빅 소드 용병단의 특급 용병은 오라 블레이드를 구현할 수 있는 강자였던 것이다.

“특급 용병이 어떤 자들인 줄 아느냐? 전부가 전직 기사 출신이다, 놈!”

할케인인 차갑게 중얼거렸다.

기사단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다양한 인간들이 있다. 즉 모든 기사가 명예를 최고의 선이라 여기고, 정의를 수호하며 약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체질적으로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도 있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를 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대부분 빼어난 실력자들이다. 그래서 웬만한 사고나 범죄는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뛰어난 검술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기사단에서 퇴출당하고 만다.

초창기엔 다른 기사단으로 옮겨 다시 시작하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금세 사고를 치고 범죄를 저지른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갈 곳이 없게 된다.

모아놓은 돈이라도 어느 정도 있다면 프리랜서라고 부르는 자유기사 생활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기사단에서 퇴출당한 자들치고 돈을 모아둔 자는 거의 없다.

결국 굶주린 그들이 갈 곳은 용병단이다.

용병단은 기사 출신은 특히 우대를 한다.

비록 죄를 짓거나 사고를 쳐서 퇴출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지닌 인맥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력 또한 빼어난 자들이 아닌가.

유명 기사단 출신이란 사실이 증명되기만 하면 최고 대우인 특급을 주게 되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20명도 전부 전직 기사 출신이다.

차앙!

스악!

“커억!”

“크악!”

“그들은 가장 약한 자들이다, 놈!”

특급 용병 두 명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할케인은 중얼거렸다.

슈캉!

“아악!”

이번엔 검과 용병의 목이 동시에 잘려 나갔다.

“경시할 수 없는 놈이다! 전력을 다하라!”

용병들 중 누군가 고함을 내질렀다.

“나는 ‘놈!’이 아니라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이다, 개자식들아!”

김필도는 앞으로 다가오는 용병의 머리를 향해 헬칸을 도끼질하듯 힘차게 내리그었다.

“차앗!”

용병은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수평으로 눕혔다.

차앙!

바로 그 순간 커다란 소성이 검에서 터져 나왔다.

슈캉!

막아냈나 싶었던 용병의 검이 가운데서 부러졌다. 그러자 김필도의 헬칸은 벼락처럼 용병의 머리를 쪼개갔다.

“크아악!”

머리로 파고들어 간 헬칸은 용병의 사타구니로 빠져나왔다. 김필도는 빠져나온 헬칸을 역수로 쥐고는 뒤편으로 쭉 찔러 넣었다.

푸욱!

헬칸은 뒤편에서 달려들던 용병의 뱃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컥!”

용병의 입이 쩍 벌어졌다.

츄악!

김필도는 헬칸을 뽑아냄과 동시에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헬칸을 횡으로 휘둘렀다.

스악!

헬칸은 방금 배를 찔렸던 용병의 목을 할퀴듯 훑고 지나갔다.

둥실!

피를 뿌리며 둥실 떠오르는 용병의 머리를 바라보며 헬칸을 들어 올렸다.

차앙!

차가운 금속성이 들려오고, 헬칸에 강함 힘이 실렸다. 헬칸을 강하게 밀어내며 오른편으로 쓸어내듯 휘둘렀다.

스악!

또 하나의 머리가 걸려들고, 잘려 나간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를 바라보며 헬칸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차앙!

여전히 같은 쇳소리가 들려온다. 수평으로 눕혔던 헬칸을 수직으로 세웠다. 위에서 누르는 기사의 검이 상당히 강하게 대항을 하는 것 같지만, 힘을 쓰기 시작하면 저절로 활성화되는 실전 마법을 당할 수가 없다.

어느새 헬칸은 70도가량 세워져 있었다.

김필도는 그 상태에서 손목을 틀어 헬칸 날의 방향을 아래로 바꾸면서 강하게 찍었다.

퍼억!

헬칸은 용병의 어깨뼈를 자르며 깊숙이 박혔다.

거의 폐까지 뚫고 들어간 헬칸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아악!”

용병의 몸은 한 방에 사선으로 잘려 나갔다.

뒤편으로 향한 헬칸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왼손을 더하여 양손으로 쥐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내달리며 힘차게 내리그었다.

이번에 김필도의 상대는 할케인의 심복인 이볼트였다.

2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인 이볼트는 힘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한 자였다. 그는 자신의 검에 모든 힘을 불어 넣고는 힘차게 들어 올렸다.

차앙!

날카로운 소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다른 용병과는 달리 이볼트의 검은 부러지거나 잘려 나가지 않았다.

강화 마법이 걸려 있는 마법검이기 때문이었다.

“여기도 있다, 놈!”

김필도가 다시 공격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왼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할케인이었다. 김필도는 헬칸의 방향을 틀어 할케인의 목을 향해 쓸어갔다.

차앙!

할케인 역시 이볼트와 마찬가지로 김필도의 헬칸을 막아냈다. 그의 검 역시 강화 마법이 걸린 마법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만 부러지지 않았을 뿐 충격파는 고스란히 할케인의 내부에 전해졌다.

“으음!”

할케인은 신음을 내뱉으며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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