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27화 (127/225)

# 127

김필도의 시선이 리시아에게로 향했다.

“올랜도 미들헤임의 복수를 하러 왔나 봐요.”

“그럼 오늘은 최상급이 어느 정도 실력을 지닌 자들인지 경험하는 날이 되겠군요. 오픈(Open)!”

블랙칸에서 내려온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고 헬칸을 꺼냈다.

“저는 루시안의 진짜 실력을 보게 될 테고요.”

“내 실력이 그렇게 궁금해요?”

“실력은 이미 알죠.”

“그런데요?”

“루시안 공자가 지닌 전투기갑이 궁금하다는 거죠.”

“다른 사람과 별 차이 없는데.”

“그래도 궁금해요.”

“아무튼!”

김필도는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헤를리온을 소환했다.

스스스!

그러자 그의 가슴에서 검은 기체가 흘러나와 상체와 하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헤를리온을 걸친 김필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머나 세상에. 어쩜 저렇게 멋진 디자인을!”

관심 어린 얼굴로 김필도를 바라보던 알마니가 홀린 듯 중얼거렸다. 크로 시절부터 수많은 전투기갑을 봐 왔지만 김필도의 전투기갑처럼 멋진 전투기갑은 처음이었다. 공기의 저항은 최소화하면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디자인이었다.

“적장의 머리를 들고 다시 보자고.”

슈악!

광속의 바람 라콰를 펼친 김필도의 신형이 숲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차앗!”

“타앗!”

“이얍!”

김필도가 뛰어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최상급 다르들이 달려들었다. 최상급답게 다르들의 움직임은 빨랐다. 그들은 단숨에 20미터 거리를 주파했다.

김필도를 보며 달려가는 다르들의 얼굴엔 비릿한 조소가 배어 있었다. 김필도가 들고 있는 거대한 검 헬칸 때문이었다.

전투기갑은 전사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주기는 하지만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부여해주진 않는다.

그 말은 곧 기존에 사용하던 무기를 바꾸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 키보다 더 큰 대검을 들고 있으니 우습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는 들어 올리는 것도 버거울 거다, 촌놈!”

정면에서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가던 다르는 조롱하듯 말했다.

“그럴까?”

김필도는 방긋 웃으며 정면으로 달려오는 다르를 향해 헬칸을 들어 올렸다. 언뜻 보면 그의 동작은 상당히 느린 것 같았다.

“그런 느린 동작으로…… 헉!”

대검을 들었으니까 동작이 굼뜰 거라는 건 다르의 생각일 뿐이었다. 허공에 멈췄던 헬칸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원래 다르의 계획은 왼편으로 피하고 난 후 김필도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리게 올라갔던 대검이 벼락이 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르는 정신없이 검을 들어 올려 머리를 방어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앙!

다르의 롱 소드를 일거에 잘라낸 헬칸은 투구를 뚫고 들어갔다.

“크아악!”

다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차앗!”

“타앗!”

김필도가 헬칸을 들어 올리는 순간 광포한 외침과 함께 두 명의 다르가 쏘아져 왔다. 한 명은 하체를 노리는 듯 잔뜩 웅크린 채고, 다른 한 명은 상체를 노렸다.

둘은 비슷하게 달려오는 것 같지만 약간의 시간 차가 있었다. 김필도의 하체를 노린 자가 반 호흡 앞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김필도가 하체를 방어하는 사이에 뒤쪽에 있는 자가 전투기갑을 무력화시키는, 심장을 공격하기 위한 포진이었다.

김필도는 헬칸을 비스듬히 늘어뜨렸다.

“타앗!”

우렁찬 외침과 함께 헬칸이 오른편 아래쪽에서 왼편 위쪽으로 검은 궤적을 남겼다.

차르릉! 차르릉!

쇠를 잘라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다르 두 명이 우뚝 멈췄다.

쩌억! 쩌억!

투둑! 툭! 츄아악!

두 조각으로 잘려 나간 다르 두 명의 몸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섀도 기능을 사용하라!”

누군가 고함을 내지르자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가던 다르들의 동체가 일제히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광속의 바람 라콰(Laqwa)!

바로 그 순간 김필도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슈아앙!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나간 그는 헬칸을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슈캉! 슈캉! 슈캉! 슈캉!

“크악!”

“아악!”

“으악!”

“커억!”

잘려 나간 머리가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척!

“혼돈의 바람, 라콰 카이!”

김필도는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곧바로 공간 이동 마법을 펼쳤다.

번쩍!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춘 그가 나타난 곳은 30미터 전방이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헬칸을 횡으로 쓸었다.

“으악!”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또다시 네 개의 머리가 떠올랐다.

“2조는 공격하라! 폭풍 찌르기를 시작하라!”

상황을 지켜보던 바탈리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두 명이 조를 이뤄 하체와 상체를 공격하는 방법은 다수가 한 명 또는 소수를 공격할 때 자주 써먹는 기술의 하나로, 성패는 호흡에 달렸다.

더불어 처음 공격한 조가 실패를 한다 해도 대기하고 있던 다른 다르 두 명이 곧바로 공격에 가담하여, 공격의 강도는 약해지지 않는다. 적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어야 비로소 끝이 난다고 하여 ‘무한 찌르기’라고 부른다. 1조 대원들이 사용한 공격 방법은 그 무한 찌르기였고, 거기에다 섀도 기능까지 더했다.

섀도 기능을 이용한 무한 찌르기 공격은 어둠의 상단 다르가 지닌 최고의 공격 기술이다. 그런데 대공의 몸에 검 한번 대 보지 못하고 일방적인 도살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악!”

“으아악!”

“크아악!”

“빌어먹을 계집.”

바탈리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작은 동체 하나가 아군 다르를 격살하고 있다. 작은 동체는 다름 아닌 암흑 상단 가주인 리시아 히나시스일 터였다.

그런데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 육안으로 파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지옥의 무기라는 데스 와이어의 주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듯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3조, 4조, 5조는 나서라!”

3개 조 60명에게 다시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호호호! 아무튼 다르 자식들은 비겁한 짓에서는 최강이야. 너희들이 이겼다, 자식들아. 이거나 먹어라!”

나직한 웃음과 함께 환한 광채가 죽음의 숲을 밝혔다.

“헉! 에, 엘라하의 빛!”

바탈리는 경악했다.

어둠의 숲을 환하게 밝히는 광채는 다르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엘라하가 뿜어내는 광채였다.

사실 엘라하의 빛을 쬔다고 해서 다르의 목숨이 위험하거나 힘이 약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엘라하의 빛은 다르의 최강 기술 중의 하나인 섀도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설마 여섯 명 중에 빛의 전사 엘라하가 포함돼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건 섀도 기능으로 몸을 숨긴 채 김필도 일행을 향해 쏘아져 가던 다르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엘라하의 빛으로 인해 모습이 드러나 당황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김필도의 검 헬칸과 리시아의 데스 와이어, 그리고 알마니와 함께 싸움에 뛰어든 베른, 쿠다, 알마니의 검이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슈캉! 스악! 퍽! 카카캉!

“아악!”

“악!”

“컥!”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비록 최상급 다르라고 하지만 김필도 일행 또한 약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실전 마법으로 무장한 김필도와 바람의 정령왕 실레카의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리시아, 불의 정령 전사 세다크로 각성한 알마니, 행칼에 다녀오면서 더욱 강해진 쿠다와 아베다, 암흑 상단 최강 검사 베른. 그들의 검을 쉽게 막아낼 만한 다르는 없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두세 명의 목을 잘라냈다.

그들 중 김필도와 리시아의 활약은 엄청났다.

김필도는 이동 마법과 공간 이동 마법을 잇달아 펼치며 다르를 도륙했다.

그의 무기는 오른손에 든 헬칸과 왼손 손목에 끼워진 정령의 방패였다. 그는 굳이 그 두 가지를 휘두르지 않았다. 양팔에 힘을 준 채 방패와 헬칸을 들고만 있었다.

이동 마법을 펼칠 때 나오는 가공할 속도가 바로 최강의 살인 기술인 것이다. 방패와 검을 든 채 빠른 속도로 다르를 스치고 지나가면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벌써 그의 손에 죽어 간 다르의 수가 2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땅이 김필도 세상이라면 하늘은 리시아 세상이었다.

바람의 정령왕 실레카의 힘을 이용하기 시작하자 데스 와이어는 더욱 빠르고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전에는 맨살은 쉽게 잘라냈지만 기갑 기사의 전투기갑까진 무리였다. 그런데 바람의 힘이 실리면서 데스 와이어는 전투기갑마저도 한 번에 잘라버리는 엄청난 무기로 변했다.

날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다르를 도륙했다.

다르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전부 나서라!”

바탈리는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다르 1백 명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새롭게 투입된 1백 명의 다르는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김필도 일행은 더 빠르고, 더 잔인하게 다르들을 도륙했다.

“흐름의 광풍 쿠라 라콰(Kura laqwa)!”

“악!”

“으악!”

“아아악!”

김필도의 신형이 흐르는 물처럼 다르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고 곧이어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헬칸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머리가 부서져 죽은 시체들이 생겨났다.

다르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말도 안 돼.”

바탈리는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라라고 부르는 최상급 다르 2백 명은 어둠의 상단 최강 전력이자 전부다. 그런데 그들이 단 여섯 명에게 무너지고 있다.

아니 그들을 무너뜨린 자는 두 명, 대공과 리시아 히나시스뿐이다.

바로 지금 부하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고, 그들이 흘린 피에서 풍겨 나오는 혈향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죽는 건 정상이고, 너희들을 죽이는 건 말이 안 된다면 내가 너무 섭섭하잖아.”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바탈리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특이하게 생긴 전투기갑을 걸친 김필도가 10미터 전방에 서 있었다.

바탈리는 급하게 전투기갑을 착용하고 검을 뽑았다.

부하들 선에서 끝날 거란 생각에 전투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겠지? 파라온!”

김필도의 외침에 마신의 팔찌와 오테르의 인장이 서로 공명하더니 거대한 덩치가 김필도 옆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다, 권능의 주인.

“나도 반가워.”

-또 한 건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내가 원한 건 아냐.”

-원래 절세의 영웅이 돼 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권능의 주인. 시기하는 자, 질투하는 자, 모함하는 자, 없애려고 하는 자들 때문에 늘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랬다, 권능의 주인.

“……!”

김필도는 고스트 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험! 그런데 무슨 일로 불렀는가?

“저쪽 어딘가에 늙은 마법사 한 명이 있을 거야.”

-알았다, 권능의 주인!

휙!

고스트 킹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갔다.

“이제 우리 일을 마무리 지어 볼까?”

김필도는 빙긋 웃으며 바탈리를 보았다.

바탈리는 할 말을 잃었다.

여섯 명도 벅찬데 이젠 3미터 키의 최상급 마족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문득 머나난 숲에 나타났다는 마족에 대한 보고서가 떠올랐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머나먼 숲에 나타났던 자들 중에는 최상급 마족 한 명이 포함돼 있다고 하였고, 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그 보고가 맞았다.

3미터 키의 거대한 덩치는 숨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강한 기운을 뿌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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