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제5장 폭풍의 전사 라쿤
“씨팔!”
샤일록은 왼편 가슴을 가만히 그러쥐었다.
갑자기 헬만의 이야크 창에 구멍이 났던 왼편 가슴이 아파왔다. 그날 놈에게 들었던 벌레라는 말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샤일록, 자넨 포션 덕분에 살았지만 난 리모스에서 세이아칸에게 죽었었어.”
“죽어요?”
샤일록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맞아, 놈이 내 목을 그러쥐고는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어. 그러고는 검을 좌우로 돌려 심장을 완전히 부순 다음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지.”
“호, 혹시 대공 전하의 심장은 오른편에 있습니까?”
“아니.”
“그럼?”
“지금 내 몸에는 심장이 없어. 아니 가짜 심장이 달려 있다고 보면 돼.”
“가짜 심장이라고요?”
“헤를리온.”
“맙소사! 그러니까 대공 전하께서 신기 헤를리온의 주인이란 말입니까?”
문 대륙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던 탓에 샤일록은 전설의 신기 헤를리온에 대해 알고 있었다.
“헤를리온으로 심장을 튜닝하고 나오다가 대천신군의 천좌10군의 제1군인 세라핌을 만났어. 그 녀석을 없앴는데, 그놈이 죽으면서 나에 대한 걸 보고한 모양이야.”
“헤를리온에 대해 보고를 했단 말입니까?”
“내가 걸친 갑옷이 헤를리온이라는 건 모르니까 짐작이겠지.”
“죽었던 자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헤를리온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군요.”
“맞아. 그래서 헬만이란 놈이 이곳으로 왔어.”
“차원의 벽이 열리기 전에 와서 펠콘 성으로 먼저 간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아. 아무튼 천족이 휴도니아 대륙으로 들어오자 마족들도 선발대를 보냈는데, 그들이 바로 칼베리언이라는 놈이 수장으로 있는 블러드 데빌단이야.”
“블러드 데빌단까지 넘어와 있단 말입니까?”
“파르탄 이코스트를 종으로 부리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이끌고 있는 칼베리언이란 놈도 나와 악연이 있다는 거야.”
“도대체 문 대륙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겁니까?”
샤일록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마계10군단의 전 군단장인 히데우스의 후계자라는 걸 알면 기절하겠구나.”
“그만해요.”
샤일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듣고 있다가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쟁은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카판숍 오픈은 당분간 접어두고 전쟁 물자를 비축해야지.”
“아무래도 지금 바로 명령을 내려놔야겠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샤일록은 통신 마법구를 꺼내 할먼 상단의 집사와 연락을 취했다.
“저쪽으로 가서 해.”
“할먼 상단의 주인은 대공 전하십니다.”
“돈과 아이디어가 있다고 모두가 사업에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 할먼 상단은 자네 거야. 나는 작은 지분만 가지고 있는 거고.”
“지분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통신 마법구에 상대방의 얼굴이 나타나자 샤일록은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김필도는 자리를 떴다.
비록 돈과 아이디어를 댔다고 해도 사업에 대해서는 샤일록에게 철저하게 맡기기로 하였으니까 끼어들어서는 안 될 터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샤일록이 연락을 끝내기를 기다렸다.
10여 분이 지났을 때 샤일록은 김필도 곁으로 다가왔다.
“사업에도 관심을 좀 가져주십시오, 전하.”
“각자 잘하는 걸 하자고. 샤일록 자넨 사업을 잘하니까 사업을 하고, 난 패 죽이는 걸 잘하니까 전쟁을 하는 거야.”
“아무튼.”
샤일록은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플라잉 상단은 어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네.”
“그럼 최대한 은밀하게 사들여야 하겠네?”
“그렇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정보?”
“마족으로 보이는 자들을 북해에서 봤답니다.”
“얼마나 되는데?”
“열 척의 배에 나눠 타고 왔다고 했으니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7백 명 이상입니다.”
“움직이는 방향이 어딘지 알 수 있어?”
“그건 모른답니다.”
“추가 병력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것 같습니다.”
“알았어. 마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어야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당부를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식량 좀 구할 수 있어?”
“이곳에 있는 자들 먹일 식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사와 마법사는 벨라로 잠입해 들어갈 거니까 가족들이 먹을 것만 있으면 돼.”
“벨라로 쳐들어간다고요?”
샤일록은 깜짝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알마니가 벨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하기에 무슨 말인가 했다. 그런데 그게 벨라 침공 때문이었다.
“자네 생각은 어때?”
“미치지 않고서야 2천 명 가지고 어떻게 이콰라 공작을 공격하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아마 드보르칸 기사단과 마법단이 벨라로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휴도니아 대륙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럼 성공을 자신해도 되겠네?”
“내기를 하라면 대공 전하께 전 재산을 걸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건 됐고, 자넨 1천 명이 먹을 식량만 준비해주면 돼.”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샤일록은 품속에서 벨라 지도를 꺼내 내밀었다.
“어떤 내용이지?”
“기사단 숙소는 물론 이콰라 공작 일가가 머물고 있는 물의 궁 비상 탈출로까지 전부 표시가 돼 있어요.”
“고마워.”
“천만에요.”
“아무튼 자넨 절대 얼굴을 내밀어선 안 돼. 전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암중에서 조정을 해. 가급적이면 할먼 상단도 숨기고 유령 회사를 하나 건립해서 거길 통해 거래하는 게 나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새 회사를 만들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럼 자넨 여기서 떠나.”
“이거 받으십시오.”
샤일록은 아공간을 열더니 자루 하나를 꺼내 김필도에게 내밀었다.
“뭔데?”
“1천만 골듭니다.”
“돈은 내게도 있어.”
“전쟁을 하다 보면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우선은 이걸 쓰십시오.”
“내게 줄 돈 있으면 군수물자나 사 모아.”
“이 돈은 한 달이면 들어옵니다, 대공 전하. 걱정 마시고 쓰세요.”
“그래?”
“네.”
“알았어, 고마워.”
“대공 전하 돈입니다. 고마워할 돈이 아닙니다.”
“아무튼 잘 쓸게.”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고개를 숙인 샤일록은 마법 스크롤을 이용해서 자리를 떴다.
샤일록이 떠나자 김필도는 모닥불가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드보르칸 후작과 그의 딸 올가, 그리고 뱅글러 자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가지만 정확하게 지켜지면 돼. 하나는 정한 시간 안에 이콰라 공작의 목을 자르고 벨라를 점령해야 한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벨라 점령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1천 명의 가족이 벨라로 들어와야 한다는 거야.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가족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잘해야 해.”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그리고 이거 받아.”
김필도는 벨라의 지도를 드보르칸 후작에게 건넸다.
“작전 기간은 얼마로 하면 좋겠습니까?”
지도를 받아 든 드보르칸 후작이 물었다.
“15일 정도면 될까?”
“벨라로 잠입해 들어가고, 어지간히 자리를 잡으려면 최소 20일은 주셔야 합니다.”
“좋아, 그럼 20일로 하자고.”
“그렇게 알고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드보르칸 후작은 지도를 가지고 그의 숙소로 향했다.
그가 다시 김필도 일행 앞으로 온 것은 2시간 후였다.
“오늘부터 내보내도 5일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식비는 줘서 보내야 하는데, 돈은 있어?”
“당분간 버틸 정도는 있습니다.”
“일단 그걸 먼저 분배해.”
“알겠습니다.”
드보르칸 후작은 고개를 숙이고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로부터 1시간 후, 4명이 한 조가 된 드보르칸 기사단과 마법단 대원들이 은밀하게 프라넬 대평원을 떠났다.
물론 그들이 움직이는 곳은 정상적인 통로가 아니라 프라넬 대평원의 북쪽과 남쪽의 낭떠러지였다.
그곳을 이용해서 아래로 내려간 마법사 1명과 기사 3명은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슬픔은 배우자를 잃는 거고, 그 다음은 자식을 잃는 슬픔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정략결혼을 올렸던 부인보다는 자식에 더 집착했고, 더 사랑했던 노인.
그는 다름 아닌 어둠의 상단의 전대 가주이자 10인 위원회 위원 중의 한 명인 헤이먼 샤칸 미들헤임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헤이먼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아들이 그보다 먼저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10인 위원회 위원 자리도 아들에게 넘겨주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손자를 먼저 보내고, 이젠 아들까지 보냈다.
잃은 건 아들뿐만이 아니었다.
최상급 다르 2백 명.
그들은 어둠의 상단이 신의 정원 최강 가문이 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 그들의 몰살은 극심한 타격을 의미한다. 아니 그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들인 하다크 미들헤임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 큰 손실이었다. 게다가 아들과 손자의 복수는 어둠의 상단이 몰락하느냐 마느냐는 판단 기준이 되고 말았다.
자식의 복수도 못 하는 자가 다른 부하의 목숨을 책임진다는 건 모순이라는 명제로 확장되면 가문은 곧바로 몰락하고 만다.
“루시시아아안!”
헤이먼의 입에서 분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샤우트 마법이 걸린 모양이었다. 헤이먼 전면 벽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루시아아안!”
쿠아아아앙!
우직끈!
남아 있던 부분이 찢겨 나가고 커다란 정원에 있던 나무들이 강풍에 노출된 것처럼 부러져 나갔다.
“몰토!”
분노가 조금 가라앉은 걸까. 그는 평소처럼 총집사를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숙였다.
“다르를 전부 집결시켜라! 그리고 놈의 행방을 찾아라!”
“알겠습니다.”
너무 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손자와 자식의 죽음으로 분노한 헤이먼에게 몰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분간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르를 집합시키러 가는 그때 아론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회주님!”
몰토는 아론을 향해 인사를 했다.
“헤이먼은 어디 있느냐?”
“방에 계십니다.”
“다르를 집결시키라고 하더냐?”
“어둠의 상단 소속 전 다르를 집합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알았다. 가 봐라.”
“그럼!”
몰토가 자리를 뜨자 아론은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