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42화 (142/225)

# 142

“달걀이라고?”

“달걀로 바위 치기 할 때 그 달걀 말이야.”

“설마 드보르칸 후작가?”

“딩동댕!”

김필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마, 말도 안…….”

“광속의 바람 라콰!”

슈아악!

김필도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갔다.

도하 백작은 다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김필도가 검을 쪼개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콰앙!

“컥!”

도하 백작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단 한 번의 충돌이었다. 그런데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스아아악!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자세를 채 잡기도 전에 거대한 대검이 목을 향해 쏘아져 왔다.

도하 백작은 검을 왼편으로 휘둘렀다. 방어만 해서는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받아쳐서 공세로 전환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콰앙!

하지만 받아친다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모든 힘을 쏟아부었지만 검은 맥없이 오른편으로 사정없이 밀렸다. 도하 백작은 오른편으로 1미터가량을 빠르게 이동했다.

스악!

바로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대검이 머리를 쪼개 왔다.

“젠장!”

도하 백작은 훌쩍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화르르!

불행히도 그가 들어간 곳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안이었다. 거의 무결점의 갑옷이 전투기갑이라고는 하지만 한 가지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열기와 한기를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유일한 약점이면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쳐 오자 도하 백작은 당황했다.

“타앗!”

바로 그때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불길에 휩싸인 무기 하나가 도하 백작의 목을 향해 쏘아져 왔다.

도하 백작은 막을 겨를도 없이 허용하고 말았다.

슈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아악!”

그리고 처절한 비명과 함께 도하 백작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그가 쓰러짐과 동시에 전투기갑이 기체로 변해 전투기갑의 근원이 있는 가슴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시체로 변한 도하 백작의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가공할 열기에 의해 가루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호호호!”

나직한 웃음과 함께 불길 속에서 전투기갑을 걸친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가위를 무기로 사용하는 그는 알마니였다.

“불 속에서도 괜찮아?”

김필도는 알마니를 보며 물었다.

“불의 정령 전사 세다큰데 당연히 괜찮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네. 그런데 전투기갑이 도움이 되긴 해?”

“원래 세다크의 힘으로는 사람의 머리를 한 번에 가루로 만들지 못해요, 대공 전하.”

“그럼 강해진다는 거구나.”

“그런데 왜 그러세요?”

“남아도는 전투기갑을 쓸 곳이 방금 생각났어.”

“공중 정원에 있는 1천 개요?”

“응!”

“라쿤에게 하나씩 준다고 해도 1백 개밖에 안 되잖아요.”

“거기에 105개를 더 추가해야 해.”

김필도는 빙긋 웃으며 오른편 허공을 보았다. 그러자 허공이 일렁였다.

그곳에 숨어 김필도를 따르고 있는 두 사람은 라헤나와 다란이었다.

“그만 나갈까?”

김필도는 불길이 활활 오르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공 전하는 괜찮아요?”

알마니가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철족은 대장장이 종족이었어. 내가 걸친 전투기갑은 대장장이 대장이 걸쳤던 헤를리온이고.”

김필도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김필도와 알마니는 밖으로 나왔다.

성의 정문 앞에는 드보르칸 후작을 비롯한 마법사들과 라쿤들이 모여 있었다.

“몇 명이나 빠져나갔소?”

“50여 명이 빠져나갔습니다.”

“딱 좋네.”

김필도는 본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편.

이콰라 성 본관 건물은 발칵 뒤집혔다.

이콰라 공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쉽게 잠이 들기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지고 마는 그는 경보가 울리고 경비 기사의 숙소가 불타고 비명이 들려왔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둘째인 바이칼 이콰라가 깨우자 그때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적이 침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콰라 공작은 깜짝 놀라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콰라 성 경비를 맡고 있는 경비 기사 2백 명은 이콰라 기사단 기사들 중에서 가장 강한 전사들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부가 전투기갑 소유자였다.

그런 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느긋하게 3층 회의실로 향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회의실에서 차를 마시며 두 번째 보고를 받았다. 그 보고는 다름 아닌 마법사 녹슨과 그의 세 제자의 살해 소식이었다.

그 말을 듣자 비로소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둘째에게 성 밖에 머물고 있는 이콰라 기사단에 연락을 취하라고 했다.

바이칼은 급하게 통신실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세 번째 보고를 해 왔다. 그것은 통신실이 완전히 파괴돼 통신이 불가능하다는 보고였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법사 녹슨이 죽고, 통신실마저 파괴됐다면 이곳에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네 번째 보고를 받았다.

그것은 경비 기사 50명이 도망쳐 왔다는 보고였다. 그것은 뒤집어 보면 50명만 남고 나머진 전부 죽었다는 말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직도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이콰라 공작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침입해 온 자들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공작 각하, 불입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고 총집사 카산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기사의 성에 불이 났다는 건 이미 보고 받았다.”

“기사의 성이 아니라 벨라 전역에 불길이 오르고 있습니다.”

“벨라 전역에 불길이 올랐다고?”

이콰라 공작은 문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간 그는 옥상으로 나갔다.

“이럴 수가…….”

이콰라 공작은 넋을 잃었다.

카산의 말 대로였다. 벨라 곳곳에는 시뻘건 불길이 넘실대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긴 이콰라 기사단 숙솝니다, 아버지.”

바이칼 이콰라는 오른편을 가리켰다. 화마에 뒤덮인 높은 건물이 보였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7층 건물인 그곳은 이콰라 기사단 3천 명이 기거하는 숙소였다.

그곳에 불길이 올랐다는 건 이콰라 기사단도 당했다는 의미였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어둠을 뚫고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5백 기 이상입니다, 아버지.”

말발굽 소리로 인원수를 가늠해 보던 바이칼 이콰라가 소리쳤다.

“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삐익! 삐익! 삐익! 삐익!

이콰라 공작이 소리치는 순간 요란한 소리가 정원에서 터져 나왔다. 침입자가 있을 때 반응하는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행은 급하게 옥상 가장자리로 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백여 명에 달하는 기갑 기사들이 빠르게 이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공작 각하! 놈들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피하십시오.”

경비 기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쏘아져 나가는 경비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죽여라!”

“죽여라!”

“뭉개라!”

“뭉개라!”

본성을 향해 달려오던 자들은 광포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쏘아져 왔다.

이콰라 공작은 긴장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콰콰콰쾅! 쾅쾅!

양측은 거칠게 부딪쳤다.

“아악!”

“크악!”

“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잘려 나간 머리가 둥실둥실 떠올랐다.

“으음!”

이콰라 공작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같은 전투기갑을 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 기사는 적의 상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경비 기사 10여 명의 머리가 잘려 나가고 나머지는 물러나는 중이었다.

이콰라 공작은 고개를 들어 성문 밖을 바라보았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아버지, 피해야 합니다.”

장남 힐이 이콰라 공작을 보며 말했다.

“수장이 전쟁터를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 줄 아느냐? 자칫 잘못하면 우린 모든 것을 잃을 수가 있다, 힐.”

“여긴 제가 남겠습니다, 아버지.”

“네가 남겠다고?”

“전 이콰라 가문의 장남입니다. 비록 그동안 제 역할을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장남 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힐!”

“으악!”

“아악!”

“크악!”

“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라! 자리를 사수하라!”

두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

“죽여라!”

“뭉개라!”

“아악!”

“으악!”

이콰라 공작은 성 밖과 아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말발굽 소리는 훨씬 가까워진 듯했다. 하지만 적은 이콰라 기사단 기사들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

“아버지, 어서 가십시오.”

“알았다, 힐. 며칠만 버텨라. 내가 영주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올 테니까 며칠만 버텨라.”

이콰라 공작은 큰아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제가 있는 이상 놈들은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할 테니까요.”

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생 바이칼 이콰라를 보았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 이콰라 공작가의 미래를 걸었다. 발탄 제국 황제 중의 한 명인 바이칼의 이름을 딴 그 하나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유명한 황제 이름으로 짓지 못했던 것은 다른 이들에게 야심을 들킬까 봐 조심하느라 그랬다.

단 한 번도 동생 앞에서 장남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형님!”

바이칼 이콰라는 착잡한 얼굴로 형을 보았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이틀에서 삼 일 정도일 거야. 그 안에 돌아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형님!”

“서둘러, 바이칼!”

힐은 아래로 내려가는 문이 있는 곳으로 내달리며 소리쳤다.

“알았어요. 가요, 아버지.”

바이칼 이콰라는 아버지 이콰라 공작을 데리고 힐을 쫓아 달렸다.

4층으로 올라온 힐은 계단 앞에 멈춰 서서 아버지와 동생을 보았다.

4층 아버지 침실에 지하로 내려가는 간이 이동 마법진이 있다. 아버지와 동생은 그곳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서 본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 이콰라 성을 빠져나갈 것이다.

“힐!”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

힐은 아래층으로 내달렸다.

“크악!”

“아악!”

“으아악!”

“가자, 바이칼!”

이콰라 공작은 아들의 손을 잡고 그의 침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맨 안쪽으로 가서 바닥의 카펫을 걷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새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올라라!”

이콰라 공작은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네, 아버지!”

“아악!”

“으아악!”

“크아악!”

“뚫렸다! 이콰라 그놈을 찾아라!”

“난 이콰라 공작가의 장남 힐이다! 누가 나의 검을 받겠……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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