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스스스! 스스스!
그들의 가슴에서 일제히 검은 운무가 흘러나오고 위아래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어둠의 전투기갑 프라이온을 걸친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있는 8백 명은 암흑 상단 소속 다르로, 그들 중 3백 명은 암흑 상단의 비밀 세력인 헨이고, 5백 명은 다센 왕국으로 파견 나갔던 1천 명 중에서 명령에 따라 이곳으로 온 자들이었다.
즉 파견 보냈던 1천 명 중 5백 명은 아론에게로 돌아섰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리시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절반밖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상급 다르 3백 명과 중급 다르 2백 명으로, 암흑 상단 최정예는 돌아온 셈이었던 것이다. 비율로 따지면 아론을 따르는 자들은 3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다.
“대공을 따라라!”
“조온!”
8백 명의 다르는 일제히 소리치며 김필도를 쫓아 내달렸다.
“저건?”
몬슨 후작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가 아는 드보르칸 후작이 보유한 기갑 기사의 총 수는 3백여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공을 따르는 자들은 거의 8백여 명에 육박하고 있다.
쿠워워워워억!
느닷없이 전방에서 이야크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선두에서 달리던 블랙칸이 상체를 번쩍 쳐들며 함성을 내지른 것이었다.
파악!
두두두두! 두두두두!
그리고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질풍처럼 영지 연합군 진영을 향해 내달렸다.
“헐!”
김필도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다란은 어이가 없었다. 김필도 앞에는 3만 명의 기사가 있고, 기사들 뒤편엔 20만 명의 대군이 있다. 말이 쉬워 23만 명이지, 세워 놓고 보면 뒤쪽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대군을 향해 혼자 달려가는 김필도의 모습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저러다 말겠죠, 뭐.”
옆에 있던 라헤나가 낮게 말했다.
“그, 그렇겠죠?”
“그럴 거예요!”
라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아요.”
바로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란과 라헤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야크를 타고 달려가던 리시아가 바로 옆에 떠 있었다.
“우리가 보여요?”
라헤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나는 헨 족의 부족장이고 암흑 상단의 상단주예요.”
“바람의 정령 실레카와는 어떻게 되는 사이죠?”
“서로 돕는 사이 정도로 알면 돼요. 그런데 댁들은 누구죠?”
“난 제52대 바르칸 라헤나 드반드쉬예요.”
“네?”
리시아는 깜짝 놀랐다.
“내 이름을 알아요?”
“행칼에 있던 그분 아닌가요?”
“맞아요. 저 사람 덕분에 깨어났어요.”
라헤나는 김필도를 가리켰다.
“마, 말도 안 돼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해요. 그보다 저 사람이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나요?”
“네.”
“적이 몇 명인지 아세요?”
“당연히 알죠.”
“그런데도 멈추지 않을 거라고요?”
“그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나 먼저 갈게요.”
리시아는 김필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런 사람이래요.”
라헤나는 다란을 보았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거죠?”
“무모한 사람이란 뜻인 것 같아요.”
“물러가지 않으면 죽는다!”
그때 김필도의 외침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시선을 돌렸다.
영지 연합군과의 거리가 3백 미터도 남지 않았는데도 김필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아무래도 저 저 친구에게 감동 받을 것 같습니다.”
다란은 김필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이없다거나 황당하다는 말은 쑥 들어가고 ‘멋지다’라는 단어만 남았다. 그 말 외엔 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요. 내가 몇 천 살만 젊었어도 대공에게 대시했을 거예요.”
라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칸은 지금도 충분히 예쁘십니다.”
“호호호! 말이라도 고마워요.”
“공격하라!”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영지 연합군 진영에서도 살기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기사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 사람은 몬슨 후작이었다.
“와아!”
“우와아!”
기사들은 우렁차게 고함을 내지르며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3만에 달하는 기사가 동시에 달려 나가는 광경은 엄청났다. 기사들의 선두에는 전투기갑을 걸친 기갑 기사 1천5백여 명이 서 있었다.
“마법사들은 공격하라!”
몬슨 후작에 이어 드보르칸 후작의 입에서도 공격 명령이 터져 나왔다.
5백 명의 마법사들은 일제히 헤이스트 마법을 펼쳐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물러가는 놈은 살려준다!”
김필도는 재차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통할 상황이 아니었다. 기사들은 성난 소처럼 콧김을 씩씩대며 김필도를 향해 달려왔다.
“그럼 남는 건…….”
차차창! 창창! 창창!
그의 이야크 창 라콰가 수십 개의 점을 허공에 남겼다. 하지만 그 점은 환창을 펼칠 때 찍었던 점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이번에 찍힌 점은 단순한 점이 아니었다.
바람의 창 라콰가 남긴 점에는 폭풍의 마나가 응축돼 있었던 것이다.
퍽! 퍽! 퍽! 퍽! 퍽!
“크악!”
“아악!”
“으아악!”
김필도를 막아섰던 자들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졌다.
김필도의 환창 앞에서 전투기갑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려 750!”
쿠워워워워억!
블랙칸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전투마들을 짓밟으며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블랙칸의 길을 터주는 건 김필도의 손에 들린 바람의 창 라콰였다.
김필도의 창 다루는 기술은 신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중간을 잡고 노를 젓는 것처럼 휘둘러 좌우측 적의 목이나 몸통을 잘라내고, 순식간에 라콰 뒤쪽을 잡고 전방을 찔러 넣어 앞에서 달려오는 기갑 기사들을 없앤다.
그리고 때로는 도끼질하듯 후려쳐서 기갑 기사의 머리를 부쉈다.
김필도가 기갑 기사를 없애는 사이에 블랙칸은 네 발과 몸통으로 말을 짓밟아 죽였다.
쿠워워워!
블랙칸은 비키지 않으면 죽이고 말겠다는 듯, 살기 어린 소성을 쉬지 않고 토해냈다.
“달려라!”
“멈춰라!”
“앞으로 달려라!”
느닷없이 영지 연합군 기사 진영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 전투마가 김필도와 블랙칸이 뿜어내는 가공할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었다. 1인 1수가 뿜어내는 살기가 너무 강해,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몇몇 전투마가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칠 김필도가 아니었다.
그는 광포하게 고함을 내지르며 기갑 기시들을 없애며 적진 깊숙이 파고들었다.
“헨과 다르는 공격하라!”
“먼저 전투마의 다리를 자르고 목을 쳐라!”
리시아의 외침에 이어 베른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콰콰쾅! 쾅쾅! 쾅쾅쾅!
“라쿤은 공격하라!”
쿠쿠쿵! 쿵쿵!
“아악!”
“으아악!”
“크아악!”
김필도 후미에서도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을 내지른 자들은 영지 연합군 기갑 기사들이었다. 기갑 기사들의 선두가 무너지자 영지 연합군의 진격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마법사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마법사들의 목표는 기갑 기사들이 아니라 기갑 기사 후미에서 따르고 있던 기사들이었다. 더불어 마법 또한 강한 마법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파이어 볼이나 아이스 애로 같은 기본적인 마법으로 기사들을 공격했다.
비록 기본 마법이지만 4클래스 또는 5클래스 마법사들이 펼치자 기사들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순식간에 기사 진영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들의 작전은 일선의 기갑 기사들이 적과 교전을 시작하면 이 선의 기사들은 지원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원을 하기도 전에 기갑 기사들이 무너지고, 머리 위쪽에서는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린다. 정신을 차리고 대응할 경황이 없었다.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기갑 기사들의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놈들이 물러난다! 더욱 몰아쳐라!”
드보르칸 후작은 좌측과 우측으로 날아다니며 마법사들을 독려했다. 더불어 마법을 펼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7클래스 유저인 그의 마법은 광범위한 살상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리 그의 마법이 작렬하는 곳에서는 수십 명이 동시에 몰살을 당했다.
엄청난 마법으로 기사들을 도륙하고 있는 건 드보르칸 후작뿐만이 아니었다. 드보르칸 후작과 1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올가 드보르칸이 기사들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마법 주문이 흘러나오고, 지팡이가 기사들에게로 향하는 순간 대여섯 명의 기사들은 화염에 휩싸이거나, 얼음으로 변해 쓰러졌다.
그녀는 적을 없애고 난 후 잠깐의 여유 시간에 주위를 살폈다. 우연히 그녀의 시선에 김필도가 잡혔다.
김필도는 기갑 기사 진영을 뚫고 들어가 지금은 일반 기사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중이다.
그의 이야크 창은 검처럼 휘두르는 것도 가능했다.
이야크 창이 커다랗게 원을 그릴 때마다 기사들의 머리가 둥실둥실 떠오른다.
그는 이야크 창을 검처럼 휘둘러 적의 기사를 없애고 있었다.
“1단계는 성공이네.”
그녀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뿌우! 뿌우! 뿌우!
바로 그때였다.
영지 연합군 진영에서 퇴각하라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사들은 철수하라!”
“퇴각하라!”
기사들에게 철수 명령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영지 연합군 기사들은 도망치듯 물러났다.
“죽여라!”
“쫓아라!”
“쫓아라!”
드보르칸 후작과 리시아, 쿠다는 도망치는 기사들을 쫓아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크아악!”
“으아악!”
“아아악!”
“아악!”
헨과 다르와 라쿤의 무기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영지 연합군의 기갑 기사들과 일반 기사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궁병은 준비하라!”
헤론 백작은 고함을 내질렀다.
총 사령관은 몬슨 후작이 맡고 있지만 병력의 운용에 대한 건 대부분 헤론 백작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궁병은 준비하라!”
“궁병은 준비하라!”
병사들 진영에서 복창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장궁을 든 자들이 선두로 나왔다.
그들은 나오자마자 좌우로 정렬했다.
영지 연합군이 보유한 궁병의 수는 5만 명인데, 지금 활 쏠 준비를 하는 자들은 1대 5천 명이었다.
“준비된 궁병은 쏴라!”
“준비된 궁병은 쏴라!”
“준비된 궁병은 쏴라!”
좌우측에서 발사 명령이 떨어지고, 먼저 2천5백 명의 궁병이 시위를 놓았다.
스스스스! 스스스스! 스스스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엄청난 수의 화실이 김필도 진영을 향해 날아갔다.
“멈춰!”
김필도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화살이 날아오는 걸 알고 있던 일행은 일제히 그 자리에 멈췄다. 그 사이에 영지 연합군 기사들은 그들 진영으로 돌아갔다.
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2백여 미터를 날아온 화살은 김필도 일행과 영지 연합군 사이로 박혀들었다.
“엄청나네.”
김필도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화살은 거의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박혀 있다. 전투기갑을 걸친 기갑 기사들에게는 문제가 아니겠지만 일반 기사나 마법사, 그리고 라쿤에게는 치명적인 무기가 바로 화살이었다.
“물러나!”
김필도는 물러나라는 지시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