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48화 (148/225)

# 148

일행은 천천히 뒤편으로 물러났다.

“2대는 1백 미터를 전진하라! 나머지 대는 준비하라!”

헤론 백작의 외침이 터져 나오고 후미에 있던 5천 명이 앉아 있는 궁병들 사이로 지나가서는 전방에 정렬했다. 1열당 2백 명씩 25열이었다.

“2대는 활을 쏘고, 3대는 준비하라! 병사들은 궁병을 따라 진격하라!”

헤론 백작은 고함을 내지르며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갔다.

“2대는 활을 쏴라!”

“3대는 준비하라!”

“진격하라!”

“진격하라!”

사방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스스스! 스스스스스! 스스스스!

스산한 소성을 남기고 화살은 김필도 진영 앞쪽 땅속으로 박혀들었다.

“3대는 활을 쏴라”

“4대는 준비하라!”

“진격하라!”

“진격하라!”

놀라운 광경이었다. 조금 전 접전으로 인해 영지 연합군은 거의 2천에 가까운 기사를 잃었고, 3만의 기사들은 말을 돌려 도망을 쳤다. 그런데 지금은 한 번에 1백 미터씩 진격해 들어가며 김필도 일행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병사들의 얼굴에서는 패배의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적군을 지휘하는 자는 누구요?”

김필도는 드보르칸 후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헤론 백작입니다.”

“어떤 자요?”

“제국 최고의 교육기관인 발칸 아카데미에서 전술학 학장을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잡니다.”

“쉽게 말하면 명장이란 말이네?”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

김필도는 전방을 보았다.

궁병을 앞세운 영지 연합군은 한 번에 1백 미터씩 밀고 들어오는 중이다. 수천 발의 화살이 쏘아지는 곳으로 진격을 명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드보르칸 후작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와 김필도가 머리를 맞대고 짠 작전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 작전을 펼칠 장소는 바로 이곳이었다.

화살 공격을 해 오기 전까지 상황은 예측한 대로 진행됐다. 작전대로라면 그 상태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진일퇴를 거듭해야 한다.

그러다가 밤이 오면 2단계 작전이 시작되는데 그 장소는 히부스 산이다. 지금 히부스 산에는 드보르칸 기사단 기사 1천5백 명과 용병 2천 명이 숨어 있다.

히부스 산으로 적을 끌어들이고, 숨어 있던 3천5백 명이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공격을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히부스 산에 불을 질러 2단계 작전을 마무리한다.

3단계 작전을 펼칠 곳은 벨라다.

작전을 펼치기 위해 가족들은 이미 왈라크 산맥으로 들어가 있다. 천둥의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왈라크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출발시킨 것이었다.

이콰라 기사단 기사들이 남긴 활과 화살로 영지 연합군과 전투를 벌이고, 그것들이 떨어지면 가족들이 간 왈라크 산맥으로 들어간다.

즉 왈라크 산맥에서 4단계 작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 1단계도 끝나지 않았는데, 화살 공격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드보르칸 기사단 중 기갑 기사를 히부스 산 앞에 대기시키시오. 전투마는 빼고 무기만 들고 나오라고 하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드보르칸 후작은 옆에 있던 올가 드보르칸을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인 올가 드보르칸은 인비지빌러티 마법으로 몸을 숨긴 후 히부스 산을 날아갔다.

푹푹푹! 푹푹푹! 푹푹푹!

화살 박히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김필도 일행은 계속해서 물러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히부스 산이 가까워지자 김필도는 이야크 창을 분해하여 안장에 끼웠다.

“쿠다!”

김필도는 헬칸을 들고 이야크에서 내리며 쿠다를 불렀다.

“맡기고 오겠습니다.”

모습을 드러낸 쿠다는 김필도로부터 이야크 고삐를 건네받았다.

“라쿤도 전부 산으로 들어가.”

“우리도 이곳에서…….”

“아냐. 산에서의 싸움이 더 중요해. 우리가 처음 공격했던 것보다 더 강한 충격을 줘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린 패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쿠다는 블랙칸을 비롯한 세 마리의 이야크를 끌고 히부스 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는 사이에 드보르칸 기사단 소속 기갑 기사 3백 명이 걸어 나왔다.

“가 볼까?”

김필도는 헬칸을 들고 선두에 나섰다.

그의 좌측에는 알마니가 섰고, 우측에는 리시아와 베른이 섰다. 그리고 그들 뒤편 20미터 뒤에는 헨 3백 명과 다르 5백 명, 그리고 드보르칸 기사단 기갑 기사 3백 명이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기갑 기사들은 앞으로 나서라!”

헤론 백작은 뒤편을 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진 채였다.

김필도 일행이 보유한 기갑 기사의 수가 예상을 훨씬 상회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3백 명 정도로 알았는데, 전쟁을 시작하며 8백여 명으로 늘었고, 또다시 3백여 명가량이 나온 것이다.

아군은 이미 상당수의 기갑 기사를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기갑 기사의 수로만 따지면 나은 상황이라 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저들이 전부냐 하는 것이었다.

“기사들은 공격하라!”

“공격하라!”

“우와!”

“와아아!”

영지 연합군 기사들이 나오기도 전에 김필도 일행은 적진을 향해 쏘아져 갔다.

“궁병은 시위를 당겨라! 모든 기사들은 선두로 나와라! 병사들은 진격하라!”

헤론 백작은 쉬지 않고 명령을 하달했다.

“백작, 지금 제정신인가?”

몬슨 후작은 말을 몰아 헤론 백작 곁으로 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헤론 백작을 바라보는 몬슨 후작의 얼굴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은 밀어붙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물러나게 되면 우리가 당합니다!”

“적은 전부 전투기갑을 걸치고 있네, 백작. 그런 자들을 향해 일반 갑옷을 걸친 기사와 병사로 밀어붙여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 발로 밟으면 놈들이 죽는다고 하던가?”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당장 병사들을 물리게.”

쿠쿠궁! 쿠쿠쿵!

차앙! 창창! 창창창! 창창!

“아악!”

“으악!”

“크아악!”

진형의 선두에서 둔탁한 소성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벌써 접전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어디로 물린단 말입니까?”

“으악!”

“아악!”

“크아악!”

이번 비명은 궁병들이 있는 좌우측에서 터져 나왔다. 김필도 일행은 궁병이라고 해서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칠게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활을 든 궁병들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검을 내리그었다.

“말대꾸 하지 말고 당장 물리란 말이야!”

몬슨 후작은 반말로 고함을 내질렀다.

“지금 부하들을 물리면 우린 패하고 맙니다. 적의 근거지는 히부스 산입니다. 그곳까지 밀어붙여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헤론 백작은 히부스 산을 가리켰다.

차차창! 창! 창창창!

“아아악!”

“으아아악!”

“아아악!”

“아악!”

“백스터 백작!”

몬슨 후작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하명 하십시오, 후작.”

“지금부터는 백스터 백작이 부사령관 대행이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부사령관 대행은 지금 당장 병사들을 철수시키시오. 그리고 후미에 있는 병사들은 교전 지역을 우회시켜 히부스 산으로 진격시키시오.”

“알겠습니다, 총사령관님!”

백스터 백작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헤론 백작은 몬슨 후작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몬슨 후작은 헬론 백작을 보지 않았다.

잠시 후 후미에 있던 병사들이 좌우측으로 이동하여 히부스 산을 향해 진격해 갔다.

“루시안 공자!”

데스 와이어로 영지 연합군 기사를 도륙하던 리시아는 김필도를 불렀다.

카앙!

스악!

“아악!”

김필도는 앞에 있던 기갑 기사의 목을 자르고 난 후 리시아를 돌아보았다.

“병사들이 히부스 산으로 진격해 들어가고 있어요.”

리시아는 좌우측을 가리켰다.

“후작!”

김필도는 적 기갑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가며 드보르칸 후작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대공 전하.”

“마법사들을 데리고 히부스 산으로 가!”

“여긴 어떻게 하고요?”

“여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요. 여긴 걱정 말고 숲으로 들어온 자들을 쓸어버리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대공 전하!”

드보르칸 후작은 고개를 숙이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지금부터 드보르칸 마법단은 히부스 산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공격한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알겠습니다, 영주님!”

마법사들은 우렁차게 대답하며 히부스 산 주위로 날아갔다. 잠시 후 그들의 마법 지팡이에서 불과 얼음과 검만큼 날카로운 바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산이 불타고 대지가 얼고, 폭풍이 불었다.

“총사령관님, 마법사들이 숲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제대로 판단한 거구먼.”

“그런 것 같습니다, 총사령관님!”

“다른 쪽은 어떻소?”

“기갑 기사들 쪽은 밀리고 있습니다.”

“히부스 산에 더 집중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백스터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편으로 말을 몰아갔다. 곧 그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놈들이 숲으로 도망치고 있다. 더욱 거칠게 몰아쳐라!”

“와아!”

“우와아!”

영지 연합군 병사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히부스 산으로 밀려갔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강했다. 기사도 아닌 병사들이 마법사들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마법사의 지팡이가 지상으로 향하는 순간 푸른 광채가 번개처럼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아악!”

“으악!”

“크아악!”

그리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마법단의 가공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마법사의 공격은 기사나 병사의 공격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기사나 병사는 설령 강한 검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한 번에 한 명밖에 없애지 못한다.

그런데 마법사들은 한 번 공격으로 많게는 10명까지도 없앤다. 그런데 드보르칸 마법단은 한두 명이 아니라 총 5백 명. 그들의 지팡이가 지상으로 향하는 순간, 천여 명이 동시에 죽어 나갔다.

“화살을 쏴라!”

“활을…… 아악!”

영지 연합군 지휘관들은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다급한 와중에도 지휘관들의 명령은 먹혀들어갔다. 영지 연합군 궁병들은 마법사들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마법사들 또한 날개가 꺾인 새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히부스 산으로 들어가라!”

“히부스 산으로 밀고 들어가라!”

영지 연합군 병사들은 죽어 나가면서도 꾸역꾸역 히부스 산으로 밀려갔다. 수백 명에서 시작한 병력은 수천 명으로 불어났고, 어느 순간 히부스 산은 영지 연합군 병사들로 가득 들어찼다.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바로 그때였다.

히부스 산 어딘가에서 북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격하라!”

“공격하라!”

“활을 쏴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히부스 산 곳곳에서 수천 명이 튀어나와 영지 연합군 병사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1백 명씩 조를 짠 드보르칸 기사단 1천2백 명과 용병 2천 명이었다. 드보르칸 기사단과 용병은 치고 빠지는 작전을 펼치면서 영지 연합군 병사들의 수를 줄여 나갔다.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영지 연합군 병사들을 공격하던 드보르칸 후작은 초초한 얼굴로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산마루에 걸려 있는 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통신 마법구를 꺼내 들었다.

“뱅글러!”

그는 기사단 단장인 뱅글러 자작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영주님!”

“해가 떨어지고 있네.”

“알겠습니다. 코라트 단장에게 전하겠습니다.”

“수고하게.”

통신 마법구를 끈 드보르칸 후작은 마법단 조장들을 불러 모았다. 잠시 후 드보르칸 후작 주위로 마법사 다섯 명이 날아왔다.

“시작들 하게.”

“알겠습니다.”

마법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마법사들이 히부스 산 가장자리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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