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53화 (153/225)

# 153

“커억!”

“크악!”

“내 아버지를 너희들이 살해했어?”

김필도는 앞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방패와 검은 다르의 공격을 막고 있지만 시선은 고성에 서 있는 헤이먼에게로 향해 있었다.

“황제는 제국의 주인이지만 우리 10인 위원회는 대륙의 주인이다, 놈!”

헤이먼은 차갑게 말하고는 마법 지팡이로 김필도를 겨냥했다.

헤이먼이 마법 공격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김필도는 좌우측에서 달려드는 다르를 향해 방패를 찍고 헬칸을 휘둘렀다.

차앙! 퍼억!

“아악!”

“컥!”

휙!

슈캉! 퍼억!

비명을 들으며 몸을 날렸다. 그리고 헬칸을 휘두르고 방패를 찍었다.

다르의 목이 잘리고 머리가 절반으로 쪼개졌다.

“안티 매직 셸(Anti-magic shell)!”

헤이먼은 먼저 김필도 주변을 마법을 펼칠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지금껏 어둠과 동화돼 있던 다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링 오브 파이어(Ring of fire)!”

그가 처음으로 펼친 공격 마법은 화염계 마법이었다. 지팡이가 김필도를 향하자마자 커다란 불꽃 고리가 김필도 주위로 생겨났다.

“필라 오브 파이어(Pillar of fire)!”

두 번째 마법은 불꽃 기둥이었다. 화염 고리가 소멸되기 전에 김필도 머리 위로 불꽃 기둥을 내리찍었다.

“선더 크로스(Thunder cross)!”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꽃을 향해 뇌전을 쏟아 부었다.

“놈!”

헤이먼은 거대한 불기둥을 응시했다. 전투 기갑의 최고 약점은 바람은 막아주지만 열기와 한기는 막아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물론 최상급 전투 기갑은 전 마나를 끌어올렸을 때 6클래스 마법까지 방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방금 펼친 마법은 클래스로는 6클래스지만 위력은 7클래스다. 최상급 전투 기갑을 착용했다고 해도 막아낼 수 없는 위력이었다.

이윽고 불꽃이 천천히 사그라졌다.

파앗!

불꽃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검은 동체 하나가 우측으로 폭사돼 갔다.

카앙! 슈캉! 카앙! 퍼억!

날카로운 소성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리고 비명과 자욱한 혈향이 그 뒤를 이었다.

“저럴 수가…….”

헤이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링 오브 파이어와 필라 오브 파이어 두 가지 마법만으로도 최상급 전투 기갑은 녹아 버린다. 이미 실험을 통해 확인한 사항이다. 그 두 가지 마법에 선더 크로스까지 쏟아 부었다. 그런데도 놈은 멀쩡하다. 아니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듯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다르를 도륙하고 있다.

어느새 최상급 다르는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전멸 지경까지 간 것은 비단 최상급 다르뿐만이 아니었다. 억새밭에서 싸우고 있던 1천여 명의 다르도 살아남은 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크아아악!”

헤이만은 시선을 끌어당겼다.

최상급 다르 중 마지막 남은 다르의 머리가 허공에 떠오르고 있었다.

“대화할 시간은 있겠지?”

김필도는 헤이먼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난 네놈과 할 말이 없다. 세상을 구성하는 마나여, 나 헤이먼 샤칸 미들헤임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내가 바라는 게 이루어지게 하라. 블리자드(Blizzard)!”

헤이먼은 재빠르게 주문을 영창하고 마법을 펼쳤다.

휘이익!

헤이먼의 마법 지팡이 끝으로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곧 눈 폭풍으로 변해 주변을 휩쓸었다.

7클래스 마법사를 최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엄청난 광경이었다.

헤이먼 전면으로 2백 미터 벌판이 얼음 덩어리로 변했다. 얼음으로 변한 억새는 뚝뚝 부러지고 얼음 가루가 휘날렸다.

김필도 또한 억새와 다르지 않았다. 얼음 덩어리가 된 것처럼 전신이 허옇게 변한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놈!”

헤이먼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맺혔다. 그는 김필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김필도는 헬칸을 번쩍 들어 올린 채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 있었다.

헤이먼은 김필도 앞에 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야 내 아들과 손자의 복수를 하게 됐구나, 놈!”

헤이먼은 마법 지팡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멈춰라!”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리시아가 이편을 향해 쏘아져 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구나, 리시아. 당장 그 자리에 서지 않으면 이놈을 부숴 버릴 것이다.”

헤이먼의 외침에 리시아는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큭큭큭!”

헤이먼의 입에서 흡족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래야 한다, 계집.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놈의 아비와 어미처럼 전부 죽는다.”

“그 말을 듣고 싶었어, 헤이먼.”

“……?”

바로 앞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헤이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걷혔다.

그는 시선을 돌려 김필도를 보았다. 투구 안에서 차가운 눈동자가 이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죽지 않았단 말이냐?”

“일흔 살이 넘은 너도 살아 있는데, 내가 죽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개자식!”

헤이먼은 지팡이를 강하게 후려쳤다.

하지만 그의 지팡이보다 더 빠른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필도의 헬칸이었다.

“크아악!”

지팡이를 든 팔이 잘려 나가자 헤이먼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김필도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마법 지팡이 위에 발을 올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짓이기며 입을 열었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겼겠지?”

헤이먼은 굳은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지팡이만 잃지 않았더라면 이동 마법을 펼쳐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마법 지팡이를 회수한다는 건 살아남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았다.

“마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당한 것처럼 했더냐?”

“네 마법 정돈 아무것도 아냐. 내가 걱정했던 건 네가 도망가는 거였어. 그걸 막기 위해 잠시 연극을 했을 뿐이야.”

김필도는 이번엔 잘려 나간 팔 위로 오른발을 올렸다. 그러고는 빙긋 웃으며 헤이먼을 향해 속삭였다.

“신의 정원에 대해 아주 궁금한 게 많아.”

제2장 그를 노리는 자들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이코스트 백작은 공손한 태도로 보고했다.

백작 앞에는 칼베리언, 데메우스, 켈러 세 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벨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칼베리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영지 연합군이 퇴각하자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영지 연합군이 퇴각을 했어?”

이번에 질문을 한 사람은 데메우스였다.

그를 비롯한 칼베리언과 켈러는 김필도 일행이 영지 연합군에게 패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겉보기엔 퇴각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패뱁니다.”

“23만 명이나 되는 자들이 2천 명에게 패했단 말이냐?”

“2천 명은 드러난 전력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그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라고 하더냐?”

“병력은 4천 정도였고, 기갑 기사의 수가 1천 명가량이었답니다.”

“기갑 기사가 1천 명이 된단 말이냐?”

데메우스는 깜짝 놀랐다.

그는 리모스에서 만난 김필도에 대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조사를 했다. 수합된 정보에 의하면 김필도는 하인조차 거느리지 못한 그림자 대공이었다. 그랬던 자가 2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기갑 기사 1천 명을 거느린 강자가 된 것이다.

놀라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이코스트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병력을 모았구나.”

“파악되지 않는 조력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놈을 돕는 자가 있단 말이냐?”

“그게 아니고는 단시간 안에 그런 세력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특히 전투 기갑 제작 기술은 황실에만 있고, 1달에 10기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러면 놈을 돕고 있는 자가 누군지 알아내야겠구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놈은 지금 어디 있느냐?”

“테라로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테라?”

데메우스는 고개를 돌려 칼베리언을 보았다.

“왜 그러느냐?”

칼베리언은 물었다.

“원로들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 중의 하나가 바로 그 벌레 놈이 발탄 제국의 황제와 이어지는 거다.”

“마족의 원로가 인간을 두려워한단 말이냐?”

칼베리언은 피식 웃었다.

“인간 원로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헤를리온이 대량으로 제작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거다.”

“정말로 놈에게 헤를리온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칼베리언은 믿을 수가 없었다.

헤를리온은 고대 마신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전투 기갑이고, 그 존재를 확인한 자도 없다. 다만 헬칸이란 자가 헤를리온을 착용하고 다섯 종족의 결사대를 도륙했다는 기록만 약간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시기에 제작됐던 전투 기갑 크레디온이 아직 사용되고 있으니까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간이 헤를리온을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세이아칸의 손에 죽었다고 했으니까 혼자 힘으로 헤를리온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이 된다.

칼베리언이 가장 황당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누군가의 도움이다. 헤를리온이 존재하였고, 누군가가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견한 헤를리온을 양도한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헤를리온을 두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원로들의 행태가 우습지도 않았다.

“헤를리온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군단장님.”

듣고 있는 켈러가 낮게 말했다.

“하면?”

“우리와 마계10군단이 이곳으로 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헤를리온은 명분일 뿐입니다.”

“켈러의 말이 맞느냐?”

칼베리언은 데메우스를 보았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다만 헤를리온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곳으로 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이유도 생겼고.”

“또 다른 이유?”

“헬칸 말이다.”

“헤를리온도 얻고, 헬칸도 얻으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다는 말이구나.”

“그렇지.”

데메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을 추격할 모양이지?”

“놈에게 빚이 있거든.”

“무슨 빚인데?”

“비밀이야.”

데메우스는 밖으로 나갔다.

그가 말한 비밀이란 리모스에서 김필도에게 당한 부하들의 복수였다.

밖으로 나온 데메우스는 부군단장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한 명의 부군단장을 두었던 히데우스와는 달리 다섯 명의 부군단장을 두었다. 히데우스를 동경하는 자들을 분산시켜 놓으려는 심산이었다.

데메우스 숙소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부군단장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오른편에 자리한 데본, 프라카딘, 이바겐 세 명은 데메우스의 심복이고, 왼편에 자리한 발카모와 우데스는 히데우스를 동경하여 마계10군단으로 들어온 자들이다. 당연 실력도 세 명보다 훨씬 뛰어났다.

데메우스는 발카모와 우데스 두 명에게 헬칸 회수 임무를 맡길 생각이었다.

“전 군단장의 최후에 들었느냐?”

자리에 앉은 데메우스는 부군단장들을 보며 물었다.

그가 히데우스를 전 군단장이라 칭한 것은 히데우스를 동경하여 마계10군단으로 들어온 자들을 포용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륙의 헤린느 협곡을 무덤으로 택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마족들에 비해 피부 톤이 훨씬 검은 마족이 대답했다. 새카만 피부 때문에 다크 블랙이라 불리는 이자는 제4부군단장 발카모였다.

발카모는 히데우스의 열렬한 추종자로 평군 마족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각성을 통해 중급 마족까지 올라선, 상급 같은 중급 마족이었다.

더불어 검술 실력은 군단장인 데메우스보다 더 강할 뿐 아니라 히데우스를 추종하는 자들의 리더이기도 했다.

“맞다. 그는 골든 브리지 잔해와 함께 협곡으로 추락했다. 그건 발카모 네 말처럼 헤린느 협곡을 무덤으로 택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의 검 헬칸이 이곳 휴도니아 대륙에 나타났다.”

“그, 그분이 살아 계신단 말입니까?”

발카모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아니다, 발카모. 그는 전사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면…….”

“헬칸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인간이다.”

“이, 인간이 헬칸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헬칸이 어떻게 인간의 손에 들어갔습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마족은 인간에게 절대 라컨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것 한 가지는 안다. 그리고 추락 당시 전 군단장은 숨이 끊어진 상태가 아니었다.”

“살아 계셨을 가능성이 있단 말이군요.”

“그는 최강의 마족이었다.”

“그럼 인간이 헬칸을 가지고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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