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그를 해치고 헬칸을 탈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되겠지.”
“그분이 돌아가신 골든 브리지는 리모스로 들어가는 입구로 알고 있습니다.”
휴도니아에 사는 자가 리모스에게 헬칸을 얻는 건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그 당시 리모스로 들어간 인간은 네 명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누굽니까?”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란 놈이다.”
“요즘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자군요.”
발카모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살기였다.
그런 발카모의 모습을 바라보며 데메우스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헬칸을 우리 마계10군단 군단장의 상징으로 삼고 싶다.”
“상징으로 삼고 싶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마계10군단의 군단장 직위를 나타내는 건 이 인장이 아니라 헬칸이라는 뜻이다.”
데메우스는 오른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헬칸의 주인이 곧 군단장이란 거군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헬칸이 우리 마계10군단에 있어야 한다.”
“그 인간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면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발카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혼자 가선 안 된다, 발카모.”
“전 강합니다, 군단장님.”
“네가 강하다는 건 알지만 1천여 명의 기갑 기사를 상대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린 놈을 생포해야만 한다.”
“그자가 기갑 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있단 말입니까?”
“나도 오늘 알았다.”
“그럼 쉽지 않겠군요.”
“제5부군단장과 함께 부하들을 데리고 가라.”
“언제 출발합니까?”
4백 명이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인간이라고 하지만 1천 명이 기갑 기사면 허투루 볼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안내인을 대기시켜 놓을 테니까 지금 바로 출발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고개를 끄덕인 발카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2시간 후.
발카모와 우데스가 이끄는 마족 4백여 명이 북로군벌 진영을 나서 동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부하들을 내보낸 데메우스는 칼베리언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우리도 시작해야지?”
데메우스가 돌아오자 칼베리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를 비롯한 북로군벌 30만 명은 발탄 제국 수도 테라가 있는 헤린 지역과 고칸의 접경지대인 램버 대습지 북편에 주둔한 상태였다.
“먼저 네 의견을 듣고 싶다.”
데메우스는 칼베리언 건너편으로 앉으며 말했다.
“어떤 의견?”
“우리가 가진 전력으로 발탄 제국을 정복하는 게 가능할 거라고 보느냐?”
“나는 발탄 제국의 정복에 대해선 관심 없어.”
“그럼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뭐냐?”
“목을 축일 피가 필요해서야.”
칼베리언은 히죽 웃었다.
“미친 새끼! 네 생각은 어떠냐?”
데메우스는 켈러를 보았다.
“그동안 파악한 바로는 현재 우리 전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발탄 제국의 전력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냐?”
“제국의 전력을 알려면 먼저 발탄 제국의 세력 판도를 알아야 합니다.”
켈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악을 한 게냐?”
“숨겨놓은 것들이 많아 완전하게 파악하진 못했지만 80퍼센트 정도는 파악했습니다.”
켈러는 전면 벽에 걸린 지도 앞으로 걸어갔다.
지도는 총 1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중앙은 붉은색, 동서남북 네 곳은 흰색, 붉은색과 흰색 사이 빈 공간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작게는 13개 구역이고, 크게는 3개 세력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이냐?”
지도를 바라보던 데메우스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여기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은 황실을 비롯한 3대 공작가 구역입니다. 황실과 3대 공작가의 전력은 총 1백만 명이고, 그 안에는 기사 15만 명과 기갑 기사 2만 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흰색 부분은 4대군벌 지역인데 기사 10만 명과 기갑 가사 8천 명을 포함하여 130만 명입니다. 마지막으로 파란색 부분은 5대 후작령 지역인데, 기사 7천5백 명, 기갑 기사 1천7백 명, 마법사 1천6백 명을 포함해 1백만 명입니다.”
“정리하면 병사가 3백만 명가량, 기사가 26만여 명, 기갑 기사가 3만여 명, 마법사가 1천6백여 명이 되는 거구나.”
“그들 중 우리가 장악한 북로군벌과 천족이 장악한 서로군벌은 제외해야 합니다.”
“그럼 2백30만 명가량이네.”
“그렇습니다.”
“드러난 전력은 그렇단 말이겠지?”
“네.”
“가서 이코스트를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켈러는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이코스트 백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캘러로부터 발탄 제국 전력에 대해 대충 들었다. 네 생각을 말해 봐라.”
이코스트 백작이 지도 앞에 서자 데메우스가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 고칸 성은 텅 빈 상태입니다. 만일 고칸 성 동쪽에 있는 힐리아드 후작 군이 고칸 성으로 진격해 들어오면 우린 고립되게 됩니다.”
이코스트 백작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볼삭 영지군은 믿을 수 없단 말이냐?”
“자식들의 안전 때문에 고칸 성을 지켜주긴 하겠지만 끝까지 충성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볼삭 지역을 점령할 때 영주와 영주 가족의 목만 친 게 아니었다. 기사들 중 야망이 큰 자를 골라 충성 맹세를 받은 후 영주에 앉혔다. 그리고 그들에게 고칸 성의 방어를 맡겼다.
그들의 수가 5만 명이었다.
문제는 새로운 영주들의 충성심이 언제까지 유지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새 영주들의 자식을 볼모로 잡아 전쟁터로 데려오긴 했지만, 불안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약해지는 순간 배신을 할 거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럼 고칸을 지키기 위해서는 헤린으로 쳐들어가야 하겠구나.”
데메우스는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게 좋은 방법이간 한데,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발탄 제국의 공격이 집중될 겁니다.”
“그것도 어렵다는 말이구나?”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좋다. 그럼 먼저 헬싱턴을 정벌하기로 한다.”
“고칸 성은 저대로 두는 겁니까?”
“고칸 성은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으니까 넌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데메우스는 고개를 돌려 칼베리언을 보았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느냐?”
“이곳 전쟁은 네가 맡아라.”
“너는?”
“나는 카단 성으로 가야겠다.”
카단 성은 동로군벌의 근거지로 페더러 디바스칸 백작이 성주였다.
“그놈도 종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
“그래야 헬모트나 노르탄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지.”
“알아서 해라.”
칼베리언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코스트 백작을 보며 말했다.
“헬싱턴을 향해 진격해라!”
“알겠습니다.”
이코스트 백작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북로군벌 진영에서 진군을 알리는 전고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북로군벌의 30만 대군은 남서쪽 헬싱턴을 향해 진군해 갔다.
* * *
전쟁 소식은 빠르게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제국의 모든 이목은 헬싱턴 서쪽과 북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진격하는 측과 방어하는 측의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난 장소는 프라넬 대평원은 동쪽 끝, 프라넬 콜로세움 근처 벌판이었다.
하다르만 백작이 이끄는 서로군벌과 영지 연합군의 전투였다. 전투의 승자는 하다르만 백작의 서로군벌이었다.
서로군벌 40만 명의 병력보다 더 엄청났던 자들은 선두에서 서로군벌 기갑 가사를 도륙했던 천족들이었다.
1천여 명의 천족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으로 영지 연합군 기갑 기사를 깨트렸고, 그 여세를 몰아 서로군벌 40만 대군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갔다.
영지 연합군은 제대로 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서로군벌의 대승이었다.
영지 연합군 패전 소식은 곧바로 황실로 보고됐고, 황제는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여섯 명의 얼굴은 잔뜩 굳은 채였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연합군이 하룻밤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행은 찻잔만 응시하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벌컥!
문이 열리고 황제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여섯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앉으시오.”
황제는 곧바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 시종이 준비한 차를 가져와 놓았다.
“헬싱턴 영지 연합군에 대한 소식은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폐하.”
영주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거기뿐만 아니라 북로군벌을 방어하기 위해 램버에 주둔하고 있던 황군과 아스달 군도 패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네.”
“정말입니까?”
헬모트 공작은 깜짝 놀랐다.
램버에 주둔 중인 병력 중 10만은 그가 있는 아스달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방금 올라온 보고네. 그런데 적군의 병력 수가 30만 명이었다네.”
“북로군벌 전부를 동원했단 말입니까?”
이번에 질문을 한 사람은 노르탄 공작이었다.
“서로군벌 또한 40만 병력이었네.”
“총력전이군요.”
노르탄 공작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런 모양이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건 황제도 생각지 못한 작전이었다.
전쟁을 치르는 데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보급이고, 원활한 보급을 위해서는 영지는 반드시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서로군벌과 북로군벌은 영지를 지켜야 할 병력을 남겨두지 않고 보유 전력 전부를 동원한 것이다.
물론 점령 지역의 병사를 활용한다고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천만한 작전이다.
“완전히 텅 비었단 말입니까?”
헬모트 공작이 확인하듯 물었다.
“점령 지역의 병력 일부에게 방어를 맡겼다고 하네.”
“그들은 병력이 얼마나 됩니까?”
헬모트 공작 또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 역시 헬모트 공작가에서 운용하고 있는 정보 라인을 통해 보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하는 것은 헬모트 공작가에서 운용하는 정보 라인에서 파악한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각각 5만 명씩이네.”
“그 정도 병력으로 방어라 가능할 거라고 본 걸까요?”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네. 그들은 감히 우리 제국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네. 크로디아 후작과 힐리아드 후작은 듣게.”
“하명하십시오, 폐하!”
두 후작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당장 병력을 출병시켜 펠콘과 고칸을 치도록 하시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밟아버리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두 후작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는 사이에 크로의 수장인 벡타 베칼리오 후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황제는 후작을 보며 물었다.
“특이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특이한 움직임?”
“수백 명의 마족과 천족이 라파로 들어갔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라파?”
황제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라파는 헬싱턴과 헤란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감옥의 도시로 수용 죄수는 15만 명에 달한다.
만일 라파에 문제가 생겨 죄수들이 탈출이라도 한다면 제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런데 마족과 천족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확실한가?”
황제는 베칼리오 후작을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베칼리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알아냈는가?”
“대공 때문이었습니다.”
“루시안?”
“네.”
“앉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황제는 자리를 권했다.
베칼리온 후작은 조금 전 떠난 힐리아드 후작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 기다렸다는 듯 시종이 차를 가져와 따라 주었다.
“루시안 때문이라는 게 무슨 말인가?”
시종이 자리를 뜨자 황제가 물었다.
“그 이유를 알기 전에 먼저 휴도니아 대륙으로 넘어온 천족과 마족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