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59화 (159/225)

# 159

하지만 김필도는 태연했다.

그는 신음을 흘리고 있는 카곤을 노려보며 또다시 오른손 주먹을 뒤로 뺐다.

“죽여!”

바로 그때였다. 테이큰의 입에서 차가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죽여라!”

“죽인다!”

블랙 소드 파 대원들은 진득한 살기를 흘리며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바로 그때였다.

콰앙! 쾅!

성문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고 거대한 덩치들이 떼거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2미터5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검은 피부를 가진 그들은 김필도를 찾아온 마족이었다.

“치워라!”

마족들 사이에서 살기 어린 외침이 흘러나오고, 대검을 든 마족들이 블랙 소드 파 대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마, 막아…… 크악!”

“아악!”

“으아악!”

곧이어 성문 앞은 도살장으로 변했다.

블랙 소드 파 대원들은 마족의 상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임을 당하고 블랙 소드 파 조직원들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기갑대는 전투 기갑을 소환하여 저들을 막아라!”

테이큰은 다급한 얼굴로 소리쳤다.

“차앗!”

“타앗!”

“이야얍!”

그러자 주변에서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전투 기갑을 걸친 자들 수십 명이 튀어나와 마족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숨어 있던 자들이었다.

곧 블랙 소드 파 대원과 마족들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몇 명이나 되지?”

김필도는 알마니 곁으로 가며 물었다.

“50명가량이에요.”

알마니는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블랙 소드 파 두목인 테이큰은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적게 왔네.”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몰라요.”

“왜?”

“라파로 들어오는 건 성문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른 곳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그래요. 우리도 그만 가요.”

“세스티 감옥으로 가자.”

“알았어요.”

김필도와 알마니는 대로를 따라 몸을 날렸다.

빠르게 달려간 두 사람은 첫 번째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모습은 건물들 사이로 사라졌다.

* * *

블랙 소드 단이 마족으로부터 공격당해 수십 명이 죽었다는 소식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라파 전역이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했다.

라파의 주인 행세를 하던 조직의 수장들은 급거 회동을 가졌다. 그들이 모인 장소는 라파 중앙에 있는 정의의 탑 지하였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자는 다섯 명이었다.

뒤쪽에 벽을 두고 앉은 자는 라파 최강 조직인 볼케이노 파 보스 러셀 페이슨이고, 그 오른편에 앉은 자는 라파 서열 2위에 랭크된 벌컨 파의 보스 라이드 코번 헬러빈, 왼편에 앉은 자는 서열 4위에 랭크된 게일파의 보스 솔트 헤븐이었다. 그리고 러셀과 마주 보는 자리에는 서열 3위에 랭크된 블랙 소드 파 보스 테이큰 프릭스와 서열 5위에 랭크된 오션 파의 보스 릭 올마이어가 앉아 있었다.

일행의 시선은 가장 늦게 들어온 테이큰에게 쏠려 있었다. 마족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내가 본 마족은 50여 명이오.”

차를 한 모금 들이켠 테이큰은 입을 열었다.

“그들의 실력은 어떻소?”

가장 안쪽에 앉은 러셀이 물었다.

“그들을 막아섰던 기갑 기사 50명이 전부 당했소.”

“마족의 피해는?”

러셀은 다시 물었다.

“없었소.”

“개개인의 실력은 기갑 기사들보다 강하다는 결론이구먼.”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렇소.”

테이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시오?”

이번에 질문을 한 자는 벌컨파의 보스 라이드 코번 헬러빈이었다.

“무작정 공격을 해 왔소.”

“알 수 없단 말이오?”

“마족이 라파로 온 것은 프리우스 대공 때문이라고 밝혀졌소.”

라이드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준 사람은 처음 질문을 했던 러셀이었다.

“대공 때문이라고요?”

테이큰을 제외한 라이드, 솔트, 릭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왜 그러시오?”

러셀은 라이드 일행을 보았다.

“아, 아니오. 그런데 천족과 마족이 그를 쫓는 이유를 아시오?”

라이드가 물었다.

“대공에게 헤를리온이 있다고 하오.”

그 말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헤를리온.

들어본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선뜻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전설의 신기를 말하는 게요?”

문득 생각난 듯 테이큰이 물었다.

“기억난 모양이구려. 그렇소. 신갑이라고 부르는 전설의 전투 기갑을 그가 가지고 있다고 하오.”

러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설이 사실이란 말이오?”

테이큰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을 하지 못했소. 심지어 제국의 황제나 10인 위원회 위원장도 헤를리온이 존재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소.”

“그런데 마족이 헤를리온을 쫓아왔다는 말이구려.”

“내가 파악한 바로는 마족뿐만 아니라 천족도 대공을 쫓고 있는 걸고 알고 있소.”

“대공도 상당한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50명이면 너무 적은 수 아니오?”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릭 올마이어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똑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러셀의 말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갑옷을 걸친 자가 들어왔다. 그는 볼케이노 파의 이인자 라베였다.

“무슨 일인가?”

러셀은 라베를 보며 물었다.

“마족 3백50명과 천족 5백 명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마족과 천족의 수가 전부 9백이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보스.”

“어떻게 하고 있는가?”

“각기 죄수들을 앞세우고 라파를 부수며 살겁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죄수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마족은 네스티 감옥을 깨트렸고, 천족은 히스티 감옥을 깨트렸습니다.”

“돌겠군.”

러셀은 얼굴을 찌푸렸다.

감옥을 깨트려 죄수들을 안내인으로 사용하는 행태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 이상하단 말인가?”

“마족과 천족은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을 잡아오면 파괴를 멈추겠다고 했답니다.”

“프리우스 대공을 원한단 말이구먼.”

“그렇습니다.”

“대공의 행방은 알아냈는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대공의 행적을 탐문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보스.”

“다른 분들도 도와주어야겠소.”

“당장 지시를 내리겠소.”

네 명의 보스는 품속에서 통신 마법구를 꺼내 연락을 취했다.

“크로는 어떤가?”

각 보스들이 연락을 취하는 사이, 러셀은 라베를 보며 물었다.

“베칼리오 후작이 라파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들어왔다는 건 크로 전원이 동원됐다고 봐야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도 천여 명 들어와 있습니다.”

“그들이 전분가?”

“아닙니다.”

“하면?”

“베쿠스 델리카슨이 일단의 무리와 함께 들어왔습니다.”

“델리카슨?”

베쿠스 델리카슨이란 말에 러셀은 깜짝 놀랐다.

테이큰 프릭스를 제외한 세 사람들 또한 놀란 얼굴로 라베를 보았다.

베쿠스 델리카슨은 남로군벌의 수장인 리베우스 델리카슨 백작의 아버지이면서 발몬 하이저 아이작 황제의 친구였던 것이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가 이곳에 온 목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 대해 신속하게 알아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보스.”

“접니다.”

바로 그때 라베의 품속에서 사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베는 얼른 통신 마법구를 꺼냈다.

통신 마법구 표면에는 뿌연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라베는 통신 마법구를 손에 쥐고는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통신 마법구 표면에 중년 남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중년 남성은 라파 남쪽 구역의 총책임자였다.

“보고하라.”

라베는 낮게 말했다.

“1백여 명의 마족이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자들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전에 나타났던 3백50명과는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단 말이냐?”

“프리우스 대공을 찾는 건 맞는데, 파괴와 살겁을 자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얌전히 움직인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알았다. 계속 주시하도록 해라.”

라베는 통신 마법구에서 마나를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러셀을 바라보았다.

“알았네. 나가 보게.”

“특별한 사안 있으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문에서 대공을 잡을 걸 괜히 놓아준 것 같소이다그려.”

테이큰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랬더라면 헤를리온은 우리 차지가 됐을 건데 아쉽게 됐소.”

러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대공에게 헤를리온이 있다고 보시오?”

테이큰은 물었다.

“천족, 마족, 크로 등 라파로 들어온 자들 모두가 대공만 찾고 있소. 그건 곧 대공에게 헤를리온이 있다는 말이 되오.”

러셀은 단언하듯 말했다.

“그럼…….”

테이큰은 일행을 바라보았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라파로 들어온 헤를리온을 빼앗길 수 없지 않으냐는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다.

“헤를리온을 회수하자는 거요?”

러셀은 물었다.

“라파의 주인은 우리요, 러셀.”

테이큰은 단호하게 말했다.

“세 분 생각은 어떻소?”

러셀은 라이드 일행을 보았다.

“프리우스 대공은 헬싱턴 영지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소. 게다가 기갑기사의 수도 1천 명가량 된다고 했고요.”

라이드는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요. 걱정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소.”

“천족과 마족은 각각 5백 명이고, 크로는 2천여 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 또한 1천여 명이나 되오. 그들은 어떻게 할 참이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되오.”

대답은 안쪽에서 들려왔다.

라이드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내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격의 금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마스터.”

러셀은 황급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다른 네 명의 보스들은 의아한 얼굴로 금발 사내를 보았다.

“나는 리처드 헤라칸 아이작이네.”

“헉!”

“맙소사!”

“아, 아이작?”

네 명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리처드 헤라칸 아이작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아이작 가문의 마지막 황제였던 발몬 하이저 아이작은 아들을 두지 못했고, 딸만 한 명 두었다. 그 딸이 바로 캐서린 볼튼 아이작이다.

프리우스 가문으로 시집갔던 그녀가 죽음으로써 아이작 가문의 대는 끊겼다. 다만 캐서린의 아들은 루시안 대공이 살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작이란 성을 쓰는 자가 나타난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버지는 하몬 아이작이네.”

“철혈대공?”

라이드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철혈대공 하몬 아이작.

황제였던 발몬 하이저 아이작보다 더한 권력을 지녔던 대공으로 알려져 있다. 아니 그가 없었더라면 아이작 가문이 그렇게 힘없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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