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60화 (160/225)

# 160

아이작 가문의 비극은 황제였던 발몬 하이저 아이작이 아들을 갖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물론 딸이 있기는 했지만 차기 황제가 되기엔 많은 제약이 따랐다. 그렇게 되자 황제의 친동생이자 세 아들을 둔 하몬 아이작 대공이 부각됐고, 그를 향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몬 하이저 아이작과 하몬 아이작의 갈등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하몬 아이작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황제의 힘은 급격하게 약화됐다. 그 상황에서 발몬 하이저 아이작이 돌연사하고 말았다.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은 하몬 아이작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이들이 황제의 죽음에 하몬 아이작이 관련됐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상황에서 하몬 아이작은 황제 자리에 오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캐서린에게 넘겨줄 생각도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지속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등장한 자가 가이우스였다.

가이우스는 다른 이들이 손쓸 겨를도 없이 권력을 장악하더니 황제가 돼 버렸다.

황제에 오른 디칸 가이우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전 황제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의 숙청이었다.

숙청을 피해 수십만 명이 테라를 떠났고, 일부는 이곳 라파에 정착했다. 라파의 인구가 50만에서 1백50만으로 세 배 늘어난 이유가 바로 그 숙청 때문이기도 했다.

그 숙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는데, 가장 철저하게 당한 자들이 바로 아이작 가문이다.

하몬 아이작을 비롯한 다른 아이작 가문에게는 발몬 하이저 아이작 황제 시해 죄가 적용됐다.

아이작이란 성씨를 쓰는 자들 중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은 캐서린 볼튼 아이작이었다.

“철혈대공의 세 아들은 전부 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라이드는 리처드를 보며 말했다.

“나는 넷째네.”

“넷째라고요?”

“그렇네. 그 일이 있던 당시 나는 세 살에 불과했고, 세 형과는 어머니가 달랐네. 아버지께서는 나를 숨길 수밖에 없었는데 그 바람에 나는 가이우스의 칼을 피할 수 있었네.”

“리처드 님을 이곳으로 모시고 온 분은 내 아버지셨소.”

러셀이 부연 설명을 했다.

“러셀 보스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소?”

라이드가 물었다.

“하몬 아이작 대공 가문의 총집사였소이다.”

“그렇다면 믿지 않을 수 없는 말이긴 한데…….”

라이드는 말끝을 흐렸다. 정황은 맞아떨어지고, 러셀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말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오, 러셀.”

라이드는 러셀을 보았다.

“나는 저분을 마스터라고 부르고, 목숨을 맡길 정도로 믿고 따르고 있소.”

“러셀 보스가 믿고 따르는 것과는 별개 문제요.”

“날 믿지 못하겠다는…….”

“러셀!”

리처드는 러셀의 말을 잘랐다.

“마스터!”

러셀은 리처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들의 말이 맞네, 러셀. 저들은 나를 처음 봤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래를 맡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게 맡겨 두게.”

리처드는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라이드 일행 앞에 섰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물려받은 건 한 가지네. 그건 바로…….”

리처드는 심장에 오른손을 댔다. 그러자 그의 심장으로부터 검은 기체가 뿜어져 나와 상체와 하체로 흘러갔다. 그리고 잠시 후 리처드는 하늘색 전투 기갑을 걸친 모습이 됐다.

“라, 라샤!”

라이드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늘색에 흰색의 커다란 원이 새겨진 전투 기갑은 아이작 가문의 수호 병기인 라샤였다.

“맞네. 내가 착용한 이 전투 기갑은 아이작 가문의 수호 기갑인 라샤네.”

“사실이군요.”

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라이드. 나는 아이작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네.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가 있지만 그 아이의 성은 프리우스이지 아이작은 아니네.”

“제국을 원하십니까?”

라이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헬러빈 가문은 아이작 가문의 가신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제 아버지가 모신 분은 발몬 하이저 아이작이셨고, 제가 모셨던 분은 캐서린 볼튼 아이작이셨습니다.”

라이드뿐만이 아니었다.

게일 파의 솔트 헤븐과 오션 파의 릭 올마이어 역시 한때 천둥 성에서 생활했다. 네 사람이 천둥의 성을 떠난 건 캐서린이 죽은 후였다.

“하몬 아이작 가문과는 상관없단 말인가?”

“우린 기삽니다, 리처드 경.”

“내가 너무 성급했군.”

리처드는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족과 마족이 발호한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고,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기 힘들다. 그런데 한 축이 돼 줄 것으로 생각했던 세 사람이 발을 빼 버린 것이다.

“프리우스 대공 때문인가?”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우스 대공도 자네들처럼 생각하고 있는가?”

“그분의 생각은 상관없습니다, 러셀 경.”

“접니다.”

바로 그때 라베의 품속에서 사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베는 리처드의 눈치를 살폈다.

“받아보게.”

“알겠습니다.”

리처드의 허락이 떨어지자 라베는 통신 마법구를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보고하라!”

“대공이 발견됐습니다.”

“지금 어디 있느냐?”

“세스티 감옥 근처에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세스티 감옥?”

“천족과 마족도 그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다른 사항은?”

“정체불명의 자들은 신의 정원 정원사들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그들의 목표도 대공이더냐?”

“그렇습니다.”

“수고했다.”

라베는 통신 마법구에 주입하던 마나를 끊었다.

“러셀 그 친구와 약속을 잡게.”

“장소는 어디로 할까요?”

“마족, 천족, 크로, 정원사가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인데 불러서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직접 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라이드 자넨 세스티 감옥 소장 넬과 친분이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그에게 연락을 해 주게.”

“알겠습니다. 출발은 언제 하실 생각입니까?”

“지금 바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바로 연락을 해 놓겠습니다.”

라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나갔다.

* * *

전방을 바라보는 김필도의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지상 1층 지하 3층 건물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상 1층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감옥이 아니라 거의 거대한 성을 보는 것 같았다.

“수감 인원이 몇 명이라고 했지?”

김필도는 알마니를 보며 물었다.

“6만 명이에요.”

“그들을 다 먹이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텐데, 그 돈은 누가 대는 거지?”

“자급자족해요.”

“어떻게 자급자족을 하는데.”

“햇빛을 팔아서요.”

“그러니까 지상 생활을 하려면 일정한 금액을 내야 한다는 거네?”

“네.”

“머리를 잘 굴렸네. 지하에 있는 자들에게도 공짜로 밥을 주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알마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필품은 같은 걸 만드는 모양이지?”

“맞아요. 보통 50명에서 1백 명씩 조를 짜서 할당량을 주는데, 그걸 완수하지 못하면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해요.”

“밥을 먹기 위해서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네?”

“그렇죠.”

“죄수들이 불만을 제기하진 않아?”

“시킨 일만 하면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소장은 누구지?”

“넬 에드하르 남작이에요.”

“에드하르?”

김필도는 고개를 돌려 알마니를 보았다.

“아세요?”

“엄마 호위였어.”

“호위요?”

“응!”

“혹시 라이드 코반 헬러빈, 솔트 헤븐, 릭 올마이어, 러셀 페이슨도?”

“러셀 페이슨만 빼고 세 명은 호위였어. 그런데…….”

“재미있네요.”

알마니는 피식 웃었다.

“뭐가?”

“그 사람들 전부 이곳에 있어요.”

“여기에?”

“라이드 코번 헬러빈은 벌컨 파의 보스고, 솔트 헤븐은 게일 파의 보스, 그리고 릭 올마이어는 오션 파의 보스예요.”

“이곳으로 와서 조폭 두목이 된 모양이지?”

“그런 모양이에요.”

“그들이 어떻게 살든 내가 알 건 아니고. 그보다 저 안쪽은 어때?”

김필도는 세스티 감옥을 가리켰다.

“마나 속박 마법이 펼쳐져 있어서, 안쪽에서 마나를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해요.”

“전투 기갑을 착용해도 마나를 끌어올릴 수 없을까?”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자는 경비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세스티 감옥엔 왜 온 거죠?”

지금껏 김필도가 이곳으로 온 이유를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이 이곳에 수감돼 있어서.”

“어떤 동생들인데요?”

“드워프하고 엘프야.”

김필도는 빙그레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알마니는 김필도를 따르며 물었다.

“일단 들어가야지.”

“들어가서 뭐 하려고요?”

“동생들이 갇혀 있다고 했잖아.”

“탈옥을 시키겠다는 거예요?”

“넬 에드하르 남작이 풀어주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해서 데리고 나와야지.”

“그들이 누군데요?”

“데푸시와 이프리스란 녀석들인데 데푸시는 콜다 족의 차기 부족장이고, 이프리스는 샬 족의 차기 부족장이야.”

“정말이에요?”

알마니는 깜짝 놀랐다.

그 역시 데푸시와 이프리스를 알고 있었다.

내심 황제에게 무례를 범한 그들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둔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신분 때문이었다.

아무리 발탄 제국 황제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드워프와 엘프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을 터였다.

“몰랐어?”

“당연히 몰랐죠. 그런데 그 둘이 마스터를 형님으로 부른다는 거예요?”

“응!”

“나이가 더 많지 않아요?”

“형님 동생에는 나이는 상관없는 거야.”

김필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일행은 세스티 감옥의 담 아래쪽에 도착해 있었다.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어 헬칸을 꺼내 무게를 최대한으로 늘렸다. 그리고 몸의 무게도 늘였다.

“그걸 쓰게요?”

허공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필도는 고개를 돌렸다. 라헤나와 다란이 얼굴만 드러낸 채 이편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족이나 천족이 따라올지 모르잖아요. 두 분 다 날 잡으세요.”

김필도는 헬칸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업혀도 돼요?”

라헤나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좋을 대로 하세요.”

“아이고, 고마워라!”

라헤나는 얼른 김필도 등에 업혔다. 그녀가 업히자 다란은 김필도의 어깨를 잡았다.

“디자이너 자네도.”

“알았어요.”

알마니는 김필도의 왼팔을 잡았다.

“혼돈의 바람, 라콰 카이!”

김필도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이어 그를 비롯한 알마니 라헤나 다란은 벽을 통과해 세스티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을 맞이한 건 널따란 벌판이었다.

“어때…….”

몸 상태를 물으려던 김필도는 말끝을 흐렸다.

늘 허공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라헤나와 다란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어요.”

라헤나는 김필도의 등에서 내리며 대답했다.

“디자이너 자네도 그래?”

“이 녀석을 꺼내 놓지 않았더라면 빈손일 뻔했어요.”

알마니는 들고 있는 가위를 가리켰다.

“마나 속박 마법이 광범위하게 펼쳐진 게 맞나 보네.”

김필도는 헬칸을 들어보았다. 헬칸에 걸린 마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듯 무게는 그대로였다.

“바르칸은 어때요?”

김필도를 바라보던 라헤나가 물었다.

“일단 가죠.”

김필도는 빙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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