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65화 (165/225)

# 165

헬칸은 세이아칸의 명령을 수행할 장소로 이곳 감옥을 선택했다. 마족이나 또는 인간과 싸울 때에는 쉽게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 밝았다.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데…… 일단은.”

헬만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가 만난 천족은 세이아칸이 은밀하게 붙여준 50명의 수장 페르토였다.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를 찾아라!”

“알겠습니다.”

헬만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페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나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은…….”

헬만은 조금 전 그가 알아낸 비밀을 페르토에게 말해 주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페르토 일행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10군.”

페르토는 목례를 하곤 자리를 떴다.

“일단 지하로 들어가면 넌…….”

헬만은 차가운 눈으로 하라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10군”

헬만의 시선을 느낀 하라미가 물었다.

“아닙니다, 2군.”

헬만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라이자칸의 비기인 제6감을 습득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왼편으로 적이 다가들고 있어요, 10군. 왼편을 보강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2군.”

헬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어 그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6조, 7조, 8조, 9조, 10조는 좌측으로 이동하라! 적의 기습에 대비하라!”

“클클클!”

“켈켈켈!”

“캬캬캬!”

“그놈들 귀도 밝네.”

나직한 웃음과 함께 검은 덩치들이 천족 진영을 향해 쏘아져 갔다. 그들은 김필도를 쫓아왔던 마계10군단 대원들이었다. 그들 선두에 있는 자는 제4부군단장인 발카모와 제5부군단장인 우데스였다.

“봤는가?”

몸을 날려가던 발카모는 우데스를 돌아보았다.

마계10군단 대원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10분 전이었다.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지금껏 천족과 김필도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의 검술 말인가?”

우데스가 되물었다.

“그건 우리 마족의 검술이었네. 그리고 그는 헬칸뿐만이 아니라 오테르 인장의 주인이기도 했네.”

“오테르 인장 또한 히데우스 님의 유체에서 훔쳤을 수도 있잖는가?”

“오테르의 인장처럼 가문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물은 원 주인이 죽으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회귀 마법이 걸려 있거나, 주인이 아닌 자가 강제로 소유하게 되면 소멸되는 소멸 마법이 걸린 걸로 아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군단장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그건 헬칸의 주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발카모는 건물 근처까지 밀려간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천족 수십 명에게 둘러싸인 채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된 것 같지 않았다. 휘두르는 헬칸에는 힘이 넘치고, 움직임은 비호처럼 빠르다.

대단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물려주겠네.”

“무슨 소린가?”

발카모는 고개를 돌려 우데스를 보았다.

“황야에서 죽어가는 상황인데, 헤를리온의 주인이 나타났다면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종족에 상관없이 가문의 후계자로 삼을 거란 말인가?”

“아니면 기회가 닿으면 가문의 후예에게 돌려주라는 부탁을 하겠지.”

“그러니까 자네 말은 저 친구가 오테르 가문의 가주이든 아니든, 헬칸을 훔친 건 아니라는 말이구먼.”

“아무튼 놈들을 정리하고 알아보세.”

어느새 마족의 선두는 천족 진영에 도착해 있었다.

“마계 전사들이여, 적을 섬멸하여 마족의 위대함을 증명하라!”

발카모는 검을 번쩍 쳐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와아!”

“우와아!”

마족들은 우렁차게 함성을 지르며 천족 진영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파앗! 파앗! 파앗!

바로 그때 허공에 밝혀져 있던 불이 일제히 꺼졌다.

차자창! 창창! 창창창!

“우와악!”

“아악!”

“으악!”

하지만 천족과 마족은 불이 꺼진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상대방을 향해 무차별하게 검을 휘둘렀다.

“어떻게 된 거지?”

김필도는 뒤편의 고스트 킹을 향해 물었다.

-나도 모른다.

스윽!

스아악!

“크악!”

고스트 킹은 좌측으로 몸을 날려, 천족 한 명의 몸통을 잘라내며 대답했다.

“갑자기 불을 껐다는 건 이곳을 봐서는 안 되는 자가 왔다는 뜻인데…….”

김필도가 알기론 그런 자는 베칼리오 후작밖에 없었다.

“전부 쏟아져 들어오네.”

김필도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맺혔다.

“여기 있었소?”

바로 그때 데푸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는 고개를 돌렸다.

온몸을 피로 목욕한 데푸시와 이프리스가 다가와 있었다.

“다쳤냐?”

김필도는 물었다.

“누렁이들의 피요. 그런데 형님이 시킨 거요?”

데푸시는 검면에 뭍은 피를 닦아내며 물었다.

“여기에 계속 있었는데 지시 내릴 틈이 어디 있냐?”

“그럼 베칼리오 그놈이 왔다는 뜻이구려.”

“그런 모양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지.”

김필도는 건물 처마 밑으로 이동하여 몸을 숨겼다.

김필도와 데푸시의 예상대로였다.

넬이 갑자기 불을 끈 것은 베칼리오 후작의 방문을 김필도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베칼리오 후작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난 후 넬은 불을 끄고 리처드 일행을 다른 장소로 피신시킨 다음 마중을 나갔다.

“어서 오십시오.”

넬은 베칼리오 후작을 향해 인사를 했다.

“마족과 천족은 다 들어왔는가?”

“방금 접전을 시작했습니다.”

“대공은 어디 있는가?”

“천족과 대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강했단 말인가?”

베칼리오 후작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금 이곳에서 천족은 힘이 약간 세고 덩치가 큰 전사에 불과합니다.”

“우리에 비해 나을 것도 없다는 말이구먼.”

“그렇습니다.”

‘하지만 마나 속박의 비밀은 금세 알아내겠지.’

베칼리오 후작은 내심 중얼거렸다. 몸을 허공에 띄우면 속박된 마나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은 베칼리오 후작만 알고 있는 극비사항이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망루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선 넬이 물었다.

“해방의 방으로 가세.”

해방의 방은 세스티 감옥에서 유일하게 마나 속박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장소다. 즉 마법 스크롤을 이용하면 라파를 탈출하는 게 가능한 장소가 바로 해방의 방이었다. 베칼리오가 해방의 방으로 가려고 하는 것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알겠습니다.”

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잠시 후 베칼리오는 호위기사 50명과 함께 해방의 방으로 들어갔다. 밖은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고대의 땅 개발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가?”

베칼리오 후작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90퍼센트가량 끝났습니다.”

“출입구는 아직 한 곳인가?”

“그렇습니다, 중앙의 저 건물 한 곳입니다.”

넬은 감옥 중심부를 가리켰다.

“출구를 열게.”

“고대의 땅으로 밀어 넣을 생각이십니까?”

“폐하께서 헤를리온을 반드시 회수해 오라고 명령을 내리셨네.”

“언제 열면 됩니까?”

“우리가 화살 공격을 시작하면 그때 통로를 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넬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급하게 1층으로 내려간 그는 베틀러를 찾았다.

“말씀하십시오, 소장님.”

“라헤나 그분은 어디 있지?”

“리처드 경과 같은 장소에 있습니다.”

“가서 고대의 땅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열 준비해.”

넬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알겠습니다, 소장님.”

베틀러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계단을 내려간 넬은 아래쪽 측면에 만들어진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비상시에 몸을 숨길 때 사용하는 비밀의 방이었다.

“어떻게 됐는가?”

차를 마시던 리처드가 물었다.

“이곳에 있는 고대의 땅으로 밀어 넣을 모양입니다.”

“고대의 땅?”

“10년 전에 발견한 지하 공동입니다. 수많은 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대인들의 유물이 발견돼서 고대의 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발굴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90퍼센트가량 끝났습니다.”

넬은 품속에서 작게 접힌 종이를 꺼내 라헤나에게 내밀었다.

“뭐죠?”

라헤나는 종이를 받아들고 물었다.

“지돕니다.”

“알았어요.”

라헤나는 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특이한 자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공을 따르기로 한 건 분명한데 믿음이 가지 않는다. 김필도가 공연히 그를 끌어들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쏘아진 화살.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별다른 수가 없다.

그녀는 다란과 함께 방을 나갔다.

“저도 가보겠습니다.”

넬은 리처드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조심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비밀의 방을 나온 넬은 곧바로 망루로 향했다.

망루의 해방의 방에는 전투 기갑을 걸친 기사 50명이 베칼리오 후작을 중심으로 호위 진형을 유지한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됐는가?”

넬이 들어서자 베칼리오 후작이 물었다.

“화살 공격이 시작되면 바로 통로를 열 겁니다.”

“포트!”

“알겠습니다, 단장님!”

베칼리오 근처에 있던 기사 한 명이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화살을 쏴라!”

“쏴라!”

“쏴라!”

사방에서 화살을 쏘라는 명령이 터져 나왔다.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섬뜩한 소성이 세스티 감옥 허공을 가득 채웠다.

“화살이다! 화살이 떨어진다!”

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그 소리의 정체가 화살임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고함을 내질렀다. 천족과 마족은 일제히 싸움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아악!”

“으악!”

“크아악!”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은 마족과 천족의 몸에 무자비하게 파고들어 갔다. 강인한 근육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전투기갑이 없는 그들은 화살을 막아낼 수 없었다.

“세 명씩 조를 짜라! 검으로 화살을 막아라!”

천족과 마족은 빠르게 움직였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세 명씩 조를 짜 검을 나란히 붙여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또다시 섬뜩한 소리가 들려오고, 엄청난 수의 화살이 떨어졌다.

“크악!”

“아악!”

“아아악!”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을 방패로 사용한 덕분에 위에서 떨어지는 화살은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위쪽과 측면에서 동시에 화살이 날아온 것이었다.

이번 비명은 수평으로 쏘아져 온 화살에 맞은 자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측면도 막아라!”

발카모는 고함을 내질렀다.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또다시 하늘에서 섬뜩한 소성이 들려왔다.

“젠장!”

발카모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저기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건물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둠에 잠겨 있던 건물에서 희미하게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천족과 마족의 시선이 일제히 건물로 향했다.

마치 안에서 불을 밝히는 것처럼 건물 주위가 환해졌다. 그리고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있는 네 명의 모습이 천족과 마족의 눈에 들어왔다.

“대공이 저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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