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66화 (166/225)

# 166

제7장 인공호흡의 나쁜 예

“쪽팔리게 그게 뭡니까?”

데푸시는 어둠을 뚫고 내달리며 투덜댔다.

“뭐가?”

김필도의 눈은 바쁘게 주위를 살폈다.

주위가 환해져, 천족과 마족에게 들키자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수감 시설인 줄 알았던 그곳은 지하로 들어가는 통로를 숨기기 위해 세운 가짜 건물이었다. 안쪽에는 지하로 이어진 거대한 통로가 있었다.

통로의 크기는 폭 10미터 높이 5미터였다.

통로는 30도 정도의 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향해 있었는데, 길이는 2킬로미터가량이었다.

그곳을 빠르게 내달리자 마법등이 희미하게 밝혀진 광장이 나타났다. 지름이 50미터가량 되는 광장 안쪽 절벽에는 수십 개의 동굴이 뚫려 있었다.

“비루먹은 강아지 꼴을 하고 앉아 있는 걸 들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비루먹은 강아지들은 전부 살아 있잖아, 인마.”

김필도는 동굴을 살폈다.

“동굴은 내 전문입니다, 형님.”

“진짜?”

“저만 믿으십시오.”

“알았어.”

김필도는 데푸시에게 안내를 맡겼다.

데푸시가 선택한 동굴은 맨 왼편이었다.

동굴의 폭은 3미터 높이 4미터가량으로 인공이 약간 가미된 천연 동굴이었다. 이곳 역시 마법등이 걸려 있었다. 일행은 데푸시를 따라 동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동굴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제대로 가는 거냐?”

데푸시를 따라가던 이프리스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동굴이 자꾸만 좁아진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내 전문이라고 했잖…… 막혔네?”

데푸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바람이 불어오기에 뚫린 곳인 줄 알았는데, 동굴의 폭과 높이가 30센티미터 정도로 좁아져 버린 것이었다.

“동굴은 전문이라고 하지 않았냐?”

김필도는 따지듯 물었다.

“그게 오랜 감옥 생활을 하다 보니까 감각이 무뎌진 모양입니다.”

“이제 어쩔 건데?”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순 없잖습니까.”

“부수고 가려고?”

“다행이 이곳 바위는 약한 사암입니다. 사암에 구멍을 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네가 할 거냐?”

“네.”

데푸시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는 검을 가슴 앞에 세우고 호흡을 골랐다.

차앙! 창창! 창창창!

“으아악!”

“크아악!”

“아아악!”

동굴 벽을 타고 병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이 연이어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오자 다시 싸움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타앗!”

데푸시는 고함을 내지르며 작은 구멍을 향해 쏘아져 갔다. 5미터 앞에 선 그는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바닥을 찼다. 순간 저 아래쪽으로부터 엄청난 마나가 솟구쳐 올랐다. 땅에서 두 발을 뗌과 동시에 마나 속박 마법에서 해방되며 굳어 있던 마나가 활성화된 것이었다.

“좋다, 썅!”

데푸시는 기분 좋은 욕설을 뱉어내며 전면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쏘아져 나온 오라는 전면 석벽으로 파고들어 갔다.

쿠릉!

미약한 소리가 벽에서 흘러나왔다.

척!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마나가 급격하게 사그라졌다.

“드디어 비밀을 알았습니다, 형님!”

두 발을 떼었을 때 마나 속박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데푸시는 김필도를 돌아보았다.

콰앙! 콰앙! 콰앙!

바로 그때였다.

데푸시가 쏟아 부었던 오라 블레이드가 벽면 안쪽에서 폭발했다.

우르릉!

중심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지면이 흔들렸다.

“성공입니다, 형님!”

데푸시는 전면을 가리켰다. 그가 오라 블레이드를 쏟아 부었던 벽면은 커다란 통로로 변해 있었다.

“네가 저렇게 강했냐?”

족히 3미터는 돼 보이는 벽면을 통째 날려 버린 데푸시의 검술에 김필도는 깜짝 놀랐다. 마나가 속박된 상태에서 저 정도라면 거의 자신에 필적한 실력이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고 저건 전력을 다한 결괍니다.”

“전력을 다해?”

“네.”

“여긴 마나 속박 마법이 펼쳐져 있지 않은 거야?”

“그게 아니고…….”

그르릉! 푸아악!

데푸시가 이곳의 비밀에 대해 막 설명하려는 순간 일행이 서 있던 바닥이 쑥 꺼졌다. 이어 천장마저 무너져 내렸다.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자 눈사태가 난 것처럼 동굴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흩어지지 마!”

김필도는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떨어지는 바위를 쳐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말았다.

콰앙!

또다시 아래쪽 바닥이 터지고 김필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추락했다.

“형니임!”

“왜?”

“지금 어디 계십니까?”

“떨어지고 있어!”

“형님이 날 때는 마나를 사용할 수…….”

거리가 멀어진 듯 다음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게 아니라도 헤를리온 소환은 가능해, 녀석아.”

김필도는 오른손을 심장에 대고 헤를리온을 소환했다.

마나를 왜곡하여 펼친 마나 속박 마법은 혼돈의 마나를 지닌 김필도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 속박 마법에 당한 척한 것은, 리처드 일행이나 천족들 앞에서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장소.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금세 검은 운무가 온몸을 감싸더니 헤를리온을 착용한 모습으로 변했다.

풍덩!

헤를리온을 완벽하게 착용한 순간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덮쳐 왔다.

“헉! 광염의 불 세딕(Sedic)!”

순식간에 심장으로 밀려드는 한기에 김필도는 급하게 불의 속성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헤를리온 주위로 불꽃이 나타나더니 한기를 몰아냈다.

그때 바닥에 도착한 듯 딱딱한 것이 발에 걸렸다.

김필도는 강하게 바닥을 차며 솟구쳐 올랐다. 상당히 깊은 곳인 모양이었다.

얼추 3분가량 헤엄쳐 갔을 때 비로소 희미한 광채가 보였다. 조금 전 떨어지면서 보았던 그 광채였다.

츄악!

이윽고 김필도의 머리가 수면 위로 나왔다.

“여긴…….”

김필도는 그 자리에서 주위를 살폈다. 그가 떨어진 곳은 호수였다. 지하 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는 헤엄을 쳐 호수 가장자리로 나왔다.

“엄청나네.”

김필도는 조금 전 떨어졌던 곳을 살펴보았다.

어디쯤에서 떨어졌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법 구멍으로 떨어진 건가?”

김필도는 호수로 시선을 옮겼다. 순식간에 심장으로 밀고 들어왔던 한기. 그 정도면 영하 수십 도는 될 것이다. 그런데 호수 물은 얼지 않은 채다.

“어디 보자.”

그는 발치에 있는 이끼를 뜯어 물로 던졌다.

쩌엉!

이끼는 수면으로 떨어지자마자 얼음으로 변했다.

“끙!”

김필도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상한 세상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별로 춥지는 않은 것 같은데?”

김필도는 헤를리온을 해제했다. 기온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끼를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차가운 물과는 달리 주위 대기는 약간 쌀쌀한 정도일 뿐 아주 춥진 않았다.

“진짜 이상한 곳이네.”

김필도는 발치에 뒹굴고 있는 검은 물체를 주워들었다. 그것은 돌보다는 가볍고 나무보다는 약간 무거웠다.

“어디! 토치!”

김필도는 검은 물체를 쥔 채 토치 마법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그리고 검은 물체가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다.

“암탄과 비슷한 건가 보네.”

김필도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맺혔다. 거무튀튀한 돌은 지천에 깔려 있다. 그는 주위를 돌며 검은 물체를 모았다. 그런 다음 불을 피웠다.

“불은 해결됐고, 이제 먹을 것만…… 오픈!”

불길이 일어나는 걸 확인한 김필도는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은 곧바로 열렸다.

김필도는 아공간 안쪽으로 고개를 디밀어 음식을 해먹을 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먼저 삼각대와 솥을 꺼내 놓고, 하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좌식 테이블과 카판을 내리는 도구와 카판 그리고 그릇 등을 꺼냈다.

“세 가지 이상을 섞는 게 성공했으니까 이젠…….”

김필도의 시선이 아공간 한편에 놓인 검은 상자로 향했다. 그 상자는 요른 형님이 남겨 준 것으로, 안에는 드래곤들이 남긴 맹약의 구슬과 요른이 평생 동안 익혔던 마법을 기록한 마법서가 있다.

요른은 이 상자를 주면서 세 가지 기운을 혼합하여 자유롭게 펼치지 전까지는 마법서를 절대 보지 말라고 했다. 세 가지 마나는 진작 섞었지만 시간이 없어 마법서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봐도 될 것 같았다.

상자를 테이블 위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맹약의 구슬 세 개와 마법서 한 권 그리고 베른이 사용한 마법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

김필도는 마법서를 집어 들었다.

마법서는 엄청나게 두꺼웠다.

그는 첫 장을 넘겼다.

-학사 사시미 김필도 보아라.

나는 네 녀석을 불러온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니 네가 루시안 아이작 본인이었다면 이걸 남기지 않았을 게다.

루시안 아아작 프리우스는 결코 외롭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넌 외로울 게다.

부자가 돼,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설사 황제가 돼 모든 권력을 쥐어도 그 외로움은 가시지 않을 게다.

넌 이계에서 온 학사 사시미 김필도니까.

그때 이걸 읽어 보아라.

아주 심심해 미칠 것 같을 때, 삶이 덧없다고 느낄 때 보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머리 나쁜 네 녀석을 위해 아주 쉽게, 우리말을 이해할 정도의 지능만 있으면 익힐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단 실전 마법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여기서 덮어라.

“풋!”

김필도의 얼굴에 훈훈한 미소가 어렸다.

생명의 은인이면서 삶의 영원한 멘토, 요른!

주름진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심심한 정도가 아니라 무한한 생명을 얻어 버렸습니다. 아마 전 스승님께서 남기신 이걸 완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놓을 겁니다, 스승님.”

“당연히 그래야지 녀석아. 약속해라.”

어디선가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완성하겠습니다, 스승님.”

치익!

그때 특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는 시선을 돌렸다.

“어?”

김필도는 깜짝 놀랐다.

활짝 열려 있던 아공간의 입구가 주먹만 해져 있었다. 그것 또한 점점 줄어드는 중이었다.

“왜 이러지?”

김필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공간은 완전하게 닫혀 버렸다.

“그래 봐야 네가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오픈(Open)!”

김필도는 다시 아공간을 열었다.

“……?”

하지만 아공간은 열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열렸잖아. 이것들도 내가 꺼낸 거라고.”

김필도는 다시 아공간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공간은 열리지 않았다.

김필도는 오른손을 활짝 펴 토치 마법을 펼쳤다.

시동어가 끝나자마자 그의 손바닥 위에는 커다란 불꽃이 생겨났다.

“미치겠네. 마법도 펼칠 수 있고, 전투 기갑도 소환이 가능한데 아공간만 감감 무소식이네. 오픈!”

김필도는 다시 마나를 모아 소리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공간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음식을 먼저 꺼내는 건데.”

김필도는 꺼내놓은 물건들을 보았다.

음식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은 전부 꺼내놓았는데 정작 음식은 꺼내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길을 찾을 동안 얼마나 이곳을 헤매야 하는지 모르는데 먹을 음식이 없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물고기라도 살면 좋으련만.”

하지만 영하 수십 도가 넘는 저런 호수에 물고기가 산다는 건 그야말로 난센스일 것이다.

“어쨌든 먹을 걸 찾아봐야지. 쥐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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