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73화 (173/225)

# 173

“내가 아는 천족이라고 해 봐야 라이자칸밖에 없는데?”

“그분이에요.”

“진짜?”

“네.”

“훌륭한 스승을 두었네?”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만난 전사들 중 최고였어. 히데우스 그 양반과도 막상막하일 것 같던데.”

“우리 스승님이 이길걸요?”

“히데우스를 무시하지 마. 그는 평군에서 시작해 마계10군단 군단장이 된 마계 최고 전사였어.”

“하지만 스승님은 제6의 감각을 깨웠다고요. 그는 상대가 아니에요.”

“제6의 감각은 천계 전사면 다 사용할 줄 아는 거 아냐?”

“아니에요. 스승님의 독문 기술이에요.”

“진짜?”

“그렇다니까요. 그런데 왜 그래요?”

“나도 그걸 배웠거든.”

“정말 배웠어요?”

“제6의 감각을 깨우면 눈을 감고 싸우는 게 더 편하잖아.”

“진짜 제6의 감각을 깨운 모양이네요?”

“문 대륙에서 섀도 족과 싸우면서 터득했어.”

“그럼 당신과 나는 동문이네요?”

“동문?”

“한 스승님으로부터 배웠으니까 동문이잖아요.”

“그렇게 되는 건가?”

“당연히 그렇죠. 그리고 내가 당신보다 먼저 배웠으니까 난 동문 누이가 되는 거고요.”

하라미는 양팔로 김필도의 목을 세게 조이며 활짝 웃었다.

“하라미.”

“말해요.”

“몇 킬로그램 나가지?”

“81킬로그램.”

“헬칸의 무게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40킬로그램.”

“둘을 합치면?”

“120킬로그램이죠.”

“내가 120킬로그램을 업고 간다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동생이 누나를 업어주는 건 당연한 거예요.”

“누가 동생인데?”

“동문 동생이라고 금방 그랬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업고 가라고?”

“천족 사내들은 내가 업히겠다고 하면 줄을 설걸요?”

“난 천족이 아니잖아.”

“아무튼 날 업는 건 좋은 일이니까 업고 가요.”

“좋다고. 업고 가는 건 좋은데 우리 음식에 대해서 생각은 해 봤어?”

“식량 말이에요?”

“검술과 마법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음식을 만들어 낼 수는 없잖아.”

“내게 맡겨요.”

“방법이 있다는 거야?”

“일단 맡겨 보세요.”

“좋은 말이다.”

김필도는 걸음을 빨리했다.

하루라도 빨리 플라이 마법을 익혀 날아서 빠져나가는 수밖에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둘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와우! 저건 어디서 구한 거죠?”

하라미는 침대를 보며 물었다.

“저쪽에서.”

“그 요상하게 생긴 게 침대였어요?”

“침대인지는 모르겠는데 뒤집으니까 침대 모양이 되더라고.”

남아 있는 불씨 위에 검은 광물 수십 개를 쌓고 불길을 살린 다음 책을 꺼내들고 침대로 올라갔다.

“마법이 재밌어요?”

곧바로 책을 잡는 김필도를 보며 하라미가 물었다.

“별로 재미는 없어.”

“그런데 오자마자 마법서를 들어요?”

“여기서 굶어 죽을 순 없잖아. 플라이 마법만 익히면 여길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식량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응!”

“내게 맡기라고 했잖아요.”

“네가 무슨 수로 식량을 해결하는데?”

“거참! 의심은.”

하라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김필도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필요한 게 뭔데?”

“헬칸요.”

김필도는 헬칸을 내밀었다.

헬칸을 받아든 하라미는 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호수 앞에 선 그녀는 손을 돌려 가슴을 묶었던 천과 아래를 가린 천을 풀어 옆에 놓았다.

“지금 뭐 하는 거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물로 들어가겠다는 거야?”

“네.”

“거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들어간다는 거야?”

김필도는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물로 들어가는 건 한 번이면 족했다.

아무리 식량이 급하다고 해도 하라미에게 죽음을 무릎 쓴 모험을 또 시킬 수는 없었다.

“난 괜찮으니까 불이나 활활 피워 놓으라고요.”

하라미는 성큼성큼 호수로 걸어 들어갔다.

발이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차앗!”

하라미는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녀 내부에 있던 마나가 활성화되면서 한기를 몰아냈다.

쩌엉!

그녀 몸에 허옇게 얼음이 얼었다.

“마나 활용이 가능한 거야?”

“네.”

하라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긴 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한 건데?”

“내가 어떻게 한 건 아니고, 당신이 준 맹약의 구슬 덕분에 마나 속박 마법을 극복했어요.”

“맹약의 구슬?”

“맹약의 구슬이 녹으면서 내 몸속의 마나 중 얼음 계열 마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났어요. 즉 이 물과 비슷한 상태가 된 거예요. 내 몸속의 마나와 물의 온도가 비슷하다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곳에 펼쳐진 마나 속박 마법을 극복하는 방법은 어느 한 계열의 마나를 비정상적으로 증가시키면 된다는 거네?”

“아니면 당신처럼 혼돈의 마나를 가지고 있든가요.”

“아무튼 오래 있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빨리 나와.”

“알았어요. 그리고 거기 이끼 좀 던져 주세요.”

하라미는 허벅지까지 잠긴 지점에 멈춰 서며 말했다. 김필도는 주위에 있는 풀을 하라미 근처로 던졌다.

풀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라미는 검을 들어 올린 채 천천히 그 자리에서 돌았다.

“이러다 내가 미치고 말지.”

김필도는 이내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3미터 크기의 불상이 어느새 인어로 바뀌어 있었다. 풍만한 가슴과 가는 허리 그리고 탐스러운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더구나 그녀는 알몸.

벗고 있는 사람이야 아무 생각 없을지 몰라도 구경꾼은 달랐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뭔 일이 일어나고 말 것만 같았다.

“3미터다, 김필도. 넌 185센티미터고, 그녀는 3미터다. 3미터. 3미터. 3미터.”

김필도는 ‘3미터’란 말을 되뇌었다.

“차앗!”

퍼억!

그때 우렁찬 외침과 함께 물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필도는 번쩍 눈을 떴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물이 눈에 들어왔다.

하라미가 옷을 벗고 들어간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조금 남은 옷이라도 건지고 싶어 벗고 들어간 것이었다.

김필도는 긴장한 얼굴로 하라미 옆 수면을 살폈다. 곧 드래곤 피시가 허연 배를 드러내며 떠올랐다.

물을 타고 들어온 강한 충격파에 기절을 한 것 같았다.

“받아요.”

하라미는 떠올라 있는 드래곤 피시를 밖으로 던졌다.

김필도는 드래곤 피시를 물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다섯 마리를 잡은 하라미는 자리를 옮겼다.

10여 미터 이동한 다음 풀을 던져 달라고 말하고, 다시 기다렸다. 약 5분가량 흐른 후 그녀의 입에서 두 번째 기합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 잡은 드래곤 피시의 수는 7마리였다.

“이제 나와!”

“알았어요.”

하라미 또한 견딜 수 없는 듯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아흑!”

밖으로 나온 그녀는 일순 비틀거렸다.

김필도는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아무튼 넌.”

김필도는 바삐 바지를 벗었다. 하라미의 허벅지 곳곳에서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속에 너무 오랫동안 머문 후유증이었다.

김필도는 그녀 허벅지의 물기를 닦아냈다. 물기를 전부 닦아내고 하라미를 번쩍 안아 모닥불 가로 향했다.

하라미를 안고 가면서 불의 속성 마법을 펼쳐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제 당분간 먹을 거 걱정할 필욘 없겠죠?”

“앞으로는 내가 할게. 예쁜 다리에 이게 뭐냐?”

“저 안에서 10분 이상 버틸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다는 거 당신도 알잖아요. 나도 실버 드래곤이 남긴 맹약의 구슬을 녹이지 못했다면 꿈도 꾸지 못해요. 행여 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저걸 다 먹기 전에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

김필도는 침대에 하라미를 눕히고 끓이고 있던 뜨거운 물을 따라 주었다. 그러고는 호수가로 가서 그녀의 옷을 가져다주었다.

“이 작은 천을 덮어주는 것보다 체온으로 녹여주는 게 어때요?”

“네가 어지간히 커야 그런 것도…….”

김필도는 말끝을 흐렸다. 하라미의 입술이 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는 얼른 하라미 옆에 누웠다.

185센티미터의 체구로 3미터 거구를 안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는 몸에 불의 속성 마법을 펼치고 하라미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아! 따뜻해.”

하라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김필도를 안았다.

“등이 추워요.”

“끙!”

김필도는 오므렸던 팔을 풀어 하라미의 등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커다란 살덩이에 묻히고 말았다. 바로 중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우뚝 서 있는 가슴이었다.

“당신은 난로예요.”

하라미는 김필도를 사정없이 끌어당기며 등을 쓸었다.

“미치겠네.”

김필도는 고개를 뒤로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더불어 살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도 참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힘껏 끌어당기는 하라미의 악력에 무너져 참았던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녀를 업었을 때 맡았던 달콤한 향보다 훨씬 진한 정체 모를 향이 코를 파고들었다.

“헉!”

김필도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향을 맡는 순간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며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이건……?”

뚝!

그 말을 끝으로 김필도가 끝가지 고수했던 3미터 저항선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김필도는 짐승처럼 신음을 내뱉으며 하라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제10장 그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미치겠네.”

김필도는 멍한 얼굴로 뻥 뚫린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라미는 분명 아름답고, 아니 날고 긴다는 탤런트들이 울고 갈 정도로 예쁘다.

군살 하나 없는 피부는 만지면 미끄러질 정도로 매끈하면서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듯 안락하기까지 하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깊은 늪 같은 여자다.

하지만, 김필도의 취향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여자 품에 안기는 것도 싫고, 올려다보는 것도 싫다. 1미터90센티미터까지는 허락한다고 했던 것은, 여자는 굽이 없는 단화를 신고 자신은 키 높이 구두를 신으면 커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불가능하다.

작은 여자는 되면서 키 큰 여자는 안 된다는 건 여성비하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런데 1미터95센티미터도 아니고 2미터도 아니고, 2미터50센티미터도 아니고 무려 3미터 장신과 잠을 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잔 정도가 아니라 광란의 파티를 벌이며.

“저 빌어먹을 걸 잘라버리든지 해야지.”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요.”

커다란 손 하나가 김필도의 하체를 막아섰다.

“도대체 그건 뭐지?”

“뭐가요?”

“날 짐승으로 만든 그 향기 말이야.”

이성을 잃게 된 건 하라미의 몸에서 흘러나온 특이한 향 때문이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 향기를 맡는 순간 하라미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제어가 되지 않았다.

거의 발정난 수컷처럼 하라미를 탐하고 또 탐했다.

“우리 천족은 ‘사랑의 향’이라고 불러요.”

“일부러 뿌리고 다닌 건 아닐 테고 어떻게 된 건데?”

“저절로 나와요.”

“저절로?”

“네.”

하라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사랑의 향’을 뿜어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랑의 향’은 천족 사회에서는 전설이다.

천족 여자는 죽음마저도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짝을 만나면 가슴 사이에 있는 러브 서클에서 특이한 향기가 흘러나오는데 그 향은 사내를 매료시킨다고 하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결혼을 한 많은 부부를 만났지만 ‘사랑의 향’을 뿜어냈다는 쌍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의 향’을 뿜어낸 것이다.

‘설마 이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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