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81화 (181/225)

# 181

제3장 승부

헬만은 검을 굳게 틀어쥐었다. 이제 믿을 건 자신의 실력뿐이었다.

“천족의 강함을 보여주겠다, 벌레.”

헬만은 검을 가슴 앞으로 세웠다.

“천좌10군이라고 했던가? 네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금세 깨닫게 될 거야.”

김필도는 마훼를 거둬들이고, 헤를리온마저 해제했다.

“전투기갑을 걸쳐라, 놈!”

헬만은 버럭 소리쳤다.

“싸우는 건 내 마음이야.”

김필도는 무게 조절기를 끝까지 돌려 몸무게 1백50킬로그램, 헬칸 40킬로그램, 총 1백 90킬로그램으로 늘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어.”

김필도는 헬칸을 비스듬히 늘어뜨렸다.

“이번 싸움은 누렁이 너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야.”

파앗!

김필도의 신형이 헬만을 향해 쏘아져 갔다.

“오냐, 놈!”

헬만도 마주 달려갔다.

천족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전투기갑을 벗어야 하지만 헬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에 전투기갑 없이 싸웠다가 왼팔을 잃었는데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김필도와 헬칸은 순식간에 맞닥뜨렸다.

스아악!

휘익!

강한 바람소리를 남기고 헬칸과 헬만의 검이 서로를 향해 나아갔다.

차앙!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턱턱! 턱턱!

검이 부딪치면서 생겨난 반발력에 의해 헬만과 김필도는 다섯 걸음씩 물러났다. 그들 앞에는 선명하게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가 밀렸다고 할 수도 없는 아주 대등한 상황이었다.

“개자식!”

헬만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김필도를 향해 내달렸다.

그는 자존심이 극도로 상했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더 나가고, 전투기갑까지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결과가 나왔다는 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천족이 인간보다 못하다는 건 헬만의 입장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온 마나를 동원하여 빛의 검법을 펼쳤다.

그의 검에서 새하얀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그 광채와 함께 살기를 담은 수십 개의 검이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갔다.

차앙! 창! 창창창! 창창! 창창!

헬칸은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오른편에 있는가 하면 왼편에 있고, 왼편에 있었다 싶으면 어느새 머리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헬칸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끊임없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푹! 푹! 푹! 푹푹푹!

헬만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김필도를 공격했다.

검에서 흘러나온 빛 무리는 그는 물론이고 김필도를 완전하게 감쌌다. 그 상태에서 둘은 공터를 헤집고 다녔다.

“대단하군.”

크레디안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지금 헬만이 펼치는 검법은 천계 최강 검법의 하나인 빛의 검법이다. 빛의 검법은 검이 뿜어내는 빛 속에 실체와 허상을 실어 공격하는 걸 말하는데 강자일수록 많은 실체를 쏘아 보낼 수 있다.

크레디안이 알기론 헬만의 한계는 1백50개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라고 해도 천족의 일반 전사는 막아내지 못한다. 더구나 상대의 검에서 터져 나오는 빛 무리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인간은 헬만이 펼치는 빛의 검을 정확하게 방어해내고 있다. 놀라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푹! 푹푹푹! 푹푹!

차앙! 창창창! 창창!

그 와중에도 헬만과 김필도는 계속 바닥을 다지고 다녔다. 헬만은 여전히 위협적인 힘으로 김필도를 몰아쳤다.

“좀 더 힘을 내라, 누렁이!”

빛 무리 속에서 비아냥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개새끼!”

헬만의 입에서 진득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꿈에도 김필도가 빛의 검법을 막아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멈추는 순간 널 끝장낼지도 몰라, 누렁이! 좀 더 힘을 내.”

“오냐.”

헬만은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의 검에서 눈을 뜨기조차 힘든 빛이 쏟아져 나와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슈캉!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헬만의 신음이 뒤를 이었다.

“억!”

느닷없이 김필도의 검이 쑥 꺼지면서 중심이 흐트러져버린 것이었다. 그 바람에 주입하던 마나가 끊어지고, 헬만과 김필도의 모습이 드러났다.

김필도는 검을 번쩍 들어 올린 채고, 헬만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공격할 거야, 누렁이!”

김필도는 들어 올린 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조금 전 천족들이 김필도를 향해 펼쳤던 도끼질 검법이었다.

키가 65센티미터나 작았지만 헬칸이 워낙 커서, 헬만의 머리를 노리고 펼치는 도끼질 검법이 그다지 어색하진 않았다.

스아악!

헬만은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려 머리 위에서 눕혔다.

카앙!

자세를 잡는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웃!”

헬만은 다시 신음을 내뱉었다. 내리치는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들어 올린 그의 검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었다.

만일 투구를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머리가 잘려나갔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스아악!

자세를 채 잡기도 전에 튕겨나갔던 헬칸이 다시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두울!”

그리고 김필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헬만은 다시 검을 들어 방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차앙!

동작은 처음과 같았지만 소리는 약간 더 무거웠다. 내리찍는 검에 힘이 더 실렸다는 뜻이었다.

“음!”

나직한 신음을 토하며 헬만이 비틀거렸다. 자신의 검에 머리를 찍는 창피함을 당하지 않으려고 오른손에 힘을 주자 다리에 하중이 쏠리며 중심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헬만은 급하게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자세를 바로 잡는 순간 튕겨나갔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고, 같은 동작으로 방어해야 했다.

“셋!”

차앙!

“넷!”

차앙!

“다섯!”

차앙!

둘의 움직임은 변함이 없었다. 김필도는 내리찍고, 방어하는 헬만은 신음과 함께 물러났다.

‘벗어나야…….’

헬만은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했다. 시간이 지나면 검에 실린 힘이 약해져야 하는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엔 당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이 일었다.

“스물!”

콰앙!

“크윽!”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도 달라지고, 헬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달라졌다. 더불어 헬만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힘을 내라, 누렁이! 나는 벌레잖아, 안 그래?”

스악!

“기다렸다, 놈!”

헬만은 전력을 다해 검을 밀어 올렸다.

콰앙!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이번에는 헬칸이 밀렸다.

“이번엔 내 차례다!”

온몸을 꼿꼿이 세운 헬만은 김필도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남은 힘을 전부 쏟아 부은 통한의 일격이었다.

콰앙!

모든 힘을 다 사용해서인 듯 소리도 둔탁했다.

슈캉!

“헉!”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헬만은 검이 쑥 밀려나가면서 중심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멈췄던 김필도의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빌어먹을!’

헬만은 김필도의 검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김필도가 휘두르는 도끼질 검법은 30회를 넘어가고 있었다.

“헉! 헉헉! 헉!”

이윽고 헬만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끝났네.’

허공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하라미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건대 헬만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처음 김필도가 헤를리온을 벗을 때만 해도 그녀는 깜짝 놀랐다. 동일한 조건도 아니고 헬만은 키가 2미터 50센티미터고 체중은 2백 킬로그램 남짓 나간다. 헬만이 맨몸이고 김필도가 전투기갑을 걸친 상황이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데, 그 반대가 된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한 채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김필도가 헬만을 압도해 나가는 것이었다.

콰앙!

“커억!”

나직한 비명과 함께 헬만이 한쪽 무릎을 꿇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헬만이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당신은 대단해요.”

하라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김필도의 활약에 놀란 사람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하라미로부터 50여 미터 떨어진 나무 위에서 공터를 내려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검은 피부에 검은색 전투기갑을 걸치고 검은색 검을 든 이들은, 어둠의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마계10군단 대원들이었다.

“자넨 믿어지는가?”

발카모는 우데스를 보며 물었다.

“꿈속의 한 장면 같네.”

우데스는 공터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전투기갑을 걸친 천족이 맨몸인 인간에게 당한다는 것은 그의 상식으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꿈이 아니네, 우데스.”

“그렇지, 절대 꿈이 아니지.”

우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히데우스가 인간에게 헬칸을 물려준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루시안이란 인간은 헬칸의 주인 자격이 충분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글쎄…….”

우데스는 말없이 공터를 응시했다.

싸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헬만은 완전하게 앉은 채고, 그런 그를 향해 김필도는 무자비하게 헬칸을 내리찍었다.

콰앙!

“커억!”

헬만의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김필도는 헬칸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상태에서 김필도는 헬만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내가 벌레로 보여?”

김필도가 입을 열었다.

“벌레는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벌레를 벗어날 수 없다.”

“좋은 대답이야, 누렁이. 차앗!”

김필도는 헬칸을 내리찍었다.

콰앙! 차앙!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오더니 부러진 검 하나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것은 헬만의 검 한쪽이었다.

스아아악!

헬만의 검을 부러뜨린 헬칸은 장작을 부수는 도끼처럼 헬만의 머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헬만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정확하게 사타구니까지 이등분 된 헬만의 몸통이 좌우로 나뉘어졌다.

김필도는 한 걸음 물러났다.

툭!

바로 그때 허공으로 떠올랐던 부러진 검이 헬만의 몸통 옆으로 떨어졌다.

“정말로 이겨버렸군.”

크레디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김필도의 강함은 이미 1백 명의 천족을 없앴을 때 알았다. 하지만 헬만마저 이길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족 1백 명과 싸운 후이고 전투기갑까지 벗은 상황이 아니었던가. 놀라운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할 텐가?”

김필도는 크레디안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간다면 놔 주겠소?”

크레디안은 물었다.

“나는 내게 해코지를 하지 않은 자들까지 없앨 만큼 악한 사람이 아니오. 가고 싶으면 가시오.”

김필도는 손을 휘저었다.

“고맙소.”

크레디안은 김필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헬만의 죽음 때문이었다. 헬만 일행의 죽음에 대해 입만 맞춘다면 전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볼리카를 보았다.

“돌아가잔 말인가?”

볼리카는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천좌가 하라미님을 암살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입을 다물면 우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할 수 있네.”

“천좌10군과 대원 350명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마족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

“대부분 저 친구에게 당한 걸로 아는데 우리를 나쁜 놈으로 만들면 안 되지. 그렇지 않습니까, 군단장님!”

“그러게 말이에요.”

크레디안 일행이 서 있는 뒤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크레디안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억!”

“헉!”

“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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