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192화 (192/225)

# 192

제7장 블랙 로브 전사단

“흔적도 없습니다, 단장님.”

황토색의 특이한 갑옷을 걸친 자가 전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내의 전면에는 각진 얼굴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자가 바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전에 발탄 제국 황실에서 가이우스 황제와 대화를 나눴던 페르카란 자였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군.”

페르카는 얼굴을 찌푸렸다.

무려 한 달 동안 숲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6백여 명이나 됐던 천족과 마족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들과 전투를 치렀던 죽음의 상단 다르와 발탄 제국의 비밀 조직 크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함께 상잔한 것 같습니다.”

보고하던 사내가 말했다.

“서로 상잔을 했다고 해도 시체는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곳 숲에는 많은 몬스터들이 있습니다.”

“몬스터가 물어갔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를 지나치지 않고는 숲에서 빠져나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라파로 돌아간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크로 2천과 죽음의 상단 다르 1천 명이면 웬만한 왕국 한 곳 정도는 우습게 없앨 수 있는 전력입니다.”

“그렇긴 하지.”

페르카도 그 부분은 인정한다.

마족과 천족이 강하다고 하지만 크로와 다르 또한 인간이 보유한 최강 병기 중의 하나다. 게다가 인원수도 다섯 배나 많다. 천족과 마족에게 밀릴 전력은 아니었다.

“좀 더 수색을 해보긴 하겠지만, 상잔 쪽에 무게가 실리는 건…….”

“아니다, 수색은 중단해라.”

페르카는 손을 들어 부하를 말렸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부하는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나네, 페르카!”

그때 페르카의 품속에서 가이우스 황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페르카는 바로 통신 마법구를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통신 마법구 표면에 황제의 얼굴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페르카는 고개를 숙였다.

“수고가 많네, 페르카. 그곳 상황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가?”

“양측이 상잔한 걸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상잔이라…….”

가이우스 황제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그는 이곳 상황을 보고받았을 때 크로와 다르의 승리를 점쳤다. 천족과 마족 개개인의 실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크로와 다르를 합친 수는 3천.

5분의 1에 불과한 천족과 마족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그랬는데 전투가 끝나고 생존자가 전무하다는 보고를 다시 받은 것이었다.

양측이 상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색 작업을 지시한 것은 헤를리온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하면 루시안은 어떻게 됐는가?”

“그 또한 죽은 걸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확실한가?”

“라파 산맥은 우리 가문의 안방입니다, 폐하.”

“그렇지.”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 산맥.

그곳은 다름 아닌 가이우스 황제의 본가가 있는 곳이었다. 신의 정원에서 퇴출당한 카이우스 가문의 선조는 성을 가이우스라 바꾸고 라파 산맥으로 숨어들었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노르카의 후손들을 만나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가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무려 50년에 걸친 노력으로 노르카의 수장인 바르칸이 될 수 있었고, 노르카들을 가문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르카의 바르칸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신의 정원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신의 정원 대외 사자인 헤이먼이 인재를 찾는다는 걸 알게 됐다. 헤이먼의 눈에 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가지 정보를 흘리자 헤이먼은 금세 걸려들었다.

황제가 됐지만 가이우스 가문은 라파 산맥을 떠나지 않았다. 라파 주변에 펼쳐진 특이한 마법 때문이었다.

대지의 기운을 극대화한 이곳은 노르카가 힘을 기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황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본가는 여전히 이곳에 두었다.

“안타깝지만 대공은 죽었습니다, 폐하.”

“안타까운 일이 아니네, 페르카. 대공은 계속 살아 있을 거네.”

“가짜 대공을 만들 참이십니까?”

“은밀하게 소문을 내는 중이네.”

“적당한 자를 찾았습니까?”

“지금 물색 중에 있네.”

“암살에도 대비해야겠군요.”

“아무래도 자네들이 들어와야겠네.”

“얼마나 들어가면 됩니까?”

“전부 데리고 들어오게.”

“짐을 꾸리는 대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내로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니까 서두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페르카는 고개를 숙이고는 통신 마법구에서 마나를 제거했다.

“울타!”

통신 마법구를 갈무리한 페르카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부르셨습니까?”

잠시 후 왜소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페르카의 부관인 울타였다.

“부단장에게 연락해서 출발 준비를 하라고 해라.”

“행선지는 어딥니까?”

“황실이고 노르카 전원이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울타는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들어가게 되는군.”

어둠 속을 주시하는 페르카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 * *

싸움의 결과에 대해 알 방법이 없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추론밖에 없다.

헬만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던 세이아칸도 그랬다.

헬만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자, 하다르만 백작에게 라파의 소식을 알아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죽음의 상단 다르 1천 명, 크로 2천 명이 천족과 마족을 없애기 위해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정도 병력이 동원됐다면 최소한 상잔입니다.”

보고를 한 자는 하다르만 백작이었다.

“대천신군은 천계 최강이다.”

“다르나 크로 또한 제국 최강 세력의 한 곳입니다. 더구나 병력은 다섯 배나 많았습니다.”

“난 믿을 수 없다, 하다르만.”

“제가 접한 소식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 뭐가 있단 말이냐?”

“프리우스 대공이 황제에게 사로잡혔다는 소문을 접했습니다.”

“정말이냐?”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꽤 신빙성이 있는 곳에서 흘러나온 정봅니다.”

“그랬단 말이지…….”

세이아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르만의 말대로라면 의심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놈들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느냐?”

“앞으로 보름 정도면 마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다르만 백작은 말끝을 흐렸다.

세이아칸으로부터 이번엔 패배하는 척하면서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대천신군 5백 명을 라파에서 잃기는 했지만 아직 1천 명이나 남았다. 피할 상황이 아니었다.

“왜 몸을 사리냐는 말이냐?”

“몸을 사리는 게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일 네가 황제라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겠느냐?”

“펠콘 성을 공격한다는 말이군요.”

“황제에게는 많은 병력이 있다. 그들 중 일부만 동원해도 펠콘 성을 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 그들의 작전을 역이용해야겠군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충고 감사합니다, 마스터.”

하다르만 백작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나는 하라미의 죽음에 대해, 아니 실종에 대해 보고를 해야겠지.”

세이아칸은 빙긋 웃으며 통신 마법구를 꺼냈다. 이곳 소식은 문 대륙을 거쳐 천계로 보고된다.

“이스마디온 당신은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소.”

세이아칸은 통신 마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세이아칸의 보고가 천계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후였다.

탁탁탁! 탁탁탁탁!

2미터의 사내가 빠르게 복도를 내달렸다.

사내의 손에는 둥글게 말린 보고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빠르게 내달린 사내는 커다란 문 앞에 멈췄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들어와!”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은 거대한 광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가재도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창 옆에 유일하게 책상과 책장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책상 앞에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쓰고 있었다.

“헤라반입니다.”

“보고서면 이쪽에 두고 가라.”

“공녀님의 소식입니다, 총리대신.”

“하라미?”

고개를 들자 사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다섯 종족 중에서 가장 멋진 외모를 가진 종족이 천족이고 그 다음이 엘프라는 건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중년 사내는 그 상식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카락, 피부, 눈동자 색이 전부 황금색인 걸 보면 순혈의 천족이 분명하다.

그런데 네모진 얼굴에 왕방울만 한 눈과 주먹코 그리고 두툼하고 커다란 입이 마구 던져 놓은 것처럼 붙어 있어, 오우거나 트롤도 울고 갈 정도였다.

이자가 바로 하라미의 아버지이자 ‘두 얼굴의 황금 오우거’라고 불리는 홀딘 마하바 코타나 이스마디온 신좌였다.

“네.”

시선을 마주친 헤라반은 움찔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가져와라.”

홀딘은 손짓을 했다.

홀딘 앞으로 걸어간 헤라반은 조심스럽게 가져온 종이를 내밀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홀딘은 헤라반으로부터 받은 종이를 펼쳤다.

드르르르!

처음엔 홀딘 앞에 있는 책상이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홀딘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초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푸스스!

홀딘 앞에 있던 책상이 가루로 부서졌다.

“초, 총리대신.”

헤라반은 부르르 어깨를 떨며 물러났다. 홀딘으로부터 흘러나온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홀딘은 헤라반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보고서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커억!”

휘이익!

급기야 헤라반은 홀딘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뒤편으로 날아갔다.

콰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박살나고 헤라반은 가랑잎처럼 날려 홀딘의 방에서 나갔다.

“내 딸이…… 실종됐단 말이냐!”

광포한 외침이 주변을 강타했다.

우르릉!

그러자 건물이 곧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벌떡!

홀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커다란 발자국이 생겨났다.

“무슨 일이오?”

밖으로 나가자 왜소한 중년인이 물었다. 그는 세이아칸의 아버지이자 국방대신인 베칼 카모라 카포 에바르본 신좌였다. 홀딘 바로 옆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그는 갑작스런 소동에 깜짝 놀라 뛰쳐나온 것이었다.

휙!

홀딘의 손에서 뭔가가 날아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총리대신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었다.

“이건 뭐요?”

잡아챈 그것이 신분증이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

다만 자신에게 던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당신이 원하던 거요.”

“내가 원하는 거라면.”

“사표란 말이요.”

“나는 총리대신의 사표를 원한 적 없소.”

“아무튼 나 대신 천왕께 전해주시오.”

홀딘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쿡!”

베칼은 멀어지는 홀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끄응!”

바로 그때 옆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사내는 보고서를 가져왔던 헤라반이었다. 홀딘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 때문에 기절했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

베칼은 몸을 일으키는 헤라반을 보며 물었다.

“하라미님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실종?”

“네.”

“어디서 실종됐단 말이냐?”

“작전을 나간 대원 전원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 작전을 이끌었던 이가 하라미였단 말이냐?”

“네.”

“그래서 미친 오우거처럼 날뛰었구먼.”

빠르게 멀어지는 홀딘을 바라보며 베칼은 차가운 미소를 베어 물었다. 비로소 찰거머리를 떼어냈다는 듯한 후련한 얼굴이었다.

“누가 날 찾으면 천왕께 갔다고 해라.”

베칼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국방대신.”

헤라반은 베칼의 등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정중한 행동과는 달리 바닥에 눈을 맞추고 있는 헤라반의 눈동자는 공손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금세라도 얼음이 떨어질 것처럼 차가웠다.

베칼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헤라반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가운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너희는 모를 거다. 드반드쉬가 왜 차원의 벽을 세웠는지. 차원의 벽이 무슨 역할을 해 왔는지. 그건 바로, 우리 드반 족의 최강 무기인 다두 드래곤을 봉인하기 위한 장치였다, 어리석은 자들이여.”

놀라운 말이었다.

천족 또는 마족 그리고 드반드쉬의 후예라고 한 아론마저도 차원의 벽은 헬칸을 비롯한 철족을 막기 위해 세운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헤라반은 드반 족의 최강 무기인 다두 드래곤을 봉인하기 위해 세운 장치라고 한 것이다.

“이제 그들이 깨어날 것이고, 우리 드반 족의 통치가 시작될 것이다.”

헤라반은 낮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한편.

워프 마법을 이용하여 그의 저택으로 온 홀딘은 이스마디온 전사단 단장 라팔 하헬라 타소르노 천좌를 불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휴도니아 대륙으로 건너갈 거네. 당장 출발 준비하게.”

“휴도니아 대륙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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