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제10장 차원의 벽에 얽힌 비밀
동굴로 들어간 김필도는 뜻밖의 손님과 재회 중이었다. 라파로 갔던 알마니가 데려온 손님은 다름 아닌 샤일록이었다.
그 동굴에는 록, 히발, 발카모, 우데스, 라이자칸이 차를 마시면서 김필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파에 와 있었어?”
김필도는 라이자칸이 내미는 찻잔을 받아들며 물었다.
“마스터가 죽었다고 소문이 났는데 와 보지 않을 수가 없잖습니까?”
샤일록이 라파로 들어온 건 라파로 들어온 자들 중 생존자가 없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김필도가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라파에서 영업하는 각 카판숍에 자신을 찾는 사람이 나타나면 곧바로 연락하라는 지시를 내려놓고 기다리다가 알마니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날 생각해 준 사람은 샤일록밖에 없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잠시 쉬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보다 어때?”
“지금 황실에서는…….”
“황실 말고 라파 소식부터 듣고 싶어.”
“라파 소식이라면?”
“라파를 장악하고 있던 다섯 세력은 아직 그대로야?”
“그들에 대해 알고 싶은 거군요.”
“어때?”
“몽땅 사라졌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중요한 자들입니까?”
“그들의 수뇌 이름이 리처드 헤라칸 아이작이야.”
“헤라칸 아이작이라고요?”
샤일록은 깜짝 놀랐다.
아이작이란 성씨를 가진 자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라칸 공국을 세웠던 헤라칸 가문의 성을 미들 네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건 곧 부인의 성이 헤라칸이란 뜻이 된다.
“30년 전부터 황제가 될 꿈을 꾸었다고 하더라고.”
“그럼 라파에 있던 세력은 대부분 그가 세운 거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것도 아냐. 그들 중 벌컨 파, 게일 파, 오션 파의 두목은 어머니 호위였어.”
“이곳에 와서 만난 겁니까?”
“응!”
“캐서린님이 프리우스 가문으로 시집을 갈 때 빈손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들은 무슨 돈으로 조직을 만든 거죠?”
“아버지가 조금씩 떼 줬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인들이 재산을 훔쳐가면서 한 말이었다. 그들은 엄마 호위로 따라온 자들에게 수만 골드를 줬으니까 자신들 또한 돈을 가져갈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들고 나갔다.
“마스터 부친께서는 그런 식으로 훗날에 대한 대비를 하셨군요.”
“그것까진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나타나자 갈등을 하는 모습이 역력하기는 했어.”
“리처드라는 자와 마스터를 사이에 두고 저울질을 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그 리처드란 사람 마스터껜 제안 같은 거 하지 않았습니까?”
“제안은 했지.”
“뭐라고 했는데요?”
“배를 한척 만들었다면서 승선할 의향이 있으면 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황제가 되고 싶냐고 물었지.”
“너무 노골적인 질문 아닙니까?”
“미래가 걸린 일인데 확실하게 해야지.”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허락하면 황제가 되겠다고 하던데?”
“풋!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내 생각도 그래. 나 같으면 그림자 대공의 의견 같은 건 묻지도 않았을 거야.”
“그 말은 곧 진작부터 마스터를 신경 쓰고 있었다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샤일록.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날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면 마스터를 없애달라고 청부한 사람도 그일 수도 있겠군요.”
“내가 그자를 따라나서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야.”
“잘하셨습니다, 마스터. 이곳에서 나가면 바로 그자의 근황을 알아보겠습니다.”
“헤라칸 공국 근처를 알아보면 금세 찾을 수 있을 거야.”
“헤라칸 공국으로 갔을 거라고 보십니까?”
“발탄 제국은 천족, 마족과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잖아. 잃어버린 왕국을 찾는 덴 지금만한 기회도 없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스터.”
샤일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쟁은 어떻게 됐어?”
“북로군벌과 전쟁을 치른 쪽은 헬모트 공작, 힐리아드 후작, 트란도르 후작 연합군이었고, 서로군벌과 전쟁을 치른 쪽은 노르탄 공작, 크로디아 후작, 델리카슨 백작 연합군이었습니다.”
“결과는?”
“영지 연합군들이 승리했습니다.”
“일방적인 승리?”
“그건 아닙니다.”
“그럼?”
“발탄 제국 황제는 양동 작전을 펼쳤습니다.”
“한쪽은 군벌과 전쟁을 하고 다른 한쪽은 펠콘과 고칸 성으로 쳐들어갔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펠콘과 고칸 성으로 들어간 녀석들은 패했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세이아칸과 데메우스 그놈들의 꼼수야.”
“꼼수요?”
“내 말이 맞죠?”
김필도는 대답 대신 록과 라이자칸을 보았다.
“확전을 노리고 일부러 패했단 말입니까?”
라이자칸이 물었다.
“이곳에서 5백을 잃었다고 하지만 대천신군은 1천 명이나 남았잖아요. 거기에다 서로군벌 40만 명을 합치면 그렇게 맥없이 패할 전력은 아니죠.”
“그럴 수도 있겠군요.”
라이자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아칸과 데메우스는 이번 패배를 명분으로 추가 파병을 요구할 거예요.”
“그럼 확전이군요.”
록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가 올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내가 바라는 대로 돼 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신경 쓸 거 없어요. 그리고 다른 소식은 없어?”
김필도는 다시 샤일록을 보았다.
“며칠 전부터 제국 황실에 마스터가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김필도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도 하도 이상해서 그 소문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결과는 나왔어?”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보호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왜 그런 소문을 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필도의 시선이 한편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라헤나에게로 향했다.
“마족과 천족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닐까요?”
“헤를리온 제작에 들어갔으니까 까불지 말라는 그런 메시지?”
“그렇지 않을까요?”
“가장 그럴 듯한 추리인긴 한데…….”
김필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라헤나의 말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 생각은 어때요?”
김필도는 록을 보았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지금 내게 말을 올린 거예요?”
문득 조금 전부터 록이 공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저 친구 때문입니다.”
록은 라이자칸을 가리켰다.
“라이자칸은 왜?”
“친구가 되기로 했거든요. 친구가 마스터로 모시는 분인데 함부로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그게 아니고 프리우스오테르 가문의 가신이 되고 싶답니다.”
록의 말을 자른 이는 라이자칸이었다.
“내 부하가 되겠단 말입니까?”
김필도는 록을 보며 물었다.
“쉽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이카렌은 어쩌고요?”
“두 분은 언젠가 합치게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부터 정리를 해 놓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쟁은 점점 격해질 텐데 지휘권이 이원화돼 있는 것도 이상하고요.”
“그렇단 말이죠……. 라이자칸은 어때요?”
“제 생각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마스터. 지금 상황은 전적으로 마스터의 권한입니다.”
“아니에요. 가문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가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일이에요.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라이자칸은 물론이고 발카모와 우데스의 의견도 들어야 해요. 먼저 라이자칸부터 의견을 말해 보세요.”
“록과 히발은 우리 가문에 큰 도움을 줄 친구들입니다.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발카모와 우데스는?”
“선배님들이라 부담이 가긴 하지만 찬성입니다.”
“가문은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할 거요. 내 개인 신상에 관한 거면 혼자 결정하겠지만 여러분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상의해서 처리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알겠습니다, 가주님.”
“알겠습니다.”
라이자칸과 발카모, 우데스는 고개를 숙였다.
“인사 받으십시오, 가주님.”
“인사드립니다.”
이어 록과 히발이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인사를 했다.
“이미 이카렌에게 정식으로 복종 맹세를 했다고 했으니까 절차는 생략합시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가주님.”
“어떤 부탁이오?”
“저희에게 하대를 해 주십시오.”
“하대?”
“불편해요?”
“아주 많이 불편합니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하지 뭐.”
“감사합니다, 가주님.”
“감사합니다.”
록과 히발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 이제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해 보자고. 어떻게 의견이 다르다는 거지?”
“발탄 제국 황실에서 가주님을 잡았다고 소문을 내는 건 천족이나 마족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가 결코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록이 말을 받았다.
“어째서?”
“그 소문을 듣는 순간 천족이나 마족은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겠네.”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록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아니 일리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맞다.
“그럼 발탄 제국 황제가 원하는 게 뭘까요?”
라헤나가 록을 보며 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록은 고개를 흔들었다.
“바르칸은 어떠세요?”
이번엔 김필도를 보며 물었다.
“그건 알아보면 되겠죠. 그보다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고, 장소를 옮기는 건 어때?”
김필도는 록과 라이자칸을 보았다.
“저희가 머물 만한 장소가 있습니까?”
“세스티 감옥이 텅 비었다고 하지 않았어?”
김필도의 시선이 샤일록에게로 향했다.
“세스티 감옥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감옥도 전부 비어 있습니다.”
“여기로 하자고. 아예 루나에 있는 이들도 전부 이곳으로 불러와야겠어.”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실 생각입니까?”
샤일록이 물었다.
“라파는 네 가지 면에서 최고야.”
“네 가지요?”
“첫 째는 인구가 1백50만 명가량 되는 도시니까, 많은 식량이 한꺼번에 들어온다고 해도 의심을 받지 않고 군령미를 반입할 수 있고, 둘째는 감옥 다섯 곳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20만 명가량 된다는 거야. 그리고 셋째는 우리는 이 숲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다른 놈들은 정문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라파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고 넷째는 수도가 코앞이라는 거지.”
“알겠습니다, 마스터. 천둥의 성에 있는 분들을 이곳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샤일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하는 건 천천히 해도 되는데 내 소식은 바로 전해야 해.”
“나가는 즉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록, 라이자칸,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비 그치면 바로 감옥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
“오래 걸리는 일입니까?”
라이자칸이 물었다.
“그자가 왜 나를 사로잡았다고 소문을 내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그건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라이자칸은 말끝을 흐렸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고, 또 황제가 경황이 없다는 건 아는데 만에 하나라도 함정이면 큰일이잖아.”
“어떤 함정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