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00화 (200/225)

# 200

“천둥에 성이 있는 이들을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

그제야 라이자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여긴 샤일록이랑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해.”

김필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록이 일어나며 물었다.

“리시아는 키는 작은데 성격은 아주 급해.”

“그럼 저희는 뭐하고 시간을 때우죠?”

록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감옥에서 1천 년을 보내 놓고는 이게 지겹다는 거야?”

“그땐 각성이라는 목표가 있었잖습니까.”

“뭔가 할 게 있었다고?”

“그렇죠.”

“이번에도 하면 되잖아.”

“전 이미 최상급 마족입니다.”

“설마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말은 아니겠지?”

“배울 게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전처럼 절실하지 않다는 겁니다.”

“일종의 무력감이란 말이네?”

“그런 것 같습니다. 분명 저보다 더 강한 자들이 있는데도 넘고 싶다는 욕구가 일지 않습니다.”

“한계에 도달했다는 소리네.”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늘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칼베리언이나 히데우스나 알리토를 쫓아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날 때면 오늘은 기필코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서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 다짐은 1시간을 넘지 못한다. 30분이 지나면 머릿속이 텅 비고, 1시간이 지나면 해 봐야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온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수십 년이었다.

“내가 숙제 하나 낼까?”

김필도는 록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숙제요?”

“응! 내가 내주는 숙제를 제대로 하면 지금보다는 두 배는 강해질 거야.”

“어떤 숙젠데요?”

록의 눈동자에 광채가 번뜩였다.

그것은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찾았을 때 보이는 눈빛이었다.

“빛의 검술과 어둠의 검술을 섞는 거야.”

“네?”

록은 깜짝 놀랐다. 비단 록뿐만이 아니었다. 관심 있는 얼굴로 김필도의 말을 기다리던 다른 일행도 놀란 눈으로 김필도를 보았다.

단 한 번도 어둠의 검술과 빛의 검술을 섞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빛과 어둠.

그것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전혀 다른 성질을 띤 힘이다. 그런데 그 힘을 하나로 합쳐 보라니.

“말도 안 됩니다, 가주님.”

록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빛은 어둠의 반대편이고, 어둠은 빛의 반대편입니다. 그것들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난 살아온 삶이 얼마 되지 않아서 삶이니 철학이니 하는 건 몰라. 하지만 내가 아는 것 중의 하나는 뜨겁다는 느낌이 없다면 차갑다는 느낌도 없다는 거고, 태양이 없다면 달도 없다는 거야. 즉 빛과 어둠, 뜨거움과 차가움, 춥고 덥다는 느낌은 한 쌍이라는 거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뭔가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록은 채근하듯 말했다.

“천족과 마족에게는 빛과 어둠 한 가지밖에 없잖아. 그 한쪽 면밖에 없는 것이 벽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하는 말이야. 어쩌면 마족이나 천족들 중에는 빛과 어둠을 합치면 또 다른 경지가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선지자들이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빛의 검술이나 또는 어둠의 검술을 구할 방법이 없었을 거야. 결국 생각만 하다가 끝났겠지. 그렇지만 자네들은 바로 옆에 빛의 검술과 어둠의 검술이 있잖아. 설사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봐.”

“맙소사!”

록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에!”

이어 라이자칸이 멍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자네도 아는가?”

“자네도?”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쳤다.

“결국엔 하나다!”

빛의 검술은 물론이고 어둠의 검술의 마지막 경지라고 알려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아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냐면 나는 이게 되거든.”

김필도는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불의 속성 마법 세딕과 물의 속성 마법 쿠라를 펼쳤다.

화르륵!

쩌엉!

오른손은 용광로에서 막 꺼낸 검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왼손은 얼음처럼 투명하게 변했다.

“이건 빛이고.”

김필도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건 어둠이야.”

이번엔 왼손을 들어 올렸다.

“내 목표는 실전 마법으로 만들어 낸 빛과 어둠을 하나로 합쳐 드래곤 마법을 이용해서 펼치는 거야. 그럼 실전 마법과 드래곤 마법이 합쳐진 새로운 힘이 탄생하겠지. 성공한다면 말이야.”

“위력은 어느 정도가 될 것 같습니까?”

라이자칸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김필도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감지되는 불과 얼음의 힘은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엄청나다.

만일 저 불과 얼음이 김필도의 손을 떠나 날아온다면 막아낸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나만 해도 그런데 두 개가 합쳐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직은 모르지 뭐.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1 플러스 1은 2가 아니라는 거야. 최소한 4고 운이 좋다면 8까지도 가능할 거야.”

김필도는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그러자 그의 양손에 어려 있던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여덟 배까지 보십니까?”

“이론적인 수치가 그래. 아무튼 무력감을 떨쳐낼 숙제를 주었으니까 열심히 해 보도록 해. 샤일록, 가자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샤일록은 얼른 김필도를 따라 나섰다.

그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족과 천족이 인간을 향해 가주님 또는 마스터라고 부르는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김필도는 두 종족과 친분이 있었다. 하지만 친분이 있는 것과 가주님이나 마스터라고 부르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문득 자신이 전설의 목격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해?”

“아, 알았습니다.”

샤일록은 서둘러 김필도를 따라 나섰다.

“누군가 한 사람은 따라가야 하지 않겠소?”

멀어지는 김필도를 바라보던 록은 라헤나와 다란을 보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인비지빌리티 마법과 플라이 마법을 동시에 펼칠 수 있는 이들은 라헤나와 다란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겠소.”

다란이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를 붙잡은 라헤나 손 때문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바르칸.”

다란은 라헤나를 돌아보았다.

“디자이너 알마니를 가르치고 있잖아요.”

“그건 나중에 해도 됩니다.”

“바르칸이 숙제를 내주고 가는 걸 보고도 그런 소릴 하시면 어떡해요.”

“바르칸이 따라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제 전 바르칸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제게는 영원히 바르칸일 뿐입니다.”

“하여간 고집은.”

“그분 말씀이 늙으면 느는 건 고집과 주름살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호호호! 아무튼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바르칸이 숙제를 내준 건 천족이나 마족 때문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천족이나 마족보다 더 강하고 더 잔인한 자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네?”

다란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록과 라이자칸 일행도 놀란 얼굴로 라헤나를 보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록은 궁금한 얼굴로 라헤나를 보며 물었다.

그는 라헤나를 처음 볼 때부터 말을 올렸는데 그 이유는 왠지 모를 경외감 때문이었다. 몇 번은 알마니와 같은 정령정사일 뿐이라며 애써 폄훼하기도 했지만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공대를 하곤 했다.

“제게서 느낀 점 없나요?”

“갑자기 전보다 몇 배 강해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라이자칸은 어때요?”

“저도 그렇게 느끼긴 했는데 묻지를 못했습니다.”

마치 각성을 해서 한 단계 더 성장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엄청난 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 못했던 건 그런 걸 물어볼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왠지 비밀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태양신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여 아반이라 불렀고, 어둠의 전사인 그들은 달의 신을 모신다고 해서 드반이라고 불렀어요.”

“드래고닉!”

나직한 외침이 동굴 입구에서 들려왔다.

라헤나는 고개를 돌렸다.

하라미가 놀란 얼굴을 한 채로 동굴 입구에 서 있었다.

“드래고닉을 알아요?”

라헤나는 물었다.

“지상 최강의 전사라는 뜻이잖아요.”

“잘 아는군요. 그럼 드반 족이 스스로 드래고닉이라고 칭했다는 사실도 아세요?”

“아반 족이 최후를 맞았던 장소가 바로 제가 떨어졌던 세스티 감옥 지하였어요.”

“잊힌 성전이 이곳에 있었군요. 혹시 그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기록이 남아 있던가요?”

라헤나의 눈에 우울한 빛이 차올랐다.

“직접 눈으로 봤어요.”

“어땠죠?”

“루시안 말로는 그곳에 있는 자들을 전부 재운 후에 독안개로 덮어 씌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거죠?”

“이곳에 마나 속박 마법을 펼친 자들이 드반 족이었어요. 그리고 아반 족의 연구 자료를 몽땅 훔쳐간 다음에 드래곤들에게 이곳의 위치를 알려 주었고요.”

“날아다니는 자들은 속박 마법에 구속되지 않으니까…….”

라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 가르쳐 드릴까요?”

“아니에요, 나중에 가 볼게요.”

“루시안이 전부 가루로 만들어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잘하셨어요. 더 궁금한 게 있으면 바르칸께 직접 물어보도록 할게요.”

라헤나는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힘이 돌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라미는 밖으로 이동하는 라헤나를 보며 물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요. 다만 내가 힘이 돌아온 시기와 차원의 벽 세 개가 제거된 시기가 비슷하다는 거예요.”

“차원의 벽이 이 세상에 숨어 있는 드반 족의 힘을 봉인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그건 좀 이상하긴 해요.”

“왜요?”

“차원의 벽을 세운 드반드쉬는 드반 족의 족장, 즉 드래고닉이었거든요.”

“드래고닉인 그가 차원의 벽을 세워 드반 족의 힘을 봉인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군요.”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다두 드래곤은 어떨까요?”

“다두 드래곤이 어쨌는데요?”

“지하 성전에서 아반 족의 마지막 족장 크록 아반이라는 분이 남긴 글을 보았는데, 다두 드래곤에게 드래곤과 드래고닉을 없애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고 했어요.”

“크록 아반이라고 했나요?”

“아는 분이세요?

동요하는 라헤나를 본 하라미가 물었다.

“아, 아니에요.”

라헤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관계가 있을까요?”

하라미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그 명령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드반드쉬가 차원의 벽을 세운 건 철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두 드래곤을 막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군요.”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두 드래곤의 힘을 약하게 하기위해 만든 거겠지요. 그 바람에 아반 족은 물론이고 드반 족까지 전부 영향을 받게 된 거고요. 더불어 다두 드래곤에게 내려진 마지막 명령을 망각의 강 속에 묻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함도 있고요.”

“그럼 차원의 벽이 사라지면서 라헤나의 힘이 돌아왔다는 건 다두 드래곤도 힘을 되찾게 된다는 걸 뜻하는 걸까요?”

“아마도 살아 있다면 그렇겠죠. 아무튼 남은 이야기는 바르칸에게 듣도록 할게요.”

라헤나는 인비지빌리티 마법을 펼쳐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라헤나 양!”

라이자칸은 멀어지는 라헤나를 불렀다.

“하라미 양께 물으면 아반 족과 드반 족에 대해 알게 될 거예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해요.”

그 말을 끝으로 라헤나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도대체!”

갑작스런 이야기에 일행은 일순 멍해졌다.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먼저 입을 연이는 라이자칸이었다. 그는 김필도를 마스터로 모시게 되면서 하라미에게도 말을 올렸다.

“일단 차부터 한잔 하고요.”

하라미는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라이자칸이 차를 가져와 그녀 앞에 놓았다.

“그러니까 제가 그곳에 떨어진 건…….”

하라미의 입에서 아반 족과 드반 족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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