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05화 (205/225)

# 205

케이샬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황실도 모르는 그런 고급 정보를 김필도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보다는 마계가 처한 상황이 더 궁금했다.

“마계 제1원로인 프리메우스는 마계10군단을 재창설하고 제 아들을 군단장에 앉히게 돼요.”

“그럼 이곳에 와 있는 마계10군단은…….”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불안전한 군단이라는 거죠.”

“마계10군단으로서 정통성을 확보하려면 큰 공을 세워야겠군요.”

“맞아요. 프리메우스는 아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확전밖에 없어요.”

“그렇군요. 그럼 천계는 왜 확전을 원하는 겁니까?”

“천계는 세이아칸보다는 세이아칸의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어요.”

“세이아칸의 아버지는 국방대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천계의 삼 인자죠.”

“그가 천왕이 되고 싶어 한단 말입니까?”

“그가 천왕이 되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이인자인 총리대신 홀딘을 제거하려는 건 확실해요.”

“총리대신이요?”

“아마 벌써 작업에 들어갔을지도 몰라요.”

“들어간 것 같습니다.”

“케이샬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요?”

“2주 전에 홀딘 총리대신이 이스마디온 전사단을 이끌고 펠콘 항으로 들어왔습니다.”

펠콘 항은 펠콘 성 서쪽에 만들어진 항구를 일컫는다.

“마족도 병력을 증강시키지 않았나요?”

“일주일 전에는 제2원로 쿤할이 6천 명을 이끌고 고칸 항으로 들어왔고, 어제는 양측 각각 5만 명씩 들어왔습니다.”

“그들을 싣고 온 배는 어떻게 됐죠?”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럼 덜 왔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5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버려 두고 본국으로 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군요.”

“그놈들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면 와딴데.”

김필도는 히죽 웃었다.

“으음!”

케이샬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앞에 앉아 있는 자는 분명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장사꾼이다. 행동도 장사꾼에 딱 어울린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들은 발탄 제국 황제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리처드 헤라칸 아이작이라고 아세요?”

김필도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랬군요. 다 먹었어요?”

김필도는 라헤나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럼 들어갈까요?”

“그래요.”

“잘 먹었어요, 케이샬.”

“누구십니까?”

케이샬은 걸음을 옮기는 김필도를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뜬금없는 소리에 김필도는 걸음을 멈추고 케이샬을 돌아보았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이 대천신군이나 마계10군의 수장의 이름을 아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난 괜한 이야기를 한 거네요.”

김필도는 싱긋 웃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너무 멀리 나간 거 아니에요?”

라헤나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무리 어머니를 모셨던 자라고 하지만 벌써 40년이나 흘렀다. 과거의 충성심을 아직 지니고 있으리란 법도 없는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닌가 싶었다.

“그의 직책이 뭐죠?”

김필도는 되물었다.

“이곳 관리인이라고 했잖아요.”

“여긴 사람이 살지 않은 빈 궁전이에요. 빈 궁전을 관리한다는 건 권력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잖아요.”

“하긴 그러네요.”

“그런 사람이 대천신군, 세이아칸, 마계10군단, 데메우스, 홀딘, 베칼, 쿤할, 프리메우스 같은 마족과 천족을 알고 있다는 건, 장사치 녀석이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 것만큼이나 수상한 거예요.”

부르르!

김필도와 라헤나의 말을 듣고 있던 케이샬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김필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수상한 사람은 김필도뿐만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수상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멍한 얼굴로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그럼 케이샬의 정체는 뭘까요?”

케이샬이 듣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라헤나는 물었다.

“한때 정원사들을 관리하는 직책에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21년 전에 그만뒀다는 말을 들었어요.”

“왜 그만뒀는데요?”

“21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엄마를 살해한 자들이 바로 정원사들이었어요.”

“루시안 엄마 때문이라는 거예요?”

“추측이에요.”

“왜 그런 추측을 하게 됐는데요?”

“이 건물을 봐요.”

김필도는 겨울의 궁전을 가리켰다.

“40년이 지났는데도 너무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다는 거군요.”

“단순히 감시하기 위해 옆에 머물렀다면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을 이렇듯 지키고 살 이유가 없겠죠.”

“그러네요.”

라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털썩!

케이샬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녀의 아들이었다.

너무 어려 감히 사랑하다고 말조차 꺼내지 못했고,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랬던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던가.

‘마치 내가 자식을 낳은 것 같았어. 그런데…….’

그게 비극의 시작이라는 건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잔인하게도 그녀에게까지 손을 뻗친 것이다.

그들을 막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녀는 살해당해 호수로 던져지고, 케이샬은 조직을 떠났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이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미안하다, 캐서린. 정말 미안해.’

케이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침실 창가에 나란히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김필도와 라헤나였다.

“진짜 10인 위원회 위원이 맞나 보네요?”

“그러네요.”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방금 라헤나와 나눴던 이야기는 케이샬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한 말이다.

헤이먼과 체로키에게 10인 위원회 위원들에 대한 정보를 물었을 때 그들은 한 명의 정체만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이 알지 못한 한 명은 발몬 하이저 아이작 황제를 감시하기 위해 황실에서 키워진 자라는 것과, 캐서린 볼튼 아이작의 죽음과 함께 신의 정원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케이샬이 열 살 때 황실로 들어와서 60년 동안 겨울의 궁전을 관리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신의 정원을 떠났다는 한 명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동안 조금씩 떠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결정타를 날렸다. 그런데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적이 될까요, 아군이 될까요?”

“그건 알 수 없죠. 그보다 피부는 어때요?”

김필도는 몸을 돌려 라헤나를 보았다. 그녀는 그동안 케이샬로부터 피부에 좋다는 포션을 구해 달라고 해서 바르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생긴 병이 아니라 세월 때문에 생긴 병인걸요.”

라헤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 지닌 수명보다 열 배 이상을 버틴 몸이다. 정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 아닐까.

“전혀 차도가 없어요?”

“물속에서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물속에서는 괜찮아요?”

“제가 쿠딕인 걸 몰랐어요?”

“말한 적이 없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라헤나는 배시시 웃었다. 행칼을 나온 이후 계속 그를 따라다녔지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물의 정령 전사 쿠딕이란 사실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물에서는 괜찮아요?”

“보여 드려요?”

“네.”

“따라오세요.”

라헤나는 김필도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팔소매를 걷었다. 그녀의 팔은 군데군데 석회 가루를 묻혀 놓은 것 같았다.

라헤나는 팔을 물속에 담갔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석회 가루를 덕지덕지 바른 것 같았던 피부가 깔끔해지더니 무지갯빛 광채가 어렸다.

“피부는 어떤데요?”

“만져 보세요.”

김필도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물속에 손을 넣어 팔을 만져 보았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아기 볼을 쓰다듬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이랬던 피부가 물 밖으로 나오면 변해요.”

그녀는 물속에서 팔을 꺼냈다. 그러자 물기가 빠르게 마르면서 허옇게 변해 갔다.

“기절하겠네.”

김필도는 멍한 얼굴로 라헤나의 팔을 바라보았다.

마치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물기가 빠르게 사라지더니 허연 곰팡이가 피어 버린다.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원래 수명보다 더 사는 죗값을 치르는 거죠, 뭐.”

라헤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다른 대원들도 다 그래요?”

“저만 그러는 것 같아요.”

“물의 정령 전사만 그런다는 거군요.”

“사는 데 특별히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잠깐만요.”

김필도는 소매를 내리려는 라헤나를 말렸다. 그리고 허옇게 말라붙은 피부를 손으로 쓸었다.

“아!”

라헤나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파요?”

김필도는 라헤나의 팔을 쓸었던 손바닥을 보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하얀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라헤나의 피부에서 묻은 가루였다.

“전엔 안 그랬잖아요.”

마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을 때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차 바닥에 포개 누웠을 때에도 그녀를 만졌는데 이런 상태는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이랬어요.”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거군요.”

“그래도 견딜 만해요.”

“옷은 괜찮아요?”

허연 가루가 떨어질 때마다 통증을 느낀다면 옷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라헤나는 머뭇거렸다.

옷장에서 가장 가볍고 큰 옷을 입기는 했지만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밀려온다. 더불어 통증의 강도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세지고 있다.

“안 되겠어요. 당분간은 물속에서 생활하도록 하세요.”

김필도는 욕조를 가리켰다.

“괜찮다니까요.”

“시키는 대로 하세요.”

김필도는 라헤나를 욕조로 밀었다.

“알았어요.”

라헤나는 별수 없이 욕조로 들어갔다. 물속에 몸을 담그자마자 허옇게 피어 있는 피부가 본래 색으로 돌아갔다.

“물속에서는 얼마나 견디죠?”

“이걸 보면 알잖아요.”

라헤나는 귀 옆머리를 젖혔다.

“아가미?”

김필도는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머리카락을 넘기자 물고기에서나 볼 수 있는 아가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손도 이렇게 변해요.”

라헤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오리발처럼 얇은 막으로 이어져 있었다.

“물속도 바깥이나 다름없겠군요.”

“쿠딕이 가진 능력 중의 하나예요.”

“결국 라헤나에게 필요한 건 물이라는 거네요.”

“너무 오랫동안 물을 접하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더구나 행칼의 지하엔 용암이 흐르고 있다고 했으니까…….”

“물의 정령 전사에겐 행칼은 치명적인 장소였네요.”

“그런 것 같아요.”

라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판 한잔 내려 드릴까요?”

“그럼 고맙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김필도는 욕실 밖으로 나갔다.

거실로 나온 그는 아공간을 열고 카판 내리는 도구를 꺼냈다.

카판과 또호야 잎 등을 꺼내 늘어놓고 있는데 케이샬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와요, 카판 한잔 할래요?”

김필도는 케이샬을 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케이샬은 뇌까리듯 입을 열었다.

“뭐가 맞는다는 거죠?”

“이곳을 지키고 살았던 이유가 바로 캐서린 때문이었고, 10인 위원회 위원 중 얼굴 없는 위원이 저였습니다.”

“그걸 왜 내게 이야기하는 거죠?”

김필도는 케이샬을 바라보았다.

“그분의 몰락을 지켜보았습니다. 발몬 하이저 아이작 황제를 제거하려는 것도 막지 못했고, 캐서린을 살해하는 것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을 지키며 속죄의 날을 보내고 있었던 건가요?”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용서를 합니까. 그리고 20년이 훨씬 넘었잖아요. 그 일은 그만 잊으세요.”

“전하!”

“그리고 내 목표는 신의 정원에 소속돼 있는 자들이지 그곳을 떠난 사람은 아니에요. 천장 안 무너지니까 앉으세요.”

김필도는 케이샬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주전자를 양손으로 쥐고 불의 속성 마법 세딕을 펼쳤다. 그의 오른손이 물에 달군 것처럼 벌겋게 변하고 주전자 주둥이에서 수증기가 흘러나왔다.

주전자 손잡이를 잡은 그는 카판 가루를 집어넣은 곳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흘려 넣듯 조금씩 붓자 카판 가루가 부풀어 올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물을 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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