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07화 (207/225)

# 207

김필도는 라헤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라헤나는 손을 내밀었다.

“만물의 어머니, 쿠라(Kura)!”

김필도는 곧바로 물의 속성 마법을 펼쳤다. 어떤 사물을 물의 마나로 채우는 마법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펼치면 익사하여 죽게 되는 위험한 마법이지만 아가미가 있는 그녀에게는 괜찮았다.

물의 속성 마법을 펼치자 라헤나의 피부가 축축해지며 연 무지갯빛을 띠는 본래 색으로 되돌아갔다.

“실전 마법인가요?”

라헤나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팔에서는 윤기가 흐르고 생기가 넘친다. 마치 수백 년 세월을 되돌린 것 같았다.

“네.”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낮게 외쳤다.

“시간의 멈춤, 만물을 보존하라! 메인터넌스(Maintenance)!”

마법 지팡이 끝에 모여든 마나가 라헤나의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유지 마법의 하나였다.

“점점 괴물로 진화해 가고 있네요.”

라헤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김필도를 바라보았다.

실전 마법은 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전한 관계로 존속 시간이 짧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김필도는 실전 마법의 단점을 클래스 마법으로 극복하여 새로운 마법을 창안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 시도해 본 건데 다행히 성공한 것 같네요.”

김필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실전 마법과 클래스 마법의 합일. 장차 그가 이루어야 할 목표다. 그런데 시작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지속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라헤나의 피부는 공기 중에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탱탱한 채다. 한기는 온몸을 괴롭혔지만 물 밖에서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리고 한기 또한 물속에 있는 것보다는 많이 완화된 상태였다.

“그건 나도 알 수 없어요.”

상대 지속 마법은 영구 마법의 기초가 된다. 마력이 강할수록, 경지가 높아질수록 길어지는데, 정확하게 얼마의 지속 시간을 가지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처음 시도한 거란 말이네요?”

“네.”

김필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은 제가 재 볼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한 게 별로 없는데요, 뭐.”

김필도는 라헤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침대로 자리를 옮기는 거예요?”

라헤나는 얼른 김필도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젠 침대로 들어가도 고통은 없겠죠?”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괜찮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침대로 들어가 시트를 덮었지만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김필도는 물었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라헤나는 눈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다시 깨어나 처음으로 고통 없는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라헤나는 김필도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고맙다는 말도 자주 하면 접대용 멘트처럼 들리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알았어요. 하지만 이건 말리지 마세요.”

라헤나는 배시시 웃으며 김필도 위로 올라갔다.

“그건 대 환영이죠.”

김필도는 활짝 웃으며 라헤나를 껴안았다.

물의 마나는 라헤나의 피부마저도 바꿔 놓은 듯했다. 마치 기름막이 형성된 것처럼 피부는 미끈거렸다.

뜨거운 열기에 에워싸인 두 사람의 입술이 하나가 되고, 손은 서로의 몸을 쓸었다. 침실은 금세 용광로처럼 활활 타올랐다.

라헤나는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적극적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석화 마법에 걸려 정지된 세월을 살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주어진 수명보다 열 배 이상을 더 산 상태.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절박감이 그녀를 불덩어리로 만들었다.

온몸을 불사르던 두 사람이 잠이 든 건 점심 무렵이었다. 문안 인사 하러 온 케이샬에게 식사는 필요 없다는 말을 전하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밤 열 시가 돼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배 안 고파요?”

김필도는 라헤나를 보며 물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었어요.”

“빨리 샤워하고 식사해요.”

“알았어요.”

“먼저 하세요. 난 케이샬에게 식사 준비해 놓으라고 할게요.”

김필도는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간 건 그로부터 1시간 후였다. 식당엔 식사가 준비돼 있었다.

김필도와 라헤나는 정신없이 식사를 했다.

30분 정도 흐르자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더 드시겠습니까?”

시중을 들던 케이샬이 물었다.

“난 됐는데, 라헤나는 어때요?”

“나도 됐어요. 고마워요, 케이샬.”

“천만에요. 그보다 라헤나 님 몸에 마법을 펼치셨군요.”

케이샬은 라헤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마나의 흐름만으로 마법이 펼쳐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표가 많이 나요?”

김필도는 케이샬을 보며 물었다.

“웬만한 마법사는 금세 알아차릴 겁니다. 그런데 무슨 마법입니까?”

케이샬은 라헤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가지 마법을 펼친 상태예요.”

“두 가지라면…….”

“하난 온몸을 물의 마나로 채우는 마법이고, 그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상태 유지 마법이 두 번째 마법이에요.”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걸었단 말이군요.”

“그게 아니면 극심한 고통 때문에 생활이 쉽지 않거든요.”

“제가 보기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자인 것 같던데…….”

케이샬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라 유저가 되면 웬만한 병은 걸리지도 않고, 설령 병에 걸렸다고 해도 오라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펼쳤다는 건 병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 되는데 케이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만!’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라헤나를 가만히 살폈다.

“혹시 오라 부작용입니까?”

잠시 라헤나를 살피던 케이샬이 물었다.

“오라 부작용에 대해 아세요?”

라헤나가 물었다.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압니다.”

“전…….”

라헤나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물 밖으로 나오면 피부가 부서지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피부는 괜찮은데 한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군요.”

“강해질수록 증상은 더욱 심해져요.”

“오라 부작용이 맞는군요.”

케이샬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할 수 있을까요?”

라헤나는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마나의 성질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직은 뭐라고 해 줄 말은 없습니다. 라헤나 님의 마나에 대해 좀 더 연구를 한 후에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고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라헤나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하지만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제의 상황은 어때요?”

라헤나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김필도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대공 전하께 황궁을 넘길 모양입니다.”

“황실을 내게 넘긴다는 건 무슨 뜻이죠?”

“누군가는 황실을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게 수도를 맡기고 자기는 숨겠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수도를 지키려면 군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국군도 수도에 남는답니다.”

“그러니까 나더러 제국군을 지휘해서 수도를 지키라는 거군요. 그리고 자기는 전쟁이 끝나면 돌아올 생각이고요.”

“이미 노틸리어스 공작을 불러들인 걸고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노틸리어스 공작이 날 찾아오겠네요?”

“그럴 겁니다.”

케이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날 어떻게 대하죠?”

“진짜 대공으로 알 겁니다.”

“노틸리어스 공작에게는 내 신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나 보죠?”

“끝까지 숨길 생각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틸리어스 공작은 어떤 사람이죠?”

김필도는 창가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헬모트나 노르탄 공작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잡니다.”

“공작 자격이 없는 자란 말인가요?”

“세간의 평가는 그렇습니다.”

“케이샬의 생각은 다른가 보죠?”

“아닙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황제가 부려 먹기 위해 선택한 자일 뿐입니다.”

“제국군이 총 몇 명이라고 했죠?”

“기갑기사 2만 명, 기사 5만 명, 병사 20만 명. 총 27만 명입니다.”

“제국군의 상태는요?”

“사기를 말하는 겁니까?”

“네.”

“사기도 높고 기강도 상당히 안정돼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자가 다스리는 조직이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공작 밑에 있는 세 명의 사령관이 뛰어나다는 평가입니다.”

“어떤 자들인데요?”

“기갑기사단 단장은 샬 블레어 후작인데 뼛속까지 기사라는 의미로 스켈레톤 나이트라 불리고, 발탄 기사단 단장인 로그 고르딘 후작은 검술과 뛰어난 머리를 겸비했다고 하여 폭스 나이트, 그리고 군 사령관인 베르토니 엘파소 후작은 냉철하고 강한 기사라고 해서 울프 나이트라고 불립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죠?”

“세 사람이 전부 오십 대이고, 발칸 아카데미 동기입니다.”

“엘리트들이네요?”

“대단한 자들입니다. 전국에서 날고 긴다는 인재들이 모인 발칸 아카데미에서 15년 동안 수석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네 명 중 세 명이니까요. 얼마나 대단했던지 함께 다니던 학생들이 ‘발칸의 4대 공작’이란 별명까지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기갑기사나 기사들은 대부분 발칸 아카데미 출신인가 보죠?”

“90퍼센트 이상이 발칸 아카데미 출신입니다.”

“발칸의 4대 공작이라고 불렸을 정도면 그들은 기사들의 우상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기사들에게 그들 세 사람의 말은 곧 법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발칸의 4대 공작이라고 하던데 남은 한 명은 누구죠?”

“헤론 영지의 영주인 미하이 엘라소 헤론입니다.”

“아! 그 친구?”

“아십니까?”

“전에 히부스 산에서 전투를 할 때 만났던 자예요.”

“그랬군요.”

“그런데 헤론 영지는 어떻게 됐죠?”

“헤론 영지는 초토화됐습니다.”

“결국 영지를 지키지 못했나 보네요.”

“수십만 명이면 백작령 정도는 하룻밤이면 없앨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지. 아무튼 제국군의 기강이 강한 이유는 노틸리어스 공작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발칸의 4대 공작인가 하는 자들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케이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그건 만나 보면 알겠죠.”

김필도는 서늘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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