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시체 두 구 모두 머리가 잘려 있었다.
“아악!”
“으아악!”
“아아악!”
휙!
파앗!
팍!
비명이 들려오자마자 데메우스 일행은 동시에 몸을 날렸다. 하지만 데메우스 일행이 시체로 변한 동료 근처에 도착했을 때 흉수는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놈도 부상을 당한 것 같습니다, 군단장님.”
주위를 살피던 데본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땅바닥엔 뭔가가 스며든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피였다.
“계속 찾아라!”
“여기도 있습니다!”
10여 미터를 나아갔던 데본이 또다시 소리쳤다.
핏자국은 카단 산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슈캉!
“아악!”
차앙!“
스악!
“크아악!”
“젠장!”
또다시 비명이 들려오자 데메우스 일행은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들이 발견한 것은 동료의 시체와 흉수가 남긴 걸로 보이는 핏자국이었다.
“더 이상 쫓아간 부하는 없습니다.”
보고를 하는 데본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어떤 놈인지 얼굴도 못 봤단 말이냐?”
“그런 것…….”
“저기 있습니다. 저기 놈이 있습니다, 군단장님!”
부하 중 한 명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데메우스는 시선을 들었다.
부하의 말대로였다. 50여 미터 건너편 바위 위에 전투기갑을 걸친 자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다, 데메우스!”
“응?”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데메우스는 깜짝 놀랐다.
“누구냐?”
“리모스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벌써 잊었나 보지?”
“리모스면…… 설마 루시안?”
“맞다, 데메우스. 네놈 부하 수십 명의 숨통을 끊어 놓았던 루시안이다.”
“죽일 놈!”
데메우스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네놈이 이걸 원했다고 하던데, 맞아?”
김필도는 헬칸을 들어 올렸다.
“그게 헬칸이란 말이냐?”
“맞아, 마계10군단의 전대 군단장인 히데우스께서 내게 물려주신 검이야.”
“물려준 게 아니고 히데우스 시체에서 훔쳤겠지.”
“가진 거라고는 아비 백밖에 없는 넌 그렇게 믿고 싶겠지.”
“훔치지 않았단 말이냐?”
“내가 이걸 훔쳤는지 훔치지 않았는지 네가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어떠냐.”
“어떻게 확인한단 말이냐?”
“네 검으로 확인하는 거다. 네 아빠 실력이 아닌 네 실력으로.”
우드득!
데메우스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하들을 부르겠습니다, 군당장님.”
듣고 있던 데본이 말했다.
“놈이 숲으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데본.”
“놈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핏자국을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핏자국은 포션만 있으면 금세 없앨 수 있다는 걸 모르느냐?”
“놈의 위치를 알려 주는 건 핏자국뿐만이 아닙니다.”
“그럼 또 뭐가 있단 말이냐?”
“카단 산에는 몬스터가 넘쳐 난다고 들었습니다. 굶주린 몬스터들이 공격하게 될 테고, 놈은 공격해 오는 몬스터를 없앨 수밖에 없습니다.”
“몬스터 시체가 흔적으로 남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좋다! 부하들을 전부 불러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데본은 통신 마법구를 꺼내 숙소에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을 불렀다. 마계10군단 대원 2백여 명이 카단 성 산자락에 도착한 것은 1시간 후였다. 숲 속 바위 위에 서 있던 김필도는 이미 산속으로 모습을 감춘 후였다.
“전부 다 온 거냐?”
데메우스는 좌우로 도열해 있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인질을 지키는 대원 10명을 뺀 전붑니다.”
인원 점검을 마친 데본이 보고했다.
“좋다, 각 조별로 이동하도록 한다. 놈을 발견하면 바로 소리를 질러 다른 조에게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군단장님!”
마족들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카단 산으로 올라갔다.
숲으로 들어가는 마족을 가만히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조금 전 바위 위에서 데메우스를 도발하던 김필도였다.
“데메우스 네놈 제삿날은 내일이 될 거야.”
김필도는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이동!”
이어 그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슈아악!
전투기갑을 걸친 검은 동체가 무서운 속도로 어둠을 갈랐다.
제5장 재회
툭!
또르르르!
툭!
또르르르!
지붕으로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가 굴러 내려오는 소리에 맨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 다음 발치로 떨어졌었는데 이번에는 떨어지지가 않았다.
툭!
또르르르르!
“또 안 떨어지네.”
평소와는 다르게 은행이 떨어지지 않자 신경이 거슬렸다.
툭!
또르르르!
“젠장!”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맨슨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처마를 벗어나 지붕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안녕!”
“헉!”
스악!
쩍 벌어진 맨슨의 입이 다물어지기도 전에 백색 광채가 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맨슨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턱!
더불어 잘려 나간 머리 또한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는 머리를 잡아챈 손 때문이었다.
그 손의 주인은 김필도였다.
휙!
지붕 아래로 내려온 그는 건물을 돌아 후원으로 갔다. 그곳에는 마족의 머리 아홉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김필도는 마족의 머리를 묶어 들고 자리를 떴다.
잠시 후 그가 멈춘 곳은 디바스칸 백작이 머물고 있는 성이었다.
“누구냐?”
김필도가 다가가자 건물 앞에 서 있던 기사가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이다!”
김필도는 정문 앞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대공이라고?”
“들어가서 디바스칸 백작에게 내가 선물을 가져왔다고 전해라.”
김필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 한 명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바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회의실 안에는 디바스칸 백작을 비롯한 21명의 영주가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의 주제는 마족에게 굴복하느냐 아니면 가족의 목숨을 포기하고 전쟁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디바스칸 백작은 기사를 보며 물었다.
“루시안 아이작 프리우스 대공이 오셨습니다.”
“프리우스 대공이?”
“그렇소, 백작. 나요.”
대답은 출입문에서 들려왔다.
디바스칸 백작은 시선을 돌렸다.
“헉!”
“억!”
김필도를 바라보았던 영주들의 입에서 일제히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덩어리 때문이었다. 김필도가 아무렇게나 들고 있는 그것은 놀랍게도 마족의 머리였던 것이다.
“그, 그건…….”
디바스칸 백작은 김필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첫 만남이고, 부탁할 것도 있는데 마땅한 선물이 생각나지 않지 뭐요. 그래서 ‘뉘우침의 집’을 지키고 있던 놈들의 머리라면 백작을 비롯한 영주들이 기쁘게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져왔소.”
김필도는 마족들의 머리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지, 지금 ‘뉘우침의 집’이라고 하였습니까?”
제1영주 페릴 백작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뉘우침의 집은 각 영주들의 가족이 마족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곳이었다.
“그렇소.”
“내가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제2영주 리스콘 백작이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멈추시오, 백작.”
디바스칸 백작이 리스콘 백작을 말렸다.
“왜 그러십니까?”
리스콘 백작은 디바스칸 백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동로군벌에 들어와 있는 마족은 전부 2백 명이라는 걸 잊었소?”
“으음!”
리스콘 백작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족을 지키는 자들이 없다는 말에 아직 190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가족을 데리고 와도 되오.”
김필도는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스콘 백작은 물었다.
“놈들이 숙소에 있다면 지금 열심히 싸우고 있지, 이곳에 올 시간이나 있었겠소?”
“……?”
리스콘 백작은 멍한 얼굴로 김필도를 보았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다. 과거 감옥으로 사용했던 ‘뉘우침의 집’은, 현재 마족들이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경비가 죽임을 당하면 다른 자들이 깨어났을 테고 한창 싸우고 있어야 한다.
열 명의 머리를 들고 이곳으로 올 상황이 아니었다.
“놈들은 지금 날 찾느라 카단 산을 헤매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러니까 가서 가족을 구해 오도록 하시오.”
리스콘 백작은 디바스칸 백작을 바라보았다.
“기사들과 함께 다녀오시오. 아니, 함께 갑시다.”
디바스칸 백작을 비롯한 영주들은 우르르 몰려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영주와 기사들을 태운 전투마 수백 필이 뉘우침의 집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온 건 1시간 후였다.
그때 김필도는 영주의 성을 나서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전하!”
디바스칸 백작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다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말에서 내려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인사는 데메우스 그놈의 머리를 가져와서 합시다.”
김필도는 총총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십니까, 전하!”
디바스칸 백작은 멀어지는 김필도를 보며 소리쳤다.
“사냥하러 가는 거요.”
김필도가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윽고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으음!”
디바스칸 백작은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1영주 패릴 백작이 물었다.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디바스칸 백작은 뒤편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각진 얼굴의 사내는 카단 기사단 단장인 보일 램버트 자작이었다.
“바로 조사해서 보고 올리겠습니다, 영주님.”
디바스칸 백작의 의중을 알아차린 램버트 자작은 주변에 서 있는 기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곧 20여 명의 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30분 후 디바스칸 백작을 비롯한 영주들은 램버트 자작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았다.
“총 13구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세 구는 마족들의 숙소에 있고, 나머지 열 구는 카단 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마족을 살해하면서 카단 산으로 유인했다는 뜻이 되는 건가?”
“목격자들에 의하면 이백여 명의 마족이 카단 산 방향으로 급하게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럼 대공이 회의실로 들어온 건?”
“그들이 떠나고 1시간 정도 지난 후입니다.”
“대공 혼자서 23명의 마족을 없앴다는 건데…….”
디바스칸 백작은 제1영주 패릴 백작을 보았다.
“그분은 마족의 머리 10개를 가지고 왔습니다.”
“혼자서 마족 10명을 없앨 정도로 강자란 말인가?”
“지금 그분이 마족 10명을 없앨 정도로 강자인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총 영주.”
“우리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총 영주. 총 영주는 부모님을 잃었고, 전 아내를 잃었습니다. 리스콘 백작과 후버 백작은 아들을 잃었고, 챌린지 백작과 곤 백작은 딸을 잃었습니다. 저는 복수를 하고 싶습니다.”
“좋소, 백작. 복수를 하도록 합시다. 곤 백작은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다른 분들은 기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카단 산 산기슭으로 집결하시오.”
“알겠습니다, 총 영주!”
영주들은 일제히 소리치며 말을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