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 김필도-213화 (213/225)

# 213

오디안과 알리토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감각을 끌어올렸다. 숨어 있는 마족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일 끝나고 보세.”

숨어 있는 자들을 찾은 듯 알리토는 암흑 마법을 펼쳐 대기 중으로 녹아들어 가며 자리를 떴다.

“그러지요.”

오디안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그 상태로 서 있는 그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흘러나왔다.

“은밀함! 그 조용한 움직임. 인비지빌리티!”

오디안의 모습이 천천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마법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바위를 으깨는 힘! 멀티 빅바이스 핸드!”

또 다른 외침이 흘러나오고 거대한 손바닥 수백 개가 생겨났다가 모습을 감췄다. 마나로 이루어진 손바닥 또한 인비지빌리티 마법의 영향을 받아 대기 중으로 녹아들어 간 것이었다.

오디안의 기척이 금세 지워졌다.

캡틴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그는 지금 암흑 마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대기 중으로 녹아들어 간 상태다. 물론 한낮이라 밤보다는 약하지만 누군가에게 들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누군가가 이편을 주시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몇 번에 걸쳐 장소를 이동했지만 기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암중의 시선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캡틴!

바로 그때 동료인 비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흑 마법을 활성화시킨 상태에서는 자연적으로 펼쳐지는 텔레파시 마법이었다.

-왜 그러나?

-우리 주위에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나도 느끼고 있다. 적은 상당히 강자다.

-콕스와 보테인도 감지했다고 한다.

-우리 넷을 동시에 노리고 있단 말인가?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모습을 드러내 놈을 유인하겠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순간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그때였다.

크아우우우!

차가운 외침과 함께 흐릿한 물체 하나가 가공할 속도로 비칸을 향해 쏘아져 갔다.

“지금이다, 캡틴!”

“간다!”

캡틴은 전 마나를 동원하여 몸을 날렸다. 그가 몸을 날리는 그 순간 반대편에서도 두 명의 마족이 바닥을 차고 쏘아져 갔다. 그들은 콕스와 보테인이었다.

“이런 젠장!”

비칸의 얼굴이 굳어졌다. 동료가 다가오기도 전에 희끄무레한 물체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희끄무레한 물체는 다름 아닌 시아나였다.

그는 검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하지만 그보다 희끄무레한 물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대검이 허공을 잘라 내기도 전에 짐승의 손톱처럼 생긴 기다란 무기가 비칸의 왼편 가슴으로 파고들어 갔다.

슈캉!

가슴으로 파고들어 간 다섯 개의 손톱은 심장과 전투기갑을 동시에 부쉈다.

“크악!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는 순간 희끄무레한 물체는 오른편으로 쏘아져 갔다. 잔뜩 웅크린 동체가 쭉 펴지더니 암흑 마법을 펼치고 있는 두 마족의 심장으로 기다란 손톱이 파고들었다.

그아우우우!

시아나는 살기 어린 외침을 토해 내며 양손을 거머쥐면서 뽑아 냈다. 그녀의 양손에는 두 마족의 뜯겨 나간 심장과 부서진 전투기갑이 들려 있었다.

“아악!”

“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두 마족이 풀썩 쓰러졌다.

스악!

바로 그때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시아나의 등 쪽에서 들려왔다. 찌르기를 시도하며 쏘아져 가고 있는 이는 캡틴이었다.

휙!

캡틴의 검이 그녀의 등에 구멍을 내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시아나의 동체가 사라졌다.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캡틴의 등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오른손은 이미 캡틴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간 상태였다.

“컥!”

캡틴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더 빨랐다고 확신했다. 검 끝이 상대의 등에 닿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검이 막 파고들려는 순간 적의 동체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심장에서 극렬한 통증이 밀려온 것이었다.

그아우우우!

“너, 너희가 가진 모든 기술은 우리 철족으로부터 나왔다는 걸 알아야 한다. 거, 검둥이.”

스윽!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시아나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그녀의 기척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곧이어 계곡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데메우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김필도가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리모스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계곡으로 들어온 마족의 수는 1백50명이 넘는다. 그들을 전부 없애는 건 설령 마계 제일 전사인 칼베리언도 불가능하다.

더구나 마족들은 암흑 마법까지 극성으로 펼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전부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단 한 명, 벌레 같은 놈에게.

휘이익!

스악! 스악! 스악!

“크악!”

“아악!”

“으아아악!”

주변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데메우스는 시선을 돌렸다. 세 개의 머리가 둥실둥실 떠오르고 원반 형태의 검은 물체가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척!

나무 뒤에서 손 하나가 나오더니 원반이 척 달라붙었다.

“네놈이더냐?”

데메우스는 검을 그러쥐며 소리쳤다.

“응, 나야.”

나무 뒤에서 김필도가 걸어 나왔다. 그는 헤를리온을 걸치고 헬칸을 쥔 채였다.

“죽일……!”

데메우스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리모스에서 보고 두 번째지?”

김필도는 빙긋 웃으며 데메우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몸에서는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개자식!”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데메우스는 곧바로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암흑 마법을 끌어올린 듯 10여 미터를 나아가기도 전에 그의 신형은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강철의 굴강, 노콴!”

콰앙!

김필도는 낮게 소리치고는 오른발로 바닥을 힘차게 밟았다. 그러자 그 앞에 있던 땅이 파도처럼 벌떡 일어나 장벽을 형성했다.

콰앙!

“커억!”

흙더미 장벽에서 둔탁한 소성과 함께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암흑 마법으로 나아가던 데메우스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은 흙의 장벽을 피하지 못하고 부딪쳐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장벽은 단순한 흙이 아니었다.

‘강철의 굴강 노콴’ 마법은 흙을 들어 올렸을 뿐 아니라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즉 데메우스는 바위 벽을 향해 돌진한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

바닥으로 내려선 데메우스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파앗!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김필도의 신형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데메우스를 향해 쏘아져 갔다.

데메우스는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강한 기운을 머금은 헬칸이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콰앙!

두 검이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성이 흘러나왔다.

“크윽!”

데메우스는 나직한 비명을 흘리며 물러났다.

그는 자세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중심을 채 잡기도 전에 헬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데메우스는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방어를 위해 들어 올렸던 검에 머리가 찍힐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데메우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인간에게 밀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수십 명의 부하가 죽었지만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일반 마족도 아니고 최상급 마족이 아닌가. 그런데 방어하는 게 버거울 정도로 김필도의 힘은 강했다.

“나도 그래, 데메우스. 어떻게 최상급 마족이란 놈이 하찮은 인간의 검조차 막아 내지 못하는 거냐. 나 같으면 창피해서 자살하고 말 거야.”

김필도는 이죽거리면서 계속 공격을 했다.

그의 공격은 다양했다. 옆으로 휘두를 때도 있고, 위에서 내리찍을 때도 있고, 심장을 향해 찔러 넣을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데메우스는 강렬한 충격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죽여 버리겠다, 개자식!”

데메우스는 으르렁댔다.

그는 기회를 노렸다. 일단 거리를 벌리고, 호흡을 고르고 나면 상황을 반전시키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콰앙!

‘지금이다!’

데메우스는 부딪친 여력을 이용해서 오른편으로 몸을 날리며 뒹굴었다. 한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그는 쉬지 않고 몸을 굴렸다.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 놓으려는 심산이었다.

“……!”

한참을 굴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데메우스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김필도가 조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공터 주위에는 인간 기사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데메우스가 장악하려고 하였던 동로군벌 기갑기사들이었다.

동로군벌 기갑기사들이 계곡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고스트 킹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었다. 싸움이 막바지에 이르자 고스트 킹은 숨어 있는 마족을 없애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동로군벌 기갑기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기갑기사들을 이끌고 있는 다섯 백작들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르는 재주는 타고났구나, 데메우스!”

김필도의 목소리에 일행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지금은 꿈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부드득!

데메우스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보다 더한 치욕은 있을 수가 없다. 인간 앞에서 광대가 돼 버린 듯했다.

“데메우스! 네놈이 과연 인간을 벌레 취급할 자격이 있는지 보자. 와라, 데메우스!”

“크엉”

데메우스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김필도를 향해 쏘아져 갔다. 단 한 번도 광대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마족도 아니고 인간 앞에서 광대가 된 것이다.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도저히 지금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설령 죽는다고 해도 놈의 목을 잘라 내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기다렸다, 데메우스!”

김필도는 데메우스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둘은 금세 중간에서 만났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이는 데메우스였다. 강력한 힘을 머금은 데메우스의 검이 김필도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콰앙!

둘의 중간에서 두 검이 엑스 자로 얽혔다. 체격이 거의 두 배 차이가 났지만 김필도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데메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당한 걸 갚아 주려는 듯 전력을 다해 검술을 펼쳤다.

그의 신형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김필도를 공격했다. 극성에 이른 암흑 마법이었다.

콰앙! 쾅쾅쾅! 쾅쾅! 쾅쾅쾅!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힘에서는 물론이고 움직임에서조차도 김필도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는 정확하게 헬칸을 휘둘러 데메우스의 검을 막아 냈다.

“대단하군.”

패릴 백작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이 아니라면 인간이 최상급 마족을 압도하는 광경을 볼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꿈은 아니겠죠?”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패릴 백작은 고개를 돌렸다. 리스콘 백작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라면 좋겠소?”

패릴 백작은 되물었다.

“천만에요.”

“그나저나 저분 엄청나네요.”

패릴 백작은 다시 김필도를 보았다.

“저런 건 엄청난 게 아니라 감동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제3영주 챌린지 백작이 말했다.

“그렇군요. 정말 감동적입니다.”

패릴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듯 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느껴졌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오고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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